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7-1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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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전 만들어야죠”
    서산 산폐장 반대 대책위원회 한석화 위원장. 그녀는 아파트 주민들과 지역 주민 특히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지키고, 우리 주민들이 결코 우습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평소 궁금했었다. 왜 그녀가 삼보일배를 하고, 단식을 하고, 소복을 입고 화물차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면서 그토록 산폐장을 반대하는지? 서산 산폐장 반대 대책위원회 한석화(55) 위원장이 지난 8일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지난 4월 말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창립 25주년 기념행사에서 “나중에 차 잔 하자”고 약속한 것을 실천한 셈이 됐다. 하얀 원피스에 긴 머리를 날리며 미소 지으며 들어서는 그녀는 마치 순진한 소녀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4형제를 둔 평범한 어머니다. 그녀는 집에 남자만 5명이 있다고 한다. 가정에 머리가 긴 사람이 한사람은 있어야 한다는 가족들의 권유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오스카빌)아파트에 살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늘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남편이 엔지니어로 거제도에 주로 있다 보니 주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어요. 반대 시위에 나갈 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이장님은 자주 상황을 전화로 알려주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린이집이 방학이라 아기엄마들이 나올 수 없다며 며칠만이라도 1인 시위에 동참 해 달라는 거예요. 그마저도 거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1인 시위에 참여한 첫 날 뙤약볕 아래 모자를 쓰고 1인 시위를 하는데 정말 어려웠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다른 주민들은 매일 하는데 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죄 지은 느낌이 들어 일주일 정도는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야 그동안 참여하지 못한데 대해 다소라도 보답이 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오기가 생기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우리 자녀들이 좋은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엄마들의 마음이며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그녀는 1980세대 아파트(늘 푸른 오스카빌)단지 옆 산업단지에 산업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걸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또 1997년 산업단지 지정승인 된 것이 2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폐기물 처리시설을 한다고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어느 새 산폐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지도하는 위치가 되었다. “백지화 연대, 서산지킴이단,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성연이안APT비상대책위, 지곡 지킴이단, 양대동 소각장 반대 투쟁위 등 많은 단체와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우리 시민들이 자각의식, 연대의식이 높아지고 있어요. 제가 의사표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다가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이를 연상 했어요” 그녀가 고공 목칼 시위를 한 계기다. 하루 2시간씩 2개월간 무거운 통나무에 뚫린 구멍에 목을 대고 있자니 나무칼이 너무 무거워서 고통스럽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마치 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춘향전에서 새로 부임한 사또가 춘향의 미모에 빠져 수청을 들라고 강요하지만 춘향이가 거절하자 곤장을 치고 옥에 가두면서 춘향에게 씌웠던 형틀을 기억하게 했다. 천막농성 218일, 단식투쟁 10박11일, 주민들로부터의 고소고발, 적합통보 취소를 요구하며 서산시청 앞에서 세종시 환경부까지 130Km의 도보행진, 3박4일 환경부 노숙 투쟁 등 그녀가 산폐장 반대를 외치며 지나온 흔적이다. 그런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산폐장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끈을 놓지 않겠다는 각오다. “지역 주민 특히 우리 아이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터전을 지키고, 우리 주민들이 결코 우습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누군가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제가 맡은 겁니다” 한 위원장은 경기도 포천이 고향이다. 군산여고를 졸업하고 원광대 사범대 한문교육과를 다녔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오스카빌 아파트 입주자 총회에서 2017년 9월 산폐장 반대위원장으로 선출됐다./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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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10
