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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심(農心)
    꽤 눅눅한 하늘이었다. 나름 반듯하게 늘어선 어린 벼 사이로 짧게 시작된 빗줄기는 점차 길게 이어지며 논두렁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눈을 빼꼼히 치켜뜬 청개구리는 수줍은 듯 토라져서는 물결 사이로 유유히 사라졌지만, 그날 밤공기를 독차지했다. 그날 새벽, 처마 끝에 맺힌 빗방울이 떨어질 찰나,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신 아버지의 기침 소리에 문지방 고양이들은 화들짝 놀라 마당으로 제 몸 하나 숨기기에 바빴지만, 철없는 강아지는 마냥 좋다고 꼬리를 연신 흔들어댔다. 그렇게 시작된 여름의 기억은 아버지의 땀 냄새가 옅어질 즈음에서야 끝이 났다. 뿌연 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길게 이어진 수매 차량 중간중간에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가 긴 무료함을 달래주었지만, 너른 마당에 정성스럽게 널려 놓은 곡식은 아들과 딸들 것이라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 겨울이 되면서 논은 우리에게 좋은 놀이터가 됐다. 찬 바람에도 무엇이 그리 좋은지, 썰매며 비료 포대며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미끄러져 나가면서 서로 얽혀 웃고 떠들어댔다. 남몰래 내린 눈이 땅에 모두 스며들 즈음, 다시 이어지는 기억들. 논은 그렇게 유년 시절 기억의 전부가 됐고, 지금껏 논을 지키며 살아온 필자는 지금의 정부가 내세우는 ‘경쟁’이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고 낯설다. 시장격리는 쉽게 말해 정부 매입이다. 변동직불제가 폐지되면서 쌀가격 안정화를 위해 제도화됐다. 농민들은 크게 기대했었다.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낮은 낙찰가격, 대규모 유찰사태, 쌀값 폭락은 농민 결사대를 서울로 상경시켰다. 정부 고위 관료는 생각했을 것이다. ‘쌀 가격도 경쟁이지. 경쟁이 없는 산업이 어디 있으랴.’ 그리고는 역공매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결과는 최저가 입찰. 보기 좋게 적중했다. 때문에 조선시대 양반의 피를 이어받은 격조 높은 어르신들마저도 반백 년 어린 수험생들처럼, 눈치작전을 펼쳐야만 했다. 수술 날짜를 결정하는 주치의는 환자의 상태를 두루 살펴야 한다. 환자의 몸 상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명의(名醫)라도 준비가 안 된 환자의 처진 배를 가를 수는 없다. 결정했다면 집도는 빠르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쌀값 하락이 예상되고 시행 요건이 충족됐다면 지체 없는 시장격리로 안정된 가격을 보장해야 한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가격에서 시행하는 시장격리는 가격 하락을 위한 경쟁이 아닌가? 인심 좋게도 입찰 물량은 최소 100톤. 농민들의 참여 보장이라는 말은 덤이다. 이번 시장격리 결과 낙찰 물량의 65%는 농협 물량이라는 사실에 일반 농민들은 한숨이 절로 난다. 낙찰가는 63,763원(조곡 40kg/가마)으로 결정.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산지 가격보다 한참 낮은 60,000원대. 이마저도 계획했던 물량의 27%에 달하는 5만 5천 톤은 유찰됐다. 합리적인 소비라고 하나? 물건은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는 인터넷 최저가를 찾는다. 같은 물건도 남들보다 비싼 값에 구매했다는 사실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 생명 산업인 쌀도 이런 운명을 맞아야 하나? △최저가 입찰 방식 변경, △시장격리 요건 형성 즉시 실시, △유찰된 물량 시장격리 등 보호가 필요한 산업을 제때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나이 탓일까? 요즘은 방금 전 생각했던 일을 잊어버리는 날이 유독 많아졌다. 그 일이 본인과 관련된 일이면 그래도 나을 텐데, 가족과 관련된 일이라든지, 남들과 연관된 일이라면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다.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습관이 생긴 것도 요 몇 년 사이 일이다. 그래도 수십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 눅눅했던 그해 여름. 아버지 땀의 열기, 열기가 잦아들 때쯤 맡았던 냄새는 그해 보았던 담배 연기처럼 아련했고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겨울 놀이는 논이라는 무대 속에서 각인된 추억이 되었다. 이제 곧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온다. 봄은 항상 겨울을 보기 좋게 몰아냈다. 봄의 향기는 시간이 갈수록 더할 것이다. 농민들은 오늘도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산과 들, 그리고 땅은 그러한 농민들을 순수하게 맞이할 것이다. 아무런 경쟁 없이 노력한 만큼 마음껏 거두시라는 듯…. 그렇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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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7
  • 내가 사람으로 보이니?
