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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도대체 문장이 되지 않는 말입니다. 편하면 편한 것이고 불편하면 불편한 것이지 편하고도 불편하다니. 그러나 나 같은 세대가 살기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도대체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집에서 한 발자국 나가지 않아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요즘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제는 단연 ‘챗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입니다. GPT는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문장과 글을 생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AI입니다. 입에 이어 이제는 눈까지 생겼습니다. GPT는 이제 인간과 컴퓨터의 언어까지 구사하며 원하는 답과 제품을 알려주는 데까지 이르렀다고 합니다. 나 같은 세대는 모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코흘리개 때부터 동네 아이들과 산과 들로 달리며 어울려 놀았고, 학창 시절부터 사회인이 되어서도 끼리끼리 어울려 살았습니다. ‘사람에겐 사람과의 접촉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접촉하느냐에 따라 내 안의 생각, 관념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들을 읽으며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이런 말들이 공허하게 느낍니다. 사람이란 단어를 AI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대화는 의사소통이면서 마음을 주고받는 수단입니다. 이젠 사람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습니다. 가족이나 친지끼리 식당에 가서도 서로 대화하기보다는 각자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먹고 나갑니다. 어디를 가나 사람 대신 기계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버스 발권도 앉아서 기계가 해주고, 식당에 가서도 기계로 주문합니다. 옷도 앉아서 주문하고 카페에서도 기계가 다 해줍니다. 청소도 기계가 해주고, 빨래도 기계가 해줍니다. 도대체 기계가 못하는 게 무얼까 싶습니다. 사람이 없어도 기계만 있으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수술도 기계가 해주고 글도 기계가 지어줍니다. 앞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무얼까요? 도대체 기계는 어디까지 갈 것인가요? ‘가수 김광석 목소리로 AI가 노래 불렀어요’ 작년 조선일보 2월 9일 자 신문에 난 기사의 제목입니다. 세상을 떠난 가수가 부르는 최신곡을 기계가 부른다고 했습니다. AI가 생전 목소리를 익혀 부른다고 했습니다. 아나운서가 직접 말하지 않아도 기계가 대신 뉴스를 전해준다고 합니다. 사진도 진짜같이 만들고 목소리도 진짜같이 만든다나요. 언젠가 TV에서 이미 저세상에 가 있는 전원일기에 나오는 탤런트를 불러내어 산 사람과 대화하는 영상을 보고 섬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AI가 시를 쓴다고 합니다. 사람이 쓴 시보다 더 쫄깃합니다. 그 시를 인간이 낭송하고 무대에서는 AI 무용수가 춤을 춘다고 합니다. 지금은 범죄 사실을 그들 사이에 오갔던 대화의 녹취록으로 진실을 밝혀냅니다. 하지만,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녹취록도 무용지물이 될 때가 올 듯합니다. 얼마든지 기계로 조작할 수 있으니까요. 이뿐인가요? 이제는 운전 면허증도 필요 없고 따라서 노약자들의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자동차가 다 알아서 해줄 건데, 뭣 때문에 면허가 따로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나 같은 세대는 참으로 기계가 편리하면서도 불편합니다. 알면 간단하고 편리한데 너무 빨리 진행되다 보니 따라잡을 수가 없습니다. 다룰 줄 모르니 답답하고 불편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늙을수록 더 배워서 좋은 세상 편리하게 살라고. 하지만, 이미 쇠하여진 세포를 살려낼 방도는 없습니다. 알았다가도 금방 까먹습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불편한 건 불편하게 살면 됩니다. 조금 참고 발품을 팔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든 기계들이 사람을 무시하고 사람을 갖고 노는데 화가 납니다. 인정도 없고, 사랑도 없고, 융통성도 없고, 고집만 센 기계가 사람 꼭대기에 앉아 사람을 부려 먹는 꼴에 부아가 치밉니다. 자칫하면 정(情)은 고사하고 진실마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상대방 목소리를 10시간 정도만 학습하면 인공지능 목소리인지 사람 목소리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울 정도까지 인공 지능 기술이 발달했어요.’ 기사 속 내용입니다. 그놈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요? 편하고도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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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3-04-18
  • 허위공문서작성죄의 성립 여부
    [개요] 사법경찰관이 재수사 결과서에 허위 내용을 기재한 것이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3. 3. 30. 선고 2022도6886 판결) [요지] 사법경찰관인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피해자들로부터 교통사고경위에 대해 구체적인 진술을 청취하여 운전자 도주 여부에 대해 재수사할 것’을 요청받았음에도 재수사 결과서의 재수사 결과란에 피해자들로부터 진술을 청취하지 않고도 진술을 듣고 그 진술내용을 적은 것처럼 기재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이나 추측에 불과한 것을 마치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진술인 것처럼 기재한 경우,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성립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문서에 관한 죄의 보호법익은 문서의 증명력과 문서에 들어 있는 의사표시의 안정·신용으로, 일정한 법률관계 또는 거래상 중요한 사실에 관한 관계를 표시함으로써 증거가 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서를 대상으로 한다. 그 중 공무소 또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하여 진실에 반하는 허위 내용의 문서를 작성할 경우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성립하고, 이는 공문서에 특별한 증명력과 신용력이 인정되기 때문에 성립의 진정뿐만 아니라 내용의 진실까지 보호하기 위함이다(대법원 2022. 