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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타임즈 아라메봉사단…장기자랑 최우수상
      서산타임즈 아라메봉사단(단장 조한근)이 지난 9일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일원에서 개최된 ‘나눔 실천 행복한 산행’장기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북산악연맹이 전국의 발달ㆍ척수ㆍ지체ㆍ교통 장애 청소년과 전국 10개 시ㆍ도 산악연맹 관계자 등 7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한 이번 행사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산행에 도전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새만금 신공항 및 새만금 세계잼버리 성공 기원을 겸해 마련됐다. 이날 행복한 산행은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개통으로 관광객들의 편익이 증진됨에 따라 선유도 트래킹도 겸해 열렸다. 장기자랑은 행사가 끝난 후에 열렸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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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서산 여자는 강합니다||[조규선이 만난 사람13] 연극배우 윤문식
    연극배우 윤문식 씨는 “홀로된 어머니는 나를 키웠고, 아내는 나를 배우로 살게 해줬다”면서 서산여자는 뭔 일 있더라도 자식 굶기는 일이 없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어머니는 강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저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힘으로 대학에 가고 졸업했으니까요.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어머니의 힘입니다” 영원한 광대로 살고 싶다는 연극배우 윤문식(76)씨를 지난 7일 예산의 한 카페에서 부인 신난희(58) 여사와 함께 만났다. 미국 공연을 마치고 8일에 있을 예산공연을 위해 사전 연습을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산초, 서산중, 서산농림고(15회 축산과, 현 서산중앙고)를 거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필자의 중ㆍ고 선배이기도 한 그가 고교시설 배구선수로 관중을 웃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추수감사절 연극제에서 인기는 절정이었다.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시 서산시 홍보대사로 고향 발전에 기여해준 인연으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끊임없는 지식 습득과 수십 년 공연에서 얻은 지혜와 노력이 오늘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한 배우로 만들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당놀이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명인으로 추대 받았다. 그는 요즘도 매일 50페이지 이상 책을 읽는다고 했다. 부인과 사별 후 18살이나 어린 신난희 여사와 결혼했다. 신 여사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윤 배우의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을 정도로 박학다식한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이 기억하는 윤문식은 1969년 극단 가교에서 「미련한 팔자대감」으로 데뷔 후 50여년간 연극, 드라마, 영화, 마당놀이, 악단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만의 독창적인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또 서산사투리를 토속적이고 구성진 목소리로 우리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는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준 만능엔터테인먼트다. 그에게 삶, 가치관, 철학에 대해 물었더니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술술 이어갔다. “우리 세대는 해방전후 태어나 6.25와 5.16 등의 격변기와 어려운 보릿고개를 거친 고생의 주역들로 중동, 독일에서 일해 1천불 소득을 3만불 소득으로 올렸다. 지금은 먹고 살만하니까 진보, 보수, 좌파, 우파가 싸우고 있다”며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다. 그냥 편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자는 듯, 꿈꾸는 듯 살아야 한다. 나서는 것은 미래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방해되지 않는 늙은이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책 속에서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진리는 책속에 있다. 젊어지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보면 젊어지고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 또 책 속에서 성인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일을 20~30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며 “돈을 못 벌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50년 이상 같은 일을 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춤을 추면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는 그의 아버지는 그가 7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 후 어머니는 행상에 나섰고 노점상으로 자식을 키우고 땅도 샀다. “지금의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자리가 우리 집이었다”는 그는 “그 땅을 팔아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서산 여자가 강한 이유였다. 