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3(월)

뉴스
Home >  뉴스  >  문화

실시간뉴스

실시간 문화 기사

  • 충남대, 초록리 마을지 발간
    충남대학교가 고북면 초록리의 마을지 발간을 위해 나섰다.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마을연구단(단장 김필동 교수)은 지난 17일 오후 3시부터 초록리 마을지발간을 위한 현지조사를 실시하였다. ‘충남지역 마을공동체의 생애와 정체성’을 주제로 충남지역 9개 마을에 대한 종합적인 학술조사를 펼치고 있는 충청문화연구소는 이날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2008년 12월 초록리 마을지를 발간할 예정이다.
    • 뉴스
    • 문화
    2007-08-19
  • 먹거리골 2색음악회 계획 확정||9월 6~7일 양일간 개최
    활성동 ‘제 2회 먹거리골 맛있는 2색 음악회’의 밑그림이 확정되었다. 먹거리골 이색음악회 추진위원회(위원장 김정한)는 지난 27일 오후 4시 30분부터 활성동 사무소 회의실에서 회의를 갖고 2색 음악회의 계획을 최종 확정했다. 이날 확정된 이색음악회는 다음달 6일부터 7일까지 양일간 대원예식장 주차장에서 열리며 풍물공연, 서산지역 학교 동아리 청소년들의 공연, 초대가수, 경품축제 등 초가을 밤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이번 음악회는 개최기간 중 시민들이 먹거리골 이용을 유도할 수 있도록 추진위원회 회원업소에 경품권 50여장을 무료배부하고 손님에게 경품권을 나눠주도록 했다. 또한 주변에 먹거리 장터를 세워 먹거리를 홍보하는 한편 노천주막을 함께 운영하도록 했다. 이번 음악회 대회장을 맡은 김영제 동장은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을 통해 서산을 대표하는 음악회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며 “시민 및 관광객들의 많은 참여와 성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뉴스
    • 문화
    2007-07-29
  • 정충신 장군 12대 후손 정종연씨
    정종연씨는 정충신장군의 13대 후손이다. 원래 정충신 장군의 사당은 종손가에서 지켰는데 종손인 형의 사후 정씨가 진충사 옆에 집을 짓고 조상을 모시고 있다. 그는 대요리 이장직을 수행하면서도 사당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다. 진충사에 가면 쓰레기 하나, 길게 자란 풀 하나, 돌 사이에 돋은 풀하나 보기 힘들다. 생업까지 미뤄가면서 사당을 챙기는 그의 정성 때문이다. “조상은 우리의 근본이고 조상을 모시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할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사실 많은 어려움 속에 사당을 지키고 있다. “밤이면 주차장 공터가 넓고 인적이 드물어 청소년들이 놀거나 술취한 사람들이 어지럽히곤 합니다. 어지러진걸 치우는 것도 많이 어렵지만 무섭기도 합니다”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사실 관리비는 고사하고 사당에 관한 제초작업만 지원받는 그는 퇴직후 받은 퇴직금을 써가며 사당을 지키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잡초를 뽑다보면 다른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진충사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가이드, 안내원 역할도 해야했다. 그는 또 “진충사 바로 옆에 집이 있어 관광객이 많이 오면 더워도 문을 닫고 있곤 합니다. 이것저것 사실 불편한게 너무 많지만 제 조상을 제가 모신다는 생각으로 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웃음지었다. 이런 어려움을 말은 하지만 신문에 내지 말라고 두 손을 젓는 정종연씨의 성실함이 깨끗한 진충사를 유지하는 원동력인 듯 했다.
