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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2.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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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jpg

 

지난해 12월, 한 해가 저물어 갈 무렵 절구 집 돌박사 김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시비가 세워졌으니 와서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습니다. 해미면 오학리 향교 밑 바로 앞마당, 느티나무 아래 아담하고 깔끔한 돌에 필자의 졸작 ‘돌탑 쌓기’의 시비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기왕 간 김에 안내해 주는 대로 이곳저곳을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미 기암괴석들을 보아온 터라 처음 보았을 때보다는 감동이 적었으나 오로지 일생을 돌과 함께한 그의 열정과 노력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문득 항아리끼리 포개어 쌓은 항아리 탑을 보았습니다. 항아리끼리 올려놓아 위태롭기 그지없는 항아리 탑. 어떻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견뎌내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렇게 위태롭게 올려놨는데 넘어가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더니 “둥글기 때문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마치 번갯불이 머릿속을 관통하는 듯했습니다.

며칠 전 어느 성도의 말이 가슴에 박혀 욱신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구름에 가렸던 태양이 불쑥 솟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항아리 탑에 얼마나 모진 비바람이 몰려왔을까요? 부딪고 흔들며 밀어댔을까요? 그래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은 바로 항아리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둥글어서 비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삽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고 사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 필연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중에 말이 주는 상처가 가장 아프다고 합니다.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는 모로코 속담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하루에 5만 마디의 말을 하고 산다는데 어찌 말에 실수가 없겠습니까? 그러기에 야고보 사도는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라고 단정을 지었습니다. 그만큼 말은 상처라는 무기를 항상 품고 있습니다. ‘상처라는 풀은 친밀감이라는 밭에서 자란다’라는 말처럼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상처에 노출되어있습니다.

 

상처를 받는 것은 다 외부에 있는 듯하지만, 따지고 보면 내 안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부에서는 자료만 제공할 뿐이지 정작 상처는 내 안에서 자랍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상처의 크기와 길이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태풍이 몰려와도 받아주지 않고 비껴내는 항아리처럼 흘러버리면 상처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항아리 탑을 보다가 문득 제주도의 돌담이 생각났습니다. 제주도는 태풍의 길목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의 돌담이 모진 태풍에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은 중간 중간에 뚫어 놓은 구멍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주쳐오는 태풍을 구멍으로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은 항아리나 제주도의 돌담과는 전혀 다릅니다. 감정이 있고 느낌이 있는 생물입니다. 그러나 상처받지 않는 원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말이나 충고의 말은 대개 귀에 거슬립니다. 양약은 입에 쓰다고 했습니다. 충고의 말은 어느 것이든 감사하게 생각하여 나를 돌아보고 고쳐야 합니다. 외모를 고치려면 거울을 보아야 하듯 가까운 사람의 충고는 마음의 거울일 수 있습니다. 자존심 상하는 말엔 애초부터 항아리처럼 돌담의 구멍처럼 무시하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내가 뭐 그렇게 잘났던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상처받을 일도 없습니다. 다 저 잘난 맛에 삽니다. 그는 벌써 잊었을 말을 나 혼자 끌어안고 마음 상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요?

 

상처를 받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처를 주지 않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살다 보면 나도 남에게 상처를 줍니다. 다만, 그걸 인식하지 않고 살아갈 뿐입니다. 말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언어의 주택 속에서 인간은 산다”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바르고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감정에 동요되어 의도되지 않은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실수했을 때 지체 말고 바로 사과하는 것도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비판적인 말을 삼가야 합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 인간관계입니다. 항아리 탑을 보며 상처받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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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탑에서 배운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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