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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 뒀다 뭐해?
    사소한 오해 하나로 십 년 지기를 잃을 수도 있다. 오해가 쌓이면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망가진다. 오해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먼 사람하고는 오해가 생기기 쉽지 않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그 착각이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면서부터 오해가 생긴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조합원 한 분이 이제는 고인이 되신 L조합장과 나를 술자리에 초청하여 간 적이 있었다. 술집도 제법 괜찮은데 안주는 고작 오이 한 접시와 소주가 전부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조합원과 헤어진 후 조합장이 하셨던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 참, 이젠 오이만 보면 신물이 나는구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서글픈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농협 초창기엔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을 만나서 술 한 잔 살 때는 값이 제일 저렴한 오이와 소주를 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조합장은 오이를 제일 좋아한다며 술안주는 오이만 내놓는다고 했다. 조합 규모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조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오이가 싫다고 하세요’라고 했더니, 조합원 호주머니 생각해서 그냥 참는다고 하셨다. 이런 오해야 어쩌면 그냥 지나쳐도 큰 문제가 없지만, 오해는 자칫하면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엊그제 만난 지인도 바로 오해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고부간의 갈등으로 결국 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면서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오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설거지하고 끼었던 고무장갑을 꼭 수도꼭지에 올려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 장갑을 싱크대 옆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쳐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걸 보기만 하면 왼쪽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를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고 심지어 아들의 뺨까지 때리며 그날로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한동안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하고도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려 회복되었다고는 했지만, 참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모든 원인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느리는 수도꼭지에 올려놓은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옮겨 놓은 것이고, 어머니가 밀쳐놓은 커튼 사이로 이웃집이 빤히 보여서 그걸 가리느라 반대로 밀쳐놓았고, 거실에서 치는 피아노 소음 때문에 이웃의 항의를 받아서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먼저, 속에 있는 말을 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어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대로 했고, 시어머닌 시어머니대로 속으로만 분을 삭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섬기는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오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소통 부재로 인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자존심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때 입을 닫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나, 부딪히고 싶지 않아 참는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혼자만의 상상과 불안으로 또 다른 오해와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툭 털어놓으면 된다. 다만, 감정적이거나 직설적 표현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해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는 수학처럼 방정식이 있다고 한다.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5-3=2)하게 되고 이해(2)와 이해(2)가 모이면 사랑(4)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오해는 내 편에서 바라보는 생각이고 이해는 상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생각이다.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오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은 소통 부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일 듯싶다. 오늘부터라도 닫힌 마음 툭 털어놓고 오해를 풀어보자.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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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1-04-21
  •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한 세상 살다 보면 별일도 많다. 기막힌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산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오히려 모함까지 받게 된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치를 떨며 어쩔 줄 모른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자기 스스로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이건 무책임하고, 비겁하며 신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하는 일이다. 분노나 복수심, 보상받으려는 감정을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십여 년 전에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목숨처럼 사랑하던 아들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살아갈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 집사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주인공은 문득 범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도소로 범인을 찾아간다. 