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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 군청 민원실에 있을 때였다. 민원실에서는 민원상담과 즉결민원을 처리한다. 인·허가 등 처리기한이 정해진 민원서류는 접수하여 소관부서에 보낸다. 소관부서에서 처리하여 민원인에게 회신하기 전, 기한을 지켰는지 절차이행에 소홀함은 없는지 검토 후 「민원통제」라는 고무도장을 찍어준다. 어느 날, 식품영업허가 담당 직원이 신청서류를 반려하는 서류를 들고 왔다. 이유는 음식점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에서 0.1㎡가 부족하고, 선반에 먼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소면적을 따질 정도라면 얼마나 영세한 업소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규모였다. 주방과 홀을 포함한 한 변을 5m라고 볼 때 폭은 불과 2㎝가 부족한 것인데 그것이 반려 이유였다. 그 정도라면 자(尺)를 어디에 대고 또 어떻게 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사정이었는데, 당시에는, 기준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선반에 먼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얼마나 자의적인 판단이고 트집에 가까운 것인가로 보였다. “이런 이유로 반려하느냐?”고 물었지만 “‘법상’ 안 된다”는 대답이었다. 손바닥 만 한 음식점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민원인의 고달픈 처지가 떠올랐다. ‘법상 기준에 의한 처분’의 당·부당을 따지는 기능이 없는 민원실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결재과정에서 누구라도 짚어보았다면 어찌되었을까하는 아쉬움도 떠나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신청했는데 허가가 났다. 공직에 있는 동안 거울로 삼았다. 도청으로 가서 처음 맡은 일은 과 서무였다. 출장 직원 여비청구서를 회계과에 보냈다. 얼마 후 담당 직원이 와 보라고 해서 갔다. 행선지, 거리, 운임, 식비, 숙박비 이런 부분을 연필로 체크해나가다 좀 세게 튕기니 서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무엇이 잘못 되어나요?”라고 물으니 “그것도 몰라요?”라며 턱과 눈꼬리가 올라갔다. 광나는 뾰족구두가 밉게 보였다. 오랫동안 여비업무를 담당하여 거리나 단가를 안 보고도 계산하는 직원이라고 했다. 군청에서 갓 전입한 직원을 얕잡아보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전임자에게 물으니 철도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으로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군에 있을 때는 실제 타고 다니는 교통편 운임으로 계산했는데 도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다. 열차, 버스를 환승하는 것으로 하니 계산이 복잡하고 요금은 더 많이 나왔다. 한 번은 과원 전체가 전국행사에 가게 되었다. 스무 장 가까운 여비청구서를 일일이 만드는 것은 비능률이라서 이름 쓰는 곳은 빈 칸으로 둔 채 한 장만 작성하여 복사한 다음 빈 칸을 채워 보내니, ‘안 된다’고 하여 실랑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뒤 복잡한 여비계산의 경우를 만들어 보내자, 회계과에서는 처음이라며 논의한 다음 필자의 논리에 승복했다. 그 후 필자가 보내는 서류는 검토 없이 통과했다. 그 때의 일을 경험을 중앙에 출장여비제도 개선을 건의하여 반영되었다. 서산출신 인사가 회장을 맡은 도 새마을단체 행사를 하게 되었다. 참석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회계과에 협의하려는데 억지를 부렸다. ‘참석자 개인별로 작성한 청구서’를 첨부하라는 것이었다. 점심 한 그릇 주는데 수 백 명으로부터 일일이 도장을 받아 작성하는 것은 번잡할 뿐더러 불필요한 일이었지만 고집을 꺾지 않았다. 참석자 명단을 붙이겠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참석 및 급식확인서’에 과장이 날인하겠다는 제안도 거부되었다. 몇 번 논란 끝에 식권을 주는 것으로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식권을 모아 가지고 가니 ‘구겨지지 않은 것, 깨끗한 것이 있어 인정할 수 없다’며 트집을 잡았다. 보다 못해 담당직원 눈앞에서 식권을 구기고 사무실 바닥에 비빈 다음 책상위에 집어 던졌다. 옆에서 보던 계장이 “뭔데 그래?”하고 정황을 듣더니 “해 줘”라고 하여 끝났다. 참 나쁜 사람으로 낙인(烙印)찍었다. 지금 가끔 만나고 있다.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을까? 민원인에게 몰인정한 공무원의 가슴에 공직윤리와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의식은 갖췄을까? 직원 간에도 꼬투리 잡고 까탈이나 부리는 그런 사람이 시민이나 민원인에게는 어땠을까? 재량과 상식을 생각하게 했다. 일을 놓고 먼저 ‘안 되는 이유’부터 찾아내려는 것인지, 트집 잡고 비비꼬는 것을 권한으로 알고 위세부리는 심리는 무엇일까? 조정기능을 망각한 관리자의 존재이유는 무엇일까? 부정적 사고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는 없었을까? 문득 그 시절이 떠오른다. 왜 일까? 가기천/수필가·전 서산시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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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건강이 제일의 재산
    에머슨은 ‘건강이 제일의 재산’이라고 말했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걸 잃는다는 말 역시 명언 중의 명언이다. 건강이 그렇게 소중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그걸 잊고 산다.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아프거나 다른 사람이 병을 얻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화들짝 놀라 건강의 소중함을 새삼 알게 된다. 엊그제 L 목사님이 여성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랐다. 늘 밝은 미소와 활기찬 모습을 보아왔던 터라 몹시 놀랐다. 다음 주에 수술 날짜가 잡혔다며 이전에 받았던 곳으로부터 전이가 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을 마치 남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역시 신앙인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몸의 건강도 재산이나 명예처럼 관리를 잘해야 유지할 수 있다. 