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사라졌습니다
김풍배 칼럼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몇 십 년 전 대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 때, 어른의 말 한마디는 절대적이었습니다. 열 명이 넘는 가족이 한 지붕 안에 살면서도 큰소리 하나 없이 오순도순 살았습니다. 동네에서도 어른들의 말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을 공경하고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국민도 나라의 원로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종교인일지라도 한경직 목사님이나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분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른의 실종 시대가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되고 대가족제도에서 핵가족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경제력과 고학력의 평등화로 집단보다는 개인 우선주의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타협과 순응보다는 개개인의 주장과 존재가치를 나타내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타난 현상이 가정에도, 동네에서도, 사회에서도, 심지어 나라 안에서도 어른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본래 어른이란 말의 본뜻은 신체적인 외형적 모습보다는 정신적 의미로 인격과 교양을 갖춘 지도자를 가리켰습니다. 이제는 그 뜻조차 바뀌었습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어른의 뜻은 다 자란 사람, 성인, 지위나 항렬이 높은 사람, 장가들거나 시집 간 사람,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나와 있습니다.
어른이 사라졌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지도자가 사라졌다는 말입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도 어른이라 부를 수 있는 지도자가 사라졌습니다. 존경받을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도예가가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도 흙이란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양지와 음지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이미 여러 사람의 선택을 받아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면, 단점은 가리고 장점은 더욱 드러내어 후세에 길잡이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아무리 낮은 산도 북돋다 보면 높아집니다. 어른다운 어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어른이 없는 세상에는 가짜 어른이 넘쳐납니다. 가정에도, 동네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리고 나라 안에서도 모두 어른이 되어 행세합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제가 제일이라며 고개를 흔듭니다. 혼자 의로운 척하며 다른 사람은 불의한 사람으로 깎아내리고, 흠잡고, 침소봉대하고, 심지어 지어내어 모함하는 일까지 서슴없이 자행합니다.
가짜 어른이 넘쳐난다는 말은 참다운 지도자는 없고 다 자란 사람만 있다는 말입니다. 높은 사람만 있다 보니 질서는 무너지고, 분쟁과 사나운 말만 넘쳐납니다. 우리말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군사가 많아도 지도자가 없으면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지도자의 역량에 따라 전쟁의 승패는 좌우됩니다.
어른이 되려면 먼저 스스로 어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실력 없는 의욕은 화를 부르는 재앙의 씨앗입니다. 따라서 어른은 어른의 자격을 갖춰야 합니다.
문득 몇 년 전 김형석 교수님과 젊은 정 모 변호사 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라는 옛말을 들먹이며 김형석 교수님을 비난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기자가 “그 글을 보시고 어떤 생각을 하셨느냐”고 묻자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이래서 어른이다> 라는 글을 썼습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훌륭하다 하더라도 함께 북돋아 주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산도 깎아내리면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TV에서 또는 신문에서 수많은 교수나 평론가들이 나와서 온갖 말로 어른들처럼 행세하고 있습니다. 듣고 있노라면 오히려 갈등만 생깁니다. 진정한 어른은 없고 가짜 어른만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이 땅에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그립습니다. 어른다운 존경받는 지도자가 그리워지는 시대입니다./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