    몇 년 전 우연히 공상과학 영화 한 편을 본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알렉스 가렌드’가 감독한 2015년 미국에서 제작된「엑스 마키아」란 제목으로 AI와 관련된 과학기술의 가능성과 한계 그리고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였다. 중국 무술 영화처럼 허공을 날아다니며 무공을 겨루는 황당한 이야기가 아닌, 어쩐지 미래에 이런 세상이 올 수도 있겠다 싶어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한 유명한 인공지능 천재 개발자가 만들어 놓은 인조인간을 유능한 프로그래머를 채용하여 테스트하는 영화였다. 결국 인조인간은 연구실을 탈출하여 인간세계로 들어간다. 코로나19 이후로 다른 세상이 되어 버린 듯하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말이 4차 산업 혁명이란 말이다. 빛의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을 몸으로 겪으며 이제 개념조차 생소한 4차 산업 혁명 시대로 접어들었다. 4차 산업은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무인항공기, 3차원 인쇄, 나노기술 등 6대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산업이 근간은 이룬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공상과학 영화 같은 일들이 영화가 아닌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아니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엊그제 신문에 “내가 사람으로 보이니?”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았다. 지난 1월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 ‘CES 2022’에서 데뷔를 앞둔 가수 김래아가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고 한다. 김래아(來兒)는 올해 가수로 데뷔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하나 올해 CES에서 등장한 앵커 ‘제니퍼’는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올해 안으로 실제 뉴스 제작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한 명, 작년 7월 광고 모델로 데뷔한 ‘로지’는 현재까지 약 20억 원의 수익을 올리면서 광고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이렇게 소개한 세 사람 이름의 주인공들은 모두 가상 인간들이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상 인간. 사진으로 봐도 전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다. 요즘 유력 대선 후보들이 AI 딥 페이크(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기술) 기술을 이용하여 색다른 선거운동을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이제 장래의 선거에서 많이 활용되리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우리 같은 70, 80세대는 “내가 사람으로 보이니?”라고 물었을 때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가상인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4차 산업의 발달로 이런 현상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가상 인물, 가상 화폐, 가상 게임, 등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 자율 자동차, 무인항공기는 물론, 위험하고 힘든 직종은 모두 로봇이 인간을 대신할 것이다. 무인 장비는 군사 분야에서도 더 많이 활용될 것이다. 인간은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2⁃3일만 출근해도 되고 자연경관이 좋은 곳에서 일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또 다른 세상도 상상해 본다. 프랑켄슈타인. 물론 그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그런데 이 이름은 괴물의 이름이 아니고 괴물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빅터는 생명을 창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창조물이 너무 흉해서 내팽개쳐 버렸다. 이에 분노한 괴물은 자기를 창조한 빅터를 찾아가 위협하여 주인을 노예처럼 부리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죽음을 맞게 된다는 메리 셸리 작가의 ‘프랑켄슈타인’의 내용이다. 영화 「엑스 마키아」의 마지막 장면, 도심 거리를 활보하는 인조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인공지능 인간이 과연 어떻게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인가? 아니면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인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전원일기’를 보았다. 옛날 80년대 최불암 선생이 김 회장으로 나오는 인기 프로였다. 한 지붕 아래에서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아들 내외와 자녀들이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을 넋 놓고 보았다. 불현듯 그 시절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가용이 없고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 폰이 없어도 좋다. 인정이 봄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역시 난, 미래의 사람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구시대 사람인가 보다. <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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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01
  • 구속 후 석방된 근로자의 복직 거부 정당한가?