  • “노사 반목 없는 좋은 사회 만들고 파”
    박세화 노무사는 사법고시 1차에 두 번이나 합격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건설현장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박 노무사는 지난달 4일 고용노동부 서산출장소 개소와 함께 노무법인 현명 서산지사를 개설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우리 경제 재도약을 위해서는 노사간 반목 해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반목(反目) 없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박세화(52) 노무법인 현명 대표노무사는 지난달 4일 고용노동부 서산출장소 개소와 함께 노무법인 현명 서산지사(서산시 쌍연남1로 37, 썬샤인빌딩 2층)를 개업했다. 그는 노동관계 법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 이해심 등 공감능력이 뛰어났다. 또 그는 심훈의 ‘상록수’내용처럼 농촌계몽운동을 위해 농협중앙회에 입사하여 6년 만에 퇴직했다. 사법고시 1차에 2번이나 합격한 수재이기도 하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 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2일 만났다. 그는 당진 석문이 고향이다. 삼봉초와 석문중학교를 다녔고 서울 영등포고를 거쳐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1학년 때 부모님을 여의었다. 어려운 가정환경은 들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군에 입대하기 전 방황의 80년대는 6.29 민주화 선언(87년)등 철학도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군 제대인 1995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지만 농민을 위해 일하겠다는 기대와는 달리 금융업무를 보면서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2001년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것은 사법고시. 경기도 마석의 한 산속에서 고시공부에 전념했다. 그리고 다시 5년 후 그는 당당히 사법고시 1차에 합격했다. 2009년에도 다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떨어졌다. 1차에 합격하면 초시, 재시 등 2차는 두 번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번번이 2차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는 떨어진 이유에 대해 “학문 마다 특성이 있고 출제위원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되는데 무식하게 책만 엄청나게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는 사이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컸다. 자녀들은 성장하여 장남은 고등학생, 막내는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지만 아내의 벌이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또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에 나가 낮에는 막노동으로 일당 10만원을 받으면 밤에는 책을 놓지 않았다. 살길이 막막하다는 생각에 결국 사법시험을 포기했다. 대신 노무사 시험을 대비했다. 그렇게 7개월 후 실시한 2011년 노무사시험에서 1차와 2차에 합격하며 공인노무사 자격을 획득했다. 이듬해인 2012년 천안에서 노무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이 때 필자를 만났다. 노무사 시험제도는 노동자들의 사회적 욕구 분출이 왕성 하던 80년대 중반에 처음 생겼다고 한다. 그는 “노무사는 일방적으로 노동자들만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노사가 서로 협력하고, 상생하는 매개적인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서산에서 개업한 이유도 서산태안지역이 노동법률에 대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삶의 철학, 직업 가치관에 대해 시대변화에 따라 노사 당사자 간 스스로 분쟁을 해결 할 수 있도록 화해하고, 타협하고, 협조 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는 일이 노무사가 해야할 일”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노사발전으로 경제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도록 노무에 대한 애로점, 노동 관련법에 대한 궁금증이 있으면 언제든지 성심 성의껏 상담에 응하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원수처럼 적대시 하다 사건 진행과정에서 저의 중재로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 할 때 사건이 풀린다”는 그는 “오해를 풀고 오랜 친구처럼 밝게 웃고 악수하는 모습을 볼 때 노무사로서 직업의 큰 보람을 갖는다”고 말했다./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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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7-03