이렇듯 그는 어린시설 어머니로부터 강인한 인내력을 배웠다. 윤문식 배우는 어머니의 정신으로 포용하고 용서하며 밝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관객을 웃기고 있다. 그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윤 배우의 미소를 보면 ‘서산 마애삼존불’이 연상된다는 박은주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리자니 그는 여지없이 ‘자랑스러운 서산인’이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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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예전의 남편을 찾고 싶어요”||[조규선이 만난 사람 12] 이영월 시인
    칠순에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한 이영월 시인. 그녀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남편의 힘이고 공부의 힘이라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대산에 살고 있는 이영월(70) 시인이 지난 3일 자전적 에세이집 ‘노을에 비친 윤슬’을 들고 필자를 찾아왔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살아온 삶이 마치 나의 삶이요,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랄까? 감동과 연민이랄까? 1989년 필자가 수필집 ‘내 마음의 빈터’를 발간했을 때 책을 보내 달라는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바로 이 시인이었다. 그 인연으로 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다. 이영월 시인은 대산중학교 전신인 대산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15세 소녀시절에 서울 마포소재 약국의 약사보조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가 20세가 될 무렵 약사는 미국으로 이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가자고 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약사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한 청년을 소개해줬다. 그 청년의 임무는 공휴일마다 남산 등 서울구경을 시켜 주는 일이었다. 청년과 함께 서울 구경에 나선 그녀는 길을 잃을까봐 청년의 신발만 보고 따라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 청년이 잠깐 나가있으라고 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남자 화장실이었다. 이렇게 순진했던 21세 처녀는 30세인 그 청년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녀에게 불행이 다가온 것은 2005년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인도 같은 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 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절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릴 적 가졌던 글 쓰는 소녀, 시인이 되고자 했던 꿈을 찾기로 했다. 그것이 희망으로 작용했던 것은 당연한 일. 이 시인은 남편을 간병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를 쓰기 위해 쉬운 책을 닥치는 데로 읽었어요. 이해가 되질 않을 때는 좋은 글을 베껴 쓰기를 수십 권. 성당에 다니면서 성서도 필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는 2009년 월간 「문학세대」에 ‘장애인의 아픔’ 이란 시로 등단했다. 정말 시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시집에 “아플 때 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써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시는 눈물을 닦아 주었고 아픔을 덜어 주었습니다. 문든 혼자 간직하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썼다. 지난해는 300여 편의 시 중에서 107편을 골라 칠순과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기념해 시집 ‘메화꽃 필 때’를 발간했다. 이 시잡에도 그녀는 “남편이 곁에 있어 주어 행복하다”며 “잘 참아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라고 말해 부부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 그녀의 노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계간 「화백문학」에 ‘어머니 표 된장’이라는 수필로 등단해 수필가가 되었다. 60세에 중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3번 만에 합격하고 65세에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며 문학사가 되었다. 