아무리 튼튼한 몸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무리하게 사용하면 오래 가지 못한다. 반면 부실하게 태어났다 하더라도 관리를 잘하면 얼마든지 건강을 유지하며 살 수 있다. 전에 필자가 모시던 직장 상사 한 분은 위가 약해 늘 약을 가지고 다녔다. 중식은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혹 외식을 하더라도 맵거나 짠 음식을 피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건강하게 사셨다. 오히려 젊었을 적보다 위가 튼튼해졌는지 자극성 있는 음식도 곧잘 드셨다.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나 상식은 어디든지 차고 넘친다. 몰라서가 아니고 아는 것만큼 실천하지 않아서가 문제인 셈이다. 적당한 운동과 식습관만 잘 지킨다면 어느 정도는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육신의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헌장에는 “건강이란 질병이나 단지 허약한 상태가 아닐 뿐만 육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인 완전한 안녕 상태를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육체적으로 건강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안녕 상태를 유지하여야 건강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의 건강을 지키는 일은 정신적 사회적 안녕 상태를 유지하기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다. 육체의 건강은 자신의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정신적 건강은 사회적 상태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에 타의에 의해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벌써 2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개인은 물론이고 영세기업이나 자영업자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영향으로 지쳐가고 있다. 백신을 접종했어도 확진자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는 감기처럼 함께 가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이럴 때 우린 어떻게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속담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이 있다. 바로 이 속담이야말로 코로나19에 지쳐가는 이들의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이라 하겠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느 시선을 가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보면, 똑똑한 사람은 잘난 체하는 모습으로 보이고, 얌전한 사람은 겁쟁이로 보인다. 활기찬 사람은 까부는 경망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고, 잘 웃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실패 중에 성공을 보는 사람도 있고 포기의 길만 보이는 사람도 있다.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자.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보이지 않던 출구가 보인다. 나 혼자만이 겪는 어려움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이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자. 암 선고를 받고 왜 하필 나냐? 라고 절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왜 나라고 걸리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라고 생각한다는 L 목사님의 말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여유와 평안을 가져다준다. 어떤 불행이라도 감사는 숨어있다. 그 감사를 찾아내어 겉으로 드러내게 해야 한다. 모든 걸 다 잃었다 하더라도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면 제일의 재산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고 아직은 포기하지 않은 희망이 있지 않은가? ‘가장 큰 어리석음은 다른 행복을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이다’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건강이 무엇보다 제일의 재산이다. 건강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자. 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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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위험직무 순직공무원 해당 여부
    [사건요지] 위험직무 순직공무원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1두30600 판결) [사례] 소방공무원인 망인이 화재진압 중 입은 부상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출혈이 생겨 급박한 상황에 이르러 동료의 수혈을 받았는데, 그 동료가 B형 간염 바이러스 보균자로서 간암 진단 후 사망하였고, 망인 역시 간염과 간암에 걸려 퇴직하였다가 자살한 사안에서 위 망인을 위험순직공무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공무원 재해보상법」은 위험직무순직공무원 요건의 확대와 공무수행 중 발생한 재해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무원 재해보상제도의 발전을 위하여 공무원 재해보상제도를 공무원연금법에서 분리한 것으로, 제3조 제1항 제4호에서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가 재해를 입고 그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사망한 공무원’을 ‘위험직무순직공무원’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이 