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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봉(樂記峰), 악귀봉(惡鬼峰)

충남지역신문연합회 공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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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26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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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 스님.jpg

수년 전 서울 용두동과 하왕십리동 사이 청계천 무학교(無學橋)에 대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유인즉 무학(無學), ‘배운 것이 없다’는 뜻이니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곧 왜곡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 어학사전에는 무학을 “1.배운 것이 없음, 2.불도의 수행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삼도의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하고, 무학교 역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의 고사가 상세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는 이쯤하고 우리 동네를 살펴볼까 한다. 홍성을 대표하는 산을 꼽으라면 백월산, 오서산, 용봉산 등이다. 뜻있는 사람들이 오서산의 까마귀 ‘오(烏)자’는 고구려벽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뜻하고,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며 국가차원의 재천의식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산악신앙의 중심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까마귀 오’자와 ‘산다’는 뜻을 가진 ‘깃들 서(棲)’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앞의 무학교처럼) “까마귀가 많이 사는 산”으로 불리고 있다.

용봉산 역시 여러 의미로 불린다. 과거 용봉산이 임금의 방위를 뜻하는 북산(北山), 팔방미인처럼 산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지녔다해 팔봉산(八峯山)으로 불렸던 만큼, “용의 기운과 봉황의 아름다움을 지닌 산”이라고 정의 할 것을 제안해본다. 여기에 용은 우리말로 ‘미르(미리)’이니 인생의 앞날을 (미리)밝히고, 죽어서 미리내(은하수)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영원불멸의 기운을 뜻하며,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주서(周書), 설문해자(說文解字) 등에 근거해 “모든 사람들의 앞날을 밝혀주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를 덧붙였으면 한다.

용봉산의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를 대부분 ‘악귀봉’이라고 부르고 간혹 ‘악기봉’이라고 한다. 산세를 둘러보고 문헌을 근거로 유추해 봐도 배고픈 귀신, 나쁜 귀신을 뜻하는 ‘악귀봉’이라 부를만한 이유가 없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름에는 좋은 의미를 담는 일반적 정서에도 맞지 않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악기봉(樂記峰)’을 잘못 발음해 ‘악귀봉’으로 굳어진 게 아닐까 유추해 본다. 용봉산(팔봉산)에는 홍주이씨의 2대조이며 영의정을 지낸 당옹 이서를 비롯해 지봉 이수광 등 많은 문인들이 찾았고, 절경을 노래했다. 현재 용봉산을 작은 금강산이라 부르는 것도 이수광의 ‘지봉선생집’에 “팔봉산에 기암괴석이 많아 세간에서는 소위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른다”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도 많은 문인들이 악기봉을 찾았을 테고, 그 아름다움을 ‘예기’의 ‘악기편’에 비유했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외물의 감동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이때 외물에 대해 욕심이 생긴다. 외물에 현혹되거나 절제하지 못하면 이성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성을 잃고 욕심이 생길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예절은 백성의 마음에 절도를 주어서 행동을 바르게 하고, 음악은 감정을 순화시켜 사회를 조화롭게 하므로” 선비는 절제를 통해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 사회를 음악처럼 조화롭게 만들어 “세상은 안정된 음악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악기편’의 가르침을 담아 ‘악기봉’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본다.

책의 제목이 내용 전부를 나타내듯 이름은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함축적인 단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의 앞날을 밝혀주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용의 기운과 봉황의 아름다움을 지닌 산 ‘용봉산’!, 그중에서 가장 빼어난 봉우리 악기봉에 ‘이성을 빼앗아 갈만한 아름다움에도, 결코 현혹되지 않는 절제와 결기로 태평성대를 이끌어가는 군자의 표상’이라는 의미를 담을 때 비로소 용봉산의 기운과 아름다움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범상/석불사 주지 스님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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