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한 푼 없던 청년, 대형 서점 대표가 되다

[조규선이 만난 사람] 121. 이무길 서산문화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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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9.27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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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일을 돌보고 있었다는 이무길 대표. 서점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게 되자 책을 대주던 도매상과 출판사가 그에게 서점 운영을 제안하면서 서점 대표가 됐다. 그는 작금에 서점이 사양길에 접어들었지만 ‘서점은 시민들의 문화 공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무길(61) 서산문화서점 대표가 지난 토요일 오후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필자를 방문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서점이 버스터미널 인근에 있어 서울을 오갈 때면 꼭 들러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또 새로 나온 책이 있으면 추천을 하곤 해 모름지기 40년 단골고객이다. 특히 이 대표의 사촌형인 이무석(전 오사2리 이장)이 고교동창이어서 더욱 각별하게 지내왔다.

 

이날 만난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돈의 가치를 알아 돈을 더 벌수 있고 더 큰 부(富)를 가져 왔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돈을 써보아야 돈의 맛을 아는데 돈쓰면 대우 받는데 그 맛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일푼의 우유배달청년이 대형서점 대표가 되기까지 성공한 삶이 궁금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생각이 그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이 시대 지성 134인과 지적인 대화를 통해 ‘생각경제학 프로젝트’를 진행 해 담은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보다 먼저 생각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성연면 오사리에서 농부의 3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 농사를 지었다. 새벽5~6시에 일어나도 부모님은 늦잠을 잔다고 야단이다. “그렇게 해서 밥 먹고 살겠느냐”고 걱정이다. 20세 되는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온 마늘상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서산으로 무작정 나왔다. 서산에서 해태요구르트,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남양, 매일 등 다른 회사보다 빨리 가서 가게에 진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그는 새벽4시~6시 배달, 오후 5시~6시 수금을 했다. 낮 시간의 여유가 있어 형님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일을 도왔다. 이것이 새로운 운명이 될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이 부도가 나 서점문을 닫게 되었다. 책을 대주던 출판사와 도매상들이 모여 이 대표(당시는 이군)를 믿고 계속 책을 대줄테니 팔아서 책 대금(원금)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형님을 도와 서점에서 일할 때 근면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믿고 맡겨준다는 것이 굉장히 고마웠다. 우유배달도 그만두고 서점일에 열중했다. 365일 휴일 없이 다른 서점보다 1시간 늦게(밤10시) 문을 닫았다. 잠도 안자고 밥 굶기 일쑤였다. 죽을 생각도 수 만 번 했다. 채권단에 채무를 청산하면서 일부는 적금을 들고 저축을 했다. 7년 만에 채무를 모두 청산하고 현 터미널 내 5평 가게를 월15만원에 임대했다. 월세 1만5천원 쪽방을 옮기기 수 십 번. 이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동갑네기 부인 이양순(1960~2017)여사다. 3년 연애 끝에 26세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지만 사랑의 힘은 엄청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혼집 사글세에서 전세로, 서점은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추울 때나 비올 때 책을 보는 쉼터가 되었다.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 시 한 책보기 운동 등으로 서산시민의 독서수준도 향상됐다고 했다. 학생들이 몰려오고 서점은 참으로 번성기를 맞았다. 자연히 이웃 어른들과 소통도 잘되었다. 부지런한 청년, 믿을 수 있는 사람, 신용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내 돈 갖다 쓰라는 분도, 좋은 정보와 지혜를 주는 분도 많았다. 그래서 “신용은 돈이구나”를 체험하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30대에 돈 한 푼 없이 지금 문화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1층 지상3층의 건물을 들어있는 전세금을 안고 은행담보로 인수했다. 돈을 차곡차곡 저축하며 쓸 줄을 몰랐다. 아니 쓸 시간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건물과 토지를 살줄만 알았지 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먼저 간 부인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지은 느낌이다. 이런 삶을 자녀들이나 후세들에게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서산에는 문화, 중앙, 서해, 서산 등 4개의 서점이 있다는 이 대표는 “서점은 시민들의 문화 공간”임을 강조했다. 지식도 얻고, 책에서 시대의 변화도 알 수 있다며 서점을 즐겨 찾는 사람이 문화와 행복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981년 6월 29일 개업했으니 올해로 꼭 40년이다. 이 대표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 이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여 학력고사를 잘 보았고 그래서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며 떡을 해가지고 오는 학부모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고객은 ‘매주 목요일은 서점가는 날’로 정해 온 가족이 서점을 방문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책을 보는 사람이 계속 책을 본다”는 이무길 대표는 “학습지만 본 학생은 고학년이 되면서 이해력 부족 등으로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동화, 아동문학, 고전 역사 등 다양한 서적을 본 학생은 고학년이 될수록 성적이 월등하게 향상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년간 서령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가하면 고향인 성연면의 책두리 사업과 성연면청소년협의회(회장 이영선)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드러내지 않는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것이 이 대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 대표는 인터넷의 발달로 서점이 완전 사양길로 들어섰지만 오늘날 이렇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최근 서산에서 책을 발간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벌, 사업가, 정치인들도 그 성공비결의 중요한 일부분이 독서에 있다”고 강조했다.

 

2시간이 넘는 동안 이어진 대화를 통해 이 대표의 근면, 성실, 신뢰, 인내와 그의 생각이 평범한 가운데 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고향 성연과 서산의 새문화창조라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무길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의 더 큰 봉사를 기대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글·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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