범인을 만난 주인공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힘들게 결정했다며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인은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평안합니다. 여기 와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평안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인공은 교도소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용서도 완전한 용서라야 한다. 모양만 용서라면, 언제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기 쉽다. 아니, 처음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완전히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위선(僞善)과 선(善)을 생각해 본다. 둘 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는 다를 바 없다. 다만, 마음이 다를 뿐이다. 위선은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 착한척해도 언젠가는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용서했다고 해도 마음 깊숙이 용서하지 않으면 ‘밀양’의 주인공처럼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는 권사님 한 분이 계시다. 갑자기 눈에 실핏줄이 터져 서울 큰 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며 기도를 부탁해 왔다. 약물로 치료가 안 되면 대수술까지 받아야 하며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합심하여 기도한 후 이튿날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출혈은 멎었다고 했다. 하시는 말, 이제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번 돈인데, 그것도 거액을. 거기다가 모함까지 받고 있다니 누구라도 화나고 분할 노릇이었다. 그걸 당하고 나서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못 잤더니 결국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멎지 않았는데 용서하고 나니 출혈이 멎었다고 했다. 세상 올 때 빈손으로 왔는데 그 돈 없어도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그 영혼이 불쌍해서 기도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도나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산다. 광속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면 가족 간 이웃 간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하찮은 일에도 폭발하고 만다. 이럴 때일수록 참고 포기하고 용서하자. 용서는 결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치료제다. 용서는 절망에서 건져주고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다. 포기하고 용서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눈의 실핏줄 출혈이 멎는 기적을 불러왔다. 용서야말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평화요, 행복의 열쇠다.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책 맨 앞장에 있는 존 던의 시 마지막 문장이다. 용서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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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
    인접 토지에 건축된 건물의 외벽에서 반사되는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참을 한도’를 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고려할 사항(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3다59142 판결) [사례]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들이 이로 인한 생활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 [대법원 판단]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 등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가 이로 인한 시야방해 등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음(이하 ‘생활방해’라 한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그 건축행위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이하 ‘참을 한도’라 한다)를 넘는 것이어야 한다. 건축된 건물 등에서 발생한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지는 태양반사광이 피해 건물에 유입되는 강도와 각도, 유입되는 시기와 시간, 피해 건물의 창과 거실 등의 위치 등에 따른 피해의 성질과 정도, 피해이익의 내용, 가해 건물 건축의 경위 및 공공성, 피해 건물과 가해 건물 사이의 이격거리, 건축법령상의 제한 규정 등 공법상 규제의 위반 여부,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용도와 이용현황,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지조치와 손해회피의 가능성, 토지 이용의 선후관계, 교섭 경과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할 때,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가해 건물의 외벽에 사용한 유리의 반사율이 매우 높고, 가해 건물의 외관이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인 타원형으로 저녁 무렵 상당한 시간 동안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로 유입되고 있어, 이로 인한 빛반사 시각장애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어선다는 등의 이유로, 거주자들이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아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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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로봇 같은 공공기관 전화 응대