  • “아름다움이란 노력입니다”
    2019 미스그랜드코리아 충청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문진희씨. 사진=황선철 기자   “아름다움이란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델들이 몸이 단지 날씬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까지 최선을 다해 관리한 그 노력이 아름답기 때문이죠” 지난 22일 대전유성호텔에서 열린 2019 미스그랜드코리아 충청대회에서 진을 차지한 문진희(25)씨를 대회장에서 만났다. 필자는 이 대회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다. 서울 출생으로 자영업을 하는 문기조씨와 박병임여사 사이에서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언남중. 고를 졸업하고 서울예술대학교 연기과 2학년 휴학 중이다. 그녀는 진에 선발된 소감을 묻자 충청지역과 인연을 강조했다. 어린 시절, 바다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주말이면 언제나 서산 바다로 향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기억이 뚜렷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산은 참 아름다운 곳이라고 덧붙였다. 그녀의 장래 꿈은 감동과 위로를 전하는 착한 영향력 있는 배우가 되는 것. 초등학교 연극부에서 배우의 꿈을 키웠고, 10세 때 무대에서 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살 수 있다는 경험도 했다면서 지금까지 셰익스피어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했다. 키 172cm, 몸무게 50kg으로 지성미 넘치는 매력은 내면에서 나왔다. 내면의 아름다움 비결은 독서라고 말했다. 친구와 우정을 위해 심리학책을, 다양한 성공한 사람들의 서적에서 힘과 지혜를 얻고 작가와 대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책 1권 이상을 꼭 읽는다. 그녀는 외면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건강이라고 했다. 밤샘 연습을 해도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 할 수 있도록 하루 1시간 이상은 꼭 운동을 하여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 좋아하는 음식은 고기와 야채가 어우러지는 샤브샤브다. 먹고 나서 소고기 육수를 베이스로 만든 볶음밥은 너무 맛있다고 했다. 다이어트를 꾸준히 해야 하는 전공을 가진 그녀로서는 슬픈 현실이다. 그녀는 만약 영화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가 소원을 들어 준다면 첫째, 가족의 건강, 둘째 가족의 행복, 셋째는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몸을 달라고 빌 것이라며 웃었다. 그녀의 별명은 ‘에너자이너(energizer:건전지 광고에서 백만 스물 한번을 써서 지치지 않는 에너지)이다. 평소 힘든 일정 속에서도 친구들을 재치 있는 유머로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준다고 붙여준 별명이다. 소년원 아이들을 뮤지컬을 통해 치유해 주는 봉사활동이 기억에 남는다는 그녀는 상대방의 장점과 예쁜 모습들을 찾아 좋다고 말해 주고, 좋은 일은 축하해 주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이 더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녀가 ‘진’으로 선발된 배경 중에는 이렇게 긍정적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씀씀이도 한몫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제 자신의 재능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누군가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미스그랜드코리아가 되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문진희씨는 이날 함께 선발된 강보미(선), 권희영ㆍ최다빈ㆍ임정화(이상 미)씨 등과 함께 다음달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개최되는 2019 미스 그랜드 코리아 한국 최종 본선에 출전하여 전국에서 선발된 미녀들과 미를 과시하게 된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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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6
  • 서산타임즈 이전 개소식