수행하는 화재진압 및 인명구조작업은 재난ㆍ재해 현장에서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루어지는데 반해 위와 같은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연령과 직급에 비추어 그 공무원이 사망할 경우 유족이 받는 보상으로는 유족의 생활안정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따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직무를 수행하다가 사망한 공무원의 유족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여 순직공무원의 유족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위험한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안심하고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2006. 3. 24. 법률 제7907호로 「위험직무 관련 순직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이후 「위험직무 관련 순직공무원의 보상에 관한 법률」은 2009. 12. 31. 법률 제9905호로 개정된 공무원연금법에 의하여 폐지되고, 개정 공무원연금법에 의하여 위험직무종사 순직공무원의 보상범위를 확대하고 순직유족보상금의 인상을 통해 위험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의 사기를 제고하며, 유족의 처우개선을 도모하는 내용으로 위험직무 관련 순직공무원에 대한 보상 제도를 규정하게 되었습니다(헌법재판소 2012. 8. 23. 선고 2011헌바169 전원재판부 결정 참조). 위험직무순직공무원의 요건을 판단함에 있어서 위와 같은 입법목적과 개정경위를 고려해야 하는 바, 원심 및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망인이 화재진압 업무를 수행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부상을 입은 후 수술과정, 감염, 간암 등의 발병, 사망의 일련의 경과에 비추어, 망인은 결국 화재진압 중 입은 이 사건 부상이 직접적인 주된 원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어 「공무원 재해보상법」 상의 위험직무순직공무원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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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9
  • 염불보다는 잿밥
    서산사회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진 계층에 있는 사람은 웬만한 지역사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밀알이 되겠다’는 신념 아래 열심히 뛰면서 지역과 주민을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일정 보수도 없이 지역사회를 위한 청량제 역할도 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궁금증이나 답답한 가슴을 풀어 주기도 한다. 지역의 현안 문제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존경스러운 존재감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 저녁 시간에 한 식당에서 만난 지인의 혀 차는 소리가 오래도록 머리를 맴돌고 있다. ‘요즘에는 뭐 완장 하나만 차면 다 아래로 보이는 가 봐’라며 열을 냈다. 필자는 ‘왜 화를 내느냐’고 물었다. 그로부터 듣게 된 저간의 사정을 보면 그렇게까지 화를 낼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지인을 열 받게 한 사람은 지역 내 한 단체의 수장을 맡고 있었다. 며칠 전 그를 만났는데 ‘돈이 얼마 들어간다’,‘주민들이 너무 안도와 준다’,‘힘들다’는 등 하소연을 풀어놓으며 자기 자랑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인이 ‘그만두라’는 등 한마디 했더니, 그건 아니라고 말하더란다. 그리고 나중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도움’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 사람의 경력사항에 한 줄 첨가되는 것 때문에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는 것이다. ‘염불에는 마음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 드니 열불이 나더라는 얘기다. 사실,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사회·시민단체의 대표와 구성원들은 욕심 없이 지역을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지역 봉사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이 행복감이 충만해 지는 것을 느낀다고 한다.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있을까. 결국, 남에게 떠밀려 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통해 행복해지는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부 사회·시민단체를 바라보는 지역의 시선이 아슬아슬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지역 발전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발전적인 대책과 대안을 제시하기 보다는‘제살깎기식’의 구태적인 활동으로 일관해 오히려 그들이 명분과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가끔 있다. 일부 시민 사회단체의 모습이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정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경계와 지적을 아니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시민 사회단체 스스로의 본분과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지역 주민을 위한 진정한 역할과 순수한 역할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스스로를 높이고, 아집에 빠지고, 세력을 살찌우려는 예는 지역봉사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상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지역 주민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시민단체가 독단적으로 흐르는 과오를 막아 주는 감시자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역 발전을 위한 참된 봉사 의미를 느끼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해서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돕는다고 해서 봉사라고 할 수도 없다. 남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 그것이 참된 의미의 봉사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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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3
