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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과 퇴임사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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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1.17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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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jpg

 

지인에게 축하할 일이 생겨 화원에 갔습니다. 꽃다발을 주문하러 온 손님이 많았습니다. 웬일인가 했더니 바로 졸업 시즌이었습니다. 졸업식장에 참석한 일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까마득한 그 옛날 초등학교 졸업식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지금 생각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찡합니다. 시골 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정말 졸업하면 뿔뿔이 헤어졌습니다. 그때 나는 학생 대표로 답사를 하면서 감정에 북받쳐 울먹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재학생이나 졸업생 모두 눈물바다였고 선생님들까지도 눈시울을 붉히셨습니다.

 

지금은 어떨까 해서 얼마 전에 정년퇴임하신 초등학교 선생님께 지금의 졸업식 모습을 물어보았습니다. 지금의 졸업식은 축제의 장이라 했습니다. 그 옛날 불렀던 졸업가 가사는 시대에 맞지도 않고 졸업생과 재학생이 함께 했던 과거와는 달리 졸업생만 참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저 간단하게 간소하게 졸업식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모습으로 하던 졸업은 위대한 것입니다. 졸업은 정상까지 왔다는 사실이며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달리할 뿐 우리 인생에는 시작과 끝의 연속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인가요?

 

책장을 정리하다가 뜻밖에 반가운 종이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꼭 20년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임했을 때 했던 퇴임사였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한동안 눈을 감고 당시를 회상해 보았습니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이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외람되게 두 가지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 첫째가 정년퇴직이었고 두 번째는 제 인사기록 카드에 아무런 허물을 남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조금만 노력하면 되리라는 아주 평범한 목표였습니다만, 지나놓고 보니 결코 평범한 목표도 아니요 또 내 의지대로만 되는 목표도 아니었습니다. 한때는 서정쇄신이라는 서슬 퍼런 시절에 날자 없는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했고 IMF 후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수많은 선배 동료들이 떠나가고 후배들이 뒤통수를 쳐다보는 것만 같아 남아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여기며 지금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는 오로지 여러분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평소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 말을 좋아했습니다.

‘(沓雪野中去) 눈 덮인 광야를 지날 때에는(不須胡亂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뒷날 사람들의 길이 되리니’

 

이 시간, 제가 걸었던 눈 덮인 광야의 발자국이 혹여 여러분들에게 좋은 자국이 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있었다면, 부디 좋은 기억만 남기고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억지를 부린다면 저는 이 직장을 천직으로 알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여러분께 작별을 고합니다. 젊은 날 섣부른 혈기 하나로 오르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내려오는 길은 미처 준비하지 못했기에 이제 이 작별이 서툴기만 합니다. 그러나 떠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작별코자 손을 내밀며 동료였던 여러분께 한마디를 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에 있어 노력이란 자전거의 페달 같은 것이라고요. 일 년을, 한 달을,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기 자신을 위해 또 직장을 위해 나름의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자전거의 페달을 밟듯 노력하십시오. 열심히 밟는 사람은 그만큼 앞서게 되고 게으르게 밟은 사람은 그만큼 뒤서게 되니까요. 영화 아카데미 뷰티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입니다’ 이제 저도 저의 남은 인생의 첫 번째 날을 맞이하고자 합니다. 저도 다시 저의 페달을 힘껏 밟겠습니다.”

 

정년퇴임 후 나는 약속대로 나의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왔습니다. 배우 김혜자 선생은 요즘 하는 고민이 “나를 잘 끝마치고 싶다. 어떻게 하는 게 내가 잘 막을 닫는 건가, 그런 생각을 열심히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소망은 비단 김혜자 선생뿐이 아니고 나이 먹은 사람들의 한결같은 바람일 것입니다. 인생의 졸업식장에서 어떤 퇴임사의 내용을 남기게 될지 저 스스로 궁금해집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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