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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서 오나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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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3.03.2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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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노트를 뒤적이다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 신달자 시인의 ‘여보! 비가 와요’란 시였습니다. 당시 이 시를 읽고 짠한 느낌이 들어 적어 놨던 시였는데 다시 읽어도 그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여보! 비가 와요.” “오늘은 하늘이 너무 고와요” 그저 그렇고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이런 밥상머리에서 했던 사소한 말들이 안고 비비고 입술을 대고 싶은 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압니다. 그 일상적인 소소한 말들이, 그렇게 먼저 아침밥 떠먹여 주고 싶은 그 말이 그리운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것이란 걸. 그 말을 할 그때, 그와 함께했던 그때가 행복했었다는 걸.

 

한국인 행복 점수가 OECD 38개국 중 32위라는 제목의 기사(지난달 28일 J 일보)를 보았습니다.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갤럽 월드 폴 한국 행복 수준은 2021년 기준 10점 만점에 6.11 점이었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가 그래도 6개국이나 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 할까요? 어려울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가 힘든 ‘사회적 고립도’는 OECD 회원국 중 넷째로 높았다고 합니다.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 할 수 있는 친구나 친지가 있는지를 묻는 물음에 ‘없다’라고 답변한 비율이 18.9%였다고 합니다. 삶의 만족도는 우리나라가 꼴찌에서 세 번째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세계 어디를 가든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반도체, 자동차, 선박, 휴대전화 등을 발판으로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 되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도 G7을 능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 영화, 음식, 등 많은 분야에서 이미 세계의 문화를 이끄는 위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달라진 위상에도 국민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니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물론 행복 측정을 평가하는 갤럽 월드 폴 같은 기관에서 시행하는 행복의 기준이 객관적이고 합리적 충분한 자료를 가지고 평가했겠지만, 행복이란 개개인이 느끼는 기준이 다르고 그 정의도 다양해 과연 행복의 척도를 수치로 계량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도 듭니다. 우리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삶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행복은 어디서 올까요? 행복을 느끼는 조건들은 무엇이고 그 조건을 다 채웠다고 모두 행복할까요? 더 부유하면, 더 건강하면, 더 지위가 높아지면 행복해질까요? 수많은 물음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저명한 조경학 박사이며 전직 교수인 Y는 고등학교 2년 후배입니다. 수필을 쓰다가 알게 되어 문자로는 서로 가까이 지낸 사이입니다. 고향에 볼일이 있어 내려가게 되었으니 이참에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연락이었습니다. 마음이 급해 버스 도착 예정 시간보다 30분 먼저 집을 나섰습니다. 후배를 기다리는 동안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무려 59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선배라고 찾아 주는 후배가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시인의 ‘기다리는 동안’이란 시를 내게 바꿔 뇌이며 황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내가 미리 와 있는 터미널에서 / 차에서 내리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다가 / 다시 버스 문은 닫히고 떠난다.”

 

그러다 마침내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중에 ‘그일 것이다’라는 사람에게 소리쳐 불렀습니다. 바로 Y 그 후배였습니다. 그와 함께했던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우리는 60년 전 꿈 많고 피 끓던 고등학생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행복이 어디서 올까요? 먼 데서 올까요? 지금 내가 하는 모든 일들, 그것들이 행복이 아닐까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행복이 아닐까요? 적조했던 친지에게 전화 한 번 걸어 보심은 어떨까요? 진정한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세월이 저만치 지나서 돌아보면 날씨 이야기, 식탁 위의 이야기 같은 작고 하찮은 말이 모두 그리움이 되고 그것이 행복이란 걸 알게 되겠지요. 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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