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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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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1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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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천.jpg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군청 민원실에 있을 때였다. 민원실에서는 민원상담과 즉결민원을 처리한다. ·허가 등 처리기한이 정해진 민원서류는 접수하여 소관부서에 보낸다. 소관부서에서 처리하여 민원인에게 회신하기 전, 기한을 지켰는지 절차이행에 소홀함은 없는지 검토 후 민원통제라는 고무도장을 찍어준다.

어느 날, 식품영업허가 담당 직원이 신청서류를 반려하는 서류를 들고 왔다. 이유는 음식점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에서 0.1가 부족하고, 선반에 먼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소면적을 따질 정도라면 얼마나 영세한 업소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규모였다. 주방과 홀을 포함한 한 변을 5m라고 볼 때 폭은 불과 2가 부족한 것인데 그것이 반려 이유였다. 그 정도라면 자()를 어디에 대고 또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사정이었는데, 당시에는,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선반에 먼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얼마나 자의적인 판단이고 트집에 가까운 것인가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반려하느냐?”고 물었지만 “‘법상안 된다는 대답이었다. 손바닥 만 한 음식점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민원인의 고달픈 처지가 떠올랐다. ‘법상 기준에 의한 처분의 당·부당을 따지는 기능이 없는 민원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결재과정에서 누구라도 짚어보았다면 어찌되었을까하는 아쉬움도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신청했는데 허가가 났다. 공직에 있는 동안 거울로 삼았다.

도청으로 가서 처음 맡은 일은 과 서무였다. 출장 직원 여비청구서를 회계과에 보냈다. 얼마 후 담당 직원이 와 보라고 해서 갔다. 행선지, 거리, 운임, 식비, 숙박비 이런 부분을 연필로 체크해나가다 좀 세게 튕기니 서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무엇이 잘못 되어나요?”라고 물으니 그것도 몰라요?”라며 턱과 눈꼬리가 올라갔다. 광나는 뾰족구두가 밉게 보였다. 오랫동안 여비업무를 담당하여 거리나 단가를 안 보고도 계산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군청에서 갓 전입한 직원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전임자에게 물으니 철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군에 있을 때는 실제 타고 다니는 교통편 운임으로 계산했는데 도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열차, 버스를 환승하는 것으로 하니 계산이 복잡하고 요금은 더 많이 나왔다. 한 번은 과원 전체가 전국행사에 가게 되었다. 스무 장 가까운 여비청구서를 일일이 만드는 것은 비능률이라서 이름 쓰는 곳은 빈 칸으로 둔 채 한 장만 작성하여 복사한 다음 빈 칸을 채워 보내니, ‘안 된다고 하여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 복잡한 여비계산의 경우를 만들어 보내자, 회계과에서는 처음이라며 논의한 다음 필자의 논리에 승복했다. 그 후 필자가 보내는 서류는 검토 없이 통과했다. 그 때의 일을 경험을 중앙에 출장여비제도 개선을 건의하여 반영되었다.

서산출신 인사가 회장을 맡은 도 새마을단체 행사를 하게 되었다. 참석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회계과에 협의하려는데 억지를 부렸다. ‘참석자 개인별로 작성한 청구서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다. 점심 한 그릇 주는데 수 백 명으로부터 일일이 도장을 받아 작성하는 것은 번잡할 뿐더러 불필요한 일이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참석자 명단을 붙이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참석 및 급식확인서에 과장이 날인하겠다는 제안도 거부되었다. 몇 번 논란 끝에 식권을 주는 것으로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식권을 모아 가지고 가니 구겨지지 않은 것, 깨끗한 것이 있어 인정할 수 없다며 트집을 잡았다. 보다 못해 담당직원 눈앞에서 식권을 구기고 사무실 바닥에 비빈 다음 책상위에 집어 던졌다. 옆에서 보던 계장이 뭔데 그래?”하고 정황을 듣더니 해 줘라고 하여 끝났다. 참 나쁜 사람으로 낙인(烙印)찍었다. 지금 가끔 만나고 있다.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민원인에게 몰인정한 공무원의 가슴에 공직윤리와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의식은 갖췄을까? 직원 간에도 꼬투리 잡고 까탈이나 부리는 그런 사람이 시민이나 민원인에게는 어땠을까? 재량과 상식을 생각하게 했다. 일을 놓고 먼저 안 되는 이유부터 찾아내려는 것인지, 트집 잡고 비비꼬는 것을 권한으로 알고 위세부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조정기능을 망각한 관리자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을까?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른다. 왜 일까? 가기천/수필가·전 서산시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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