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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8.2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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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천.jpg

염천(炎天)도 달력(月曆)을 이기지는 못한다. 끝이 언제일까 싶게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꼬리를 보이고 있다. 어느새 가을이 문턱에 와 있다.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고 책읽기 알맞은 때라고도 한다. 사색과 상념이 진하게 묻어날 때이니 글감을 버무려 갈무리하기 좋은 시기이기도 하다. 무더위를 견디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운데 글이라고 쓸 겨를이 어디 있느냐는 구실은 이제 내놓을 수 없다. 소원했던 자판을 끌어당긴다.

글이라고 쓰다보면 꼭 쓰고 싶은 글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 않다. 특정 인물이나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일이라면 더 그렇다. 더욱이 공직사회에 관하여는 언제나 망설임이 앞선다. 나름 수위를 조절한다. 그런 고민을 이야기 하면 “과연 그렇겠다”고 동조해주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런 저런 생각을 거듭하여 내놓더라도 평가가 엇갈린다. 더 신날하게 써야 반응이라도 보이지 밋밋하게 쓰면 ‘쓰나마나’라고 하는 이도 있고 뜻만 통하면 됐지 굳이 뾰족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주저하면서 쓴다. 공직은 천직이었고, 지금도 ‘공’자만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촉각이 곤두선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거나 언론에 공무원이나 공직사회 에 관한 보도가 나오면 본능적으로 자율신경계가 반응하기 때문이다.

잘 한다는 말,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 일처럼 가뿐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내용에는 이성에 앞서 감정이 솟구친다. 특히 비판적인 소식에는 무엇이 가슴에 얹힌 듯 답답하다. 비판이 언론의 성향이고 사회의 소금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이라고 하지만 공직자의 자세나 부정적인 분위기를 전할 때는 소태라도 씹는 듯 입안이 너무 쓰다.

모든 일은 여건과 상황에 따라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성과가 실망스럽게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에 임하는 자세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흔히 ‘전투에 진 병사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고 한다. 일이 전투라면 잘 안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투에 임하는 자세가 그릇됐다면 원인을 찾아 고치고 전투에 나가야 한다.

서산타임즈에 시청 공직자에 관한 기사가 거푸 실렸다. 최근에는 “서산시 ‘넘버 2’는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는 읽기조차 민망하여 일부의 내용조차 옮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내부 분위기는 물론이려니와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 어떠했을지 답답했다.

그 직전 보도된 “어느 공무원의 ‘취중 고백’”은 공무원의 입을 통하여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꼬집고 있는데 전직 공무원으로서 숨고 싶었다. 공무원의 잇단 일탈과 일부 간부공무원들의 수동적이고 방관자적인 업무태도를 지적한 “너그러운 ‘리더십’때문이라고?”의 기사는 ‘시장이 너무 너그럽고 관대하다.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그냥 넘어간다. 그러니 공무원들의 나사가 다 풀어졌다’는 지적에는 그늘이 졌지만, 이어 ‘시장의 포용적ㆍ관용적 조직 관리는 뒷말을 들어야 하는 사항이 아니라 오히려 수준 높은 리더의 자질’이라는 말로 진정한 공복으로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숙한 공무원으로 하루 빨리 거듭나기를 강조한 내용에 공감했다.

시장이 카리스마를 갖고 스파르타식의 강력한 조직 관리를 하면 공무원들이 ‘나사 풀린 행동’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시장의 포용적ㆍ관용적 조직 관리는 뒷말을 들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한 리더의 자세이다.

또‘직언하는 참모가 있는가?’라는 기사도 있었다. 시장에게 제때에 제대로 직언을 해주는 진정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는 얘기였다. 내부의 작은 일에서부터 어떤 시책 결정과 발표 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시장에게 사심 없이 문제 발생 원인을 알려주고 정확한 사태의 진위여부를 따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참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것이었다. 내ㆍ외부에서 ‘이런 것은 안 될 일’이라는 여론에도 이를 지적하는 참모들이 드문 모양이었다.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필자의 경험을 소개한다. 어느 자치단체 부군수로 있을 때다. 군수와 독대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군이 들썩이는 일 만큼 큰 현안이 있었다. 적절한 대안을 찾아 군수와 협의하여 풀어나갔다. 군수 비서가 간부들에게 무례했다는 말이 들렸다. 불러서 타일렀다. 본인은 꾸짖음으로 받아들였을 법 했다. 직업공무원의 수장으로서 이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다. 경리관으로서는 일이 한 편에 쏠리지 않도록 살폈다. 그 자리에 얼마간 더 있느냐 없느냐하는 것은 다음이었다.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간다. 공직자로서의 ‘자리’와 자부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특히 간부들의 자세와 역할이 중요하다. 연이은 기사가 잘못이었다면 반론을 제시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신문도 대범하게 받아 주리라 믿는다. 변화를 전제로 하는 말이다. /전 서산시 부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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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글을 써야할까 하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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