    서산타임즈가 읍내동에서 동문동 구 허니문예식장 건물로 사무실을 이전해 지난 21일 개소식을 가졌다. 이병렬 대표(왼쪽 아홉 번째)와 임재관 시의회 의장(왼쪽 어덟번째), 김정균 서산타임즈 운영위원장(왼쪽 열 번째), 심걸섭 고문(왼쪽 여섯 번째) 등 참석자들이 축하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지역부=황선철 기자   서산타임즈 확장 이전…도약 발판 구축 서산타임즈가 사무실을 확장이전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을 구축했다. 2005년 창간한 서산타임즈는 ‘서산 뉴스에 최고의 가치를’표방하면서 서산시민과 독자들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동문동 고운빌딩(구 허니문예식장) 4층으로 이전한 서산타임즈는 지난 21일 이전 개소식을 갖고 서산발전을 위한 역할에 더욱 충실하기로 했다. 이날 이전 개소식에는 서산지역 각급 기관 및 단체장, 시의원, 도의원, 공무원과 기업인 그리고 서산타임즈 애독자와 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지역기자, 산악회 등 150여명이 참석해 사무실 이전을 축하했다. 이병렬 대표는 “미디어환경이 급변하면서 언론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지만 오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바른 언론으로써의 사명을 갖고 더욱 정진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허현 기자   축하해 주신 분들…감사합니다 △가일현 서산타임즈 산악회 △가충순 서산시의원 △강명신 서산시체육회 수석부회장 △강춘식 서산타임즈 운영위원회 고문(서산인재육성재단 이사장) △강희곤 수석산업단지협의회장 △구본국 삼산조경 대표 △구본상 전 서산중앙공 총동창회장 △구창모 서산시 기업지원과장 △권범진 서산시 통합조사관리팀장 △김기윤 서산시 시정팀장 △김덕호 전 서산시체육회 수석부회장 △김선학 서산시 교통과장 △김양태 서산시 문화예술과 문화회관 관리팀 △김용환 서산관광농원 대표 △김정의 서산시 경로장애인과장 △김종민 서산시 체육진흥과장 △김현경 서산시 부시장 △김형순 전 서산교육장 △노교람 서산타임즈 지역기자 △도혜영 서산시 기초생활팀장 △류호중 서산타임즈 운영위원(삼정건설 대표) △박경환 서산시 자치행정과장 △박광주 서산시 건설도시국장 △박남진 모아정보 대표 △박노수 서산시 항만물류과장 △박상길 서산시 여성가족과장 △박정식 서산시 복지행정팀장 △방선아 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서병선 서산타임즈 운영위원(삼해 김 대표) △서산시의회 홍보팀 △서산타임즈 운영위원회 △서산타임즈 지역기자회 △서종심 서산타임즈 운영위원(대도관 대표) △성기영 서산시 교통행정팀장 △성승경 서산시 신성장사업단장 △성일종 국회의원 △신현웅 정의당 충남도당 노동위원장 △심은주 서산시 여성정책팀장 △안원기 서산시의원 △오세중 서산시의회 홍보팀 △유병수 전 서산시 항만물류과장 △유부곤 서산시의원 △유용구 대표 △윤만형 서산시체육회 부회장 △윤연상 성우시스텍 대표 △이권희 뜬쇠 예술단장 △이경식 서산시립도서관장 △이경희 독자 △이경화 서산시의원 △이규현 서산시체육회 부회장 △이무원 서산시 농업기술센터 소장 △이문구 서산시 기획예산담당관 △이병섭 서산시 공보팀장 △이상배 서산타임즈 산악회 홍보부장 △이상숙 서산타임즈 운영위원(영플라워 대표) △이석봉 서산시 공보전삼담당관 △이선희 서산시 경로복지팀장 △이성 양렬공 전인경 선생 기념사업회장 △이수의 서산시의원 △이애리 승무 전수조교 △이연희 서산시의원 △이오경 독자 △이용균 독자 △이용운 서산타임즈 운영위원(전 재인천서산향우회장) △이영세 주을노인요양원장 △이완섭 전 서산시장 △이종신 서산시 문화예술과장 △이창 해태제과 서산대리점 대표 △이희정 팔봉면 산업팀 △임미옥 서산시 복지재단 경영지원팀장 △임양순 동문 82통장 △임재관 서산시의회 의장 △장갑순 서산의회 부의장 △장순환 서산시 건설과장 △장승재 충남도의원 △전용자 전 서산여협 회장(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정성용 서산시 농정과장 △정세자 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정진석 기자(서울일보) △조규선 전 서산시장 △조규호 서산타임즈운영위원(신안건설 대표) △조동식 서산시의원 △조만호 서산시 자치행정국장 △조성범 전 서산시 시민생활국장 △조성호 서산타임즈 지역기자(인지 차부마트 대표) △조영학 서산타임즈 운영위원(대산공단협의회 상임이사) △진중관 서산시 사회복지과장 △최기을 서산시체육회 사무국장 △최기정 서산시의원 △최병부 서산시문인협회 사무국장 △최봉선 전 재인천서산시향우회장 △최상임 서산건우산양삼 대표 △최장환 서산타임즈 운영위원(대건환경산업 대표) △허혁 독자 화환ㆍ화분 보내주신 분…고맙습니다 △가광현 충남도산악연맹 회장 △가대현 서산인터넷뉴스 대표 △김기찬 서산시지속발전협의회장 △김기화 한강세무법인 대표 세무사 △김명일 천안신문 대표 △김영빈 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경위 △김용식 서령전기 대표 △김정균 르셀웨딩컨벤션 대표 △김태신 재경서산시향우회장 △도신 서광사 주지 스님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문건오 재경서산시산악회장 △박계교 대전일보 기자 △박동승 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서산동부전통시장 상인회 △서산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서산시 공보전산담당관실 △서산시 시민공동체과 △서산타임즈 산악회 △선우석훈 한서아스콘주식회사 대표이사 △성낙서 서산시재향군인회장 △성두현 초록마을영농조합 대표(서산타임즈 운영위원) △성우종 도원이엔씨 회장 △송명근 서산시의회 사무국장 △심현택 서산중앙고 총동창회장 △안동석 독자 △유기영 민주평통 서산시협의회장 △유병옥 서산시 축산과장 △유장곤 법무부 법사랑위원 서산지구 회장 △유필동 현대오일뱅크 상무 △이광축 TJB대전방송 사장 △이상숙 영플라워 대표 △이수영 서산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이우영 재인천서산시민회장 △이원영 홍성청소년수련관장 △이홍대 국립공주대 겸임교수(서산타임즈 지역기자) △정관희 대전일보 국장 △정지관 한국수자원공사 서산권 지사장 △조한구 서일고 이사장 △충남지역신문연합회 △최원호 부원화학 대표(서산타임즈 운영위원) △한석천 서산지역 사회교육협의회장 △한화토탈 총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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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2
  • “정신보ㆍ정인경 부자 현창사업 절실”