  • 이별보다 더 슬픈 병
    이별이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다든 사람과 영영 헤어져야 하는 이별은 참으로 아프고 슬픈 일이다.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한이 서린 말이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가는 그대여//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란 시(詩)다. 절절한 이별의 아픔을 담담히 지는 꽃에 빗대어 풀어내고 있다.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쉽게도 지는 꽃처럼 이별의 슬픔도 그렇게 쉽게 잊혔으면 좋겠다는 대목에서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별은 육신의 아픔 못지않은 아픔과 슬픔이다. 다정(多情)도 병이라 한다면, 이별의 아픔도 또한 병이 아니겠는가? 세상에는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 있다. 이별이 슬픈 건 다시 볼 수 없다는 전제 때문일 거다. 그런데 마주 보면서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별이 있다. 바로 치매란 병이다. 필자는 한때 요양원에서 일하면서 황혼의 삶들을 섬겨온 적이 있다. 그때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을에 기대어 서서』 와 『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놨다. 한편 한편이 인생의 종착역에 계신 한 분 한 분 어르신들의 모습을 담아낸 책이다. 그때 내가 가장 가슴 아프게 바라봐야 했던 건 바로 치매를 앓고 계신 분들의 모습이었다. 치매, 그건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었다. 지난달까지도 반갑게 반겨주던 어머니가 갑자기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치매에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개 왔니? 하며 손잡아 주던 어머니가 누구요? 라고 묻고 있을 때 ‘어머니, 나요, 나.’라며 울부짖는 아들의 절규와 몸부림을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이별 아닌 이별하는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별보다 더 슬픈 병이 치매란 걸 알았다. 「불가사리 한 마리가/뇌 안에 들어왔다//지나온 세월 자취 다 먹어 치우고/모자라 남편 아이들/ 가족마저 먹었다//추억도 눈물도 /그리움도 다 먹고/먹다 먹다 지쳐서 내 몸까지 먹는다//나처럼/살아온 나는/어디 갔단 말인가」 필자가 요양원에서 지은 졸시(拙詩) ‘치매’의 전문이다. 마치 벌레가 나무 잎사귀를 차례로 갉아 먹어 마침내 나무가 말라가듯, 치매란 벌레는 뇌에 들어가 뇌세포를 갉아 먹고 몸까지도 망가뜨린다. 지난달 초에 세계 보건기구(WTO)는 전 세계 5,500만 명 이상이 치매 환자라고 밝혔다. 이들이 예상하기는 2030년에는 7,800만명, 2050년에는 1억3,9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85세 이상의 30-40%가 치매에 걸린다고 예상했다. 세 명 중 한 사람은 치매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치매의 초기 증상은 건망증이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도 하고 방금 말한 걸 또 한다. 그런가 하면, 질문의 답을 계속 확인한다. 이때 보호자는 너무도 멀쩡한 모습을 보고 있기에 자칫하면 환자란 걸 잊게 된다. 아니, 알면서도 깜박 잊게 된다. “박 서방, 잘 있니?”라고 물을 때 딸은 “박 서방, 서울로 올라갔어요.”라고 공손히 대답한다. 몇 분 후에 똑같이 “박 서방, 잘있니?” 라고 물으면 이때 딸은“ 박 서방, 서울 갔다니까요?”라며 조금 언성이 높아진다. 몇 분 후에 같은 질문을 하자 “박 서방 서울 같다구요” 라며 소리친다. 그때 어머닌 얼굴을 돌리며 두 번 다시 묻지 않는다. 알아서 묻지 않는 게 아니고 서운해서 입을 다문다. 치매 환자들은 인지기능만 감소했을 뿐이지, 표정과 상대의 감정을 읽는 능력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열 번을 물어도 처음처럼 대답하라고 보호자에게 권면했다. 짜증 낼 일이 아니다. 인생은 너나없이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오늘의 보호자도 어느 한순간 환자가 될 수 있다. 치매. 그건, 안녕이란 이별의 마지막 인사조차도 할 수 없는 가장 슬픈 병이었다. 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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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3
  • 지적장애 3급의 심신미약 인정 여부
    [요지]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받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지적장애 3급 진단을 받았다는 이유로 심신미약이 인정되는지 여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2021. 9. 9. 