여기에 한자능력급수 3급, 아동 한자 지도사, 문해 교육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처럼 질곡의 삶을 살아온 그녀가 나이 일흔에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판했다니 마치 내일 같이 기뻤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 잊어 버려지는 것이 아쉬워 책으로 정리해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엄마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그냥 삶의 흔적을 남겨야 될 것 같아 책을 출판하게 됐어요” 이제 그녀는 또 다른 희망을 찾아 여정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치매에 걸리기 전의 남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치매전문교육과정도 수료했어요. 제가 치매를 알아야 남편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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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초밥은 3초의 미학입니다”||[조규선이 만난 사람 11] 강희재 명인일식ㆍ참치 대표
    강희재 명인이 “초밥을 만드는 3초 동안 정성은 물론 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며 ‘초밥을 3초의 미학’임을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얼마 전이다. 외지에서 한 지인을 만났는데 일식 사대문파 강희재 달인이 운영하는 서산의 맛집 ‘명인’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가끔은 들렀던 곳이다. 지난 26일 문득 외지에서 만났던 지인이 생각나 동문동 명인일식ㆍ참치를 찾았다. 강희재(45ㆍ사진) 대표. 그는 SBS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을 통해 ‘명인’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돈 보다는 기술을 선택했기에 ‘명인’이 되었다는 그는 ‘명인’호칭도 자신이 만든 음식 맛을 본 고객들이 만들어준 호칭이라고 밝혔다. 인증서도 자격증도 없는 명인이라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명인’이란 호칭이 손색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객들이 붙여준 ‘명인’이란 호칭은 그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 만들어낸 걸작임을 재삼 느끼게 했다. 서산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재학 당시 농악부 생활을 하면서 군악대에서 군 생활을 하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꿈은 단기사병으로 판정이 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지역대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농악부 선배의 권유로 강원도 홍천 일식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23세에 일식집 조리실장(선배)의 보조원으로 취직해 월급 70만원을 받으며 생활비 30만원을 제외하고 40만원을 봉투에 다시 넣어 선배에게 건넸다고 한다. 당연히 그 선배는 거절했다. “저는 돈을 벌려고 온 게 아니라 기술을 배우려고 왔습니다. 이제 선배님이 아니라 저의 스승님이십니다” 이러한 진심이 통했는지 선배는 매월 꼬박꼬박 수업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기술을 넘어 여러 가지 비법까지 전수하면서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선배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며 서울의 유명 일식집에 조리실장으로 추천해 주었다. 하지만 15일 만에 쫓겨났다. 요리 실력은 있지만 손님들과 대화하는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선배를 찾았다. 그 선배는 다시 올 줄 알았다며 직접 경험해 봐야 일식과 횟집이 다른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 체험을 해야 한다면서 음식을 미리 만들지 말라고 했다. 초밥 등을 만들면서 손님들과 대화를 주문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이 끝난 후 신문은 물론 평소 가까이 하지 않던 독서까지 하면서 상식을 키웠다. 물론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필요했다. 요리방법과 요리의 역사, 영양성분 등에 대해서도 시험공부 하듯이 지식을 익혀나갔다. 여기에 유머와 재치까지 겸비하느라 잠이 모자랄 정도였다. 음식만 잘하면 되겠지 하며 뛰어든 조리실장이 자리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다시 서울로 왔다. 일식집, 참치 초밥집 등 전문점에서 차근차근 노하우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내려와 횟집과 포장마차 등을 개업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기술만 믿었는데 소용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7번을 실패했다고 한다. 곰곰이 실패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규모가 크던 작던 손님과 종업원 관리를 잘못해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리사(주방장)의 고집도 실패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조리사들은 자기만이 추구하는 음식 스타일을 고집했다. 손님 개개인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데 자기 입맛에 맞추는 것이었다. 고객의 입맛을 알아야 하는 것도 실패를 하면서 터득한 지혜였다. 남을 배려하고 생가하는 문화가 요리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7전 8기라고 할까? 