8. 19. 선고 2020도9714 판결 등 참조). 허위공문서작성죄에서 허위라 함은 표시된 내용과 진실이 부합하지 아니하여 그 문서에 대한 공공의 신용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를 말하고(대법원 1985. 6. 25. 선고 85도758 판결 등 참조), 허위공문서작성죄는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면서 그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인식하면 성립한다(대법원 1995. 11. 10. 선고 95도1395 판결 등 참조). 대법원은 위 기준에 따라서 이 사건 피고인인 사법경찰관이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진술을 듣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나 추측을 마치 진술을 듣고 그 진술내용을 적은 것처럼 재수사결과서를 작성하였는데, 피고인이 비록 피해자들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 피고인 자신의 판단에 따라 기재하는 내용이 객관적인 사실에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하여 허위공문서작성죄의 범의를 부정할 수 없는 바, 이 사건 피고인에게 허위공문서작성죄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시하여 이와 달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사례제공 : 박범진 변호사 (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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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8
  • 서산시의회 ‘싹수’가 필요하다
    지방의회 의원은 지방자치법에 따라 자신을 뽑아준 주민을 대표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과 결산을 심의하여 확정하고 행정 업무 감사 권한도 가졌다.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에 참석해 귀빈 대접을 받는다. 그런데도 지방의원들이 자질 시비에 휘말리고 각종 비위나 감투싸움 등으로 도마 위에 오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9대 서산시의회가 의원들 간의 갈등이 도를 넘어 진흙탕 싸움으로까지 확산되는 모양새다.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누가 옳고 그른지 진위여부를 떠나 막말과 욕설을 아무 때나 공공연하게 하며 의정을 극도로 혼란하게 몰아가고 있다. 이런 서산시의회를 두고 ‘지방의회 무용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과연 서산시의회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서산시의회의 이러한 염려는 지난해 6.1 지방선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7석씩 차지하면서 원 구성과정부터 파행이 시작됐다. 결국 개원일정을 25일 넘기며 더불어민주당 이수의 의원이 시민들의 여론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며 원구성을 위한 임시회에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과 참여해 의장과 부의장을 선출했다. 서산시의회 파행을 막은 이수의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충남도당으로부터 당원 제명 결정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시의원들의 일탈도 끈이지 않았다. A의원은 서산시 고위공직자의 멱살을 잡고 막말한 의혹과 함께 의회 사무국 여직원에게까지 모욕적인 막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파장을 일으켰다. B의원은 한 행정복지센터 주차장에서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 주차된 차량과 접촉 사고를 내고도 그대로 현장을 떠나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B의원은 피해 차량 운전자가 주변 CCTV를 확인해 가해 차량을 신고함에 따라 적발됐다. 최근에는 복수의 의원에 대한 징계요구까지 빗발치고 있다. 서산공항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무산 가능성이 염려되는 시점에서 서산시민은 물론 220만 충남도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갈등 양상은 제284회 임시회 2차 본회의에서 그대로 노출됐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무소속인 이수의 부의장과 국민의힘 소속 강문수 의원이 각각 신상발언을 통해 한 식당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하며 서로에 대한 공세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이 부의장은 “본회의를 마치고 오찬장으로 이동해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는 의원 11명과 직원들이 참석했다”며 “그 식당에는 ‘식사 중 대화를 자제합시다’라는 스티커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자리에 함께한 의원들이 웃으며 대화를 했고 자신이 “식사 중 조용히 합시다”라고 했지만 잦아들지 않았다고 주장한 뒤 “본 의원은 ‘에이 정말, 밥 못먹겠네’라며 숟가락을 내려놓고 일어나 나갔다. 그 과정에서 옆에 있던 물 컵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직원들이 물컵을 세우고 물을 닦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문수 의원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서산사랑상품권 관련 담소를 나눴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그대로의 표현을 해보겠다”며 “(이 부의장이) 조용히 좀 합시다! 식사 좀 합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조그맣게 대화를 나눴는데 2~3분 지나지 않아 우당탕 뭔가 날아가고, 숟가락을 집어던지면서 상을 쓸어버리고…물 컵을 쏟고 국물이 흐르는 난장판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서산시의회에 대한 잡음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슬그머니 해외연수를 떠나는가 하면 4억여 원의 혈세를 들여 개인사무실을 만들어 시민들의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최근에는 환경오염대책특별위원회가 활동 과정에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모든 음식의 맛이 다르듯, 정치 영역도 맛이 다르다. 