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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 소고(處暑 小考)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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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9.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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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 본지 칼럼리스트

올해 여름은 기록에 남을 만큼 더웠습니다. 8월 폭염(최고 기온 33도 이상) 발생 일수는 최악의 여름이었던 2018년과 1994년 8월의 기록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따라서 열대야도 기승을 부려 장장 35일이나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하도 오래도록 더위가 계속하니 자꾸 달력을 보게 됩니다. 사람 곁의 개(伏)처럼, 더위에 엎드려 초복, 중복, 말복도 다 보냈는데 여전히 덥습니다.

 

처서가 언제인가를 찾아보았습니다. 몇 해 전이었던가요?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가 신비하게도 처서 다음날 거짓말처럼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었습니다. 어떻게 절기를 그토록 계절의 흐름을 정확하게 정해 놓았는지 새삼 옛사람들의 슬기에 놀랐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처서를 알아보았습니다. 24절기 가운데 입추와 백로 사이에 처서가 있습니다. 입추는 말 그대로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제 가을이 완연하여 농작물에 흰 이슬이 맺힌다고 백로라 하였습니다. 입추는 그저 가을이 온다는 신호이며 실제로 더위가 물러가는 시기는 바로 처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서가 되면 가을이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 라고 했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져 ‘풀도 울며 돌아간다’라고 했습니다. 기온이 낮아지니 땅의 풀들이 더는 자라지 않아 논두렁의 풀을 깎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예전에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에 말리 거나 햇빛에 말렸습니다. 산소의 벌초도 바로 이때 한다고 했습니다.

 

농부들은 이때가 가장 한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정칠월’‘건들팔월’이라고 합니다. 어정거리며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며 팔월을 보낸다는 말로 농한기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입니다. 이때가 되면 농사에 지치고 더위에 지친 심신을 회복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처서 무렵에는 벼가 팰 때입니다. 햇살을 마음껏 받아야 벼가 잘 아뭅니다. 그러기에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쾌청한 날씨에 마음껏 햇빛을 받아 한들거리는 바람에 실한 알곡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서 때의 비는 벼농사에 큰 장애가 됩니다. ‘처서에 비가 오면 십 리 천 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 리 백석을 감한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그만큼 농사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후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올해는 처서가 지났어도 불볕더위는 여전합니다. 간간이 스콜 같은 소낙비도 내립니다. 9월 초까지 열대야가 계속되리라는 예보도 있습니다. 옛날에는 처서가 지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젠 세상이 변해서 겨울이 되어도 입은 멀쩡해서 여전히 사납게 달려듭니다.

 

다행히 조기 이앙한 벼는 벌써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벼 이삭들을 바라보며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남아도는 쌀로 인해 농가의 소득이 줄어들 거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비가 와서 독 안의 쌀이 줄어드는 걱정도 앞서지만, 거꾸로 수확량이 많아서 남을까 걱정합니다. 풍작이 되어도 걱정, 흉작이 되어도 걱정. 걱정도 팔자란 말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짖습니다.

 

계절의 흐름을 보면서 인생을 생각합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더위도 가을이 오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을이 가고, 엄동설한 겨울이 왔다가 다시 봄이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요즘 국회를 들여다보면 온통 폭염(暴炎)으로 들끓습니다. 공직자 후보들은 하나같이 피고인이 되어 심문받습니다. 호통치고 망신 주고 막말로 윽박지르니 듣고 보는 이들이 오히려 민망할 정도입니다.

 

제아무리 더워도 처서가 지났으니 분명 더위도 물러갈 것입니다. ‘화무십일홍’이란 말도 있고 ‘권불십년’이란 말도 있습니다. 처서가 왔다고 그분들에게 문자라도 보낼까 싶습니다. 처서를 지나면서 문득 해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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