    • 뉴스
    • 문화
    2007-07-28
  • ■문화재탐방(6) 충무공 정충신의 흔적||“나 죽거든 그릇만 함께 묻어주오”
    정충신이 평안병사로 있을때였다. 청나라와의 우호조약을 맺어야 하는데 청나라가 잔혹하고 사나운 오랑캐라 소문이나 가려는 사신이 없었다. 이에 정충신이 자진해서 사신으로 갔다. 청 태조는 조선 사신의 기를 꺾기 위해 “너희나라에 사람이 없기로서니 너같이 작은 사람을 보냈느냐?”고 하자 정충신이 웃으며 말했다. “조선같이 예의를 갖추는 나라는 대인을 사신으로 보내지만 힘만 믿고 예의 없는 나라는 소인을 사신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충무공 정충신의 애잔한 향기 정충신은 광주출신으로 자는 가행, 호는 금남이다. 고려시대 명장인 정지의 7대손이지만 조선시대 가문이 몰락해 어려운 생활을 겪어왔다. 하지만 그의 출중한 재능이 세상에 알려지자 어렸을 때부터 병영의 관인을 보관하는 절도영정병 겸 예부지인을 지냈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 권율을 따라 참전하여 권율의 총애를 받았다. 권율이 순찰사로 진급하고 전황을 의주에 있는 선조에게 알리고자 하였으나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바 정충신이 그때 자원하여 의주로 향하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17세였다고 한다. 이에 오성 이항복이 그를 장하게 여겨 그의 집에 머물게 하면서 글을 가르쳤다. 그 곳에서 정충신은 평생 학문적 동지인 이시백, 장유, 최명길 등과 교분을 쌓게 되었다. 이후 무과에 급제한 정충신은 선조의 총애를 받으며 벼슬이 창주첨사에 이르렀다.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여 이항복을 귀향보내자 그는 귀향길에 동행하여 귀향길 도중 백성들의 어려움과 고통에 관한 책을 폈는데 그 책이 바로 ‘북천록’이다. 정충신은 이항복이 죽은 이후 3년동안 심상을 치루는 등 스승에 대한 올곧은 예의를 지켰다. 정충신은 글에 소질이 있었으나 그가 가장 돋보였던 것은 외교력이었다. 그는 후금을 정탐한 뒤 병자호란을 정확히 예측하기도 했다. 또한 인조 원년 안주목사로 재직시에는 이괄의 난을 17일 만에 제압하고 이후 발생한 정묘호란에서 공을 세워 도총관비변사제조의 직위에 오르게 된다. 정묘호란이 끝난 후 재차 호란에 대한 위험을 알리나 조정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낙향해 병을 다스리다 병자호란 7개월 전인 1636년 안타깝께 세상을 뜨고 나니 그의 나이 61세였다. 인조는 그의 충정을 기려 왕이 입던 도포를 그 수의로 입혀보내며 그에게 충무공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그는 지금 서산 지곡면에 그의 부인과 함께 묻혀 있다. #서산에 어린 정충신의 충심 정충신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10호)는 지곡면 대요리 진충사에서 서편으로 800m정도 떨어진 마힐산의 국사봉 중턱에 장군의 부인과 함께 나란히 쌍분으로 안장되어 있다. 이곳은 정충신 장군이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일등공신으로 추대되어 받은 땅으로 정충신 장군이 직접 이곳에 자신의 묘를 써달라고 당부한 곳이라고 전해진다. 전면에 묘비가 서있고 그 앞에 상석이 있으며 그 앞 양옆으로 각종 석의가 있다. 정충신 장군은 죽기 직전 자손들에게 “죽은 뒤에 문자로 공적을 미화 찬양하거나 시호를 청하거나 비와 석물을 세우지 말고 다만 그릇만 묻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정충신 장군의 사당인 진충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6호)는 정충신 장군의 영정을 보관하고 있는 사당이다. 인조 14년(1636) 정충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세운 이곳은 이후 영조 13년(1737) 다시 고쳐지었다. 그 후 여러곳을 전전하다 1970년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에서 해마다 양력 4월 25일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정충신 장군은 여러가지 유품도 남겼다.(중요민속자료 36호) 유품의 종류는 영정과 갑옷, 서군사명기, 향로와 향합이 있는데 예전에 함께 있던 투구는 70년대 모두 도난당했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 영정은 가로 90㎝, 세로 200㎝로 석채로 채색한 흉배그림이다. 갑옷은 생전에 입던 군복으로 총길이 116㎝, 품 길이 25㎝, 화장 60㎝, 소매부리 40㎝이다. 목면 3겹을 2㎝ 간격으로 호아서 누빈 위에 황색 비단을 입히고 그 위에 징을 박았으며 어깨의 견장을 철로 만들고 가슴부분 일부에 가죽을 입힌 형태로 당시의 관리갑옷형태를 잘 보여준다. 서군사명기는 정충신 장군의 깃발로 총길이 138㎝에 이르고 너비는 55.5㎝이다. 가장자리에는 가로 19㎝, 세로 16.5㎝의 주황색 비단이 붙어 있다. 향로는 수각이 달린 삼족기로 뚜껑에 뿔 달린 용의 장식이 있으며 향로의 몸에는 구름과 산이 양각되어 있다. 