    [요지] 구속으로 휴직명령을 받은 후 석방된 근로자에 대한 복직거부의 정당성 유무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2. 2. 10. 선고 2020다301155 판결) [사례] 원고(피고의 근로자)는 형사사건 제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되면서 구속 기소되었을 때에는 휴직을 명할 수 있다는 취지인 피고의 인사규정에 따라 휴직명령을 받았고(이하 ‘이 사건 휴직명령’), 항소심 계속 중 보석으로 석방되자 복직신청을 하였으나 회사인 피고로부터 거부당하였습니다(이하 ‘이 사건 복직거부’). 이후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복직한 원고는 피고에게 휴직기간 동안의 미지급 임금 상당액의 지급을 청구하였는 바, 피고가 석방된 근로자인 원고의 복직신청을 거부한 것이 정당하여 그 휴직기간 동안의 임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서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휴직을 명하지 못한다고 제한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취업규칙이나 단체협약 등이 정한 휴직사유가 발생하였으며, 당해 휴직 근거 규정의 설정 목적과 그 실제 기능, 휴직명령권 발동의 합리성 유무 및 그로 인하여 근로자가 받게 될 신분상․경제상의 불이익 등 구체적인 사정을 모두 참작하여 근로자가 상당한 기간에 걸쳐 근로를 제공할 수 없다거나 근로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사용자의 휴직명령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1992. 11. 13. 선고 92다16690 판결, 대법원 2005. 2. 18. 선고 2003다63029 판결 참조). 위 판단기준에 따라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제반 사정상 피고의 인사규정은 구속으로 인해 현실적 근로제공이 불가능한 경우를 휴직사유로 정한 것으로 보이므로 원고가 석방됨으로써 휴직사유가 소멸하였고, 이 사건 복직거부 당시 원고의 근로 제공이 매우 부적당한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이 사건 복직거부가 부당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원고가 구속되었던 기간 동안에는 이 사건 휴직명령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아 해당기간의 임금청구는 불가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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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02-23
  • 큰 강은 물소리를 내지 않는다
    성경을 읽다가 사도행전 19장에 나오는 아데미 신전에 관하여 알고 싶었다. 인터넷을 통하여 아데미 신전은 아르테미스 신전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오늘날의 터키 셀추크 부근)에 있었다고 했다. 이 신전은 두 번이나 완전히 새로 세워졌는데 첫 번째는 홍수로, 두 번째는 방화로 인한 재건이었고 세 번째 지어진 고대 7대 불가사의한 건축물이었으나 기원후 401년에 최종적으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신전의 토대와 조각 파편만 남아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리디아의 전설적인 왕 크로에수스가 짓기 시작해서 120년 만인 B.C 550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전은 200여 년이 지난 후 B.C 356년,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사람이 방화로 전소되었다고 했다. 불탄 신전은 곧바로 에베소 여인들이 귀금속을 팔아 재건 비용을 마련하고 각지의 왕들이 기둥을 기증하여 기존 신전보다 더 화려하게 재건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이 신전도 3세기에 침략한 고트족이 불태워 다시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자료를 검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애초에 리디아의 크로에수스 왕은 자기 이름을 후세에 남기고자 아르테미스 신전을 지었다고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신전을 태운 헤로스트라투스 라는 사람도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 이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는 평범한 리디아 백성이었다. 그의 목적은 오로지 악행을 저질러서라도 자기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고 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한다. 임상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어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분류하였다. 그중에 4단계인 자기 존중의 욕구부터는 어떤 지위를 확보하려는 다시 말하면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외적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의 욕구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산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들어내기 위해 갖가지 형태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자신이 얼마나 우월한 존재인지 인정받기 위해 자기의 뜻대로 따라오라고 강요하기도 하며 때로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거나 비방하여 은연중 자신을 높이려 한다. 그런가 하면 열등감에 젖어 우울증에 빠지거나 폭력적 모습으로 발전한다. 