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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09.2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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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명분 때문에 죽을 수 있지만

국가가 명분 때문에 망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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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정충신 영정(문공부 중요 민속자료 제36호=충무공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 제공)

 

“공산이 적막한데 슬피 우는 저 두견아/ 촉국 흥망이 어제 오늘 아니어늘/ 지금히 피나게 울어 남의 애를 끓나니// 소금수레 메웠으니 천리마인인 줄 제 뉘 알리/ 돌 속에 버렸으니 천화 보 인줄 제 뉘 알리/ 두어라 알리 알지니 한 할 줄이 있으랴// 황하수 맑단 말가 성인이 나셨도다/ 초야군현이 다 일어나단 말가/ 어즈버 강산풍월을 주고 갈소냐” -정 충무공의 시조 중-

 

평생 조국과 겨레를 위해 충절을 바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은 고려말 명장 요동백 경렬공 지의 9대손으로 1575년 전남 광주 향교동에서 태어났다. 남다르게 총명한 자질을 타고났지만 가세가 어려워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내다 17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율 광주목사의 보고서를 가지고 평안도 의주에 계신 임금께 전달했다. 의주에서 병조판서 이항복의 눈에 띄어 백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이로써 뒷날 나라를 위해 크나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서산타임즈가 창간19주년 특별기획으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연재한다. 충무공 정충신유적현창사업회(회장 이철수, 전 서산시의회 의장)와 김인식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충무공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알아본다.

 

서산타이즈가 정충신 장군의 일대기를 연재하는 것은 묻힌 역사적 인물을 복원하자는 취지다. 광주에서 태어났지만 지곡면 대요리 국사봉에 유택이 있고 사당 ‘진충사’가 있어 충무공을 흠모하는 국민들과 후손들이 매년 제를 올리면서 참배객들이 이어지고 있다.

 

“개인은 명분 때문에 죽을 수 있지만, 국가가 명분 때문에 망할 수는 없다”라는 말을 남긴 그의 일대기를 통해 그의 업적과 개혁 정신을 알아본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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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19주년 특별기획] 충무공 정충신 장군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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