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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팥죽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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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2.25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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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본지 칼럼리스트

지난 12월 21일은 동짓날이었습니다. 바람도 불고 눈발도 날렸습니다. 이제 겨울이 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았습니다. 동지는 24절기 중 22번째로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입니다.

 

동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팥죽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동짓날에는 의례 팥죽을 먹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유래를 찾아보니 중국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듯합니다. 중국에 ‘공공씨’가 망나니 아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 죽어서 전염병 귀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귀신을 쫒기 위해 아들이 평소 팥을 두려워한 것을 생각하고 동짓날 팥죽을 쑤어 전염병 귀신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중국의 <형초세시기>에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팥죽을 쑤면 제일 먼저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방과 헛간 또는 장독대 같은 곳에 한 그릇씩 갖다 놓고 ‘고수레’라고 하면서 대문이나 벽에 죽을 뿌렸다고 합니다. 악귀를 쫓는 동시에 아마도 겨울에 먹을 것이 부족한 짐승들에 대한 배려라고 합니다.

 

문득, 출애굽기에 나오는 유월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전날 밤,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맞아 가정마다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죽음의 신이 그걸 보고 넘어가 장자의 죽음을 피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를 기념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유월절을 명절로 지킵니다. 양의 피와 붉은 팥죽 사이에는 무슨 연관성은 없을까?(극동으로 이주하며 아득한 조상들의 유월절 풍속이 팥죽으로 변하지 않았을까?) 라는 기독교인다운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시장에 나갈 때까지 동짓날인 걸 몰랐습니다. 재래시장 식당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쳐다봤더니 ‘원조 팥죽’이란 글씨가 보였습니다. 비로소 동짓날인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팥죽이 먹고 싶었습니다. 줄을 선 사람들은 팥죽을 사 들고 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탁자 하나 놓여 있는 좁은 식당 안에는 남자 손님 두 분이 앉아 있었습니다. 손님 곁에 앉았습니다. 아주머니는 팥죽을 주면서 부족하면 더 달라고 했습니다. 훈훈한 인심이 난로처럼 따사로웠습니다.

 

옛날 시골 인심이 이러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 손님은 직장 동료인 듯했습니다. 옛날 시세 풍속을 더듬어 이야기할 때 나도 모르게 끼어들어 말동무가 되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일인데도 지금은 전설처럼 까마득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팥죽을 먹다가 문득 어느 장로님 생각이 났습니다. 공교롭게도 구역예배 드리는 날이 동짓날이었습니다. 좀처럼 예배를 드리지 않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구역장인 장로님은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사달은 예배를 드린 후에 나온 팥죽이었습니다. 팥죽을 본 장로님이 “난 죽을 좋아하지 않으니 밥이 있으면 밥을 달라.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좋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주인 집사님이 “우리 집엔 밥도 없고 라면도 없으니 그냥 팥죽을 드시라”라고 했습니다. 결국 감정만 상한 채 팥죽을 놔두고 헤어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권사님은 ‘둘 다 똑같은 사람들’이라고 필자에게 말했습니다. 장로님은 전에 팥죽을 먹고 체한 후 팥죽을 보기만 해도 싫다고 했습니다. 팥죽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집사님은 마침 동짓날이니 별미를 대접해야겠다며 정성스럽게 팥죽을 쑤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싫어도 정성 다해 내왔으니 장로님은 그저 드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면서도, 집사님은 아무리 정성 들여 쑤었다 해도 굳이 싫다는 걸 억지로 먹으라는 처사는 옳지 못하다고 권사님은 양비론을 내세웠습니다. 문득 황희 정승 생각이 나서 ‘장로님도 맞고, 집사님도 맞고, 권사님 말도 맞다’라고 말했습니다.

 

벨기에 출신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그의 소설 <사랑의 파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계는 나의 존재를 위해 존재한다. 세계 전체는 내게로 귀착되고 있었다. 지구의 무게 중심은 나를 따라 이동할 터였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을 흔히 만납니다. 마치 세상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세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나의 쇠락은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작되었다”라고 고백합니다.

 

서로의 처지와 입장을 존중하는 사회, 역지사지의 마음을 갖고 산다면 세상은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을 퍼주며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라는 넉넉한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이 팥죽만큼 따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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