자신을 억지로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워 버린 헤로스투라투스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모임에 나가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앞에서는 칭찬도 해주고 맞장구도 쳐주지만, 돌아서면 그다지 머리에 남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전혀 자기를 내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인정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평소에 말이 없다가도 가끔 한마디씩 던지는 말을 듣노라면 어디에서 저런 주옥같은 말이 나올까 놀란다. 헤어지고 나서도 그 사람의 말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보면 속이 꽉 찬 사람이다. 속이 꽉 찬 수레에서 소리가 나지 않듯, 큰 강에서 물소리가 나지 않듯 속이 꽉 찬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알아본다. 그런 사람은 대부분 겸손하다. 인정받고 싶어 고개를 흔들어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헛된 몸짓에 불과하다. 아무리 담장 밑에 얼굴을 숨기고 있어도 향기로운 꽃에는 벌 나비가 찾아온다. 주머니 속의 송곳(囊中之錐)이란 말도 있다. 스스로 갈고 닦으면 구태여 알리려 하지 않아도 남이 먼저 알아줄 날이 올 것이다.<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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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22
  •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자
    대통령선거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열기가 뜨거워짐에 따라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의 상대편에 대한 반감도 가중되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가 서로 다를지라도 원수지간이 아니고 다만 지지하는 후보만 다를 뿐인데 서로가 원한이 없음에도 엄청 미워한다. 저마다 후보를 좋아하는 기준이 다르기에 상대방 생각을 존중해야 함에도 나만이 옳다고 하며 상대방이 나에게 맞추어 주길 강요하는 요상한 세태다. 일례로 각 후보에 대해 한쪽에선 최고의 후보라 하고 다른 쪽에선 최악의 후보라 한다. 이렇게 똑같은 사람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극에서 극을 달리는 것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참으로 한심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에 대해 싫다고 하면 몹쓸 놈, 죽일 놈 취급을 하며 벌떼같이 공격을 한다. 좋아하는 후보를 열열이 응원하는 것은 좋지만 타 후보를 좋아한다고 해서 미워하지는 말자. 평소 서로 친했던 사람들이 이번 선거로 인해 확연히 갈라지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한 식구 같은 지역 지구촌 한 가족이기 때문에 또 선거후에 다시 살갑게 봐야 하기에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자. 내 생각만이 최고가 아니기에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자. 정 아니다 싶으면 죽기 살기로 싸우려 달려들지 말고 비켜가자. 작금의 정치현실에 대해 주민들 소리를 가감 없이 소개해 본다. “지구촌 인구 50억명 생각이 다 다른 겁니다.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요체입니다”, “지지자가 달라도 서로 존중하는 그런 풍토가 되길 바랍니다”, “정치문제가 나오면 나와 다를 때 누구를 막론하고 적으로 취급하고 설득하려고 하고 참 미개인 같은 사람들이 득실거립니다”, “다른 것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틀린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인들끼리 정치, 종교 이야기는 잘 안 하는 게 우애를 이어가는 방법입니다. 선거 때 되면 부부간 가족 간에도 지지 후보가 갈리기도 합니다. 정치 견해가 갈려서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적대시하는 건 삼가야 하겠습니다”, “요즘 보면 선택 기준이 없는듯 무조건 기존에 가졌던 생각 그대로 직진입니다. 왜 좋은지 왜 싫은지 따져보지도 않고 카더라에 따라 몰려가는 것 같습니다. 인물, 정책, 그 후보가 됐을때 국가방향 등 잘 보면 확연히 보일텐데 아쉽습니다.” 등 우려가 많은게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인가 ‘동지와 적, 선과 악, 흑과 백, 내로남불’ 등 네 편과 내편의 ‘죽기 살기’식 편가르기가 횡행하고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풍토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공자님 말씀 중 ‘군자(君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소인(小人)은 동이불화(同而不和)’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 하지만 화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정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상대를 인정하는 자세에서 나오고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라 한다. 사람 개개인 마다 저마다의 특성이 있고 고귀한 인격이 있다. 지지정당과 지지후보자가 다르더라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 없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매도할 때 그 간극은 더 벌어질 것이며 그렇게 나가다 보면 결국 나라가 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당파싸움의 폐해로 누란의 위기에 처했던 사례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앞으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참뜻을 잘 살려 서로 화합하고 존중하고 더 많이 사랑하자./임홍순 로컬충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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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22