    글을 쓰다가 궁금한 사항을 알아보고자 어느 공단에 전화했다. 신호가 가고 ‘고객센터입니다’라는 멘트에 이어 ARS음성 안내가 나왔다. 안내에 따라 상담원 연결을 원하는 번호를 누르니 개인정보를 확인 한 후 연결해주겠다며 전화기 버튼으로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입력하라고 했다. 입력하자 ‘상담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기다리라’는 음성이 들렸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기다리니 ‘계속 상담원 연결을 원한다면 1번을 누르라’고 했다. 꼭 문의해야할 일이기에 1번을 누르고 기다렸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얼마 뒤 또 ‘1번을 누르라’는 멘트가 나왔다. 이렇게 하기를 6번. 그러더니 ‘지사로 연결해 줄 테니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다시 주민번호를 누르고 나니 얼마 후 지사와 연결되었다. 고객센터 상담원과는 통화 한마디 하지 못하고 15분 쯤 지나서 겨우 연결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〇〇〇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스크를 쓴 때문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지요?”라고 인사하며 “전화하기 참 힘드네요.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1번을 누른 후 기다리라고 몇 번을 거듭하다가 결국 지사로 연결해주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아무 말 없이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듣는 순간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라든가 ‘그렇겠네요.’라는 말 한마디 쯤 하고 나서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전화 연결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말씀하세요.’라는 말만 하는 자세는 바른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말씀하세요.’라고만 했다. 로봇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공직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상대후보의 질문에 답변은 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세요.”라고만 하던 어느 후보의 느물거리던 모습,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의 질문은 외면하듯 “말씀하세요.”라고 하던 공직후보자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개인적인 상담이 아니라 제도에 관하여 묻고자 하는 것이라’며 알아보려는 내용을 말하니까 ‘그런 내용은 본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본부 고객센터에서 지사로 연결해주었는데 다시 본부로 알아보라고 하느냐? 이미 고객센터상담원과 연결하지 못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본부 담당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여 알아냈다. 본부에 전화하여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였다. 답을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왕 본부 직원과 통화가 이루어 진 기회에 평소 가졌던 생각을 이야기 하였다. 먼저 그 공단에 문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상담하려는데 주민등록번호13자리를 세 번이나 밝혀야 하는 경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상담을 하다보면 ARS의 불편함과 더불어 일부 공공기관 종사자의 메마른 태도에 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상담원은 많은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달라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는 멘트를 해야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뜻한 상담을 바라는 고객의 바람이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겠네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 혹시 ‘수긍’했다는 것으로 듣고 나중에 추궁당하거나 책임이 뒤따를 것을 염려해서인가? ‘고객은 왕’이라는 기울어진 상태에서 대접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기울어 졌다고 느끼는 시민도 있다. 상황은 상대적이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을 곰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의 존재이유를 잊지 말고 바람직한 응대 자세를 생각한다. 민원인도 답답하고 힘들다. 웬만한 민원은 성의를 담은 친절한 응대만으로도 녹아버린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유효기간이 없다./수필가ㆍ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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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7
  • 화장실에서 촬영 착수 판단 기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의 착수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판례(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1도749 판례) [사례] 피고인이 카메라 기능이 켜진 휴대전화를 화장실 칸 너머로 향하게 하여 용변을 보던 피해자를 촬영하려 한 사안에서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여 미수로 처벌할 수 있는지요? [대법원 판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한다)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서 ‘촬영’이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이나 저장장치에 피사체에 대한 영상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0도10677 판결 참조). 따라서 범인이 피해자를 촬영하기 위하여 육안 또는 캠코더의 줌 기능을 이용하여 피해자가 있는지 여부를 탐색하다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촬영을 포기한 경우에는 촬영을 위한 준비행위에 불과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2415 판결 참조). 이에 반하여 범인이 카메라 기능이 설치된 휴대전화를 피해자의 치마 밑으로 들이밀거나,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는 화장실 칸 밑 공간 사이로 집어넣는 등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행에 밀접한 행위를 개시한 경우에는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2도4449 판결, 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4도8385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휴대전화를 든 피고인의 손이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던 화장실 칸 너머로 넘어온 점, 카메라 기능이 켜진 위 휴대전화의 화면에 피해자의 모습이 보인 점 등에 비추어 그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미수에 대하여 유죄판단을 한 2심을 수긍한 사안입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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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7