향합은 수각의 삼족기에 꼭지 달린 뚜껑이 덮여있는데 별다른 문양이 없다. #정충신의 역사적 가치 찾아야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충무공의 시호를 받은 사람은 총 11명에 불과하다. 진정한 충신에게 내리는 시호가 충무공인 만큼 역사적 가치가 빛을 발해야 하지만 이순신의 후광에 가려 다른 충무공들의 업적이 가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이순신의 공적이 출중한 면도 있지만 자료와 자료를 바탕으로 한 학술 연구로 인한 면도 없지 않다. 다른 충무공들은 자료가 많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정충신 장군 같은 경우는 전쟁공신이라 자료도 풍부하고 공신교서와 이항복의 삼년상을 치루며 작성한 일기까지 매력적인 자료가 많다. 하지만 학술적 연구는 미미한 수준이고 이는 진충사가 고유의 매력을 찾지 못한 결과에 기인한 것으로 보여진다. 더구나 정충신 장군의 유품이 진충사에 보관되어있지 않아 진충사를 찾는 의미 또한 퇴색된다. 이에 서산시는 현재 진충사안을 재정비하여 유물전시관으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또한 진충사는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 잘 관리된 잔디와 건물 등으로 많은 견학생들을 유치할 수 있는 기반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입로가 비좁아 그 활용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대형버스는 한대만 지나가도 보기 아찔할 정도로 길이 좁고 구불구불하다. 기반시설들은 앞으로 보수정비를 통해 낳아질 수 있지만 정충신 장군에 대한 학술연구과 그 연구결과를 서산에 접목시켜 관광화 하는 것, 진충사를 정충신 장군의 박물관화 시키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 뉴스
    • 문화
    2007-07-28
  • 중국 학생들, 서산을 체험하다||21~23일 서산서‘홈스테이’… 개심사 등 문화유적 탐방
    ▲각 홈스테이에 배치된 양국의 청소년과 가족들이 처음만나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서산시와 우호교류도시를 맺고 있는 중국 진황도 제 7중학교 학생단이 서산을 방문했다. 지난 19일 국내 홈스테이 체험을 위해 입국한 7중학교 학생단 19명은 경기도 구리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서산 각 가정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개심사, 해미읍성 등 서산의 문화유적을 탐방하고 야외활동을 통해 양국 청소년간의 우의를 다졌다. 21일 오후 4시부터 시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환영식에서 가기천 부시장은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유산이 숨쉬는 서산에 방문하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홈스테이를 통해 서로의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국제적 마인드를 배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왕젠거 제 7중학교 교장은 “활기가 넘치는 이 계절에 아름다운 서산을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어느 국가보다 가까운 이웃으로서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동북아 평화에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뉴스
    • 문화
    2007-07-23
  • 매주 금요일 저녁 자선콘서트
    한국연예인협회 서산지부(지부장 이석권)는 오는 10월말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7-8시까지 1시간 동안 시청앞 분수대에서 자선 음악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이 콘서트에서는 서산지역 음악 동호인 10여명이 나와 통기타, 색소폰, 오카리나 연주를 비롯해 관람객과 함께하는 즉석 예술공연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6일 열린 콘서트 공연.
    • 뉴스
    • 문화
    2007-07-14
  • 日 텐리시 학생작품 전시회||21일~25일, 서산문화회관
    서산시와 국제자매결연 도시인 일본 나라현(奈良縣) 텐리시(天理市)지역 학생들의 작품 전시회가 오는 21일부터 25일까지 서산문화회관에서 개최된다. 지난 92년부터 양도시간 문화교류 사업 일환으로 시작돼 올해로 15회째를 맞은 이번 전시회에서는 텐리시 초ㆍ중생 그림과 서예작품 등 모두 80여점이 선보인다. 앞서 서산지역 학생들의 작품 56점(회화 45점, 서예 11점)도 지난 1월에 텐리시청 시민 홀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일본 텐리시와는 지난 1991년 11월 자매결연을 체결했으며, 매년 초중생 서화전시회와 공무원 행정연수, 문화 예술 분야에서 활발한 교류를 펼치고 있다.