  • 변호사 보수비 부가세 포함 청구 여부
    [요지] 변호사보수를 약정하면서 약정보수와 함께 지급한 부가가치세에 대해서도 패소자를 상대로 소송비용으로 상환을 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2021마6871 결정) [사례] 소송당사자가 약정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여 변호사보수를 지출한 경우 부가가치세가 소송비용에 포함된다고 보아 소송에서 패소한 패소자를 상대로 부가가치세까지도 소송비용으로 청구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당사자가 소송과 관련하여 변호사에게 지급하였거나 지급할 보수는 총액이 민사소송법 제109조 제1항 및 「변호사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이하 ‘보수규칙’이라 한다)에서 정한 기준에 의하여 산정된 금액 범위 내에 있는 이상 명목 여하에 불구하고 모두 소송비용에 포함된다(대법원 2000. 10. 28.자 2000무20 결정 등 참조). 소송당사자가 약정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포함하여 변호사보수를 지출하였다면, 그 금액이 보수규칙에서 정한 금액 범위 안에 있는 이상 그 전부를 소송비용에 포함되는 변호사보수로 보아 소송비용부담의 재판에 따라 상환의무를 부담하는 상대방에게 상환을 구할 수 있다. 다만, 위와 같이 지급한 부가가치세가 사업자인 소송당사자가 자기 사업을 위하여 공급받은 재화나 용역에 대한 것으로서 부가가치세법 제38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매입세액에 해당하여 자기의 매출세액에서 공제하거나 환급받을 수 있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소송당사자의 부담으로 돌아가지 않으므로 부가가치세 상당의 소송비용 상환을 구할 수 없다. 반면 변호사보수에 포함된 부가가치세가 부가가치세법 제39조 제1항 제7호에서 규정한 ‘면세사업에 관련된 매입세액’ 등에 해당하여 이를 소송당사자의 매출세액에서 공제하거나 환급받을 수 없는 때에는 그 부가가치세는 실질적으로 해당 소송당사자의 부담이 되므로 상대방에게 부가가치세 상당의 소송비용 상환을 구할 수 있다. 결국, 대법원은 약정에 따라 부가가치세를 변호사보수로서 함께 지급한 이상 그 전부가 보수규칙의 범위 내에 있는 한 원칙적으로 부가가치세 부분 역시 소송비용에 포함되고, 예외적으로 공제나 환급이 가능한 경우에는 어차피 공제나 환급을 통해 당사자가 이를 보전 받을 수 있으므로 상대방에게 상환을 구할 수 있는 소송비용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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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6
  • 농업에도 봄은 오는가?
    (포괄적·점진적 CPTPP에 대한 농·축·수산업 대책 마련 촉구) 얼마 전 입춘이 지났다. 입춘은 말 그대로 봄으로 들어서는 시기이다. 봄은 희망을 상징하는 계절이다. 겨우내 움츠려 있던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농부들은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여 희망을 꿈꾸는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산업인 농업에는 그 어디에도 봄을 찾아볼 수가 없다. 농업인은 만물의 근원인 대지를 가꾸는 누구보다도 숭고한 직업이다. 정부에서도 농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럼에도 농업인의 수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농업인의 삶이 그만큼 힘겹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CPTPP로 인하여 누구보다 성실했던 농업인들의 미래는 더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CPTPP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관세 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추진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전국에서 상경한 농협 조합장들이 쌀값 안정화를 위한 쌀 시장격리를 요구하는 총궐기대회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정부는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다가 자국주의와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미국의 탈퇴로 현재는 일본이 의장국을 맡아 주도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회원국으로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베트남, 페루, 호주, 멕시코, 캐나다 등 11개국이 있다. 문제는 CPTPP는 대부분 농업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데다, 개방 수준도 여타 FTA보다 월등히 높아 우리 농업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가입 시 상품 무역 개방 수준이 96%에 달해 지금도 수입 농축수산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불러올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가입에 앞서 국내 농업 보호책 마련이 우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굵직한 농업 현안을 추진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농업계 의견을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고 있어 농민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정책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현장의 목소리와는 철저히 괴리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CPTPP는 일본이 의장국을 맡으며 주도하고 있고 모든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가입국을 결정하고 있어 일본의 반대를 넘어 가입하기 위해서는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CPTPP 가입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할 것이 뻔하다. 