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명산에 세운 누정(樓亭)을 그려본다.
가기천의 일각일각
가을이 무르익었다. 유독 무더웠던 여름이라 그 기세를 누르고 과연 찾아올까 싶었던 가을이다. 어렵게 맞이한 가을이니 보상이라도 된 듯 마음껏 누리고 싶다. 맑은 햇빛, 선선한 바람과 오색 단풍으로 물든 산하가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다.
가을 나들이의 백미는 역시 산이다. 굳이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난히 산을 좋아한다. 취미생활 가운데 ‘등산’이 맨 앞에 꼽힌다. 몇 발짝 밖으로 나가 고개만 들면 산이 보인다. 취향이나 능력에 따라 오르기에 알맞은 산이 많으니 찾고 즐기기에 좋다. 곳곳에 등산로가 만들어지고 편의시설도 갖춰졌다.
산에 오르거나 강변을 걷다 보면 멋들어지고 품격 있는 누정(樓亭)이 눈에 들어온다. 수려한 풍광을 디디고 선 누각과 정자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에서는 선현과 옛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듯하다. 정자는 사람이 자연 속에 머물면서 풍경을 둘러보고 사색에 잠기며 시문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정자보다 규모가 좀 크고 중층 건축물은 누각이라 한다. 계곡에 정자를 세우면 풍류가 들어가고 밋밋한 공간에 누각을 지으면 멋진 풍광이 살아난다.
누정은 어디를 가나 쉽게 볼 수 있을 만큼 우리 민족과는 특별히 가까이하는 문화로 이어져 왔다. 맑은 물 흐르는 계곡과 아늑한 숲 언저리, 기암괴석이 빼어난 곳 등 어디든 경관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누각이나 정자를 찾을 수 있다. 누정에 앉아 합죽선에서 이는 바람에 잠시 편안하게 쉬면서 정신을 가다듬고 산수 경관을 조망하며 글을 짓고 음풍(吟諷)을 하며 더위를 물렸다. 문우와 토론도 하고 후학을 교육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창덕궁에 부용정을 비롯하여 널리 알려진 누정이 많다. 얽힌 일화도 빠지지 않는다.
조선 초기의 선비 강희맹은 ‘만휴정기(萬休亭記)’에서 녹봉을 탐하고 벼슬을 유지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아첨하며 사는 것보다, 인간의 본성을 지키며 쉬는 것이 오히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썼다. 정자의 이름을 삶의 철학으로 삼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정에 걸린 현판은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뽐내고 편액에 담은 글은 선비들의 풍류와 시상을 담아내어 후세에 전한다. 한명회는 강변에 기러기와 벗한다는 압구정(狎鷗亭)을 지어 노년을 보냈고, 지금은 동(洞) 이름으로 쓰고 있으니, 정자가 가지는 의미는 크다.
운산이 고향인 이강천 변호사와 만난 자리였다. 고향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산에는 세간에 널리 알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정자가 적음을 아쉬워했다. 경관 좋은 곳, 뜻을 찾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곳에 그럴 듯한 정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비쳤다. 이 변호사는 필자의 의견에 적극 찬동했다. 영동지청장으로 있을 때 그곳의 역사적인 누정 39개소를 담은 책자를 뜻있게 읽었다며 당시 느꼈던 소감을 회상했다. 이 변호사는 한학과 주역을 비롯한 고전에 조예가 깊을뿐더러 아정(雅正)한 노래라는 뜻을 가진 정가(正歌) 공부에 진력하여 해마다 공연을 하는 실력자다. 대화하다 보면 은연중 깊은 학식과 기품이 묻어난다. 이 변호사와 뜻이 통하니 누정을 세울만한 위치와 명칭을 논해보는 데까지 담소는 이어졌다.
세울 곳으로는 우선 시내를 중심으로 사방 방위별로 소재한 명산을 꼽고, 시 중심부에 있는 산을 넣어 다섯 곳을 꼽아보았다. 사람이 항상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인 오상(五常) 즉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생각한 것이다. 서울 도성의 사대문에 이 덕목을 넣어 이름을 지었는데 흥인지문(興仁之門)엔 인(仁), 돈의문(敦義門)엔 의(義), 숭례문(崇禮門)엔 예(禮), 숙정문엔 지(智)의 뜻이 각각 들어 있음을 떠올렸다. 중심부인 종로에는 신(信)을 넣어 보신각(普信閣)을 세웠음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서산의 대표적인 5대 명산에 정자를 세운다면 어떨까? 동쪽에 병풍처럼 둘러선 최고봉 가야산에는 서산시와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으로 관영정(觀寧亭), 서쪽에 자리하여 가로림만이 바라다 보이는 절경 팔봉산에는 관해정(觀海亭), 남쪽에 위치하여 드넓은 들녘을 조망할 수 있는 도비산에는 관풍정(觀豊亭), 북쪽에서 서산 산업화의 상징인 기업을 품고 있는 망일산에는 관번정(觀繁亭)을 짓고, 중앙에 자리한 부춘산 또는 성왕산에는 서산시민의 행복을 염원하여 관행정(觀幸亭)을 세웠으면 하는 것이었다.
위치와 명칭은 즉석에서 대강 생각해 본 것으로써 단편적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정자를 세우는 일을 추진한다면 각계 시민의 의견을 폭넓게 모으고, 현대 또는 미래지향적인 이름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건축방식은 전통적인 한식 건물을 포함하여 석조 또는 현대 건축기법을 절충하여 지음으로써 전국적인 명소로 만드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그곳에 멋진 글, 아름다운 그림, 시민들의 소망을 담아 남김으로써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후손들에게 알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의미를 담은 멋진 누정에 사람들이 찾는 모습을 상상해 보는 사색의 계절 가을이 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