지금은 성공한 조리사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이따금 유명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온다. 지난해에는 모교(서산중앙고 45회 졸업) 동창회에 장학금 1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고향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한 요리경연대회다. 맛좋고 싱싱한 우리지역 특산물을 홍보하는 데는 요리경연대회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등에서 외래강사로 조리방법에 대해 강의를 하며 후학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 식품조각지도사 1급으로 식품조각, 과일카빙의 권위자로 아시아대표 한식국가대표 선발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 제12회 서울국제 푸드앤테이블 웨어 박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천브랜드 음식개발을 위한 I-쉐프 경연대회에서 금상 수상, 대한민국 총 주방장 인증,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놀라운 기인부터 특별한 건강비법의 소유자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인 TV 조선 ‘코리아 헌터’에서 대하 장인으로 출연하는 등 초밥의 명인을 넘어 ‘명인 강희재’가 그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초밥을 내보이며  “초밥은 3초의 미학”을 강조했다. 3초안에 초밥 1개 만드는 동안 사람의 정성은 물론 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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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9
  • 단양‘잔도길’걷고, 고수동굴도 관람||서산타임즈산악회 정기산행
        서산타임즈산악회는 지난 25일 충북 단양군 단양과 단양강 줄기를 에워싸고 이어지는 단양느림보강물길 구간 일원인 ‘단양강 잔도’에서 5월 정기산행을 실시했다. 단양강 잔도는 단양읍 상진리(상진대교)에서 강변을 따라 적성면 애곡리(만천하 스카이워크)를 잇는 길이 1200m, 폭 2m로 조성됐다.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이라는 ‘잔도(棧道)’의 의미처럼 단양강 절경을 따라 벼랑 위를 걷는 길은 한쪽은 절벽, 다른 한쪽은 유유히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펼쳐져 안전한 유산소 운동을 하기엔 안성마춤이다. 특히 단양강 잔도는 인근에 만천하 스카이워크, 수양개 빛 터널, 선사유물 전시관 등 관광시설이 골고루 분포해 체험과 휴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게 또한 장점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또 고수동굴을 방문하기도 했다. 고수동굴은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2017년 국내 개방동굴 자체평가 동굴보존 부문’에서 전국 1위 평가를 받은 곳이다.한편 6월 정기산행은 6월 22일 경기도 포천군 백운산에서 실시한다. 지역부=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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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6
  • “성공한 삶이란 베푸는 것이지요”||[조규선이 만난 사람 10]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
    서산을 방문한 한화갑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인생의 성공 여부는 말년의 영광이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성공한 삶이요? 베푸는 것이지요. 사람이 얼마나 가졌느냐 보다 얼마나 베풀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베푼다는 것은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이 베푸는 것이 더 소중하지요” 20대 청년시절 정치인 김대중을 만난 이후 30여년 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4선을 지낸 한화갑(80ㆍ사진) 한반도평화재단 총재는 성공한 삶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지난 6일 정순애 여사와 함께 서산을 방문한 한 총재를 필자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 총재와는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민주당 대표로 인지면 성리와 자매결연을 체결한 인연으로 알게 됐다. “농촌이 잘 살아야 모두가 잘 산다’는 신념이 통해서 일까?  당시 서산을 방문한 한 총재는 농협중앙회장에게 1000만원의 마을발전기금을 전달토록 주선해 주기도 했다. 또 민주당 당사에 서산농특산물 장터를 열어주기도 했다. 고마운 인연이다. 한 총재와는 오랜만의 만남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먼저 정치 경험에 대해 그는 권력을 잡은 자가 반대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면 협치가 안 된다면서 정당이 자기 스스로 이익단체에 함몰되어 대의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정치는 상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정책화하여 실천한다면 이것이 바로 좋은 정치지요” 요즈음의 정치, 경제 등 문제를 해결할 모든 책임은 정부 여당에 있다고 주장했다. 어제 일이라도 오늘 문제가 된다면 해결책임은 정부여당에 있고, 또한 과거 잘못을 누구 탓으로 돌려서도 안된다고 했다. 