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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보다 더 슬픈 병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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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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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시인·소설가)

이별이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사람과 영영 헤어져야 하는 이별은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일이다.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한이 서린 말이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가는 그대여//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란 시(). 절절한 이별의 아픔을 담담히 지는 꽃에 빗대어 풀어내고 있다.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쉽게도 지는 꽃처럼 이별의 슬픔도 그렇게 쉽게 잊혔으면 좋겠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별은 육신의 아픔 못지않은 아픔과 슬픔이다. 다정(多情)도 병이라 한다면, 이별의 아픔도 또한 병이 아니겠는가?

세상에는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 있다. 이별이 슬픈 건 다시 볼 수 없다는 전제 때문일 거다. 그런데 마주 보면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별이 있다. 바로 치매란 병이다.

필자는 한때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황혼의 삶들을 섬겨온 적이 있다. 그때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을에 기대어 서서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놨다. 한편 한편이 인생의 종착역에 계신 한 분 한 분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그때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던 건 바로 치매를 앓고 계신 분들의 모습이었다. 치매, 그건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었다.

지난달까지도 반갑게 반겨주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개 왔니? 하며 손잡아 주던 어머니가 누구요? 라고 묻고 있을 때 어머니, 나요, .’라며 울부짖는 아들의 절규와 몸부림을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이별 아닌 이별하는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 치매란 걸 알았다.

 

불가사리 한 마리가/뇌 안에 들어왔다//지나온 세월 자취 다 먹어 치우고/모자라 남편 아이들/ 가족마저 먹었다//추억도 눈물도 /그리움도 다 먹고/먹다 먹다 지쳐서 내 몸까지 먹는다//나처럼/살아온 나는/어디 갔단 말인가

 

필자가 요양원에서 지은 졸시(拙詩) ‘치매의 전문이다. 마치 벌레가 나무 잎사귀를 차례로 갉아 먹어 마침내 나무가 말라가듯, 치매란 벌레는 뇌에 들어가 뇌세포를 갉아 먹고 몸까지도 망가뜨린다.

지난달 초에 세계 보건기구(WTO)는 전 세계 5,500만 명 이상이 치매 환자라고 밝혔다. 이들이 예상하기는 2030년에는 7,800만명, 2050년에는 13,9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85세 이상의 30-40%가 치매에 걸린다고 예상했다. 세 명 중 한 사람은 치매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치매의 초기 증상은 건망증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도 하고 방금 말한 걸 또 한다. 그런가 하면, 질문의 답을 계속 확인한다. 이때 보호자는 너무도 멀쩡한 모습을 보고 있기에 자칫하면 환자란 걸 잊게 된다. 아니, 알면서도 깜박 잊게 된다. “박 서방, 잘 있니?”라고 물을 때 딸은 박 서방, 서울로 올라갔어요.”라고 공손히 대답한다. 몇 분 후에 똑같이 박 서방, 잘있니?” 라고 물으면 이때 딸은박 서방, 서울 갔다니까요?”라며 조금 언성이 높아진다. 몇 분 후에 같은 질문을 하자 박 서방 서울 같다구요라며 소리친다. 그때 어머닌 얼굴을 돌리며 두 번 다시 묻지 않는다. 알아서 묻지 않는 게 아니고 서운해서 입을 다문다. 치매 환자들은 인지기능만 감소했을 뿐이지, 표정과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열 번을 물어도 처음처럼 대답하라고 보호자에게 권면했다. 짜증 낼 일이 아니다. 인생은 너나없이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오늘의 보호자도 어느 한순간 환자가 될 수 있다. 치매. 그건, 안녕이란 이별의 마지막 인사조차도 할 수 없는 가장 슬픈 병이었다. 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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