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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과 금붕어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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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3.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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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두 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한 권은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고 또 한 권은 이어령 선생의 「생명이 자본이다」라는 책입니다. 한 분은 무소유의 대명사이시고 또 한 분은 대한민국 지성의 상징이십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과연 그 수식어들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또 다른 묘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쩐지 한 번 다녀갔던 길 같은 기시감. 아니, 무언가 서로 연결된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그림을 보면서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오두막 편지」는 법정 스님이 1999년 67세 때 쓰신 책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10년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던 해에 개정판 5쇄의 책입니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자연과 함께 살며 쓰신 산문집입니다. 화려한 문체나 빼어난 수식어들은 없어도 글 곳곳에 진심과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산골에 사는 짐승까지도 사랑하는 법정 스님의 생명 존중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령 저물녘이면 어김없이 섬돌에 나타나는 떡두꺼비와 나누는 이야기며, 무릎까지 차오른 눈이 오면 산중에 사는 짐승들에게 나누어주는 먹이를 주기 위해 눈길을 치우는 모습은 참으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토끼와 노루가 다녀간 듯하다며 물을 먹으러 오는 노루와 눈이 마주칠 때면 서로 놀란다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래 넝쿨에 사는 산토끼에게 빵 부스러기나 과일 껍질을 놔 주고 배고프면 찾아오는 다람쥐와도 스스럼없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 정겨웠습니다.

 

「생명이 자본이다」는 이어령 선생께서 2014년 80세에 쓰신 책입니다. 이 시대의 최고의 석학. 지성의 대표답게 이 책은 이어령 교수만이 쓸 수 있는 수려한 문학적 표현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인문학의 지경을 보여주셨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한 번 읽어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거장답게 동서양 고금을 넘나들며 샛길이라는 표시로 지식의 지경을 넓혀주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주제는 생명이었습니다. 거의 400여 페이지 가까운 두꺼운 책 내내 금붕어를 통한 생명 사랑의 이야기가 쓰여 있습니다. 방안에서 기르던 금붕어가 추위로 얼어 죽었을 때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었을 때 다시 살아난 금붕어의 이야기와 영화 50도에서 견뎌내는 황제펭귄의 생명 사랑을 말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한참 후에야 오두막과 금붕어는 전혀 다른 단어들이지만 생명이라는 끈이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법정 스님은 1932년 10월 8일 전남 해남에서 탄생하셨고 2010년 3월 11일 7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법정 스님은 명성과는 달리 직함도 단 두 마디면 족하였습니다. 승려, 수필가. 스님이 평소 주장했던 무소유처럼 삶 자체도 단순하고 질박합니다. 스님이 살아오신 삶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셨고 2022년 2월 26일, 88세에 소천하셨습니다. 법정 스님과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교수, 문학 평론가. 초대 문화부 장관, 에세이스트. 시인, 소설가…등등. 이어령 선생은 몇 마디로는 가둘 수 없습니다. 이 시대의 최고 지성이며 당대 최고 석학이십니다. 항암치료를 거부하시고 죽음 앞에서까지도 의연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두 분의 책을 읽으면서 무한한 행복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분들과 동시대에 살았으므로 훨씬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책이 내 곁에 있음에 행복했습니다. 더구나 법정 스님의 책은 쉽게 구할 수도 없을 듯합니다. 스님은 ‘남기는 말’을 통해 “그동안 풀어 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으려 하니 부디 내 이름으로 출판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간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욕심을 내어 이어령 선생의 책을 네 권이나 샀습니다. 「한국인의 탄생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그리고 사후에 나온 「눈물 한 방울」입니다. 법정 스님은 내 나이보다 1년 적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어령 선생은 지금의 내 나이보다 10년 더 사셨습니다. 남은 나의 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법정 스님처럼 단순하게 질박하게 살고 싶고, 이어령 선생님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기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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