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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1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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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이 솟은 꼽추처럼

괴석을 끌어다 놓을 수는 없어도

내 등짝 한 귀퉁이에

겨울에도 시르죽지 않는 꽃밭을 들일 수만 있다면

눈발 간간이 치는 시금치 밭과 봄동 밭

속이 헛헛한 당신에 듬성듬성 내줄 수만 있다면

 

언 등짝 풀려

움찔움찔 두더지 눈부신 낯짝 들어 올릴 수만 있다면

적막한 이들 보라고

우울에 들린 가슴팍들 들으라고

농담 부스러기 같은

잔 풀꽃들 춘란 몇 촉

연중 상영할 수만 있다면

 

유종인, 자화상전문

[감상]

도신.jpg

 

시 속 화자가 본 꼽추는 추운 한겨울에도 시르죽지 않는 꽃밭처럼 처연하고 아름답다. 눈 내리는 시금치 밭과 봄동 밭에서 듬성듬성 얼굴 밀어 올리는 희망이다. 땅을 움찔움찔 밀어 올리는 두더지의 삶이고 존재들의 노래이다. 농담 부스러기 같은 잔 풀꽃들과 춘란 몇 촉이 연중 상영하는 사랑이다.

꼽추는 화자의 부모님일 수도 있고, 친구거나 가까운 이웃일 수도 있겠다. 또는 자신일 수도 있다. 화자는 그에게서 사람다움을 본다. 아름다움을 본다. 그의 장애가 무엇이었든 그것은 단지 장애일 뿐, 그것이 그의 사람다움을 어쩌지 못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시인은 그에게서 받은 감동을 시 속 화자를 통해 말한다.

등이 솟은 꼽추처럼 괴석을 끌어다 놓을 수는 없어도괴석을 끌어다 놓아서라도 꼽추가 되고 싶은 화자는 꼽추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 화자는 꼽추에게서 겨울에도 시르죽지 않는 꽃밭을 본 것이다. 화자는 자신에게 그런 꽃밭이 없음을 부끄러워한다. 감동과 부끄러움은 함께 온다. 부끄러움을 통한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감동을 준 대상이 무엇이었든 감동을 받은 사람은 그 대상을 닮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을 닮는 방법이 있다면 딱 하나이다. 그것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시 속의 화자는 부끄러움을 통해 감동을 받는다. 두더지 눈부신 낯짝을 들어 올린 움찔움찔한 언 땅을 상상해 보라. 봄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다. 화자가 알고 있는 꼽추는 눈부신 낯을 들어 올린 봄이다. , 그런데 이 시의 제목이 자화상이다. 곧 꼽추가 자신인 것이다. 그리고 그 꼽추를 바라보는 것도, 그 꼽추의 아름답고 눈부신 마음도 자신이다. 시인은 말한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이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라고, 그런 당신을 발견하라고.!/도신 서광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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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신의 그대를 위한 詩 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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