권력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아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맛을 알아도 본질적인 과업을 수행하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것은 지(知, 智)와 ‘싹수’가 필요하다. 지(知)와 지(智)는 사물의 이치를 밝히고 그것을 올바르게 판별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다. 지금 서산시의회에 필요한 것은 ‘싹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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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놓아 버리자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일흔다섯 살에 쓴 아모스 오즈의 마지막 소설 ‘유다’를 읽다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고 해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바꿀 수 없어요. 미워하는 사람을 노예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가 사랑하게 만들 수는 없어요. 세상에 있는 힘을 모두 합한다 해도 복수에 목마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요.” 그렇습니다. 용서는 그만큼 어렵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마다 한 결 같이 강조하는 것이 용서이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며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여 년 전에 보았던 영화 ‘밀양’은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와 살게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없어 보이지 않으려고 재력을 과시하는 바람에 학원 원장에게 아들을 유괴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잃은 후 실의에 빠져 살다가 교회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살인범을 용서하겠다고 마음먹고 살인범을 만났으나 자기는 이미 신에게 용서받았다는 살인범의 뻔뻔한 모습을 보고 실신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자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주인공의 절규하는 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난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받았대요.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용서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어요? 왜? 왜?” 용서는 이처럼 어렵고 힘듭니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과 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해의 수단이 아닙니다. 범인의 반응에 따라 용서해주고 용서하지 않고는 진정한 용서의 자세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동의나 인정하는 걸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증오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용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용서는 바로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요 처방입니다. 이 주간 용서라는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고난 주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처음으로 하신 말씀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용서의 말씀입니다. ‘일곱 번뿐만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떠안고 속죄를 하신 것입니다. 달라이 라마는 중국에 빼앗긴 조국 티베트 해방을 위해 헌신하고 또 중국인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를 향해 나갈 수 있게 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 우리가 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포함해 용서는 그들과 하나가 될 수 있게 해준다.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 와는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는 우리 자신이 그렇듯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아라. 그러면 그들에 대한 자비심을 키우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용서는 깨어있는 자의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분노의 보복보다 더 큰 이익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는 자유인만이 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용서만이 증오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또한 용서는 미래를 열어줍니다. 과거의 원한으로 과거에 매어 미래를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일입니다. 과거의 포로가 되어서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유행가도 있습니다. 내가 먼저 손 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고 내가 먼저 섬기면 세상은 이전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용서란 그리스어로 ‘놓아 버린다’ 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산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혹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놓아버립시다.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세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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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2
  • 죄의 값