선고 2021도8657 판결) [사례] 피고인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난 피해자에게 호감을 느껴 피해자에게 교제하자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고, 피해자가 자신을 장애인으로 지칭한 것에 화가나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에서 피고인이 지적장애 3급이라는 이유로 심신미약 감경 등이 인정되는지가 문제된 사건. [대법원 판단]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조 제2항은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심신장애인에 대한 책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심신장애는 생물학적 요소로서 정신병 또는 비정상적 정신상태와 같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외에 심리학적 요소로서 이와 같은 정신적 장애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결여되거나 감소되었음을 요하므로,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하여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능력이나 행위통제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는 없습니다. 심신장애의 유무는 법원이 형벌제도의 목적 등에 비추어 판단하여야 할 법률문제로서 그 판단에 전문 감정인의 정신감정결과가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기는 하나, 법원이 반드시 그 의견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감정결과뿐만 아니라 범행의 경위, 수단, 범행 전후의 피고인의 행동 등 기록에 나타난 여러 자료 등을 종합하여 독자적으로 심신장애의 유무를 판단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8도7658 판결 등 참조). 이러한 심신장애의 판단기준을 바탕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① 피고인이 지적장애 3급의 진단을 받은 것은 이 사건 범행으로부터 8년 전인 9세 무렵이고, 사회연령이 10세, 사회지수가 67로 측정된 것은 이 사건 범행으로부터 2년 전인 15세 무렵인바, 위 진단 시점과 이 사건 범행 시점과의 시간적 간격 및 피고인이 성장기에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 당시에도 위와 같은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② 오히려 원심에서의 정신감정결과에 의하면, 피고인은 ‘경도 지적장애’로 진단되었고 지능지수가 62로 인지기능의 저하를 다소 보이기는 하나, 사회연령은 14세 7개월, 사회지수는 83으로 측정되어 일상생활에서의 현실 판단력은 대체로 건재한 것으로 평가된 점, ③ 이 사건 살인 범행 3일후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소속 직원이 피고인을 면담한 결과 원심 감정결과와 부합하는 취지의 의견이 제출된 점, ④ 피고인은 가상의 인물을 내세우는 등 ‘1인 다역’으로 행세하면서 피해자에게 접근하였고, 살인을 결심하고서 미리 범행도구를 준비한 후, 인적이 드물고 범행이 용이한 위 다리 아래로 피해자를 유인한 점, ⑤ 피고인은 기존에 습득한 지식에 기초하여 범행 방법을 택하였으며, 범행 과정을 장악하고 통제한 점, ⑥ 피고인은 범행 직후 범행도구를 버리고 자신의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을뿐만 아니라, 사망한 피해자의 상의를 갈아입히고 피해자를 병원으로 옮기려 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하였으며, 최초 참고인 조사에서도 피해자가 사망한 이후 뒤늦게 범행 현장에 도착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점, ⑦ 이와 같이 피고인은 이 사건 살인 범행의 장소, 도구, 방법을 미리 정하는 등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였고,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피해자를 기만하고 범행 장소로 유인하였으며, 범행 후에는 범행도구를 버리고 거짓말을 하는 등으로 범행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바, 이는 ‘피고인이 일상생활에서의 현실 판단력이 대체로 건재하다’는 정신감정결과와도 부합하는 점 등을 비추어 보면, 피고인에게 이 사건 범행 당시 ‘경도 지적장애’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로 말미암아 사물에 대한 변별능력과 그에 따른 행위통제능력이 결여되거나 감소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인이 심신장애의 상태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 자료제공 :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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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3
  • 고향 이야기를 쓴다는 것
    필자의 글이 고향 서산의 ‘권위 있는 몇 분’들로 부터 ‘별 것 아니다’라고 판정받았다. 정확하게는 ‘글에 담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참담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맞다. 필자는 명망 있는 문장가가 아닌데다 고향 사람들의 마음에 담아둘 만한 글이 아니니 그런 평가를 받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사실 글을 쓰면서도 왜 쓰는가? 공연히 헛일이나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잡문일망정 작은 울림이라도 주었는가? 뒤돌아보곤 했다. 그래도 「서산타임즈」에서 계속 귀중한 지면을 내주었다. 어언 11년 째 250편에 이르는 글을 썼다. 책으로 내면 네 권은 넘을 만한 분량이다. 분에 넘치게 「가기천의 고향 서정」, 「가기천의 일각일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언론에서 특정 코너를 마련하고 필자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글 쓰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대우이다. 그런 대우를 받으며 글을 쓰고 있다. 고마울 뿐이다.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는지는 모른 채 그래왔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서산타임즈」에서는 필자의 글을 종이신문 말고도 인터넷으로 읽는 독자가 수 천 명에 이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만큼 늘 부담감과 책임감이 억누른다. 몇 년 전, 서산 행사장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분을 만난 적이 있다. 인사를 나누는데 “글을 잘 보고 있다”며 며칠 전 실린 내용을 말씀하는 것이었다. 미리 만나기로 약속했었다면 인사치레라도 졸문을 읽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은 만남이었다. 심걸섭 서산타임즈 고문 겸 한국양곡가공협회 중앙회장은 “가기천 전 부시장의 칼럼은 … 세상사, 상식을 ’글맛‘까지 느끼며 두루두루 배울 수 있기에 늘 만족한다.”