    ▲이성 회장은 간월도에 정신보ㆍ정인경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고 이를 기리는 한ㆍ중 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사진=최상임 작가   “정신보ㆍ정인경 부자는 위대합니다. 부친 정신보는 송나라 학문인 성리학의 새로운 유교문화를 고려에 최초로 도입하신 분입니다. 아들 정인경은 나라에 큰 공을 세워 고향인 부성현을 서주목으로 승격시킨 서산 정씨 시조입니다.” 이성(75) 양렬공 정인경선생 기념사업회장을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 국제학술대회장에서 만났다. 얼마 전 이성 회장으로부터 이 행사에 꼭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굉장히 반갑고 고마웠다. 그는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시 정책자문교수단장으로 시정에 많은 도움을 준 인연이 있다. 새삼 지난 2004년 양렬공 정인경 선생 기념사업회 창립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김종옥 초대회장을 비롯한 200여명의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서산의 역사를 찾는데 앞장서기로 했다. 그 당시 전국의 저명한 사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는 참으로 소중했다. 이성 회장은 한서대학교 대학원장(2001~2007) 시절 애향심이 남달랐다. 역사와 문화를 중시하는 그는 독일에서 식품공학과 식품법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로 학구적 인물이며 환경보호운동에도 앞장섰다. 고북면 용암리에서 태어나 해미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교 진학을 포기한 상태로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지어 모은 돈으로 예산농고에 입학했고 졸업 후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제대 후 건국대 축산학과에 진학해서 4년간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하고 대학 조교로 있다가 독일 육가공회사에 입사했다. 그곳에서 여행안내 등 아르바이트와 독일의 BONN(본) 대학과 베를린공과대학에 다니면서 문화와 역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베를린에서 공부하면서 고향 서산을 잊은 적이 없다는 그는 서산만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정신보ㆍ정인경 선생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한서대 재직시 김형순 전 서산시교육장과 정수도 박사의 권유로 사업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사람의 생각과 인연은 참으로 신기하다”는 그는 중국 절강성 강남 제일가에 3회 방문 참배하면서 정신보 어른께서 서기 1237년에 수일에서 수십일간 배를 타고 간월도에 기착하셨을 터인데 지금은 1시간내 중국 상해에 도착하니 그간에 시간과 공간의 간극이 짧은 시대로 변했다며 인류 문명의 발전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 회장은 이번 학술대회를 시작으로 간월도에 정신보, 정인경 선생의 기념비를 세우고 이를 기리는 한ㆍ중문화 축제를 개최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다문화시대를 맞아 귀화인 부자역사기념관 축조를 위한 자료수집과 서산에 다문화교육센터 유치에도 노력하겠다고 했다.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연화산 아래정신보와 양열공 정인경 선생의 묘가 있다. 시내에서 대산 방향 29번 국도변에 서산정씨 시조묘지입구 표지석이 있다. 그는 이곳 인근 임야 등 20여만평 일대에 정인경 선생의 상서로운 인물의 위대한 업적을 기릴 수 있는 성역화 사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타당성 용역비 확보가 시급하다며 동분서주하는 열정에 필자는 감동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를 지키고 찾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고 찾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가 없고 역사를 중시하는 민족이 번영한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 사실을 비추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고 보다 발전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그와 함께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 속에 새로운 미래를 열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우리 서산이 종교와 철학의 메카라는 것이 정신보ㆍ정인경 선생과 같은 위대한 인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화ㆍ관광 콘텐츠 개발을 위해서도 이 분들의 현창사업이 절실함을 느낀 하루였다. 이 회장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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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9
  • 서산타임즈 아라메봉사단…장기자랑 최우수상