    화제는 단연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이야기였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H씨를 만났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었기에 식당에 들어갔더니 마침 TV에서 묘비를 닦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물론 다른 손님도 그 장면을 보면서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TV에서 준수하게 생긴 한 젊은 청년이 침통한 표정으로 귀국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젊은이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였습니다. 유튜브에서 자기 할아버지를 비난하고 숨겨 놓은 비자금 운운해서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는 줄만 알았습니다. 어떤 보도에서는 심신 미약 상태에서 그런 방송을 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자진 귀국해서 국민 앞에 자기 할아버지 죄과를 사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약 투약 혐의로 38시간 경찰 조사를 받고 일단 석방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루를 쉰 후에 바로 광주로 내려가 5.18 유가족과 피해자들을 만나고 5.18 묘역을 참배하였다고 했습니다. 유가족과 피해자를 만나서 큰절을 올리며 “광주 5.18 민주화 운동 학살 주범은 할아버지다”며 “일찍 사죄의 말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사죄의 기회를 줘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유가족과 피해자분들은 그의 진심 어린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 죄를 손자가 다 떠안고 진정성 있는 사죄하는 모습’에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며 오히려 위로했다고 합니다.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참배하며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로 묘비를 닦는 모습을 보고 유족과 시민들은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관리소장마저 눈시울 붉히며 “전두환의 장남도 아닌 차남의 아들, 어떻게 보면 5.18과 무관한 사람인데, 진정한 마음으로 사죄하고 참배하는 모습에 울컥했다”라며 “수많은 참배객을 맞이하면서 눈시울을 붉힌 건 처음”이라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습니다. 문득 200여 년 전 김삿갓 김병연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은 김삿갓의 나이 다섯 살 때 평안도 선천 부사였습니다. 당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가산 군수 정시는 항복하지 않고 거역하다가 순직했지만, 선천 부사였던 김익순은 농민군에게 항복하고 그 후 농민군 우두머리 김창시의 목을 사서 조정에 바쳐 거짓 공을 세우려 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반 대역죄로 참형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김삿갓 어머니는 철저하게 숨어 살며 자식들을 보호했습니다. 김삿갓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과거를 보아 출세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고을에 향시가 있어 과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김익순이 자기 할아버지인지도 모르고 통렬히 꾸짖는 글로 장원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께 자랑하였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이를 부끄럽게 여겨 죽장에 삿갓 쓰고 전국을 떠돌며 방랑하다가 한 생을 마쳤습니다. 술 한 잔에 시를 지으며 세상을 비웃기도 하고 조롱하기도 하며 전라도 땅 동북에서 쉰일곱에 한 많은 삶을 마감했습니다. 잘못은 할아버지가 했는데 벌은 손자들이 받았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마약에 손을 댔을까요? 얼마나 괴로웠으면 일생을 삿갓에 얼굴을 숨기고 살았을까요? 식사 후에 우리의 이야기를 듣던 주인이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40여 년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오랜 세월 지나는 동안 많은 단골이 있습니다. 남에게 억울하게 한 사람들의 자손들이 잘되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틀림없이 건달의 자손들은 건달들이 나오고, 도박하던 사람은 자식들도 도박으로 망하는 걸 보았습니다.” 역사는 냉정합니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릅니다. 본인이 받지 않으면 후손이라도 그 값을 치릅니다. 역사는 그걸 보여 줍니다. 지금은 고난주간입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주간입니다. 죄는 인간이 짓고 벌은 주님이 받으셨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무릎 꿇고 외투로 비석을 닦는 것도,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고 문전걸식하는 것도 장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더 울어야 하고 더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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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지방의회 인사 검증 조례의 상위법 위배 여부
    [요지] 시장이 임명 또는 추천하는 공공기관의 장에 대하여 임명 후 지방의회의 인사검증을 거치도록 하는 ‘○○광역시 공공기관의 인사검증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 상위법인 법령에 위배되어 무효인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대법원 2023. 3. 9. 선고 2022추5118 판결) [개요] 피고(○○광역시의회)는 ‘○○광역시 공공기관 인사검증 운영에 관한 조례안(이하 ‘이 사건 조례안’)’을 의결하여 원고(○○광역시장)에게 이송하였고, 원고는 ‘이 사건 조례안이 원고의 ○○광역시 산하 공공기관의 장에 대한 임명권을 본질적으로 제약하고 상위법령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피고에게 재의를 요구하였으나, 피고는 이 사건 조례안을 원안대로 재의결하였음. 