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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픈 후회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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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5.11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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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 살다 보면 참으로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때로는 알면서 지은 잘못도 있고 전혀 예측하지 못한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쳐 더욱 성숙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고 되돌릴 수 없는 후회가 있다. 바로 주자십회훈(朱子十悔訓)에 나오는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다. 가장 안타깝고도 가슴 아픈 후회다.

어머니는 쉰 살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던 나이에 아내와 100일 된 아들과 열한 살, 열네 살 두 동생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다.

살기 바빴던 세월을 보냈다. 혼자 많이 울었다. 특히 동생들 결혼시키던 날 많이 울었다. 한참 부모님의 사랑을 받아야 했던 동생들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울었고, 어머님께 죄송해서 울었다. 살면서 힘들 때 찾은 곳은 어머니 산소였다. 산소 곁에 누우면 참 포근하고 평안했다. 다정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후련했다. 어머님 살아계실 때는(오래되어서 생각나지 않는다) 다정한 말 한마디 나눈 기억이 없다. 어머니 임종도 못 했다. 큰 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돈 마련한다고 여동생에게 어머니를 맡겨놓고 집으로 갔다가 이튿날 병원에 가보니 어머닌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후였다.

어머니는 나를 해방되던 해에 낳으셨다. 그때 얼마나 세상이 어지러웠나? 일본 강점기 말기에 다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남은 상태에서 해방을 맞이했지만, 곧이어 터진 난리 북새통인데도 나를 가르쳤다. 중학교를 보내고 학비를 마련하려 온갖 고생을 다 하셨다. 낮에는 솔방울을 따고 새벽닭이 울면 솔방울 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이십 리 길을 걸어 서산시장에 내다 팔아 학비를 대셨다. 부모님의 사랑 이야기를 어찌 글로 다 옮길 수 있으랴? 언젠가 물에 둥둥 떠다니는 우렁이 껍데기를 보았다. 제 몸 다 자식에게 내주고 빈껍데기만 남은 우렁이를 보고 어머니를 생각한 적이 있다. 어머닌 그런 존재셨다. 문득 정신이 들어 효도하려니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가장 한스러운 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한 번 못 가본 일과 어머님과 외식 한 번 못한 것이다. 시대가 그랬다고 자위해보지만, 철이 덜 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이제 와 탓해보고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아무리 효도 하고 싶어도 부모님은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저 답답하고 애통 스러울뿐이다.     

요즘 신문에 가끔 불효한 사람들의 기사가 나온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하려고 저러나 싶다. 얼마 전에 이런 기사가 난 걸 보았다. 할머니 한 분이 방산 시장에서 쪼그리고 홀로 앉아 계신다는 신고를 받았다. 출동한 경찰은 아무리 가족에게 연락해도 전화를 받지 않아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재워드렸다. 이튿날 아침에서야 경찰은 가까스로 큰딸과 연락이 닿아 연락했더니 왜 오빠를 부르지 않고 자기를 불렀느냐며 안 가겠다는 말에 아들에게 연락했으나 여동생을 불렀으니 거기로 연락하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결국 경찰은 자녀를 임의 동행하여 할머니를 인계하려 했으나 이들은 경찰서 안에서까지 서로 미뤘다고 했다. 이들 남매는 세련된 옷차림에 손가락엔 번쩍이는 보석 반지를 끼고 있었고 경찰 조사 결과 모두 서울에 번듯한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었다고 했다.

엊그제 유튜브를 보다가 개가 아기를 물고 병원에 온 영상을 보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발견하고 물고 온 것이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존재한다. 다가간 기자에게 할머니는 “내가 오래 산 게 죄지 애들은 아무 죄도 없다.” 하며 자식을 두둔했다. “버리다니, 쟤들이 내게 이런 것도 넣어 줬다.”며 쇼핑백에 들어있던 요구르트를 손에 쥐고 달게 마셨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든 늙게 마련이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부모님을 모시고 계신 자녀들이여! 행복한 미래를 살고 싶거든 효를 다 하시기를 간절히 권한다. 부디 불효하고 두고두고 후회하는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당부 드린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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