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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 산책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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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0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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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시인·소설가)

 세월의 수레바퀴는 벌써 가을까지 굴러왔다. 지난 23일이 추분이었다. 추분과 대치되는 절기로 춘분이 있다. 춘분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과 봄 농사를 준비하는 청명 사이에 있고, 추분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와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 사이에 끼어 있다.

춘분과 추분은 각각 더위와 추위, 추위와 더위를 마주하는 계절이다. 봄과 가을은 겨울과 여름에 끼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그 계절 사이로 춘분과 추분이 있다. 이날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을 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를 함께 아우르는 절기이며 계절과 계절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춘분과 추분은 닮은 듯 다르다.

춘분이 겨울의 차가움에서 여름의 뜨거움을 품고 봄을 나누는 절기라면, 추분은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 겨울의 차가움을 안고 가을을 나눈다. 춘분은 희망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면, 추분은 풍요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절기다. 춘분이 꽃처럼 고운 절기 속의 여인이라면, 추분은 쓸쓸하고 허전한 남자의 뒷모습 같은 절기다. 춘분은 이날부터 하지까지 낮을 늘려 놓지만, 추분은 이날부터 동지까지 밤을 늘려 놓는다. 하지만, 춘분과 추분은 닮은 점도 많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것도 닮았고 계절의 길잡이라는 것도 닮았다. 추운 겨울도 아니고 무더운 여름도 아닌 겨울과 여름, 여름과 겨울의 중간 지대에 자리 잡아, 계절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춘분과 추분이다. 이는 마치 인간에게 중용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듯하다.

중용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중용은 단순히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을 택한다는 뜻은 아니라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매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흐리멍덩한 상태가 아니다. 춘분은 겨울의 차가움을 유지한 가운데 따뜻함이 있고 추분은 여름의 더위 속에 겨울의 차가움으로 간을 맞춰 중용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요즘 세대는 중용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듯하다.

대선이 코앞에 있어 그런지 살벌한 진흙탕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흑이냐 백이냐 좌냐 우냐를 놓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우리 같은 민초도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불안하다. 우리 인간의 삶도 봄의 춘분처럼, 가을의 추분처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균형 있는 중용의 삶을 산다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여름의 뜨거움을 감성이라 하고 겨울의 차가움을 이성이라 하자. 그렇게 하면, 춘분과 추분은 이성과 감성이 중용을 이루는 절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나누자고 한다면 춘분은 감성보다는 이성이 좀 더 위에 있고, 추분은 이성보다 감성이 좀 더 지배한다고나 할까?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그의 저서 이성과 감성에서 두 여주인공 엘리너와 마리앤을 통하여 인간 사회에서 이성과 감성의 중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감성은 이성을 흥분시키려 하고 이성은 감성을 진정시키려 한다. 이 둘의 조화가 바로 중용을 이루는 길이다.

추분이 지났으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고 차츰 겨울이 자리를 넓히려 들것이다. 들녘엔 벼 이삭이 황금물결 치고 있고, 주렁주렁 매달린 감도 붉어져 가지마다 등불을 매달고 있다. 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지기는 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열매가 익기까지는 어렵지만, 떨어지는 건 금방이다. 점점 더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곧 텅 빈 들녘을 바라보며 성공 뒤에 허무함 같은 고독이 가득하고 단풍잎은 떨어져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돌아보면 한 뼘 인생, 짧기만 하다. 내게는 추분이 벌써 지났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다. 낙심할 건 없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자. 아직 열기가 남았으니 추분 같은 마음으로 살자. 늙어도 가슴엔 따뜻한 열정을 품고 머리는 냉철한 이성을 잃지 말며 언제나 치우침 없이 중용의 삶을 살아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해야겠다. 찬란한 겨울을 상상해본다. 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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