그러자 원고는 이 사건 조례안이 법령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이 사건 조례안에 관한 피고의 재의결은 효력이 없다는 확인을 청구한 사건. [대법원 판결] 헌법 제117조 제1항과 지방자치법 제28조 제1항 본문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조례를 제정할 수 있으며, 지방자치법은 의결기관으로서의 지방의회와 집행기관으로서의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독자적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지방의회는 행정사무감사와 조사권 등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사무집행을 감시·통제할 수 있게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의회의 의결에 대한 재의 요구권 등으로 의회의 의결권 행사에 제동을 가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상호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는 자치사무에 관하여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위와 같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고유권한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2추22 판결 등 참조). 특히 인사와 관련하여 상위 법령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기관구성원 임명·위촉 권한을 부여하면서도 임명·위촉권의 행사에 대한 지방의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등의 견제나 제약을 규정하고 있거나 그러한 제약을 조례 등에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아니하는 한, 당해 법령에 의한 임명·위촉권은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하위 법규인 조례로써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임명·위촉권을 제약할 수 없고, 지방의회의 지방자치단체 사무에 대한 비판, 감시, 통제를 위한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권의 행사의 일환으로 위와 같은 제약을 규정하는 조례를 제정할 수도 없다(대법원 2017. 12. 13. 2014추644 판결 참조). 지방자치법 제28조 제1항 단서, 행정규제기본법 제4조 제3항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할 때 그 내용이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이나 벌칙인 경우에는 법률의 위임이 있어야 하므로, 법률의 위임 없이 주민의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을 정한 조례는 그 효력이 없다(대법원 2012. 11. 22. 선고 2010두19270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은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은 경우(제1호) 외에도 제2호 내지 제6호에서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할 수 있는 경우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 중 인사검증회의의 공개와 관련하여서는 「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3호의 “공공기관이 ‘법령 등’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될 수 있는바, 여기에서 말하는 ‘법령 등’이란 어디까지나 ‘적법’한 법령 등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7. 12. 13. 선고 2014추644 판결 참조). 대법원은 위 기준에 따라, 이 사건 조례안 중 ①인사검증에 관한 규정들은 법령에 의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부여된 임명·위촉권을 상위법령의 근거 없이 제약하여 위법하고, ②증인·참고인에게 출석의무 및 자료제출요구를 인정한 규정들은 법률의 위임 없이 주민의 의무 부과에 관한 사항을 조례로 규정하여 위법하며, ③인사검증 관련 자료 제출 및 인사검증회의 공개 등에 관한 규정들은, 인사검증의 근거가 되는 이 사건 조례안 규정들이 위 ①, ②와 같은 이유로 위법하다고 판단하는 이상 그에 기초하여 인사검증 관련 자료를 제출하게 하거나 인사검증회의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을 ‘적법한 법령에서 정하는 소관 업무의 수행을 위하여 불가피한 경우’(「개인정보 보호법」 제15조 제1항 제3호)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그밖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1항 나머지 각 호의 개인정보 수집·이용 요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없어 위법하다고 보아, 이 사건 조례안에 관한 피고의 재의결은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사례제공 : 박범진 변호사 (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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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05
  • 열린 마음, 닫힌 마음
    살다 보면 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도 천차만별이어서 마치 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것처럼 시원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사람은 꼭꼭 쳐 닫은 문처럼 답답하고 옹졸한 사람도 있습니다. 며칠 전에 2023 월드 베이스 볼 클래식(WBC)에서 일본이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대회 MVP(최우수 선수)는 투타에서 빼어난 실력을 보여준 만화 같은 주인공 오타니 쇼헤이라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투수와 타자를 번갈아 가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점수를 주고 싶은 건 그의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결승을 앞두고 “우리가 우승해야 아시아 다른 나라 야구도 자신감을 갖는다”라는 말로 패배한 다른 나라 팀을 배려하였고, 상대하는 미국팀에게는 “오늘 하루만 그들을 향한 존경을 버리자”라며 결코 상대를 비하하지 않으면서도 우승의 갈망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늘 경기장 쓰레기를 줍고 오심한 심판에게도 미소를 보낸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박찬호 해설위원까지 아들에게 오타니 선수의 인성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비록 남의 나라 선수지만, 그의 열린 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열린 마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명재상 황희 정승입니다. 