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불안ㆍ혼란은 언제든 극복할 수 있어”

[조규선이 만난 사람] 75. 정순덕 서산출신 황해도 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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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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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 내림굿을 받고 무녀가 된 정순덕씨. 그녀는 신령님이 하늘에서 허락하신다면 ‘환인ㆍ환웅ㆍ단군’을 모실 수 있는 단군 성전을 짓는 게 소명이라고 했다. 사진=정순덕 개인 소장

 

그녀는 황해도 굿을 하는 무녀다. 서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황해도 굿을 하게 된 계기는 이북에서 피난 오신 분들이 주로 서해안 지역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실제 황해도에서 피난을 오셨던 그녀의 부모들도 군산을 거쳐 서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8살 때 내림굿을 받고 무녀가 되었다.

정순덕(53)무녀를 지난 18일 만났다. 어린나이에 무녀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그녀는 5살 때 신병을 앓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조차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눈을 뜬 채 하얀 수염의 신령님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죽었다며 멍석으로 덮었더니 갑자기 살아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를 어머니(유초기, 1924-2012)가 옥녀봉 아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곳을 팠더니 황해도 무당들이 신당과 굿을 할 때 모시는 몇 점의 탱화가 묻혀 있었다. 지금 그녀의 신당에 모셔진 옥황상제님을 비롯한 신령님이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무당으로써 자식의 운명을 받아드리고 8살 되던 해 단옷날에 내림굿을 통해 그녀를 무녀로 태어나게 했다.

이렇게 내림굿을 한 ‘애기무당’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산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녀가 된 이후 서산 동부시장에 큰 화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동부시장에 큰불이 났다. 또 염전에서 일하다가 갯도깨비에 미친 남자를 위해 굿을 벌였더니 그날 밤 완치됐다. 이런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 상경하여 황해도 지방문화재 만구대탁굿 보유자인 우옥주(1920-1993)선생에게 사사를 받았다. 또 김금화 신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황해도 무속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장 큰 무당의 제자가 되었다. 무당으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셈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렇게 성숙한 무당이 되기 위해 수십 년간 교육을 받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통 받는 사람과 공감 능력을 키웠다. 서울에 거주하면서도 고향인 서산 옥녀봉 산신당(그녀의 내림굿을 해 준 고 유순덕 선생 세움)을 봄가을로 방문하여 지성을 드려왔다.

이제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녀다. 1996년에는 세계 샤머니즘 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2018년 한국문화의 집, 무녀전, 스페인 말라카 대학 초청 굿, 환웅둥지 굿(속리산 에밀레 박물관), 1986아시안게임 개막기원 굿(잠실 주경기장), 88서울 올림픽 성공기원 굿을 비롯해 이한열 열사(1987, 연세대), 박종철 열사(1988, 서울대), 고양시 금정굴 양민 학살(1996), 제주 4.3희생자(1998, 종로 연강홀)진혼 굿 등을 벌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신령님의 뜻에 따라 진혼굿을 마쳤을 때 희생자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하는 모습에서 무녀로써 제 삶이 소중함을 알았다는 정 무녀는 앞으로 신령님이 하늘에서 허락하신다면 ‘환인ㆍ환웅ㆍ단군’을 모실 수 있는 단군 성전을 짓는 게 소명이라고 했다. 새로운 단군성전에서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천제를 모시고 공부하고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태안반도 황도 풍어제에 함께 했던 어릴 적 기억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그곳에서 정성을 드리고 싶다는 바람도 보였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면 행복, 가정, 건강이 아니겠느냐”는 그녀는 “무당으로서 늘 신령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 신령님들이 늘 안정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서 제가 지금껏 빌어 주었던 많은 분들이 모두 편안해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녀는 요즘의 코로나19와 관련 “모든 화는 하늘의 이치에 역행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불안과 혼란은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영험한 무녀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특성이 ‘한’과 ‘멋’, ‘신명’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꿈의 사회로 오기까지 옛 문명사회에서 가치창조의 리더는 무당이었다. 그녀의 영검(사람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신령한 힘)함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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