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10(금)

코로나19 보다도 더 두려운 것

[로컬충남 칼럼] 이원기 청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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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6.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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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온 대재앙을 지켜보노라니 지구촌 전체가 죽음의 늪 속으로 죽음의 늪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듯한 두려움 마저 든다. 그러나 우리는 목숨을 걸고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려는 세계 최강의 방역진 덕분에 죽음의 공포로부터 점차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믿는 구석이 있어 잠시 잠깐 편안히 숨쉴 수 있다는 게 이토록 짜릿한 쾌감을 안겨줄 줄은 몰랐다. 흔히들 얘기하듯이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의 지침대로만 따르면 그 누구도 절대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기니 만사가 편안해진다. 인류 전체가 방역을 생활화한다면 삶 자체가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경제적인 고통도 차차 해결될 것이다. 헌데 전혀 엉뚱한 곳에서 코로나 팬데믹보다도 훨씬 더 파괴적이고 다루기 힘든 괴물이 나타났다. 아니, 그 흉물은 진작부터 빠르게 몸집을 불려가며 독이빨을 드러냈는데도 불구하고 나라 전체가 그 무시무시한 재앙덩어리를 지나가는 감기 정도로 여기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다.

양심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듯이, 가장 기본적인 윤리 도덕조차 무너진 사회는 미래가 없는 세상이요, 온갖 저질의 탐욕과 쾌락만이 넘쳐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세계인들이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한국인에게 호감을 갖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 대개들 한류부터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큰 장점인 치안유지가 잘 돼있어서 한국의 어디를 가더라도 신변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점과, 아직은 군데군데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네의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신성불가침의 영역있던 인간에 대한 존엄성마저도 가차 없이 패대기 당하고 짓밟힌 지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헌데도 정부나 국민들 어느 쪽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 비인간적인 폭거에 대해서 ‘그런가보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겠지’, ‘내 잘못도 아닌데 뭐…’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조차도 그 모든 반인륜적인 범죄에 대해서 마음만 끙끙 앓았지 발 벗고 나선 적이 없었기에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반드시 해결해야 될 일이고, 시급을 요하는 일이니 마저 얘기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죽음으로 내몰고 자식이 저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범죄를 법의 잣대로만 처벌하고 말 것인가? 묻지마 폭행이나 언어폭력, 존속살인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비인간적인 범죄가 되풀이되고 갈수록 중대되는 까닭이 무엇인가? 사람이 남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화급을 요하는 부분이 수신을 비롯한 인성교육인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나부터 살고 보자’ 라든가 ‘그걸 배우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나?’ 혹은 ‘돈이 하느님이지!’ 따위의 비인간적인 사고와 행동이 팽배해지면서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다.

“인간미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것들! 그 나랏놈들 하고는 상종 자체를 말아야지!”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지 따져볼 나위도 없다. 코로나 광풍도 서서히 잦아드니, 이제부터는 가정교육, 공교육 할 것 없이 영혼이 향기로운 인간을 길러내는 일에 나라 전체가 매달려야 할 때가 왔다. 그러자매 각종 교과의 내용상 참다운 인성을 가르치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가장 비중 있게 다뤄야만 할 것이다.

여기에 참고할만한 예로는 ‘선비정신’에 매진했던 조선시대에 학동들의 교재로 널리 쓰인 박세무의 <동몽선습>, 이율곡의 <격몽요결>, 고려 충렬왕 때 추적이 지었다는 <명심보감>같은 수신서를 참고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격몽요결>의 세 번째 장이 되는 <지신장>. 즉 ‘몸가짐 바르게 하기’에서 율곡 선생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배우려는 사람은 자기 마음을 정성껏 가지고 올바른 도를 행하며 나가야 된다.” 쓰여 있지는 않았으되, 가르치는 선생님의 마음자세부터 그러해야만 될 것이다./홍주일보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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