그의 여종들의 다툼에 모두 옳다고 하는 말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는 부인에게 “어허, 듣고 보니 부인 말도 옳소”라고 했다는 일화는 너무 유명합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에게 한사람이 찾아와 오늘이 제삿날인데 하필이면 송아지를 낳았다며 제사를 생략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때 황희 정승은 그렇게 하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와 오늘이 제삿날인데 개가 새끼를 낳았어도 그냥 제사를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황희 정승은 물론 제사를 지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때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지니 황희 정승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앞에 온 사람은 제사를 지낼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고 나중에 온 사람은 어떻게든 제사를 지내고 싶은 사람이었소. 정반대인 것 같지만, 둘 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을 들으러 왔으니 어쩌겠소?” 이런 열린 마음을 가졌기에 조선에서 영의정으로 18년, 좌의정으로 5년, 우의정으로 1년을 합하여 총 24년으로 정승의 자리에 계시면서 후세에 명재상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습니다. 내 주위에 열린 마음 가진 분들 많아 신문만 펴들면 닫힌 마음 많이 보여 서로에 귀 기울이는 정치인들 보고파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지인을 만났습니다. ‘어린이집’이 점점 어려워져 새로운 사업을 모색하는 중이라 했습니다. 저출산 문제로 인한 후유증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병원이나 산부인과 병원이 점차 사라지고 이젠 초등학교 폐교에 이어 어린이집까지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지인은 주간 보호센터를 하려고 한다며 아는 곳을 소개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필자가 목요일마다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는 C 주간보호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는지 그 고마운 마음을 표할 길이 없다며 몇 번이고 곱씹어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그 바쁜 중에도 모든 자료를 이동식 저장장치에 저장까지 해 주었다고 했습니다. 평소 대표자의 열린 마음을 짐작은 했지만, 처음 본 사람에게 그토록 배려하고 세심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다는 말에 다시 한번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내 주위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반대로 닫힌 마음을 가진 분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아오면서 나도 분명 벽창호 같은 사람을 만났을 터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분은 퍼뜩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혼자 행복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닫힌 마음은 신문만 펴들면 눈이 튀어나오도록 보게 됩니다. 바로 정치인들 기사입니다. 정치의 목적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통합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 있다면, 그들의 모습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편 가르기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보여줍니다. 한 분 한 분 모두 훌륭하고 존경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들이겠지만, 유독 그곳에만 가면 마음들이 닫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진정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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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8
  • 자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의 상속인 지위는?
    [요지]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는지 아니면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3. 3. 23. 선고 2020그42 전원합의체 결정) [개요] 망인 사망 후 망인의 아내는 상속한정승인을 하고 4명의 자녀들은 모두 상속포기를 하였는데, 망인에 대하여 확정판결을 받은 피신청인이 망인의 손자녀인 신청인들과 망인의 아내에게 위 판결에 기한 채무가 공동 상속되었다는 이유로 이 사건 승계집행문 부여신청을 하여 승계집행문을 부여받았고, 이에 대해 망인의 손자녀인 신청인들이 자신들은 망인의 상속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승계집행문 부여에 대한 이의를 신청한 사안. [대법원 판결] 우리 민법은 제정 당시부터 배우자 상속을 혈족 상속과 구분되는 특별한 상속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상속에 관한 구 관습도 배우자가 일정한 경우에 단독상속인이 되었을 뿐 배우자 상속과 혈족 상속을 특별히 구분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입법 연혁에 비추어 보면, 구 관습이 적용될 때는 물론이고 제정 민법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배우자는 상속인 중 한 사람이고 다른 혈족 상속인과 법률상 지위에서 차이가 없다(상속에 관한 입법례와 민법의 입법 연혁 ). 민법 제1000조부터 제1043조까지 각각의 조문에서 규정하는 ‘상속인’은 모두 동일한 의미임이 명백하다. 따라서 민법 제1043조의 ‘상속인이 수인인 경우’ 역시 민법 제1000조 제2항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와 동일한 의미로서 같은 항의 ‘공동상속인이 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그 공동상속인에 배우자도 당연히 포함되며, 민법 제1043조에 따라 상속포기자의 상속분이 귀속되는 ‘다른 상속인’에도 배우자가 포함된다. 이에 따라 공동상속인인 배우자와 여러 명의 자녀들 중 일부 또는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의 법률효과를 본다. 공동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일부만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민법 제1043조에 따라 그 상속포기자인 자녀의 상속분이 배우자와 상속을 포기하지 않은 다른 자녀에게 귀속된다. 