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5(목)

“당연한 아내의 몫 했을 뿐이에요”

[화제의 인물] 열녀 조병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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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27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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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직후 감전사고로 크게 다친 남편을 평생 돌보면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조병희씨. 

 

결혼 직후 감전사고로 손과 발을 잃을 정도의 크게 다친 남편을 떠나지 않고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행복한 가정을 꾸려온 아내가 있어 주위를 훈훈하게 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동문동에 사는 조병희(73ㆍ사진)씨.

결혼 후 외아들을 둔 조 씨는 여느 가정 못지않은 화목한 가정의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 그녀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975년. 아들이 2살 되던 해 발생한 남편의 감전 사고는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고 후유증으로 수차례의 수술을 받았는데도 남편은 손은 절단되고 발가락도 4개가 손상됐다. 혼자서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시댁 어른들은 젊은 새댁이 평생 불구로 살아야 할 남편을 두고 나갈 것이라 예상하고 전세금마저 빼버렸다. 그녀 자신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남편을 떠나야겠단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시댁의 이 같은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녀는 핏덩이 자식까지 두고 야반도주까지도 생각했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다잡은 것은 친정어머니였다.

독실한 카톨릭 집안이었던 친정어머니는 “지금 남편을 두고 떠나면 평생을 후회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며 “한번 맺은 부부의 연을 끊는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다행히 남편이 다니던 회사에서 위로금이 나왔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혼자서는 밥조차 먹을 수 없는 남편을 돌보기엔 너무 벅찰 것 같아 남편의 허락을 받아 고향에 조그마한 땅을 사서 귀향했다..

남편과 함께 고향에 정착한 그녀는 하루하루 전쟁과도 같은 생업에도 남편을 치료하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소독약 2병을 다 사용해도 모자랄 만큼의 환부가 컸다. 남편에게는 용기와 희망이 필요했고, 반려자인 자신이 수호천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서는 걸을 수 없는 남편을 위해 특수 자동차운전면허증 시험에 도전하게 했다. 대전에 있는 면허시험장에서 필기시험을 보다 시험지가 땅에 떨어져 시험을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수록 그녀는 남편의 기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면허증을 받던 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보람의 눈물이었다.

그녀의 이런 신념은 신앙의 힘이었다.

조 씨는 “너무 불쌍하잖아요. 혼자서도 걷기는커녕 목욕도 할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는데…그래서 틈만 나면 기도했지요. 이 시련을 이길 수 있도록 해달라고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편케어에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도록 팔목에 갈퀴를 달아 운전대와 고정시켜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자신이 외출할 때는 밥상에 과일까지 챙기기까지 했다. 그렇게 정상적인 생활이 이루어질 때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17년 남편이 위암 선고를 받은 것.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억장이 무너졌다.

40년을 넘게 남편의 병수발과 가장 역할에 심신은 지칠 대로 지치고 고단했지만, 조 씨는 이번에도 아내로서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16차례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1년여를 함께 있다 먼저 먼 길로 떠났다.

그녀의 선행은 가정 밖에서도 이어졌다. 마을의 크고 작은 궂은일도 마다 않고 묵묵히 헌신하며 이타적 삶을 이어왔다.

조병희 씨는 “아내로서의 해야 할 도리를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가 될 것 같았다.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도 적지 않았지만 이웃의 격려와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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