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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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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부.JPG
최병부 문인협회 서산지부 사무국장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녹음이 날로 짙어가는 지난 주 말 공산성에 올랐었다.

공주 공무원교육원에서 ‘공직자 미래설계과정’교육을 이수한지 꼭 8년 만에 올라 온 공산성이기에 지난날을 생각하니 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백제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웅진백제의 성(城)!

비단결 같이 감싸 흐르는 금강!

백제의 왕성 공산성에 올라서니 지난 학창시절에 필자가 쓴 단편소설 ‘잃어버린 소야곡’의 주인공 경희가 오늘따라 뇌리에 떠올랐다.

이 소설은 보석처럼 빛났던 경희가 영진이와 이룰 수 없었던 애절한 사랑이야기다. 사랑이란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는 것처럼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도출 된 공식은 없다지만, 사랑 때문에 소유가 불가능한 사랑 때문에 경희는 그 얼마나 많은 고독을 씹어야만 했던가. 사랑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고 같은 방향으로 함께 쳐다보는 것이다.

어려움을 격어 본 사람만이 남의 어려움을 알 수 있듯이 자신을 사랑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남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그냥 사랑하고 싶어서, 또 사랑을 하면 그 기쁨을 주고받기 때문에 사랑한다.

필자가 이날 오른 공산성은 해발 110미터밖에 되지 않지만 강 건너 북쪽에서 보면 마치 한자(漢字)의 공(公)자와 같이 보인다 해서 공산성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공산성은 공주시민의 지주이자 주민의식의 상징이기도 하다.

공산성은 백제시대의 토성, 조선시대의 석성으로 2,660미터의 포격형 산성으로 축조되었다고 한다.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 가 있었고, 동문인 영동루와 서문인 금서루가 있었고, 성안에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궁지와 찬란했던 백제시대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임류각, 연지와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 이괄의 난을 피해인조대왕이 머물렀던 쌍수정, 임진난시 승병들을 훈련시켰던 영은사, 쌍수정 사적비, 만하루, 명국삼장비 등 많은 유적들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고풍스러운 성곽 위를 걸으며 비단결 같이 흐르는 금강을 바라보니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했다.

백제의 숨결이 느껴지는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공주시는 1500년 전 고대왕국 대백제의 찬란했던 향취가 가슴속 깊이 파고들음을 느낄 수 가 있었다.

잠시 더위를 피해 공북루에 앉아 땀을 식히고 있노라니 고향 생각이 났다. 올해 아흔이신 어머님은 태안 남면에서 홀로 살아가고 계시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있어 늘 가슴이 아프다.

우리 집 가훈으로 부자자효(父慈子孝)란 말이 있다. 즉, 부모님은 자손들을 사랑하고, 자손들은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께 효도 한다는 뜻이다. “나무는 고요하고자하나 바람이 그쳐주질 않고 부모님에게는 효도를 하고자하나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옛 말이 있듯이 경로효친(敬老孝親) 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석양이 물들어 가는 공산성을 내려 왔다.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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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에서 ‘경희’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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