는 과분한 말까지 해주셨다. 어떤 독자는 “글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 왜 안 보이냐?”고 묻곤 한다. 글의 바탕에는 고향의 추억과 옛이야기, 그때그때의 현안을 주제로 삼았다. 공직 경험을 들어 후배들에게 간접경험을 들려주려고도 했다. 몇 가지 제언은, 현직에 있었다면 어렵지 않게 실행했을만한 것조차도 대부분 날아갔다. 그나마 결실을 본 것도 몇몇 있었다. ‘시민대상 확대를 제안한다.’는 제목의 글에서는 시상 분야를 ‘애향 및 지역 선양부문’으로 확대하여 고향사랑에 이바지한 출향인사를 선정, 시상하자고 하였는데, 안원기 의원의 발의로 조례를 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 개인이 쓴 읍지(邑誌)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귀중한 사료로 알려진 <호산록 湖山錄>을 펴낸 지 400주년을 맞아 이를 되살려보자는 제언은 예산을 확보하여 올해 문화원을 중심으로 재 발간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산문학관은 꿈’이라는 글은, 시에서 70여 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문학관을 짓기로 했다고 발표한 적이 있는데, 대전문인협회 회장이 어떻게 알고 부러워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고, 군자금을 모아 보내기도 했다. 독립군으로 활약하는가 하면 폭탄으로 권총으로 요인을 암살하기도 했다. 만세운동을 벌였고 저항운동, 국채보상운동을 했다. 글로써 나라사랑과 독립정신, 국민의식을 고취하고 뜨거운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외교활동으로 국권회복, 무력투쟁을 위한 군사훈련, 교육을 통한 실력양성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였다. 이처럼 각 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고 실천했던 것이었다. 고향 사랑도 마찬가지다. 지역에서 스스로 역할을 다하면서 지역발전과 주민봉사에 앞장서는 것도 고향사랑이고, 타향에서 고향, 고향 사람, 고향자랑을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고향사랑이다. 위치와 방법만 다를 뿐이다. 필자는 비록 무디지만 글로 고향을 말하고 사랑했다. 알아주던 그렇지 아니하던 그랬다. 그런 심정으로 썼던 ‘다정도 병인 양 하여…’의 일부를 다시 옮기는 것으로 이 글을 맺는다. 「‘까마귀도 내 땅 까마귀라면 반갑다’는 속담이 있다. 이런 저런 상념으로 이 지면에 고향이야기를 여러 번 썼더니 한 지인이 물었다. 무슨 이유로 고향이야기를 주로 쓰는가? 하기는 그렇다. 그래도 굳이 답을 해야 된다면, 조선시대 문인 이조년(李兆年)의 다정가(多情歌)에서 종장을 인용해 본다. ‘다정도 병인 양 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에서 ‘다정도’를 ‘고향의 그리움도’로 고쳐 보는 것, 이것이 그 지인의 물음에 대한 답이다.」 그 마음은 한결같다. 가기천/수필가·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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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5
  • 추분 산책
    세월의 수레바퀴는 벌써 가을까지 굴러왔다. 지난 23일이 추분이었다. 추분과 대치되는 절기로 춘분이 있다. 춘분은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과 봄 농사를 준비하는 청명 사이에 있고, 추분은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와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 사이에 끼어 있다. 춘분과 추분은 각각 더위와 추위, 추위와 더위를 마주하는 계절이다. 봄과 가을은 겨울과 여름에 끼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계절이다. 그 계절 사이로 춘분과 추분이 있다. 이날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을 뿐만 아니라, 더위와 추위를 함께 아우르는 절기이며 계절과 계절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춘분과 추분은 닮은 듯 다르다. 춘분이 겨울의 차가움에서 여름의 뜨거움을 품고 봄을 나누는 절기라면, 추분은 여름의 뜨거움 속에서 겨울의 차가움을 안고 가을을 나눈다. 춘분은 희망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면, 추분은 풍요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절기다. 춘분이 꽃처럼 고운 절기 속의 여인이라면, 추분은 쓸쓸하고 허전한 남자의 뒷모습 같은 절기다. 춘분은 이날부터 하지까지 낮을 늘려 놓지만, 추분은 이날부터 동지까지 밤을 늘려 놓는다. 하지만, 춘분과 추분은 닮은 점도 많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것도 닮았고 계절의 길잡이라는 것도 닮았다. 추운 겨울도 아니고 무더운 여름도 아닌 겨울과 여름, 여름과 겨울의 중간 지대에 자리 잡아, 계절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춘분과 추분이다. 이는 마치 인간에게 중용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듯하다. 중용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과하거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중용은 단순히 양극단을 배제하고 중간을 택한다는 뜻은 아니라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매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흐리멍덩한 상태가 아니다. 춘분은 겨울의 차가움을 유지한 가운데 따뜻함이 있고 추분은 여름의 더위 속에 겨울의 차가움으로 간을 맞춰 중용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 중용의 길을 걷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요즘 세대는 중용의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듯하다. 대선이 코앞에 있어 그런지 살벌한 진흙탕 싸움이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 흑이냐 백이냐 좌냐 우냐를 놓고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우리 같은 민초도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면 불안하다. 