어떤 정책이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CPTPP는 우리 농업에 대한 피해가 너무 크고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우리 먹거리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등 장점보다는 단점이 훨씬 많아 보인다.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2019년 세계무역기구(WTO) 농업 분야 개도국 지위 포기에 이어 올해 2월 1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발효까지 줄곧 농업 피해만 강요해온 정부가 또다시 CPTPP 가입을 추진하니 도대체 우리 농업은 어쩌란 말인가? 헌법 제123조 4항은“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라고 명시하면서 농어업의 공익적 가치를 천명하고 있다. 더 이상 위헌에 가까운 정책을 멈추고 농. 축. 수산업 피해 대책을 최우선으로 마련한 후에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장갑순 서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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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5
  • 겨울 숲 나무들의 이야기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꽃의 웃음소릴 들을 수 있고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바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부춘산을 즐겨 찾다 보니 겨울 숲 나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도 인간 세상처럼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어요. 태어날 때 금수저도 있고 흙수저도 있어요. 부드러운 흙에서 태어나도, 바위틈에 태어나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는답니다. 눈이 오면 눈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며 살아가지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고, 죽음의 자리입니다. 햇살 고운 봄이 되면 새 옷으로 갈아입고 세상에서 제일 곱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열매를 맺습니다. 여름이면 열매를 살찌우며 가을에는 세상으로 떠나보내요. 나무도 사람처럼 계층은 있어요. 죽음의 계절 겨울에도 부유하고 넉넉하게 사는 소나무나 편백 같은 사철나무가 있는가 하면, 빛바랜 가랑잎 붙들고 흰소리 내는 떡갈나무가 있고, 있는 것 다 버리고 털털이 알몸으로 살아가는 오리나무도 있지요. 하지만, 나무들은 절대로 다른 나무를 깔보거나 얕보거나 시샘하지 않지요. 키가 크든 작든 따지지 않습니다. 소나무, 편백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개옷 나무, 산벚꽃 나무, 감태나무, 이팝나무, 노간주나무, 작살나무들이 함께 살아가지요. 자리가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함께 살아요. 넓으면 네 활개 치며 사방으로 팔을 뻗지만, 옆에 나무가 있으면 그쪽은 아예 포기하고 양보합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두 나무가 하나같이 보이지요. 부춘산 숲속 나무는 누가 와도 반갑게 맞아줍니다. 사람도 새도 짐승도 좋아하지요. 햇살도 앉았다 가고, 바람도 놀다 가고, 구름도 쉬어 가고요. 요즘 산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입을 가리고 다니네요. 전에는 예쁜 얼굴도 보였는데 지금은 눈만 보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처럼 우리도 대부분은 겨울이 무섭습니다.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사철나무야 크게 문제 될 게 없지만) 겨울이란 계절은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입니다. 늦가을부터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가을이 되면 눈물바다가 된답니다.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듯 매달고 있던 이파리들을 울긋불긋 가장 예쁘게 수놓아 떠나보내지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한겨울을 지내려면 죽은 듯 엎드려 지내야 합니다. 아무 가지나 뚝뚝 잘라서 불을 붙이면 활활 타 버릴 만큼 반은 죽어서 지냅니다. 그렇다고 절대로 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무들은 고난을 통해 더 단단한 나무가 되어가지요. 인내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내공을 길러 더욱더 튼튼한 나무가 되어 갑니다. 그래서 고난은 또 다른 축복의 얼굴이라고 하지요. 몸은 움직일 수 없어도 마음만은 하나가 되어 살아갑니다. 비바람이 몰아칠 땐 소리 내어 함께 울어 주고, 눈이 내릴 땐 하얀 꽃을 서로 피워 함께 웃지요. 이따금 사람들이 지나면서 들려주는 아름다운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무도 가슴이 훈훈해집니다. 