    • 뉴스
    • 문화
    2007-06-17
  • 우리지역 문화재탐방 ④서산향교ㆍ해미향교||양반 고장 명맥 이어온 동력의 중심 ‘향교’
    조선시대 충청도는 양반의 고장, 선비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이중환은 사회지리 종합서인 택리지를 통해 “가야산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함께 내포라고 하는데 ~ <중략>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여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므로 부자가 많고 여러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집이 많다”고 소개하였다. 가야산 앞뒤의 열 고을 중 하나가 바로 서산으로, 양반의 고장을 이어올 수 있던 동력의 중심에 서산지역 두 향교가 있었다. 도심 속에서 유교의 향기를 찾다 서산향교는 태종 4년(1404)년 조종생이 서산지군사로 부임한 뒤 사람들이 절에서 글을 읽는 것을 보고 개탄하며 태종 7년(1407) 서문밖에 세웠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그러나 서산의 유학자였던 김호윤과 김호설 등이 서쪽은 만물을 죽이고 감주는 방향이라 만물을 생동시키는 동편에 지어야 한다고 건의하게 되지만 당시 태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최여림이 군수로 부임한 뒤 다시 박영언, 유창수, 문성해, 이첨수 등이 같은 이유를 들어 태수에게 간언하니 최여림이 크게 기뻐하며 선조 7년(1574) 현의 동편으로 이전하였다. 최여림은 호산록에 의하면 부임할 때 본읍 사람들 중 유관을 쓰고 책을 끼고 다니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고 향교가 무엇 하는 곳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이였는데 최여림이 부임한 이후 풍속이 바로 잡히고 기강이 밝아졌으며 여염 사람까지 의리를 알게 될 정도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최여림의 부임이후 서산에 유교가 중흥된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장소는 인조 25년(1649)에 땅이 습하고 위치가 협잡하다는 이유로 옮겨졌으며 지형이 다른 곳과는 달리 높낮이가 있어 원래 대성전을 남쪽에 놓고 명륜당을 북쪽에 놓는 것이 순서이지만 성현의 위패를 낮은 곳에 둘 수 없다하여 현재의 모습과 같이 대성전이 북쪽 높이 있고 명륜당이 남쪽 낮은 곳에 있다. 동문동 580번지에 위치한 서산향교는 아파트와 일반주택사이에 위치해있다. 도심 속에 고고하게 서있는 현재 향교의 입구인 외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U자’형태로 강의공간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가 배열되어 있으며 중앙에 600여년 된 은행나무가 그 거대한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나무 뒤편으로 내삼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면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동무, 서무가 함께 배치되어 있다. 위패는 총 25개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오성과 송나라 2현, 우리나라 18현이 봉안되어 있다. 서산향교는 이렇듯 도시한가운데 옛 모습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정해도 우리 삶에 깊숙이 박혀있는 유교처럼 서산향교도 도시인의 삶속에 잊어선 안 될 그 무언가 처럼 여전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 ▲서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16호) 자연을 벗 삼아 옛 경전을 떠올리다. 해미향교는 태종 7년(1407년) 중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미면 오학리에 위치한 해미향교는 과거 정해현과 여미현이 병합되어 해미현이 설치되고 건립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 개축하고 1924년 당시 해미군수였던 원은상이 다시 개축하였으며 지난 1996년 서산시에서 동재와 서재를 보수하여 현재 모습이 갖춰졌다. 향교 내부에는 일반 향교와 마찬가지로 대성전과 명륜당, 동·서재로 되어있으나 여타 향교와는 달리 외삼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이 없다. 향사기관인 대성전을 뒤쪽에 두고 강학기관인 명륜당을 앞쪽에 둔 전학후묘(前學後墓)식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현재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5성 송대 4현과 국내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있다. 해미향교는 예로부터 청아한 청산아래 양지바르고 안락한 대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으며 고목이 길 따라 가지런히 정돈되어 고결한 선비가 공부하는 표상을 나타낸다고도 알려져 있다. 일년에 2월정월과 8월정월 두 차례 제를 봉행하는데 그 외에도 음력 1일과 15일 김득상 전교 및 소속되어있는 해미, 고북, 운산 유림들이 봉심하고 있다. 