우리 인간의 삶도 봄의 춘분처럼, 가을의 추분처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균형 있는 중용의 삶을 산다면 이보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것 같다. 여름의 뜨거움을 감성이라 하고 겨울의 차가움을 이성이라 하자. 그렇게 하면, 춘분과 추분은 이성과 감성이 중용을 이루는 절기라 할 수 있다. 굳이 나누자고 한다면 춘분은 감성보다는 이성이 좀 더 위에 있고, 추분은 이성보다 감성이 좀 더 지배한다고나 할까?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은 그의 저서 『이성과 감성』에서 두 여주인공 엘리너와 마리앤을 통하여 인간 사회에서 이성과 감성의 중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감성은 이성을 흥분시키려 하고 이성은 감성을 진정시키려 한다. 이 둘의 조화가 바로 중용을 이루는 길이다. 추분이 지났으니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고 차츰 겨울이 자리를 넓히려 들것이다. 들녘엔 벼 이삭이 황금물결 치고 있고, 주렁주렁 매달린 감도 붉어져 가지마다 등불을 매달고 있다. 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지기는 쉽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열매가 익기까지는 어렵지만, 떨어지는 건 금방이다. 점점 더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곧 텅 빈 들녘을 바라보며 성공 뒤에 허무함 같은 고독이 가득하고 단풍잎은 떨어져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바람에 흔들거릴 것이다. 돌아보면 한 뼘 인생, 짧기만 하다. 내게는 추분이 벌써 지났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다. 낙심할 건 없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기도 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자. 아직 열기가 남았으니 추분 같은 마음으로 살자. 늙어도 가슴엔 따뜻한 열정을 품고 머리는 냉철한 이성을 잃지 말며 언제나 치우침 없이 중용의 삶을 살아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해야겠다. 찬란한 겨울을 상상해본다. 김풍배(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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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5
  • 당신은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지 않은가?
    인류는 1950년대 후반부터 석탄, 천연가스, 석유 등 화석 연료를 집중적으로 사용해왔다. 현재 화석 에너지가 세계 에너지소비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화석 에너지를 경제활동에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온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재앙 수준의 시련을 겪으며 인류의 존망마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온실효과란 태양의 열이 지구로 들어와서 다시 나가지 못하고 순환되는 현상을 말한다. 2018년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사상 최고치에 이른 7억 2800만 톤으로 중국, 미국, 인도 등에 이어 세계 7위를 기록하며 OECD국가 중 가장 빠른 증가속도를 나타내고 있다. 이는 인간편의가 자초한 결과다. 7억 2800만 톤이라는 숫자에는 5천만 명의 삶이 반영되어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한국 사회는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게 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위기가 턱밑까지 차오른 상황에서 올해 정부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탄소 중립이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 제거해서 실질적인 배출량이 제로가 되게 하는 것이다. 2018년 기준 1인당 연간 전기사용량 10.2MWh, 1인당 하루에 버리는 생활폐기물은 930g으로 서산시도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위험한 경고에 즉각 응답해야 한다. 당진시는 지난해 초 기초자치단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기후위기 대응의 원년으로 삼았다. 경상남도, 대전, 충청북도, 한국천주교주교단 등 전국 각지에서도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산시도 즉각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그에 따른 종합적인 후속대책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주민 모두가 함께 참여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목표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야한다. 전국의 각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후위기 대응정책도 참고해볼만 하다. 자전거와 보행이 편한 교통정책, 생활환경 주민모임 활성화정책, 재활용 배출 시간을 정하여 이를 관리하는 자원관리사제도도 눈에 띈다. 우리 모두가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의 당사자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시민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하겠다. 기후위기에 지혜롭게 대응해 갈 수 있도록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현세대와 미래세대가 기후와 환경을 지키기 위해 책임 있는 행동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서산시의 기후위기 대응 예산을 확대해 실질적인 교육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본 의원도 ‘서산시 기후위기 대응 조례’를 제정하여 행정을 뒷받침 하겠다. 2019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19 올해의 인물’로 스웨덴 출신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UN 기후행동 정상 회의 참석을 위해 태양광 요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탄소 배출이 많은 항공기나 선박 이용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이렇게 강력히 경고한다. “미래 세대의 눈이 당신들을 향해 있다”, “우리를 실망시킨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녀는 트럼프대통령 앞에서 환경상 수상을 거부하며 “당신들은 자녀를 가장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고 외친다. “나는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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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5
