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을 찾아서 –1-
김풍배 칼럼

일찍이 가수 최희준은 하숙생이란 노래를 통해서 ‘인생은 나그넷길’ 이라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잠시 머물다가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그네입니다. 나그네는 한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다니며 산천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풍속을 만납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교훈도 얻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데가 있었습니다. 바로 캄보디아였습니다. 캄보디아는 밝음(明)과 어둠(暗)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소원을 이뤘습니다. 지난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서산시낭송회의 캄보디아 여행에 동참했습니다.
3박 5일의 짧은 여행이었습니다. 캄보디아라고 하지만 겨우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립 한 곳뿐입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짧은 일정이나 좁은 지역일지라도 바라던 모든 걸 볼 수 있었으니 만족한 여행이었습니다.
크메르 제국은 802년부터 1431년까지 629년 동안 캄보디아에 존재했던 제국입니다. 현재 캄보디아의 원류가 된 나라입니다. 그 세력은 현재 태국 동북부와 라오스 그리고 베트남 일부까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크메르 왕조의 거대한 유산은 앙코르 유적과 그 일대의 유적들입니다. 당시의 크메르 제국의 수도였던 앙코르에는 앙코르와트를 포함하여 바이욘, 앙코르 톰 등 여러 웅장하고 장대한 건축물들을 지었으며 모든 사원에 황금과 꽃등으로 장식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크메르 제국 전성기 때는 인구가 무려 100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 런던의 인구가 7만 명, 로마는 3만 명이었다고 하니 크메르 제국의 규모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무 위키 참조)
앙코르와트를 마주했을 때 규모의 웅장함과 섬세함은 필자가 상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놀라움과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필자의 재주로는 도저히 그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앙코르와트를 발견하여 세상에 처음 알린 프랑스 박물학자 ‘무오’가 했던 말 그대로였습니다.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함과 우아한 곡선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스의 로마가 남긴 그 어떤 유적보다 위대하다. 세계에서 가장 외진 곳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이 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앙코르와트, 앙코르 톰, 쁘레아칸 사원, 넥뽀안, 따솜 사원, 쁘레룹, 바이욘 사원, 코끼리 테라스, 타프론 등을 숨 가쁘게 관람했습니다. 하나같이 경이롭고 화려하며 그 규모와 정교함에 눈이 돌아갈 정도였습니다. 하나하나 유적지를 볼 때마다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그 느낌을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해외여행을 다닐 때마다 여행기를 썼습니다. 여행이 끝나면 이번에도 그럴 작정입니다.
앙코르와트는 분명 세계 문화유산이며 캄보디아의 자랑입니다. 지금도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이 문화유산으로 인하여 캄보디아의 관광 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필자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앙코르와트와 함께 킬링필드였습니다. 앙코르 유적지가 분명 캄보디아 선조들의 빛이요, 후손들의 자랑이요 인류 문화유산으로 빛난다면, 킬링필드는 세계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의 하나이며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흑암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본 캄보디아 사람들의 첫인상은 밝지 못했습니다. 무언가 어둡고 무기력하며 표정은 그늘져 있었습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큰소리에 잘 놀라고 선뜻 잘 나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배우기를 꺼린다는 말도 전했습니다.
시엠립 시내에서 약 1.5 Km 정도 거리에 있는 ‘왓트마이’는 킬링필드의 하나입니다. 킬링필드란 크메르 루즈 정권 동안 집단 학살이 이루어진 장소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곳엔 대학살 당시 시엠립(시엠레아프)과 유적지 인근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왓트마이를 시엠립(시엠레아프)의 작은 킬링필드라 부른다고 했습니다. 킬링필드는 극심한 공포와 애통의 장소입니다. ‘침묵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지옥’이라고 했습니다. 생존자들의 증언입니다. 과연 크메르 루즈는 어떤 집단이며 폴 포트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했습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