이와 동일하게 공동 상속인인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민법 제1043조에 따라 상속을 포기한 자녀의 상속분은 남아 있는 ‘다른 상속인’인 배우자에게 귀속되고, 따라서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 이에 비하여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모두 상속을 포기한 경우 민법 제1043조는 적용되지 않는다(민법의 문언 및 체계적·논리적 해석).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들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였다는 이유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된다고 보는 것은 위와 같은 당사자들의 기대나 의사에 반하고 사회 일반의 법감정에도 반한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하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리라는 점을 예상하기도 어렵다(상속재산 중 소극재산이 적극재산보다 많을 경우 상속포기자의 의사). 종래 판례에 따라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공동상속인이 되었더라도 그 이후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이 다시 적법하게 상속을 포기함에 따라 결과적으로는 피상속인의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되는 실무례가 많이 발견된다. 결국 공동 상속인들의 의사에 따라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으로 남게 되는 동일한 결과가 되지만, 피상속인의 손자녀 또는 직계존속에게 별도로 상속포기 재판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상속채권자와 상속인들 모두에게 불필요한 분쟁을 증가시키며 무용한 절차에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결과가 되었다. 따라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해석함으로써 법률관계를 간명하게 확정할 수 있다(실무상 문제). 대법원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상속에 관한 입법례와 민법의 입법 연혁, 민법 조문의 문언 및 체계적·논리적 해석, 채무상속에서 상속포기자의 의사, 실무상 문제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에는 배우자가 단독 상속인이 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하여 종전에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 중 자녀 전부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 피상속인에게 손자녀가 있으면 배우자가 그 손자녀가 공동으로 상속인이 된다는 판례를 변경하였습니다. 사례제공 : 박범진 변호사(상담전화 : 041-668-7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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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8
  • 정치 현수막 공해, 정치권이 ‘결자해지’ 해야
    요즘 서산지역 거리를 지나다보면 전에 없이 부쩍 늘어난 정치 현수막이 짜증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종전 정치인 현수막은 명절 때 이름 알리기 위해 내거는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여야 모두 시도 때도 없이 무분별하게 내걸어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 현수막이 급증하면서 자영업자나 기관·단체에서 내거는 불법 현수막도 같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현수막이 이처럼 난립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12월 시행된 옥외광고물 관리 개정법이 있다. 이 법규에 따르면 정치 현수막은 별도의 신고 절차 없이 정당명과 연락처만 병기하면 최대 15일 동안 개수와 장소에 제한 없이 자유롭게 걸 수 있다. 정치 현수막은 종전에도 행사나 집회를 알리는 경우 규제 받지 않았으나, 이번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규제를 없애준 것이다. 게시 기간은 15일로 한정돼 있다지만 15일이 지나 또 다른 현수막을 거는 데 아무 제한이 없기 때문에 1년 내내 현수막 정치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우리 정치 현실은 정당 간 정책 대결 보다 걸핏하면 상대를 헐뜯고 비방하는 정치싸움에 매달린다. 이런 정치현안을 현수막에 표기해도 좋다고 허용하면,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그래서 정치 혐오를 유발하는 게시물이 상시적으로 내걸릴게 뻔하다. 이미 ‘곽상도 50억 무죄, 이게 나라냐’ ‘불체포특권 폐지 민주당은 빼고?’와 같은 현수막이 그 부작용을 말해준다. 현수막은 아무리 SNS가 보편화된 디지털 세상이라 해도 사실과 정보를 알리고 공감과 소통 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수단이다. 디지털 메시지는 원치 않으면 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프라인 세상에서 눈앞에 큼지막하게 보이는 게시물은 외면할 방법은 없다. 현수막 하나 거는 행위에 대해 장소와 시기, 형식 기준을 법령으로 정하고, 행정당국의 인가를 받도록 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제 현행 법규는 현수막 설치와 관련해 지정된 게시대만, 그것도 일정한 이용료를 내고 게시하도록 규정하고, 위반 시 강제 철거와 함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정치 현수막은 이런 제한 규정에서 제외시켜 마음대로 걸 수 있게 해줬으니 한 줄의 홍보가 아쉬워 현수막에 매달리는 자영업자들이 법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어느 자영업자가 “우리는 돈을 내면서도 시간과 장소에 제약을 받는데, 정치인은 모든 것이 자유롭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하소연했다는 서산타임즈 보도가 울림을 준다. 다행이 서산·태안 출신 성일종 국회의원이 최근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전국 거리 곳곳에 무차별적으로 내걸린 정당 현수막에 국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며 “더불어민주당은 현수막 정치는 멈추고 옥외광고물관리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서도 단속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인 상황인 만큼 해당 개정안을 다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 의원은 “정당들은 현수막 게시 관련 규제를 전혀 받지 않고, 일반 국민들은 지자체 허가를 받아 지정된 장소에만 게시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면서 “당초‘정당 활동의 보장’이라는 법 개정의 취지는 좋았지만, 막상 시행되니 상대 당에 대한 비방만 난무하고 국민 안전과 도시 미관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외광고물 관리와 같은 민생 법규가 소리 소문 없이 은근슬쩍 국회를 통과한 것을 보면, 여야의 이해관계가 이 부분에서만큼은 일치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문에 민생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예상하지는 못했나보다. 