  • 독서의 계절
    세월은 어김없이 올해에도 계절을 바꿔놓았다. 폭군처럼 열기를 내뿜던 햇볕도 이젠 풀이 죽어 노인의 눈동자처럼 자애롭다. 가을이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독서다. 예부터 가을은 책을 읽는 계절이라 했다. “독서를 한다고 모두 성공한다는 건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독서는 인간의 성장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독서를 통해서 갖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한다. 간접 경험을 통하여 다양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풍부한 감성과 이해력을 길러 준다. 이 같이 책은 우리와 뗄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 오죽했으면 안중근 의사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다. 빌 게이츠조차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하버드 대학도 아니고 미국이라는 나라도 아니고 내 어머니도 아니다. 내가 살던 작은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 하는 습관이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결코 컴퓨터가 책을 대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탈무드에도 ‘책이 없는 집은 영혼이 없는 몸과 같다. 영혼이 없는 육체는 이미 존재 이유를 상실한 것과 다름없다’라고 했다. 책이 주는 영향은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책이 최초로 만들어진 역사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학자들에 의하면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적은 점토판이나 석판에 새겨진 것들이라고 한다. 최초의 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과 이집트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대략 BC 30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책은 인류와 함께해 왔다. 문명의 발달에 따라 책의 형태와 모습도 변했다. 점토판에서 파피루스로 또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책이, 종이가 발명된 후 종이책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 세기 인류와 함께했던 종이책조차 이제 그 생명을 위협받고 있다. 바로 전자라는 무형의 전자책이 출현한 것이다. 그로 인해 종이책은 심지어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체코의 프라하 공공도서관은 수천 년 전 책을 벽돌처럼 높이 쌓아 올려 일명 ‘지혜의 샘’이란 책 우물을 만들어 놓았고,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옷가게는 수만 권의 책을 사용하여 기둥마다 책 벽돌을 쌓아 가게를 장식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책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사용한 것을 본다. 아무리 전자책이 출현하여 종이책을 대신한다고 하여도 유구한 역사를 인류와 함께 한 종이책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속담에 부자가 망해도 삼 년 먹을 건 남는다는 속담도 있다. 혹자는 나무를 보호하고 종이책으로 인한 쓰레기 처리를 줄여주어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디지털 기술로 인한 실시간 교정과 시간의 절약뿐만 아니라 간편한 문장 첨삭 등, 종이책이 가질 수 없는 장점 등을 내세우지만, 전자책 역시 종이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장점들을 대신할 수 없다. 지금도 내가 속한 조그만 문학회도 많은 회원이 문학 관련 책을 발간하고 있고, 내게도 시집과 수필집을 비롯하여 문학지들이 한 달이면 십수 권이 배달되고 있다. 그러니 아직은 종이책의 소멸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말 걱정되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다. ‘태백산맥’으로 유명한 조정래 작가는 마침내 문학계의 빙하기가 닥쳐왔다고 말했다. 문학의 위기라 했다. 아무리 책을 내놔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이제 책 안 읽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바로 스마트 폰이 주범이다. 전에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책을 펴들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보았다. 그러나 이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스마트 폰이라는 요술 상자 속에 빠져 있다. 스마트 폰이 지식과 정보는 줄지언정 종이책만큼 사고의 깊이를 더하고 지혜를 주지는 못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책이란 넓디넓은 시간의 바다를 지나가는 배’라고 했다. 가을이다. 우리 모두 이 계절만큼은 스마트 폰을 잠시 내려놓고, 대신 책을 펴들자. 책 속에서 인생의 향기를 느끼며 잃었던 나를 되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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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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