  • 나눔의 행복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석 달 열흘 가뭄에 아침 이슬 같은 소식들이 전해진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의장의 통 큰 기부 소식을 들었다. 두 기업가는 어려운 형편을 딛고 벤처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많은 재벌이 후손에게 가진 편법과 수단을 다하여 부를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자기 재산의 절반인 5조 원과 5천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편의점에서 선행을 베푼 여학생의 이야기도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빚더미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주부의 어린 둘째 아들이 편의점에서 몇 가지 먹을 것을 샀는데 잔액이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느 여학생이 그 물건 외에 다른 것도 사줬다는 이야기다. 여학생이 대신 계산해 준 돈이 5만 원 상당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감사하다는 말과 월급이 나오면 갚겠으니 연락해달라는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따뜻하고 훈훈한 소식이다. 꽁꽁 언 땅을 뚫고 노랗게 솟아오른 복수초꽃처럼 아름답고 예쁜 소식이다. 또 다른 나눔도 있었다. 치킨집 사장님의 ‘한 접시의 치킨’ 이야기다.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소년 가장은 5천 원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치킨 5천 원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한 점주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 했고 이들에게 2만 원어치의 치킨을 주고 돈도 받지 않고, 이후 가끔 찾아오는 일곱 살 동생에게 배불리 치킨을 먹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잘라 주었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학생은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사장님 덕분에 그날 치킨집을 나오고 많이 울었다며 그 치킨집의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 끝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저도 성인이 되어 돈 꼭 많이 벌면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철인 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이 오고 있지만 언제 풀릴지 모르는 경제 한파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러한 때의 나눔은 더 밝고 빛이 난다. 귀 기울여 보면 이런 따뜻한 나눔의 소식들은 뜻밖에 많다. 다만, 조그만 불빛이 멀리 가지 못할 뿐이다. 30억 원을 기부한 전종복‧ 김순분 부부라든가 대하장학재단 명위진 이사장, 구두 수선공 김병량 씨 등등 올해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가운데서 나눔을 실천하신 분들이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고, 기를 쓰고 출세하려 하며, 더 많은 걸 소유하려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을 터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행복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어 돈 벌고, 출세하고, 권력 잡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는 일시적 행복은 가져다줄지언정 다함이 없다. 끝없는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자꾸만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다.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란 말이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추구하고 찾아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김범수 의장이나 김봉진 의장처럼, 전종복 부부처럼, 명위진 이사장처럼 그렇게 거액을 나눌 수는 없다. 그렇게 통 큰 기부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위대함을 찬탄할지언정 그렇게 마음에 닿지 않는다. 오히려 5만 원 상당의 물건을 사줬다든지 2만 원의 치킨을 사줬다는, 어쩌면 사소하고 작은 나눔에 대하여 더 진하게 감동하게 된다. 스스로 돌아본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냥 지나쳤다. 기다란 고무장화를 신은 장애인의 구슬픈 경음악을 못 들은 척, 못 본 척 외면했다, 살아오며 인색했던 갖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채우는 행복보다 비움의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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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생애 첫 직장, 첫 출근 하던 날 내게 주신 아버지 말씀이었다. 나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으니 흐린 물이 되란 말이 아닌가? 내 상식과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사시면서 터득한 지혜려니 하고 지나쳤다. 아버지 시대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겠지. 그러나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세상은 투명하고 공정한 맑은 물이어야 한다. 상탁하부정(上濁下不淨)이란 말도 있지 아니한가? 입사한 지 거의 1년이 되어갈 무렵, 책임자(참사)가 바뀌었다. 처음 분은 매우 인자하였다. 그러나 바뀐 책임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빈틈이 없고 깐깐하고 엄격했다. 어느 날, 결재 서류를 보다가 버럭 화를 내었다. 결재판을 내던지며 “이걸 서류라고 들고 와?” 순간 당황해서 사죄하고 결재판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아무리 서류를 살펴봐도 틀림이 없었다. 동료에게 물어도 모른다고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직장을 고만두기로 했다. 급여도 시원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내와의 약속(1년만 하기로)도 있었기에 잘 되었다 싶었다. 이튿날, 결재 서류에 사직서 봉투를 얹어 참사에게 갔다. “이게 뭔가“ “오늘부터 고만두겠습니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방에 들어가 보니 그분이 앉아 있다. 그분은 위장이 좋지 않아(수술하심) 도시락을 드셨는데 육개장이 놓여있다. 좋은 군인이 되려면 훈련을 잘 받아야 하는 것처럼 좋은 직원이 되려면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장래가 있어 보여서 의식적으로 그랬으니 이해해달라고 사죄했다. 머뭇거리며 수저를 들지 않는 나를 보고 그 매운 육개장을 드셨다. 자식 또래 직원에게 사과하는 모습도, 고춧가루 범벅인 육개장을 드시는 모습도 내겐 충격이었다. 식사 후 사직서를 돌려받았다. 그리고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물었다. 