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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겁고, 아프고, 고단하다

이수영 서산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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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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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40여 년간의 공직생활이 그동안 범죄피해자의 다양한 지원정책을 시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사회복지에 대한 기사를 보면 우리 센터에 적용할 방안이 있는 가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 중 최근 관심을 끈 기사가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와 관련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중장년층의 이중부양 부담과 정책 과제’를 다뤘으나 언론의 관심은 과도하게 부모 부양의식의 변화에 맞춰졌다.

이 보고서에는 부양 책임자로 ‘가족’을 꼽은 비율은 2002년 70.7%에서 2018년 26.7%로 대폭 줄었으며 같은 기간 ‘사회 및 기타’는 19.7%에서 54.0%로, ‘스스로’는 9.6%에서 19.4%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자체보다 1,300개 넘게 달린 댓글에 더 관심이 갔다. 분노한 사람이 댓글을 다는 법이지만 읽다 보니 글을 쓴 사람의 정황과 마음의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연령대가 높은 것도 흥미로웠다. 이들의 글에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와 가족에게 돌봄을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뭉텅뭉텅 묻어났다.

보고서의 주요 주제와는 별개로, ‘약화된 부모 부양관’에 대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부모 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부터 해보자. ① 가족 ② 사회 및 기타 ③ 스스로.

필자는 ‘사회 및 기타’를 선택했다. 부모 부양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가족은 할 만큼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②에 답한 사람은 사회 변화, 가족규모와 기능의 변화에 따라 가족에서 사회로 주 부양주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③에 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너희 신세 안 지겠다’던 우리 부모님처럼 인간을 독립적 존재로 인식한 사람이거나 돌봄의 메커니즘을 모르거나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왜 나는 ③을 고르지 않았나? 부모를 돌보면서 나는 인간이 폐를 끼치고 신세를 지는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극히 짧다는 것도 알았다. 도무지 ‘스스로 돌본다’고 할 수가 없다.

필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명지대 사회복지교육원을 다니면서 돌봄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돌봄이란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 차원뿐 아니라 관계적 속성을 지닌다. 이런 다양한 요소가 조화롭게 기능할 때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 부양 경험이 없는 사람은 ‘승리 없는 싸움’이라는 노인 돌봄의 처절한 일면을 모를 수 있다. ‘부양의식의 약화’로 서술될 그런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돈과 시간을 둘러싼 긴장 상태에서 갈등을 겪지 않는 가족은 없다. 이 맥락에서 지인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는 8남매를 키우셨지만 8남매가 그 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은 가족관계를 다 끊어놓고 가셨어요.” 왜 이렇게 부모 모시기가 힘들고, 노인의 삶이 비참할까?

우리는 여전히 부모 부양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예상되는 노후 때문에 우울하다. 가족을 주 부양자원으로 간주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인 가구가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이 됐고,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다. 현재의 돌봄 위기는 부양의식의 약화가 아니라, 사회의 돌봄시스템이 사회와 가족변화를 따라잡지 못해서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하루에도 수명씩 범죄피해자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서산시를 비롯해 인근 지자체의 복지관련 담당자들 만나보면 최근 젊은 층에는 현재와 미래에는 가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종종 듣곤 한다. 시민의 노후를 사회가 책임진다는 전제에서 복지정책을 다시 기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안에 잠식된 사회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족의 부담이 줄어야 돌봄 연대로서 가족은 회복된다. 지금 우리의 가족은 너무 무겁고, 아프고, 고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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