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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1.16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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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jpg

 

옛날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에게 어른들은 바른말이 앙살이란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바른말을 하여 시어머니 비위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일 듯싶습니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 진실이 불편한 진실일 수가 있습니다.

B.C. 1000년경 이스라엘 왕 다윗은 빼앗겼던 법궤를 다윗성에 옮기면서 숙원을 이루게 된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감격에 겨워 왕의 체면도 잊은 채 에봇만 입고 빙글빙글 춤을 추었습니다. 왕의 그런 모습을 창가에서 내려다보면서 왕비 ‘미갈’은 왕이 체통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속으로 멸시했습니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온 다윗왕에게 왕비 미갈이 한마디 했습니다. “신하의 아내들이 보는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몸을 드러내는 바보 같았어요”

그 말은 들은 다윗은 몹시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는 죽는 날까지 미갈 왕비의 곁에 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황의 인식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미갈은 사람을 보았고 다윗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미갈이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왕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백성 앞에서는 신중하고 위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바른말은 옳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성학자이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정혜선 박사의 책 ‘당신이 옳다’에서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곁에서 누군가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위로한다는 바른말이 때로는 독이 되어 평생 돌이킬 수 없는 가시가 됩니다. 상대에게 충고하거나 잘못을 지적하면 그 말이 바른 말이라 해도 단언컨대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당한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일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말보다 상대가 당하고 있는 아픔과 고통을 들어주는 것, 상대가 진심으로 털어놓고 하고 싶은 말을 들어 주는 것이, 바로 공감의 첫걸음이요 소통의 길입니다.

이는 비단 슬플 때 아플 때만 해당하는 건 아닙니다. 기쁠 때 즐거울 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언젠가 지방 신문에 나에 관한 기사가 사진과 함께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아내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내 얼굴 잘 나왔네” 하며 신문을 들이 밀었습니다. 그때 무언가 하고 있던 아내는 “맨날 보는 얼굴 뭐하러 보라 그래?” 신문을 밀쳐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난 아내에게 어떤 자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춤을 추고 돌아오는 다윗왕에게 “대왕님이 기뻐하시는 걸 보니 이 왕비도 한없이 기뻐요” 했더라면, 아내가 “어디 봐요, 참 잘 나왔네요”라고 빈말이라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생각해보면 아내의 말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바른말임에도 나에겐 바른말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른말이 꼭 옳은 말은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에 관심과 애정이 있다 해도 충고는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쉬우므로 어느 때보다 세심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이퇴계 선생에게 제자가 묻기를 “형제 사이에 잘못이 있으면 서로 말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퇴계 선생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선 나의 성의를 다해 상대방이 감동하게 하여라. 그런 후에라야 비로소 서로 간의 의리를 해치지 않을 것이다. 성의 없이 대뜸 나무라기만 한다면 사이가 소원해진다.”

바른말이 꼭 옳은 말은 아닙니다. 충고가 아무리 상대를 위한 것이라지만, 충고가 잘못하면 고충이 됩니다. 양약은 입에 쓰다는 말처럼 아무리 바른 말이라 할지라도 귀에 거슬립니다. 꿀도 약이라면 쓰다는 속담처럼 자기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말이라도 충고와 지적은 듣기 싫어합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 능력의 한계가 곧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습니다. 말은 말하는 사람의 세계와 생각을 나타냅니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말은 때로 자기주장과 자기 세계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약합니다. 옳은 말보다는 오히려 배려의 말이 더 나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까운 사림에게 바른말을 해주는 것도 중요하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입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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