해미향교의 자랑은 아무래도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 묻혀있는 향교의 안락함이다. 이곳에서 옛 경전을 읽으며 배출된 인재가 유현 4명, 충신 15명, 공훈 16명 등 400여명에 가까우니 그 향교의 힘이 짐작된다. ▲해미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17호) 향교는 누가 지키나 (좌로부터) 서산향교 정원호 전교ㆍ이재성 총무장의, 해미향교 김득상 전교 향교를 대표하고 지키는 사람을 ‘전교’라고 한다. 전국 234개 향교 모두 전교가 있듯이 서산향교에는 정원호 전교와 이재성 총무장의가, 해미향교에는 김득상 전교가 있다. 정 전교는 지난 2002년부터 전교역할을 맡아 춘계ㆍ추계 대제 같은 큰 행사를 이 총무장의와 함께 보존해오고 있다. 유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삶에 대해 성찰하는 두 사람은 서산향교에서 방학중에 충효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견학을 온 학생들에게는 친절히 향교의 역할과 배치에 대해 소개해 주기도 한다. 정 전교는 “세태가 바뀌어서 유교의 바탕이 쇠퇴중인데 새 시대에 따라 유교도 변화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서산향교를 지켜나갈 계획을 차분히 설명했다. 이 총무장의는 “어지러워진 세태속에서 공자님의 ‘인’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인성교육이 필요하다. 그것이 향교의 역할”이라며 정 전교를 도왔다. 김 전교는 지난 1월부터 새로 해미향교의 전교가 되었다. “부모 속 안 썩이면 밖에서도 좋은인재”라며 충과 효를 되새기는 김 전교는 많은 관광객들이 보며 감탄하는 해미향교를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충효교실은 물론이고 전통혼례를 원하는 지역주민 등 전국각지의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해미향교에서 준비까지 다 해줄 정도로 열성적이다. 김 전교를 비롯한 해미향교의 유림들은 “방문객들은 많이 오고 언제든 설명해 주지만 그런 기회가 없으신 분들도 있다”며 “이곳도 문화재인 만큼 팜플렛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혜택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뉴스
    • 문화
    2007-06-03
  • 충청남도지사배 민속대제전 열려||16개 시군서 1000여명 참가
    ▲민속대제전에 참여한 서산시 선수와 당진군 선수가 씨름대결을 펼치고 있다.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청남도와 서산시가 후원한 ‘제17회 충청남도지사배 민속대제전’이 지난 1일 오전 11시부터 대산 삼길포항에서 열렸다. 서산시를 비롯한 16개 시군이 참가하여 6개 종목으로 나뉘어 치러진 이번 대회는 유상곤 서산시장과 임덕재 시의장, 서철모 충남 문화관광과장 등 각 기관 단체장 등 내빈과 각 시군 선수 등 1000여명이 참석해 뜨거운 열기로 치러졌다. 작년 우승팀인 서산시의 임관식 선수의 선서에 이어 서산시 종합 사회복지관 풍물패의 공연으로 대회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각기 시군에서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였다. 유상곤 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한문화 속에서 백제의 뿌리로 이어진 우리는 형제자매”라며 “더욱 화합하고 특성문화를 발전시킬 것”을 기원했다.
    • 뉴스
    • 문화
    2007-06-03
  • 서산시 농어촌 문화체험 마을 11곳 마련||부석 강당2리, 마룡리 등 도시민에 휴식 제공
    농어산촌에 머물며 휴식도 즐기고 안전한 먹거리 정보도 챙겨 볼 수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서산시는 최근 도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농어촌간 교류 확대를 위해 10개 농어촌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문화체험 프로그램은 계절별 영농 체험과 함께 자연생태, 향토 음식, 어패류 채취, 산림욕을 겸한 웰빙채소 채취 등을 겸할 수 있게 구성됐고 모두 11개 농어촌 마을이 참여하게 된다. 또 전통음식 체험 실습장, 생강한과 제조 사업장, 천연 염색 실습장, 갯벌 체험장, 개구리 생태 연못 등이 체험장으로 제공된다. 이에 따라 시는 도시지역 여성단체 및 소비자 단체 등을 중심으로 홍보활동에 들어가 프로그램별로 40-50명씩 체험객 모집에 나설 계획이다. 농어촌 문화체험 마을 가운데 대산읍 운산5리는 맷돌 호박밭(3천평)이 체험장으로 제공되고 인지면 산동 1리는 천연 염색 실습장(100평)으로 도시민들을 맞게 된다. 생강 주산지 마을인 부석면 강당2리, 지산2리, 마룡리는 각각 생강한과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제조시설을 체험장으로 내놓게 된다. 이밖에 미꾸라지와 참붕어를 잡을 수 있는 담수어잡이 체험장(고북면 봉생리), 조개와 맛을 채취할 수 있는 갯벌체험장(팔봉면 양길리), 무릇 채취와 솔숲 체험장(팔봉면 금학3리) 등도 마련된다. 농어촌 문화체험 참가 신청 문의는 시 농업기술센터(☏ 660-3925~7, 662-5959)로 하면 된다.
    • 뉴스
    • 문화
    2007-05-21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