현 정부 여당의 해결과제로 국가 경영에 대한 철학과 국정운영에 대한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한 총재는 “정치인은 덧셈 정치를 해야 하는데 뺄셈 정치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집념이 너무 강하면 욕심이 되어 사물의 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지혜가 흐려져 자신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놓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사람의 성공과 실패는 죽을 때 판가름 되며 말년이 잘 돼야 성공한 것이지 말년이 초라하면 결국 실패한 삶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집안이 흥하려면 승어부(勝於父, 아버지 보다 낫다는 뜻)를 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 했다. 서산을 방문한 한 총재는 첫날 인지면 모월리 ‘쉼이 있는 정원’(대표 서학동)을 방문하고 이튿날 국보 제84호 서산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보원사지 등을 둘러보고 귀경했다. 한 총재는 “청춘예찬을 쓴 우보 민태원, 조선조시대의 최고 산수화가 안견 등 서산의 훌륭한 역사적 인물과 아름다운 문화유산은 참으로 자랑스럽다”고 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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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2
  • “기도로 오줌 싸던 버릇 고쳤지요”||[조규선이 만나 사람 9] 서광사 주지 도신 스님
    열다섯 살까지 오줌싸개였다는 도신 스님은 ‘기도’로 오줌싸개를 면했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8살에 잠깐 갔다가 꼭 돌아온다는 엄마를 기다리며 동자승이 되어 살았지요. 엄마에 대한 원망과 화가 기도를 통해 희망과 빛(힘)이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 날이 하루 지난 13일 오후 읍내동 서광사 접견실에서 서광사 주시 도신 스님(56ㆍ사진, 본명 박금성)을 만났다. 중앙대학교 일반대학원(석사과정) 문예창작학과 수업을 마치고 서울에서 돌아 온 직후였다. 스님은 27세에 검정고시로 초등학력을 인정받고 50세가 넘어 중ㆍ고졸 검정고시를 마쳤다. 그리고 2018년 신성대학교를 졸업했다. “꿈이랄까? 꼭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부처, 예수, 소크라테스, 솔로몬, 아리스토텔레스, 공자, 맹자 등 성인이나 철학자들의 말씀을 대중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글로 재탄생시키고 싶어요. 불경도 너무 어려워요. 이를 쉽게 해석하여 법문하다 보니 주입식이 되고 일방적이 되는 것 같아요. 부처님의 말씀을 쉽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도신 스님은 신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통을 함께 풀어 주고 쉽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는 종교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만학을 선택한 이유다. 15일 스승의 날 앞둔 시점이라 스승에 대해 묻자 열반하신 법장 총무원장 은사스님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 가정형편으로 가족이 뿔뿔이 헤어져 온양 큰집으로 갔다가 사촌 형제가 9명인데 논 5마지기 농사로 생계가 어려워 고아원으로 보내는 것보다 절에 보내는 것이 낫다는 어른들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기억했다. 그때 수덕사에서 만난 군대 갔다 온 청년 교무스님을 뵈었는데 그 분이 법장 은사 스님이다. “열다섯 살까지 오줌을 쌌어요. 법장스님은 이를 고쳐 주려고 좋다는 약초를 구해 주셨어요. 그래도 효험이 없자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매일 아침저녁 10분씩 떠오르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안정된 마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힘이 자기 자신을 지켜 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도가 오줌 싸는 것도 멈추게 해주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 대한 기다림, 정서 불안 등 마음에서 오는 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남을 위해 기도하라, 미워하는 사람, 네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부터 잘 되기를 기도 하라는 법장 스님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하고 지금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도신 스님은 노래하는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예술성 또한 풍부하다.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 엄마를 기다리며 칭얼거리던 독백이 노래로 승화한 것이다. 스님과 예술은 혼자 길을 찾아 가야 하고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술도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 내는 독특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5일에는 서광사에서 제12회 산사음악회가 열린다. 스님은 산사에서 듣는 평범한 대중가요 가사 한마디가 시민들의 마음을 치유해 주고 편안한 마음이 되어 인생의 행복과 변화를 가져 왔다는 인사를 받을 때 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1979년 봄 ‘한 오백년’민요에 감동한 중광 걸레 스님의 권유로 종로구 감로암에서 한국 록 음악의 대부로 불리는 가수 신중현(1938년생)을 만나 기타를 배우고 음악을 공부했다고 한다. 