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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벗고 자유롭게 즐거워하는 관객 보고파”

조규선이 만난 사람 116. 서승희 소리짓 발전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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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8.18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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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홍당무’란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서승희 대표. 지난 2012년부터 서산에 둥지를 튼 그녀는 서산에 문화인프라만 구축한다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서승희(56) 소리짓 발전소 대표는 한 때 서울에서 잘 나가는 연극배우였다. 서산문화재단 이사인 그가 오는 22일 밤 9시 해미읍성 동헌 앞에서 월아연(月夜演·해미읍성 보름달 밝은 달 놀아볼 판) 비대면 영상 촬영을 하게 됐다며 지난 14일 필자를 찾아왔다.

서 대표는 현재 서산과 태안에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서 대표는 경북 포항에서 운수업을 하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1학년 때 포항시 문화공간에서 국립극단 홍당무란 연극을 관람하고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그리고 얼마 후 전교생 앞에서 당시 유행했던 서부영화 내 이름은 튜니티대본을 직접 써 연기를 했다. 첫 무대였지만 나름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중고교 시절 내내 합창단 지휘, 축제 연출과 출연을 맡아 소질을 개발했다. 전문적으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신명이 났고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배우가 되는 대학을 가겠다고 하자 집안에서 난리가 났다. 아버지께서는 사랑하는 내 딸이 배우가 되는 것이 싫다. 가보지 않아도 그길(배우가 되는)이 얼마나 험난하고 힘든 일인 줄 안다면서 예쁘게 있다가 좋은 집안 남자 만나 결혼해서 자식 낳고 사는 게 여자 인생으로 최고라며 평범하게 살길 원하셨다.

아버지 바람을 저버린 것은 대구 계명대학(관광 경영학)을 졸업(84)하고 나서다. 생전처음 아버지 뜻을 저버리면서 갈등과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1989년 상경하여 극단 76에 입단했다. 그리고 연극 지피족’, ‘춘향 1991’, ‘마네킨 작가’, ‘말똥가리’, ‘고도를 기다리며’, ‘미친리어의 무대에 올라 배우로서의 더 큰 꿈을 키웠다. 뮤지컬 넌센스에서는 3기 원장수녀로 출연하며 연극배우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20대 후반이던 1993년에는 한국연극배우협회로부터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 쉐프킨 대학교 연수생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서 대표는 19967월 함께 활동하던 12명으로 소리짓 발전소를 창단했다. ‘소리짓은 우리가 인식하는 다양한 예술형태를 확장한 개념의 융합예술이다.

그녀는 예술의 전당 공연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넌버벌 퍼포먼스단어 자체가 생소하던 때 천제라는 공연이 대한민국 연극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언론의 힘이 대단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공연 기사가 중앙일보 문화면 한 면을 차지했던 것. 숱한 전화는 물론 심지어 서 대표의 삶을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이 알아보고 말을 건낼 정도가 되었다. 톡톡히 유명세를 치른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외계인을 만나는 꿈을 꾸고 난 후 ‘UFO 그날 이후란 작품을 만들어 시리즈로 발표했다. 거리공연은 물론 지하철, 홍대클럽, 극장, 지방을 돌아다니며 순회공연을 했다. 이러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때 인사동 한 카페에서 비구니 스님(법명:건초)을 만났다. “힘들면 한번 와서 아름다운 섬(안면도)에서 쉬었다 가라는 말 한마디에 8시간을 걸려 태안군 안면읍 장곡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난생 처음 상쾌한 공기 질감을 느꼈다. 바다 냄새 가득한 공기가 숨통을 트이게 했다. 스님 또한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예술 활동 그거 꼭 서울에서만 해야 하나? 예술가는 어디에서 사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거품 같은 이미지보다 헛헛한 내속을 채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한 달 만에 빠르게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19981월 안면도로 이사를 했다. 안면도에 둥지를 튼 그녀는 이후 서산과 태안에서 를 숨기지 않았다. 1회 안면도축제를 비롯해 태안관내 여성들의 힐링 캠프, 연극 시집가는 날태안별주부전을 공연했다. 2002년에는 제14회 이집트 카이로 실험예술제 한국대표로 일본과 태국 숑크란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공연을 했다. 또 바닷가를 거닐며 바람아래영감을 받아 ‘No war only peace’ 2집 앨범도 냈다.

서 대표는 2012년부터 서산에서 살고 있다. 서산인심이 너무 좋다고 했다. 사람들이 여유와 유머감각이 있으며 또 풍족한 먹거리와 아름다운 자연이 있다고도 했다. 여기에 문화 인프라만 구축한다면 정말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있다고 장담했다. 서산을 예술이 빛나는 지역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2017년부터 해미읍성 토요상설 공연 총감독으로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다.

딸의 앞날을 걱정하셨던 아버지는 22년 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 입원실에서 보름간 곁을 지켰던 그녀는 아버지께서 다른 보호자가 따님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으면 자랑스럽게 배우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서는 화장실에 가서 펑펑 울었던 기억도 있다고 했다.

서승희 대표는 내년에도 공연이 계속되어 사계절 내내 보름달 밝은 밤 해미읍성 호야나무 앞 월야연 공연장에서 마스크 벗고 자유롭게 관객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올 한해도 서 대표의 삶은 여전히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종횡무진 뜨거운 활약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부디 건강을 지키면서 매진하기를 기원한다. ·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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