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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재는 권한이고 책임이다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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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6.0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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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공직사회에서 ‘결재’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6월 7일자 중도일보는 어느 시청에서 5급 팀장과 6급 주무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보도했다. 팀장이 주무관에게 “팀장 결재 없이 주무관이 문서를 처리하는 것은 추후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 앞으로 잘해 달라”는 취지로 이야기했는데, 주무관은 “팀장이 자리에 없어서 그랬다고요”, “알겠다고요”라며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대답한데서 순간 사무실 분위기가 삭막해졌다는 것이다.

어느 기관에서는 특채 추진과 관련하여 “정치적인 부담을 포함한 모든 책임은 내가 다 지겠다”며 기관장 단독으로 결재한 것 등을 두고 사법처리 단계로 이어졌다. 결재 과정에서 담당 국ㆍ과장과 부기관장까지 ‘배제’했다는 감사원 주장과 법적 분쟁, 징계 가능성 등을 우려하는 이들을 ‘배려’했다는 기관장이 입장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 연기군을 중심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예정지로 결정되었으나 얼마 후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났다. 이에 주민들의 삭발, 혈서, 단식, 대규모 집회 등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다. 초기 소요 비용을 주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했으나 한계에 부딪혔다. 군에 비용을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어찌어찌하여 예산을 마련했는데 집행절차가 문제였다. 묘안이었을까? 결국 군수 단독으로 결재하여 집행했다. ‘정치인’ 군수의 결단이었다. 사례에서 보듯이 이유나 경위가 어쨌든 일반적으로 기안자→보조ㆍ보좌기관→결재자 순으로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느 단계를 거른 채였다. 반대로 최종 결재를 보류하는 것으로 매듭짓는 사례도 있다.

결재자의 태도도 사뭇 다르다. K도 어느 도지사는 결재서류에 ‘감사관 귀하. 본 건은 본인의 지시에 의해 처리한 것입니다.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니 실무자에게 책임을 묻지 말아주십시오.’라고 손수 쓴 메모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이유나 대안을 말하지 않고 ‘다시 해 보라’거나 ‘재검토하라’며 반려하는 경우도 있다. 의도와 다르면 분명한 지침을 주는 것이 마땅한데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처사로 볼 수도 있다. 지적은 하면서도 적정한 대안을 제시해 줄만한 역량이 부족한데서 기인하기도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펴낸 ‘행정업무운영편람’을 보면 ‘결재란, 해당 사안에 대하여 행정권한의 의사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가 그 의사를 결정하는 행위를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결재는 행정기관의 장, 행정기관의 장으로부터 결재권을 위임받은 자, 대결(代決)하는 자가 해당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효과를 성립한다. 결재는 문서가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한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요건이다. 기관장이 된다는 것은 결국 결재권을 획득한다는 것이며, 대내외적으로 효력을 발하는 의사결정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모든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직사회에서 결재과정은 모든 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결재로써 일이 시작되고 종결된다. 결재권자가 서류에 서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이나 행동으로 하는 의사표시도 넓은 의미의 결재라 할 수 있다. 결재가 업무의 핵심이다 보니 기안보다도 결재 받는데 비중을 두는 경우도 있다. 오랜 시간 걸려 작성한 일을 불과 몇 십초, 몇 분 걸리는 결재를 받자고 며칠 씩 기다리기도 한다.

도의 어느 간부는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결재서류를 몇 번에 나누어 받기도 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한 번에 활용하지 않으니 빨리 시행하여 매듭지으려는 실무자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일의 능률을 보자면 당연히 그래야 했지만 그 간부의 지론은 달랐다. 한꺼번에 받는 것보다 여러 번으로 나누면 도지사를 자주 볼 수 있고 일을 많이 하는 간부라는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결재는 여러 의미를 갖는다.

일 년 동안 도지사 결재 받아야 하는 문서를 한 번도 만들지 않는 간부나 부서가 있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면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차이는 분명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중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례를 들어 결재의 의미를 새겨 보면 일반적인 절차를 결한 결재 과정은 아무래도 매끄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안은 최선을 다해야 하고 보조ㆍ보좌기관은 실무적, 전문적인 것까지 균형감 있게 보아야 한다. 결재자는 본인의 권한행사에 앞서 지역과 주민의 현재와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통찰해야 한다. 결국 결재는 권한이고 책임이다. 엄중한 행위다.<전 서산시 부시장ㆍ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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