서산 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시민들이 현수막 공해로 신음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는 걸 보면 조속한 제도 개선이 절실하다. 그런데도 성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정치권은 묵묵부답이다. 하루빨리 법 개정 논의를 통해 정치권의 ‘결자해지’를 촉구한다./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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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 행복은 어디서 오나
    묵은 노트를 뒤적이다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란 시였습니다. 당시 이 시를 읽고 짠한 느낌이 들어 적어 놨던 시였는데 다시 읽어도 그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여보! 비가 와요.”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이런 밥상머리에서 했던 사소한 말들이 안고 비비고 입술을 대고 싶은 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 일상적인 소소한 말들이, 그렇게 먼저 아침밥 떠먹여 주고 싶은 그 말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란 걸. 그 말을 할 그때, 그와 함께했던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걸. 한국인 행복 점수가 OECD 38개국 중 32위라는 제목의 기사(지난달 28일 J 일보)를 보았습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갤럽 월드 폴 한국 행복 수준은 2021년 기준 10점 만점에 6.11 점이었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가 그래도 6개국이나 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어려울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가 힘든 ‘사회적 고립도’는 OECD 회원국 중 넷째로 높았다고 합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 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는지를 묻는 물음에 ‘없다’라고 답변한 비율이 18.9%였다고 합니다. 삶의 만족도는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세 번째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휴대전화 등을 발판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G7을 능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 영화, 음식, 등 많은 분야에서 이미 세계의 문화를 이끄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위상에도 국민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니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물론 행복 측정을 평가하는 갤럽 월드 폴 같은 기관에서 시행하는 행복의 기준이 객관적이고 합리적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평가했겠지만, 행복이란 개개인이 느끼는 기준이 다르고 그 정의도 다양해 과연 행복의 척도를 수치로 계량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듭니다.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삶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행복을 느끼는 조건들은 무엇이고 그 조건을 다 채웠다고 모두 행복할까요? 더 부유하면, 더 건강하면, 더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해질까요? 수많은 물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조경학 박사이며 전직 교수인 Y는 고등학교 2년 후배입니다. 수필을 쓰다가 알게 되어 문자로는 서로 가까이 지낸 사이입니다. 고향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게 되었으니 이참에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해 버스 도착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집을 나섰습니다.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무려 59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선배라고 찾아 주는 후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시인의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를 내게 바꿔 뇌이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미리 와 있는 터미널에서 / 차에서 내리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 다시 버스 문은 닫히고 떠난다.” 그러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중에 ‘그일 것이다’라는 사람에게 소리쳐 불렀습니다. 바로 Y 그 후배였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60년 전 꿈 많고 피 끓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서 올까요? 먼 데서 올까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들, 그것들이 행복이 아닐까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행복이 아닐까요? 적조했던 친지에게 전화 한 번 걸어 보심은 어떨까요? 진정한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세월이 저만치 지나서 돌아보면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같은 작고 하찮은 말이 모두 그리움이 되고 그것이 행복이란 걸 알게 되겠지요.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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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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