코로나로 힘들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위해 따뜻한 정을 베풀어 주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현대트렌시스(주)에서는 성연면에 공업용 재봉틀을 기증해서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활용 수거 마대를 만들게 하고요. 서산타임즈는 경로당 등에 신문을 무료로 지원해 준다네요. 그런가 하면 농협 서산시지부는 사랑의 떡국 떡 나눔 행사를 했고, 현대오일뱅크는 학대 피해 아동쉼터에 성금 3천만 원을 지원하고 충서원예농협도 이에 질세라 이웃돕기 성금 500만 원도 서산시에 기탁 했다는 소식도 들었지요. 이런 따뜻한 소식을 다 전할 수 없네요. 어려울 때 십시일반으로 조금씩만 보태도 큰 힘이 되지요. 이런 서산에서 살게 되어 행복합니다. 나무가 인내하며 겨울 강을 건너듯 사람들도 슬기롭게 코로나라는 강을 잘 건넜으면 좋겠습니다. 새삼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장애물을 만났다고 반드시 멈춰야 하는 건 아니다. 벽에 부딪힌다면 돌아서서 포기하지 말라. 어떻게 벽에 오를지, 벽을 뚫고 나갈 수 있을지 또는 돌아갈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라.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 벽을 이겨내라”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 고난을 이겨내고 찬란한 봄을 맞으러 함께 가요.<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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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15
  • “가야산 꼭대기에 혼자 책상 놓고 일해”
    40여 년 전, 당시 군청 민원실에 근무할 때다. 막 출근시간인데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식품영업허가 즉 음식점 영업허가에 대해 묻기에 구비서류, 절차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종이에 적어드렸다. 열한시 쯤 되었을까. 민원 홀 바닥을 닦고 있는데 재무과 지적계장이 찾았다. 창구민원 대부분은 지적관련이라 민원실 안에 지적계가 있었다. 영문을 모른 채 지적계장 앞에 가니 중년남자가 앉아있었다. 그 분은 식품영업허가에 관하여 물었다. 구비서류 등을 설명했으나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뭐라고?”를 되풀이 하면서 묻고 또 물었다. ‘고?’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때 물은 횟수가 대, 여섯 번쯤이었고 그때마다 나름 성의껏 설명했다. 잠시 후 그 분이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는데 아침에 왔던 아주머니에게 써드린 것이었다. 그 분은 종이를 필자 얼굴 앞으로 들이 밀더니 “이대로 하면 된다는 말이지?”라며 꼬투리를 잡듯이 재차 묻는 것이었다. 이에 “아! 손님, 아침에 한 아주머니가 오셨는데 그 때 자세히 설명을 해드리고 적어 드린 것이네요. 그 아주머니는 ‘고맙다’고 하며 가셨는데요.”하자 그 분은 턱을 쳐들며 필자를 흘겨보았다. 무언가 마뜩찮아 하는 표정을 읽고 “지금 여러 번 설명 드렸고, 적어드린 것도 있는데…, 모르시겠어요?” 하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뭐? 적어준 것도 모르느냐고?”하면서 “모른다. 왜? 당신 같은 사람은 가야산 꼭대기에 혼자 책상 갖다 놓고 일해”하며 버럭 화를 내더니 나가버렸다. 그 분이 가고난 뒤, 지적계장에게 “그분이 누구냐?”고 물으니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지적계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침에 찾아왔던 아주머니가 식당을 하려고 면사무소에 서류를 접수했는데 처리가 늦어지니까 군청 민원실에 와서 필자와 상담을 하고 나서 안면이 있던 그 분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필자는 아주머니가 단순히 문의하러 온 것으로만 알았다. 면에 서류를 제출했다는 말은 하지 않아서 경위를 알 수 없는 사정이었다. 당시 필자는 ‘군청의 얼굴인 민원실 공무원으로서 성심을 다하자’는 자세를 마음에 새기며 일했다. 심지어 ‘순교자의 심정으로’라고까지 생각했다. 그 때 서산 대부분의 도로는 물론이고 군청 구내도 비포장이라 민원인들이 다녀가면 신발에 붙어 있던 흙이 떨어져 민원 홀은 흙바닥이 되고 먼지가 풀풀 날렸다. 하여 오전, 오후 비로 쓸고 봉걸레로 닦는 일을 거르지 않았다. 여름에는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어느 날 친척 어른이 “자네 시험 봐서 군청에 다닌다더니 청부(廳夫)로 들어왔나?”라는 말을 들었지만 결코 그런 일을 마다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에는 내무부 암행감찰관이 민원인으로 가장하여 민원실의 일하는 모습과 비품, 안내문, 응대태도 등을 눈여겨보고 다음 날 다시 와서 또 살펴 본 후에 신분을 밝히더니 군수 앞에서 칭찬해주었다. 그러고는 전국에서 두 명에게 준 표창을 받았을 만큼 정말로 성심껏 일했는데 그런 말을 듣다니 답답하기까지 했다. 민원실은 민원을 상담하고 안내하며 민원서류를 접수하여 관계부서에 보낸 다음 처리기한내 적정하게 처리되고 있는지 여부를 살펴볼 뿐 직접 인·허가 사항을 처리하는 부서는 아니었다. 어쨌든 사정을 알고는 즉시 해당 면사무소에 연락하여 서류를 진달 받아 보건소로 보내면서 그런 상황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얼마 후 민원실장을 겸하는 내무과장이 찾기에 갔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과정을 자세히 말씀드리니 입장이 난처했는지 씁쓸하게 “노이무공(勞而無功)이구먼”이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그 분은 내무과장에게 항의하며 단단히 질책을 요구했던 모양이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웬만한 민원은 전화나 인터넷으로 한다. SNS로 의견을 내기도 한다. 콜센터 ARS상담도 많아졌는데, 코로나19로 대면상담보다 비대면 상담이 늘어나면서 상담원 연결조차 어렵다. 같은 멘트를 반복하여 들으며 십분 넘게 기다리다 연결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기다리는 중 ‘다시 걸으라.’