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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이야기를 쓴다는 것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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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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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글이 고향 서산의 권위 있는 몇 분들로 부터 별 것 아니다라고 판정받았다. 정확하게는 글에 담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담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기천.jpg
가기천/전 서산시 부시장

 

맞다. 필자는 명망 있는 문장가가 아닌데다 고향 사람들의 마음에 담아둘 만한 글이 아니니 그런 평가를 받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왜 쓰는가? 공연히 헛일이나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잡문일망정 작은 울림이라도 주었는가? 뒤돌아보곤 했다.

그래도 서산타임즈에서 계속 귀중한 지면을 내주었다. 어언 11년 째 250편에 이르는 글을 썼다. 책으로 내면 네 권은 넘을 만한 분량이다. 분에 넘치게 가기천의 고향 서정, 가기천의 일각일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언론에서 특정 코너를 마련하고 필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대우이다. 그런 대우를 받으며 글을 쓰고 있다. 고마울 뿐이다.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는지는 모른 채 그래왔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서산타임즈에서는 필자의 글을 종이신문 말고도 인터넷으로 읽는 독자가 수 천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만큼 늘 부담감과 책임감이 억누른다. 몇 년 전, 서산 행사장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인사를 나누는데 글을 잘 보고 있다며 며칠 전 실린 내용을 말씀하는 것이었다. 미리 만나기로 약속했었다면 인사치레라도 졸문을 읽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심걸섭 서산타임즈 고문 겸 한국양곡가공협회 중앙회장은 가기천 전 부시장의 칼럼은 세상사, 상식을 글맛까지 느끼며 두루두루 배울 수 있기에 늘 만족한다.”는 과분한 말까지 해주셨다. 어떤 독자는 글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보이냐?”고 묻곤 한다.

글의 바탕에는 고향의 추억과 옛이야기, 그때그때의 현안을 주제로 삼았다. 공직 경험을 들어 후배들에게 간접경험을 들려주려고도 했다. 몇 가지 제언은, 현직에 있었다면 어렵지 않게 실행했을만한 것조차도 대부분 날아갔다. 그나마 결실을 본 것도 몇몇 있었다.

시민대상 확대를 제안한다.’는 제목의 글에서는 시상 분야를 애향 및 지역 선양부문으로 확대하여 고향사랑에 이바지한 출향인사를 선정, 시상하자고 하였는데, 안원기 의원의 발의로 조례를 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개인이 쓴 읍지(邑誌)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귀중한 사료로 알려진 <호산록 湖山錄>을 펴낸 지 400주년을 맞아 이를 되살려보자는 제언은 예산을 확보하여 올해 문화원을 중심으로 재 발간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산문학관은 꿈이라는 글은, 시에서 70여 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문학관을 짓기로 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대전문인협회 회장이 어떻게 알고 부러워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고, 군자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독립군으로 활약하는가 하면 폭탄으로 권총으로 요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만세운동을 벌였고 저항운동, 국채보상운동을 했다. 글로써 나라사랑과 독립정신, 국민의식을 고취하고 뜨거운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외교활동으로 국권회복, 무력투쟁을 위한 군사훈련,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처럼 각 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고 실천했던 것이었다.

고향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스스로 역할을 다하면서 지역발전과 주민봉사에 앞장서는 것도 고향사랑이고, 타향에서 고향, 고향 사람, 고향자랑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고향사랑이다. 위치와 방법만 다를 뿐이다.

필자는 비록 무디지만 글로 고향을 말하고 사랑했다. 알아주던 그렇지 아니하던 그랬다. 그런 심정으로 썼던 다정도 병인 양 하여의 일부를 다시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저런 상념으로 이 지면에 고향이야기를 여러 번 썼더니 한 지인이 물었다. 무슨 이유로 고향이야기를 주로 쓰는가? 하기는 그렇다. 그래도 굳이 답을 해야 된다면, 조선시대 문인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에서 종장을 인용해 본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에서 다정도고향의 그리움도로 고쳐 보는 것, 이것이 그 지인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그 마음은 한결같다. 가기천/수필가·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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