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 없던 청년, 대형 서점 대표가 되다
[조규선이 만난 사람] 121. 이무길 서산문화서점 대표
이무길(61) 서산문화서점 대표가 지난 토요일 오후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 베스트셀러를 가지고 필자를 방문했다. 이 대표가 운영하는 서점이 버스터미널 인근에 있어 서울을 오갈 때면 꼭 들러 대화를 나누는 사이다. 또 새로 나온 책이 있으면 추천을 하곤 해 모름지기 40년 단골고객이다. 특히 이 대표의 사촌형인 이무석(전 오사2리 이장)이 고교동창이어서 더욱 각별하게 지내왔다.
이날 만난 이 대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살았으면 돈의 가치를 알아 돈을 더 벌수 있고 더 큰 부(富)를 가져 왔을 것”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돈을 써보아야 돈의 맛을 아는데 돈쓰면 대우 받는데 그 맛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튼 무일푼의 우유배달청년이 대형서점 대표가 되기까지 성공한 삶이 궁금했다.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생각이 그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이 시대 지성 134인과 지적인 대화를 통해 ‘생각경제학 프로젝트’를 진행 해 담은 ‘생각을 바꾸는 생각들’보다 먼저 생각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성연면 오사리에서 농부의 3남4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 농사를 지었다. 새벽5~6시에 일어나도 부모님은 늦잠을 잔다고 야단이다. “그렇게 해서 밥 먹고 살겠느냐”고 걱정이다. 20세 되는 어느 날이었다. 마을에 온 마늘상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서산으로 무작정 나왔다. 서산에서 해태요구르트,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남양, 매일 등 다른 회사보다 빨리 가서 가게에 진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그는 새벽4시~6시 배달, 오후 5시~6시 수금을 했다. 낮 시간의 여유가 있어 형님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일을 도왔다. 이것이 새로운 운명이 될 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서점이 부도가 나 서점문을 닫게 되었다. 책을 대주던 출판사와 도매상들이 모여 이 대표(당시는 이군)를 믿고 계속 책을 대줄테니 팔아서 책 대금(원금)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형님을 도와 서점에서 일할 때 근면과 성실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믿고 맡겨준다는 것이 굉장히 고마웠다. 우유배달도 그만두고 서점일에 열중했다. 365일 휴일 없이 다른 서점보다 1시간 늦게(밤10시) 문을 닫았다. 잠도 안자고 밥 굶기 일쑤였다. 죽을 생각도 수 만 번 했다. 채권단에 채무를 청산하면서 일부는 적금을 들고 저축을 했다. 7년 만에 채무를 모두 청산하고 현 터미널 내 5평 가게를 월15만원에 임대했다. 월세 1만5천원 쪽방을 옮기기 수 십 번. 이때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동갑네기 부인 이양순(1960~2017)여사다. 3년 연애 끝에 26세 결혼해 1남1녀를 두었지만 사랑의 힘은 엄청남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신혼집 사글세에서 전세로, 서점은 버스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추울 때나 비올 때 책을 보는 쉼터가 되었다.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 시 한 책보기 운동 등으로 서산시민의 독서수준도 향상됐다고 했다. 학생들이 몰려오고 서점은 참으로 번성기를 맞았다. 자연히 이웃 어른들과 소통도 잘되었다. 부지런한 청년, 믿을 수 있는 사람, 신용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내 돈 갖다 쓰라는 분도, 좋은 정보와 지혜를 주는 분도 많았다. 그래서 “신용은 돈이구나”를 체험하고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30대에 돈 한 푼 없이 지금 문화서점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하1층 지상3층의 건물을 들어있는 전세금을 안고 은행담보로 인수했다. 돈을 차곡차곡 저축하며 쓸 줄을 몰랐다. 아니 쓸 시간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건물과 토지를 살줄만 알았지 팔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니 먼저 간 부인에게 너무 미안하고 죄지은 느낌이다. 이런 삶을 자녀들이나 후세들에게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서산에는 문화, 중앙, 서해, 서산 등 4개의 서점이 있다는 이 대표는 “서점은 시민들의 문화 공간”임을 강조했다. 지식도 얻고, 책에서 시대의 변화도 알 수 있다며 서점을 즐겨 찾는 사람이 문화와 행복을 갖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981년 6월 29일 개업했으니 올해로 꼭 40년이다. 이 대표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보람 있는 일도 있었다. 이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여 학력고사를 잘 보았고 그래서 좋은 학교에 진학했다며 떡을 해가지고 오는 학부모가 있었는가 하면 어떤 고객은 ‘매주 목요일은 서점가는 날’로 정해 온 가족이 서점을 방문하는 사례도 있다고 했다. “책을 보는 사람이 계속 책을 본다”는 이무길 대표는 “학습지만 본 학생은 고학년이 되면서 이해력 부족 등으로 성적이 계속 떨어지고, 동화, 아동문학, 고전 역사 등 다양한 서적을 본 학생은 고학년이 될수록 성적이 월등하게 향상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20년간 서령라이온스클럽 회원으로 활동하는가하면 고향인 성연면의 책두리 사업과 성연면청소년협의회(회장 이영선) 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드러내지 않는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이러한 것이 이 대표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 대표는 인터넷의 발달로 서점이 완전 사양길로 들어섰지만 오늘날 이렇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시민들의 문화수준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최근 서산에서 책을 발간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이나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읽을 수 있는 좋은 세상”이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벌, 사업가, 정치인들도 그 성공비결의 중요한 일부분이 독서에 있다”고 강조했다.
2시간이 넘는 동안 이어진 대화를 통해 이 대표의 근면, 성실, 신뢰, 인내와 그의 생각이 평범한 가운데 진리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고향 성연과 서산의 새문화창조라는 공익적 가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무길 대표와의 인터뷰는 그의 더 큰 봉사를 기대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글·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