기안 용지에 쓴, 내 글씨 탓이었다. 받침 ㄷ자를 ㄴ자로 쓴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의 본뜻을 깨달았다. 글씨를 잘못 쓴 것, 결재판을 내던진 것, 욱하고 사표를 낸 것, 자식뻘 직원에게 사과하는 것, 위험을 무릅쓰고 매운 음식을 먹은 것, 그런 일들은 정상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숨 쉴 공간이다. 아버지가 하신 ‘맑은 물’은 숨 쉴 공간이 없는 걸 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엊그제 식당에서 4명의 친지와 칼국수를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일행 중 하나가 화장실에 가려고 나가다가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하여 나가 봤더니 한 젊은 친구가 우리 일행의 신발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있더란다. 신발을 찍지 말고 차라리 문을 열고 보라고 했단다. 댓돌을 보니 신발이 5개가 있었다. 하나는 주인 것이라 했다. 신고하면 돈을 준다나?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코로나 자가 격리 지침을 위반하고 병문안을 한 딸에게 150만 원의 벌금을 물린 기사를 보았다. 딸은 미국에서 입국하여 2주간 자가 격리 중이었는데 2시간가량 거주지를 벗어난 혐의였다. 아버지는 닷새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란에서는 아름다운 문양으로 짠 카펫에 일부러 흠 하나를 남겨 놓는다고 한다. 그것을 페르시아의 흠이라고 한다. 인디언들은 구슬 목걸이를 만들 때 깨진 구슬 하나를 꿰어 넣는다고 한다. 그것을 영혼의 구슬이라 부른다. 제주도에 갔을 때 돌담을 보았다. 돌과 돌 사이가 비어 있었다. 그래야 태풍에 견딜 수 있다고 했다. 바울 사도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고 했다. 신처럼 완벽한 인간은 하나도 없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더러는 빈틈도 있어야 사람 냄새가 난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감싸 줄 수 있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다. 보통학교조차 나오지 않은 아버지가 어떻게 채근담의 말을 인용할 줄 아셨을까? 천국에 가신지도 벌써 20여 년이나 되었다. 아버지가 더욱 그리워지는 아침이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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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0
  • 무죄 뒤집은 전동차 안 강제추행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에 따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기준에 관한 판례(대법원 2021. 3. 11. 선고 2020도15259 판결) 사례) 甲이 경의중앙선 전동차 안에서, 피해자 乙의 앞에 붙어 서서 손을 乙의 치마 속에 집어넣어 스타킹 겉 부분까지 손가락이 닿은 채로 乙의 성기 부분을 문지르고 더듬는 등 약 5분 동안 乙을 강제로 추행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례 [대법원 판단] 항소심은 사람이 많은 전동차 내에서 피고인에게 큰 소리로 항의하고 피고인을 잡고 전동차 밖으로 끌어 내린 뒤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의 태도에 비추어 적극적이고 용감한 성격인 피해자가 일정 시간 공소사실과 같은 정도의 피해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참았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함으로써,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기준을 제시하며, 이 사건 피해자의 진술이 그 진술 내용의 주요한 부분이 일관되며, 경험칙에 비추어 비합리적이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이 없고, 또한 허위로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만한 동기나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추행행위를 인지하게 된 경위에 있어서 ‘처음에는 생리대 때문에 바로 느끼지 못하였다가 한 30초 정도 뒤에 느낌이 이상하여 한 걸음 이동하였는데, 피고인이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따라 붙어서 이 사건 추행을 하였다.’, ‘3~5초 정도 눈으로 정확히 범행 장면을 목격하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고 따졌다.’는 등으로 진술하고 있는 이 사건에 있어서, 피해자의 항의 태도만으로 피해자의 성격을 속단하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판결은 개별적ㆍ구체적인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으로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원심의 판단에 증거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고, 피고인의 피해자에 대한 강제추행죄에 대하여 유죄취지로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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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0
  • 봄을 돌려다오.
    아직도 새벽에는 차창에 낀 서리를 제거해야 하고, 여전히 방한복을 벗어 놓지 못하지만, 한 낮엔 아침에 입고 나왔던 옷이 거추장스럽다. 아직도 겨울처럼 살고 있지만, 어느새 봄은 와있는 것이다. 봄은 제일 먼저 우리 집 화단으로 찾아왔다. 한겨울 추위에 얼지 말라고 덮어두었던 가랑잎을 걷어내자 온갖 꽃이 고개를 든다. 제일 먼저 샛노란 복수초꽃이 피었다. 이어서 노루귀, 개불알꽃이 피었다. 작고 앙증맞은 모습이 마치 웃고 있는 어린아이 얼굴 같다. 수선화, 튤립도 질세라 꽃대를 밀어 올린다. 이런 꽃들을 들여다보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어느 꽃인들 예쁘지 않은 꽃이 없다. 도대체 봄은 어디까지 왔나 싶어 부춘산에 올라가 보았다. 산에도 조금씩은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랑잎 사이에서 파란 풀들이 솟아나고 작은 나무의 실가지엔 조그만 이파리가 보였다. 아니, 큰 나무도 그냥 서 있는 게 아닐 것이다. 등산로 옆에 서 있는 나무에 귀를 대어 보았다. 나무의 뿌리에선 정신없이 수액을 만들어서 가지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가지를 흔들고 가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내 귀에는 수액을 빨아올리는 힘찬 나무의 펌프질 소리 같이 들렸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추운 겨울을 벗어나서 만물이 소생하는 봄, 울긋불긋 꽃 대궐 이루는 봄이 어찌 그립지 않으랴? 그러다 문득 봄을 기다리는 꽃들이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겨우 내내 추위를 견디며 아름다움을 준비해서 피운 꽃들이 작년처럼 푸대접받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가여웠다. 작년 봄이었다. 그야말로 화창한 봄날이었다. 모처럼 L목사님과 함께 봄나들이를 나섰다. 목적지는 몇 해 전에 신문에 소개되었던 금산의 관광지였다. 