는 멘트에 이어 일방적으로 끊어지는 경우도 있다. 차라리 직접 찾아가는 번거로움을 겪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간혹 공무원의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응대, 무성의한 태도는 거부감을 갖게 한다. 때로는 용무 자체보다 담당자의 응대 태도나 처리과정에 더 민감할 수 있다. 평가는 상대적이라 같은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결과는 다르다. 따라서 공무원은 민원인의 감정을 헤아려 처신해야함은 깊이 새겨야 할 과제다. 옛날 “모르시겠어요?”라는 말은 끝내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처럼. 민원인의 입장, 공무원의 처지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하게 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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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8
  • 봄이 들어서는 날
    새벽기도회를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 눈이 내리고 있다. 땅바닥에는 이미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문득 오늘이 입춘이라는 생각이 났다. 입춘은 글자 그대로 봄이 들어서는 뜻이다. 지난해 11월 7일이 입동이었으니 바로 석 달이 지났다. 겨울이 지났으니 봄이 되어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하기야 입춘이 대한과 우수 사이에 끼어있으니 겨울인데 겨울 같지 않고 봄이 아닌데 봄 같은 날이 있는 건 당연하다 하겠다. 한 가지 분명 한 건 아무리 눈이 와도, 영하의 맹추위가 몰려와도 멀지 않아 봄이 온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 입춘이면 생각나는 몇 가지 풍속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훈장이셨으므로 늘 붓글씨를 쓰셨다. 입춘 날 아침에는 커다란 붓으로 네 글자를 써서 대문에 붙이셨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바로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자였다. 입춘에는 크게 길함이 있고 새해 경사스러운 일이 많기를 바라는 뜻이다. 할머니는 콩을 문이나 마루에 뿌렸다. 집에서 일하시던 아저씨는 광이나 마루 밑에 두었던 농기구를 꺼내어 손질하고 그 일이 끝나면 꼭 두엄을 지고 논으로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봄이 멀지 않았으니 한해의 새로운 농사 지을 준비를 한 것 같다. 입춘이라 하여 봄에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파리 하나 없는 나무는 초라하게 바싹 마른 몸을 바람에 맡기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부춘 산 소나무에는 희뜩희뜩 흰 눈이 쌓여 있다. 추위가 며칠간 계속되고 있다. 이런 추위는 당분간 더 지속되리라는 예보가 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마치 겨울 추위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얼마 전 2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더니 이젠 3만 명이 훨씬 넘는 확진자가 나왔다고 한다. 어디까지 확진자가 늘어날지 예측할 수조차 어렵다. 방역 당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전염의 확산을 막기는 어려운가 보다. 길게 늘어선 진료 대기 시민들은 안 기다려도 되는 PCR을 받게 해 달라며 자가 진단 키트를 받아 갈 수는 없느냐고 항의하는 소동까지 있었다고 한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은 자연과 인간 세상이 별개가 아니란 걸 가리킨 말이다.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겨울도 곧 봄 앞에 자리를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많아 쌓여도 봄눈은 해가 뜨면 바로 녹는다.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나면 아른한 봄 냄새가 바람 타고 올라올 것이고 쌓였던 눈도 스르르 녹기 마련이다. 가장 어둠이 짙은 시간은 날이 새기 두어 시간 전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우리를 위협한다고 해도 백신 접종자가 늘어나고 또 다른 치료제가 개발되면 봄눈처럼 그 위세를 잃고 결국 다른 전염병처럼 크게 위축되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할 것이다. 몇 해 전에 써놨던 ‘2월’이란 시를 꺼내 보았다. 「다시 엎어진다/한파주의보, 대설주의보 /눈도 많고 춥고도 길다//추위야! 눈보라야!/그댄 걸림돌이 아니고 디딤돌이다//격조 높은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춘란은 긴긴날 한데서 견디고/명품 악기를 만들기 위해/나무는 생사를 넘나 든다//봄날 햇빛에 반사되는/ 보리카락의 반짝거림을 상상해보라/초록 치마 샛노란 저고리/곱상한 민들레의 화사한 웃음을 그려보라//2월은 겨울의 레임덕/난 이미 그대를 떠나보내고 있다/언뜻 스치는 봄의 고운 분 내음에/ 벌써 코끝이 자리자리 하다」 속설에 입춘날 눈 비바람이 불면 한해 농사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무슨 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 아니니 염두에 둘 필요가 없을 듯하다. 지금은 관개시설이 잘되어 있고 품종개량이나 농기계의 발달로 이전처럼 자연환경의 영향을 덜 받는다. 코로나가 속히 물러가고 올해에도 풍년 농사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한다./목사
    • 오피니언
    • 칼럼
    202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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