엄마를 기다리며 살아 온 도신 스님의 사연을 듣자니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뮈엘 베케트(1906~1989)가 지은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올랐다. 필자와는 법장 큰스님을 통해 알게 된 인연으로 서광사 대웅전을 건립하게 된 힘이 되었다. 사람들은 누군가를 기다린다. 막연한 기대 속에 살다 죽어 간다. 이것이 인생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린다. 서광사에는 2008년부터 템플스테이를 통해 사찰 체험과 명상을 위해 전국에서 외국인 등 2천여 명이 다녀갔다. 불교대학, 불교상담 심리대학, 어린이 합창단, 룸비니 합창단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사랑의 실천이 이어지기를 기도 한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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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5
  • 한국지역신문협회 충남협의회, 서산서 월례회 개최||맹정호 시장ㆍ임재관 의장 참석
        (사)한국지역신문협회 충남협의회(회장 전순환)의 5월 정기 월례회가 13일 서산에서 개최됐다. 서산타임즈 주관으로 읍내동 대도관에서 열린 이날 월례회에는 전순환 회장을 비롯한 충남지역 13개 지역신문사 대표와 기자 등이 참석해 지역신문 발전에 대해 논의하고 시ㆍ군 정보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날 월례회에는 맹정호 서산시장과 임재관 서산시의회 의장, 지구촌 신인루키상 서산지역 유일 수상자인 안원기 서산시의원이 참석해 우의를 다졌다. 맹정호 서산시장은 “충남지역 각 시군을 대표하는 지역신문사 대표님들의 서산방문을 진심으로 환영드린다”면서 “서산은 충남 서북부지역의 발전을 이끌며 새로운 도시로 거듭 성장하고 있다. 서산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홍보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맹 시장은 또 “주민들이 정보에 대한 욕구가 많아지면서 환경은 어렵지만 지역신문의 역할 또한 커지고 있다”며 “지역신문이 지역에서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갖고 챙겨나가겠다”고 격려했다. 임재관 서산시의회 의장은 “역사와 문화의 고장 서산에서 한국지역신문협회 충남협의회 월례회를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드린다”며 “하반기에 서산에서 개최되는 한국지역신문협회 워크숍이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순환 회장은 “충남협의회 월례회를 축하해주시기 위해 참석해 준신 맹정호 서산시장님과 임재관 서산시의회 의장님에게 감사드린다”면서 “충남협의회 회원사들이 매주 발행하는 신문은 대형 일간지에 버금가는 5만부 이상이 발행되고 있는 만큼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지역의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해 가자”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지역신문협회 충남협의회는 도내 시군별 1개 신문사가 지역대표로 참여하는 협의체로 충남지역 13개 신문사가 참여하고 있다. 월례회는 매월 시군 회원사별로 순회하여 개최하고 있으며, 상호 정보교류와 지역공동 홍보, 교육 연수회, 지역신문권익신장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서산=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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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4
  • “남을 위한 삶이 나를 위한 삶 되어”||[조규선이 만난 사람 8] 김원균 서산시산림조합장
     김원균 조합장은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초등학교 3학년 당시 ‘하면된다’라는 글을 돌멩이에 새겨 가슴에 품고 다녔지요. 그 신념이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산시산림조합장실에서 만난 김원균(70) 조합장은 자신의 성공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오전에 열린 수석동 경로잔치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이날 경로행사장에서 자신의 어머니 송창완(96)여사가 장수어르신 축하 선물도 받았다며 즐거워했다. 평소 효심이 지극한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아들을 챙기는 어머니의 정성 또한 대한단다. 매일 아침 방울토마토와 사과 등 과일을 직접 챙겨 주신다고 했다. 김 조합장에게는 최근 축하받을 만한 일이 또 있다. 지난달 30일 전국산림조합장 협의회장에 만장일치로 추대된 것. 7선의 전국 최다선 조합장으로 전국 142개 산림조합장들의 대표가 된 것이다. 그가 지난 선거에서 조합원들에게 약속한 산림조합중앙회장의 꿈을 반은 이룬 셈이다. 전 국토의 65%가 산림인 상황에서 산림직불제를 농지와 같이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여 임업인들의 권익보호와 부자 임업인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이 지켜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기도 하다. 김 조합장은 1967년 서산농림고(현 서산중앙고) 임업과를 졸업했다. 필자와 동기동창이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성화로 고향으로 돌아와 해미면 석포리에서 생강, 마늘, 고추, 표고버섯 등 특수작물을 38만㎡(10만평)의 농지에 재배했다. 80년대 선진농업을 시작한 것이다. 마늘종자 1,000접을 심고 고추 5만근을 군에 납품까지 했다. 표고버섯을 트럭에 싣고 청양에 가서 팔면 30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로 서산 시내에 한옥 한 채를 살 수 있는 제법 큰돈이었다. 