개심터, 칠백의총, 12폭포, 적벽강 등이 화려한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오전 10시경 출발하여 금산에 도착해보니 거의 정오가 되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도 있듯이 먼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한산했다. 주인에게 물으니 코로나 때문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헛걸음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그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하늘 물빛 공원이 있다기에 찾아갔으나 입구에 ‘코로나19로 입장 불가’라는 팻말이 냉정하게 길을 막고 있었다. 남이 자연 휴양림도 다르지 않았다. 아쉬워서 ‘12 폭포’ 한가운데라도 더 가보자고 했으나 L목사님이 반대해서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세상 물정 몰라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후회막급(後悔莫及)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니 전국 각처의 유채꽃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TV에서도 연일 각종 꽃 축제 취소 소식을 보도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꽃을 보기 위해 몰려들자 마을 입구에 ‘외지인 출입 금지’라는 처방도 모자라 애써 가꾼 유채꽃을 갈아엎었다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도대체 꽃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그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가? 겨우내 온갖 설한풍을 견디며 아름다운 자태를 맘껏 뽐내려 피운 꽃들을 그렇게 짓밟다니…. 새삼 코로나19가 미웠다. 그걸 보고 작년 이맘때 썼던 ‘슬픔의 봄’이란 시를 들춰 보았다. 「언제 저토록 서러워 보인 적/있었던가?/ 언제 저토록 외로워 보인 적/ 있었던가?// 환영받지 못한 꽃/잔뜩 피워놓고/ 애써 찾아온/봄은,/ 봄은 슬프다//유리알 같은/ 파란 하늘이/ 오히려 낯선 봄날//제발 꽃을 보러/ 오지 마세요// 코로나19가/봄까지 울리는구나!」 문득,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라는 이상화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그때는 일제가 우리 땅을 빼앗았다면, 지금은 코로나19가 이 땅을 빼앗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지금쯤 함평에도, 낙동강에도 유채꽃이 피었으련만, 신문엔 꽃에 관련된 기사는 한 줄도 없다. 구례 산수유꽃, 진해 벚꽃, 화개장터 매화, 십리 벚꽃, 원동 마을 매화꽃. 정말 가보고 싶다. 코로나19여! 제발 봄을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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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허위 구인광고 게제, 사이트 운영자도 책임
    판결요지 : 구인ㆍ구직 사이트에 허위의 구인광고를 올린 경우, 해당 사이트 운영자도 책임이 있다는 판결(대법원 2021. 2. 25 선고 2020두51587 판결) 사례) A는 2017년 자신이 운영하는 직업정보 제공 사이트에 구인자 업체명과 주소가 허위로 기재된 구인광고 6건을 게재하였고, 이에 고용노동부는 2018년 직업안정법에 따라 A에게 영업정지 1개월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A는 “준수사항에는 구인자의 업체명ㆍ성명ㆍ주소가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지 않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고용노동부의 1개월 영업정지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대법원 판단) 직업안정법 제36조 제1항 제3호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공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로서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6개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그 사업을 정지하게 하거나 등록 또는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법 제25조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는 '구인자가 구인신청 당시 근로기준법 제43조의2에 따라 명단이 공개 중인 체불사업주인 경우 그 사실을 구직자가 알 수 있도록 게재할 것'(제1호), '최저임금법 제10조에 따라 결정ㆍ고시된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구인정보를 제공하지 아니할 것'(제2호),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제3호)을 준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위임에 따라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는 직업정보제공사업자 및 그 종사자가 준수하여야 할 사항으로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구인자의 연락처가 사서함 등으로 표시되어 구인자의 신원이 확실하지 아니한 구인광고를 게재하지 아니할 것'(제1호), '직업정보제공매체의 구인ㆍ구직의 광고에는 구인ㆍ구직자의 주소 또는 전화번호를 기재하고,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주소 또는 전화번호는 기재하지 아니할 것'(제2호), '최저임금법 제10조에 따라 결정 고시된 최저임금에 미달되는 구인정보,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제4조에 따른 금지행위가 행하여지는 업소에 대한 구인광고를 게재하지 아니할 것'(제6호)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준수사항을 정한 직업안정법 제25조와 그 위임에 따른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의 입법목적, 관련 규정들의 내용과 체계 등을 종합하면,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 제1호에서 금지하고 있는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표시되어 있지 아니하여 구인자의 신원이 확실하지 아니한 구인광고를 게재한 행위'에는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을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은 경우뿐만 아니라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을 허위로 표시한 경우도 포함되며, 따라서 직업정보제공사업자가 직업정보제공매체에 구인자의 업체명(또는 성명)이 객관적으로 허위인 구인광고를 게재한 경우에는 직업안정법 시행령 제28조 제1호에서 정한 직업정보제공사업자의 준수사항위반에 해당하여 직업안정법 제36조 제1항 제3호에 따른 사업정지 등의 제재처분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며, A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1개월 영업정지처분은 정당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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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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