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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의 추억

서산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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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8.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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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걸섭.jpg

 

예나 지금이나 분식집과 시장에서 가장 싼값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잔치국수다. 이름 그대로 잔치국수는 잔칫날 먹던 국수다. 그것도 예전에는 부모님의 장수를 축하하는 환갑잔치와 결혼잔치 혹은 아이 돌잔치 때 준비하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최근 고물가로 인해 간단한 점심가격도 대부분 만원을 초과하고 있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가성비가 좋고 먹을 만한 곳을 찾아 헤매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국수나 먹을까? 라는 제안하게 되는데, 국수를 폄하해서가 아니라 비교적 저렴하고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먹을 수 있어서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에는 잔치행사를 대부분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는 뷔페식을 선호하다 보니 예전처럼 잔칫날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격식에 얽매이고 상술에 이용당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고 씁쓸한 마음이다.

필자가 어릴 적에는 동네잔치가 있으면 달포 전부터 품앗이하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곳에 모여 음식을 장만하곤 했었다. 어린 마음에 잔칫날이면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들떠 손꼽아 잔칫날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 하다.

마당에는 볏짚으로 만든 멍석이 깔리고 차양이라는 천막이 쳐지면 동네 어르신들께서 삼삼오오 모여들고, 부엌과 가까운 마당 한편의 커다란 가마솥에서는 고기 삶는 구수한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아주머니들은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었다.

산해진미 잔치음식들이 후각과 침샘을 자극하노라면 멍석에 앉아 계시던 점잖은 어르신들마저 참지 못해 음식을 재촉하면서 왁자지껄 막걸리 잔을 비우시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누가 뭐래도 잔칫날에는 약방에 감초처럼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잔치국수였지 싶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도 잔칫날에는 무엇보다 고명으로 장식한 국수 한 그릇쯤은 있어야 제격이었고, 적당히 흥에 겨운 어르신들의 구성진 노랫가락이 울려 퍼져야 제멋이었다.

지금은 경제성장과 기술발달로 다양하고 품질 좋은 식재료들을 마트에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손수 밀을 재배하고 수확하여 동네 방앗간에서 제분해다가 직접 국수를 만들었었다. 동네 방앗간에 딸린 그늘진 창고에서는 기계에서 갓 뽑아낸 국수를 엷은 대나무에 주렁주렁 걸어 말리곤 했는데, 동네꼬마들이 재미삼아 국수 가락 사이로 숨기라도 할라치면 어느 샌가 방앗간 할머니께서 기다란 장대를 흔들어가며 고래고래 고함을 쳐 아이들을 내쫓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분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밀 껍질을 다 제거하지 못한 밀가루로 국수 가락을 뽑으면 껍질이 섞여 까무잡잡하고 까칠까칠하였지만, 그래도 그 시절 어머님께서 만들어 주시던 물 국수의 감칠맛은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아련한 추억의 맛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농번기 간식으로도 주로 국수를 대접했었는데 집에서 손수 끓여 광주리에 담아 논밭까지 이동하다 보면 면발이 좀 퍼지긴 했지만 큰 대접에 면발을 넣고 구수한 육수를 붓고 열무김치를 고명으로 올린 한 사발의 국수야말로 농사일에 지친 어르신들의 허기를 채우고 피로를 해소하기에는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국수는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많이 드시라며 푸짐하게 퍼주시는 주인아주머니와 저녁 끼니마저 때우려고 허리끈을 풀어놓고 두 그릇씩 비우던 아주머니들의 정감어린 모습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옛 풍경이 되어버렸다.

요즘도 서산시내의 모처에 가면 옛날식 국수를 파는 가게가 있는 데 큰 양은 대접에 엄청 많은 양을 주시고도 국수는 배가 금방 꺼지니까 많이 먹으라며 한 덩이를 더 주시는 아주머니에게서 그나마 어린 시절 정감을 느끼곤 한다.

고물가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모두가 힘들고 어렵지만 어린 시절 정감을 떠올리며 담대한 마음으로 희망의 지혜를 모아갔으면 한다./심걸섭 한국양곡가공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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