그는 돈이 모이면 땅을 사들였다. 부족하면 농협에서 대출을 받기까지 하면서 ‘돈은 땅에 묻으라’는 옛말을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이렇게 성공한데는 마을 주민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표고버섯은 수확 전에 비나 이슬을 맞으면 상품가치가 떨어져요. 우리 집에서 방송하면 주민들이 바로 달려와 수확 작업을 도와주었어요. 방송시설과 전화도 우리 집에만 있었지요” 벼농사, 보리농사에만 의존하던 시절, 그는 이미 선진농업을 시작했으며 여기에 이웃 주민들이 자기 농사까지 미루고 도와준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부친께서는 “부지런하면 죽 먹을 때 밥 먹는다”면서 평소 근면ㆍ검소ㆍ절약과 저축을 강조하셨다고 한다. 날이 밝으면 일어나야지 일어나지 않으면 덮고 자던 이불에 구정물까지 뿌리셨을 정도라고 했다. 그로나 김 조합장은 아버지보다 항상 일찍 일어나 한 번도 구정물 세례를 받은 일이 없었다. 당시 일찍 일어나는 습관에 몸에 배어서인지 요즘도 그는 새벽 5시면 일어나 8시면 출근을 마친다. 이러한 부지런함이 1993년 첫 조합장 취임 당시 예천동의 허름한 청사가 2018년도 말 677억 원 가치의 자산이 되었다. 3천여 명 조합원에 준조합원 3천500명까지 6천500명의 조합으로 성장했다. 2018년도에는 전국에서 경영우수조합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얻었다.   이러한 성과는 모두 조합 임직원과 조합원 그리고 서산시민들의 힘이 매우 컸다고 했다. 그는 서산타임즈가 선정한 제11회 자랑스런서산인상(경제부문)을 비롯해 도전한국인상, 2001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2010년에는 저탄소 녹색성장정책 선도역할 공로를 정부가 인정하여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또 K-Z 이주민대책위원장, 서산천수만세계철새기행전추진위원장(13년간), 서산시주민자치연합회장, 서산경찰서청소년발전위원장 등 이타적인 삶을 살아왔다. “남을 위해 산다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나의 일을 뒤로 미룬 채 남의 일을 돌본다는 것 자체가 보람된 일입니다” 김 조합장이 남을 위해 살아온 것이 자신의 위한 삶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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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7
  • “발전된 고향 모습에 뿌듯합니다”
    재경서산시향우회는 지난달 30일 ‘고향 방문의 날’행사를 갖고 1일 명예시장과 읍면동장으로 활동하며 발전된 고향의 모습을 직접 체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맹정호 시장이 임명장 수여 후 출향인들과 손 하트를 날리고 있다. 재경서산시향우회고향방문 명예 시장ㆍ읍면동장 체험   재경서산시향우회(회장 김태신)는 지난달 30일 고향사랑을 실천하는 ‘고향방문 행사’를 갖고 발전된 고향의 모습을 직접 살폈다. 고향방문 행사에는 김태신 회장을 비롯해 김근환 자문위원장, 한남희 감사, 이희창ㆍ이연우ㆍ조한홍ㆍ정돈호 부회장, 김남형 사무총장 등 40여명의 향우가 참석했다. 특히 서울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재 용산구의회 의장과 문경숙 광진구 의회 의원이 함께 참여해 이날 행사 의미를 더욱 값지게 했다. 이날 오전 맹정호 시장을 비롯한 간부 공무원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시청에 도착한 향우들은 대회의실에서 서산시 현황을 청취하고 맹 시장으로부터 1일 명예시장과 1일 명예 읍면동장 임명장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재경서산시향우회는 이동식 앰프 15대를 서산시에 기탁했다. 1일 명예시장으로 임명된 김태신 회장은 맹 시장과 함께 양유정 수목제에 참석하고 이후 동서간선도로 공사현장과 도시안전통합센터를 방문하여 발전된 서산의 모습을 직접 체험했다.   또 1일 명예 읍면동장으로 임명된 향우들은 각 읍면동에서 지역 현황을 청취하고 현장방문, 관내 주요시설 방문, 주요 관계자와의 대화의 시간을 가지며 읍면동장의 역할을 마쳤다. 1일 명예 동문1동장 역할을 수행한 이연우(64) 부회장은 “피상적으로만 보아왔던 고향의 모습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큰 의미가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일 명예 인지면장에 임명된 한남희(67) 감사는 “평생을 공직생활을 했지만 지역 공무원들의 주민에 대한 봉사 정신이나 배려를 하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고 말했다. 1일 명예 시장과 읍면동장을 체험한 이후에는 현대오일뱅크와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을 방문하여 업체현황을 청취하고 생산시설을 둘러보며 고향의 발전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돈호(59) 부회장은 “외부에서는 아직도 서산하면  갯마을이나 농촌마을을 연상한다”면서 “석유화학단지와 첨단산업 단지가 곳곳에 있는 것을 보니 서산은 도시와 농촌, 어촌이 병존하는 메머드급의 복합도시라는 느낌이 들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김태신 회장은 “고향을 방문한 향우 회원들을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해주신 서산시 공직자와 서산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면서 “고향 서산을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적극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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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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