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7(수)

벌초(伐草)

김풍배 칼럼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1.09.07 19:06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김풍배.jpg
김풍배(시인·소설가)

 

추석이 2주가량 남았다. 추석이 돌아오면 꼭 해야 할 일이 벌초하는 일이다. 아버님과 작은어머니는 공원묘지에서 관리해 주니 벌초하지 않아도 되지만, 할아버지 내외분과 어머니 그리고 큰어머니의 산소는 내 손이 가야 한다. 물론 예초기로 한다지만, 사실 학생들 숙제만큼이나 부담이 간다. 원칙대로 하자면 일 년에 두 번(한식 때, 추석 때)은 해야지만, 나는 겨우 추석 때에 한 번으로 끝낸다. 그래서 1년 동안 자란 풀과 잡목이 뒤섞여 벌초하려면 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굳이 나 혼자 벌초를 고집한다. 내게도 동생들이나 사촌들이 있지만, 모두 서울에 올라가 살고 있어 바쁜 사람들 오라 가라 하기도 그렇고, 또 아이들도 같이 가자면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구태여 아이들에게도 시키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내겐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큰어머니지만, 모두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또는 젖먹이 적에 돌아가셨으니 그저 의무감 하나뿐, 추억도 없고 애틋함도 없을 터이니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였다. 그래도 성묘는 함께 다닌다. 후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봄에 여동생들이 차라리 남들처럼 화장하여 납골당(納骨堂)에 모시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요즘 많은 가정에서 그렇게들 한다. 그런데 난 썩 내키지 않았다. 마땅한 거절할 이유를 찾기 어려워 옛날이야기를 핑계 삼았다. 옛날 중죄인을 벌()할 때 죽은 사람에게는 부관참시라 하여 시체를 꺼내어 훼손했다고 했다. 누구나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데 굳이 잘 모신 시신을 꺼내어 불에 태움이 그리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차라리 그냥 두어 풀도 나고 나무도 자라서 자연으로 돌아가게 함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실제 이유는 딴 데에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큰어머니의 산소에 난 풀을 깎으면서 각각 내게 베풀어주신 사랑을 기억한다. 비록 힘들지만, 그 힘듦이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때 우리나라의 매장 문화로 인하여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매년 여의도의 3배에 달하는 토지 면적이 묘지로 침식당함에 금수강산이 묘지 강산으로 변한다는 말도 있었다. 더구나 호화 분묘로 말썽이 된 적도 있었다. 사실 호화 분묘는 자가 과시요, 허영이었다. 죽은 자가 어찌 알겠는가? 다행히 이제는 매장보다는 화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나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영혼이 떠난 육신은 어떤 형태로든지 흙으로 돌아간다. 굳이 매장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 산소가 있어서 좋았다. 내가 힘들고 지치고 어려울 때마다 부모님 산소엘 들렸다. 산소 곁에 누우면, 품에 안긴 듯 포근했다.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바람도 같이 누워주었다. 살아계신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하듯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그걸 동생들에게는 그 말을 차마 못 했다. 오라비나 형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동생들에게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동생들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정년 할 때 예초기를 장만했다. 그때 제일 가볍고 간편한 일제 예초기를 샀다. 한 이십여 년간 사용했더니 몇 해 전부터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오직 4기의 산소만 사용했을 뿐인데 고장이 났다. 세월엔 장사 없다는 말이 틀림없다. 아무래도 예초기를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가장 간편하고 늙은이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걸 구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쪽 분야에 밝은 사촌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제일 관심이 있는 동생이다. 몇 해 전엔 혼자 와서 벌초하고 간 적도 있었다. 동생들도 여럿 있지만, 다른 사람은 관심도 없다. 유독 그 사촌만 마음을 써준다.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고 벌초 걱정은 하지 말고 기계만 사달라고 했다. 주문서가 카톡으로 왔다. 어차피 내 대에서 끊어질 거니 근력이 다 할 때까지 잘 쓰겠다고 써 보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날씨는 더 선선해지겠지. 기계가 도착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벌초하러 가야겠다.

태그

전체댓글 0

  • 42922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벌초(伐草)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