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
김풍배 칼럼
‘아내와 처남이 추석이라고 다녀갔어/오랜만에 얼굴 봐서 좋았어/아내가 지낼 만하냐고 묻더군/나 좀 데리고 가라고 했지//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알면서도 아내 뒤를 따라가고 싶었지//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내일은 바람 불고 비가 온다지//인생도 그런 것 같아/늘 맑은 날만 있을 줄 알았는데/어지러워 쓰러진 이후 몸도 못 쓰고/이렇게 꼼짝없이 주저앉아 살고 있으니’
얼마 전에 받은 이영월 시인의 시집 「박꽃이 피었다」에 실려 있는 조용엽 씨의 ‘추석 선물’이란 시입니다. 시를 쓴 이는 이제는 고인이 되신 시인의 부군입니다.
추석은 명절 중의 명절입니다. 무더위가 끝나고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수확하는 풍성한 계절을 맞아 감사하고 즐기는 절기가 바로 추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추석 명절을 맞아 즐기며 기뻐할 때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군인이나 경찰, 소방관처럼 나라를 지키고 안전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나 산업현장을 지켜야 하는 분들이 그들입니다. 그리고 병원이나 요양원의 병상에서 신체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환자나 어르신들입니다.
‘명절이 별거더라/ 설 추석이 별거더라/찾아와 웃고 울고/더러는 집에 간다/나 홀로/지내는 명절/외롭고도 서럽다//한때는 내게도/ 설 추석이 있었지/지난날 돌아보니/ 그때가 꿈만 같다/차라리/ 지우고 싶은/명절날의 추억들’
필자는 한때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섬긴 적이 있습니다. 그때 쓴 ‘명절’이란 졸시 중 일부입니다.
고 조용엽 씨는 견딜 만 하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따라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신도 그것이 불가능한 소용없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때는 맑은 날처럼 한세상을 풍미했던 그였지만, 어쩔 수 없이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바라보며 인생도 날씨 같다며 체념합니다.
‘요양원에 가면 집에 돌아올 수 없다/짐작만 하고 있었습니다//가기 싫다 아이처럼 떼쓰는 당신/어르고 달래어 혹여나 몸 좋아지면 /집에 돌아올 수 있다는 말도 하였습니다//기적이란 내게 빛을 비추지 않고/멀리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가느다란 한 줄기 되돌아 올 수 있다/내 말을 빛 따라 간 당신// 끝내 내 말은 나의 말은/샛노란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영월 시인은 남편을 보내고 난 후, 그의 시집 「박꽃이 피었다」에서 ‘샛노란 거짓말’이란 시로 그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가족을 시설에 보낸 남은 자의 마음 또한 괴롭기는 매일반입니다. 아니, 어쩌면 더 괴로워하고 힘들지도 모릅니다. 죄책감에 잠 못 이루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날이 때로는 차라리 처지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기에 웃어도 웃을 수가 없고 맛있는 걸 먹어도 맛을 모릅니다.
명절에는 선물을 주고받습니다. 평소 베풀어 주신 사랑을 감사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선물입니다. 고 조용엽 씨는 아내와 처남이 왔다 감을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전화 한 통조차 없는 사람에게 비하면 이렇게 찾아주는 아내와 처남이 고마웠기에 선물이라 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빈손으로 왔습니다. 현재 소유하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 생각하면 모두 선물입니다. 공기와 하늘과 땅과 나무와 풀, 이 모든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어느 것도 내가 노력하여 얻은 건 없습니다.
가족, 친지, 이웃 모두 선물입니다. 이들은 새의 날개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때로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날개가 있기에 날 수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내 힘으로 왔다고 하지 마십시오. 그건 착각입니다.
감사할 줄 모른다면 파렴치한 사람이 됩니다. 추석 명절을 맞아 받은 선물에 감사해야겠습니다. 하나님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친지에게, 그리고 부모님과 조상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