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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강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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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6.04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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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라 부르는 강이 있습니다. 세월 강은 유구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입니다. 늦다고 뛰거나 빠르다고 쉬어가는 법도 없습니다. 항상 똑같이 흐르며, 이 세상 어디에도 흐릅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흐를 강입니다.

 

세월 강에는 고운 햇살도 비치고 따스한 봄바람도 불지만, 뜨거운 태양이 불을 뿜기도 하고 차디찬 북풍도 붑니다. 비도 내리고 눈이 내리고 안개도 내리고 폭풍이 불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세월 강은 변함없이 흐릅니다.

 

세월 강은 막힘도 없고 부러짐도 없습니다. 바위도 뚫고 절벽도 뛰어넘으며 여울도 지지 않습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세월이 약이란 말도 있습니다. 슬픔도 아픔도 괴로움도 세월 강에 띄워 보냅니다.

 

세월 강에는 시간이라 부르는 배가 떠 있습니다. 시간의 배는 세월 강물 위에 떠서 흘러가는 배입니다. 시간의 배는 세월의 강물에 꼭 붙어서 넘어지지도 않고 앞서가거나 뒤떨어지지 않고 세월 따라 흐르는 배입니다.

 

시간의 배는 세월 강에 떠서 세월 강 따라 세월처럼 떠갑니다. 시간은 쉬지 않고 일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걸 싣고 갑니다. 생물과 무생물. 산도 바다도, 꽃도 풀도, 사람도 짐승도 모두 싣고 갑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바로 그 순간, 시간의 배에 올라탑니다. 시간의 배에는 오직 하나만 탈 수 있습니다. 어느 것도 함께 탈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가족일지라도 함께 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아해도 함께 탈 수 없습니다.

 

시간의 배는 세월 강물 위에 떠서 흘러가지만, 시작과 끝이 분명합니다. 시간의 배는 주인공이 운전합니다. 시간의 배는 오직 탑승자가 주인입니다. 깨어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더 오래 갑니다. 시간은 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지배한 사람이 성공합니다. 시간의 배는 탑승하고 있는 것들의 역사를 기록합니다. 탄생과 소멸, 행적과 공과, 그의 일생이 기록됩니다.

 

세월 강에는 죽음이라 불리는 선착장이 있습니다. 시간의 배가 정박하는 장소입니다. 생겨났던 것들의 종말을 고하는 장소입니다. 시간의 길이를 재는 곳입니다. 가치를 셈하고 의미를 새기며 평가받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개체마다 다른 종착역이 별개로 있지만, 때로는 엄청난 숫자가 집단으로 기다리는 장소도 있습니다. 자연재해나 전쟁이나 전염병 같은 재앙으로 한꺼번에 종말을 맞기도 합니다. 여행을 끝내는 죽음의 선착장에서 시간의 배는 또 다른 승객을 태우러 떠날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고 솔로몬은 말합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오직 신(神)만이 알 수 있습니다. 인생 종착역 뒤의 세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밧모섬에서 죽음 이후의 세상을 보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단테도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보고 ‘단테 신곡’을 썼습니다. 빈손으로만 들어가는 곳. 욕심 부려 이고 지고 가져왔지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는 곳이 바로 인생 종착역입니다.

 

어느 시대나 큰 나무는 강한 바람을 맞기 마련이라고 했습니다. 갓 피기 시작하는 벚꽃잎을 무참히 떨어뜨리는 봄비를 미워할 수 없는 것은, 열매를 맺기 위한 결별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사람은 용감한 사람입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시간의 배를 타고 가며 만든 나의 역사는 반드시 누군가의 머리에, 가슴에 기록될 것입니다. 누군가는 내가 만든 역사를 읽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가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평가될까’를 생각하며 산다면 결코 부끄러운 생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성공한 노년의 대가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는 언제였나요?”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내일이 있는 한, 우리는 최고의 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목사·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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