      서산타임즈 아라메봉사단(단장 조한근)이 지난 9일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 일원에서 개최된 ‘나눔 실천 행복한 산행’장기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전북산악연맹이 전국의 발달ㆍ척수ㆍ지체ㆍ교통 장애 청소년과 전국 10개 시ㆍ도 산악연맹 관계자 등 7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한 이번 행사는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이 산행에 도전해 성취감을 느끼게 하고, 새만금 신공항 및 새만금 세계잼버리 성공 기원을 겸해 마련됐다. 이날 행복한 산행은 고군산군도 연결도로 개통으로 관광객들의 편익이 증진됨에 따라 선유도 트래킹도 겸해 열렸다. 장기자랑은 행사가 끝난 후에 열렸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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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서산 여자는 강합니다||[조규선이 만난 사람13] 연극배우 윤문식
    연극배우 윤문식 씨는 “홀로된 어머니는 나를 키웠고, 아내는 나를 배우로 살게 해줬다”면서 서산여자는 뭔 일 있더라도 자식 굶기는 일이 없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어머니는 강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저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힘으로 대학에 가고 졸업했으니까요.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어머니의 힘입니다” 영원한 광대로 살고 싶다는 연극배우 윤문식(76)씨를 지난 7일 예산의 한 카페에서 부인 신난희(58) 여사와 함께 만났다. 미국 공연을 마치고 8일에 있을 예산공연을 위해 사전 연습을 위해 방문했다고 했다.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산초, 서산중, 서산농림고(15회 축산과, 현 서산중앙고)를 거쳐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다. 필자의 중ㆍ고 선배이기도 한 그가 고교시설 배구선수로 관중을 웃기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추수감사절 연극제에서 인기는 절정이었다.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시 서산시 홍보대사로 고향 발전에 기여해준 인연으로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끊임없는 지식 습득과 수십 년 공연에서 얻은 지혜와 노력이 오늘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한 배우로 만들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당놀이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그는 명인으로 추대 받았다. 그는 요즘도 매일 50페이지 이상 책을 읽는다고 했다. 부인과 사별 후 18살이나 어린 신난희 여사와 결혼했다. 신 여사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윤 배우의 머리를 열어 보고 싶을 정도로 박학다식한 매력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이 기억하는 윤문식은 1969년 극단 가교에서 「미련한 팔자대감」으로 데뷔 후 50여년간 연극, 드라마, 영화, 마당놀이, 악단 등 장르를 넘나들며 그만의 독창적인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들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결해주었다. 또 서산사투리를 토속적이고 구성진 목소리로 우리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는 희노애락을 느끼게 해준 만능엔터테인먼트다. 그에게 삶, 가치관, 철학에 대해 물었더니 너무 어려운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과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를 술술 이어갔다. “우리 세대는 해방전후 태어나 6.25와 5.16 등의 격변기와 어려운 보릿고개를 거친 고생의 주역들로 중동, 독일에서 일해 1천불 소득을 3만불 소득으로 올렸다. 지금은 먹고 살만하니까 진보, 보수, 좌파, 우파가 싸우고 있다”며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다. 그냥 편하게 넉넉한 마음으로 자는 듯, 꿈꾸는 듯 살아야 한다. 나서는 것은 미래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방해되지 않는 늙은이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책 속에서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진리는 책속에 있다. 젊어지기 위해 책을 읽는다. 책을 보면 젊어지고 즐거움과 만족을 준다. 또 책 속에서 성인들을 만날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니까 이해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일을 20~30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라며 “돈을 못 벌어도 아무리 힘들어도 50년 이상 같은 일을 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춤을 추면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는 그의 아버지는 그가 7살 되던 해 돌아가셨다. 그 후 어머니는 행상에 나섰고 노점상으로 자식을 키우고 땅도 샀다. “지금의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자리가 우리 집이었다”는 그는 “그 땅을 팔아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서산 여자가 강한 이유였다. 이렇듯 그는 어린시설 어머니로부터 강인한 인내력을 배웠다. 윤문식 배우는 어머니의 정신으로 포용하고 용서하며 밝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오늘도 관객을 웃기고 있다. 그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윤 배우의 미소를 보면 ‘서산 마애삼존불’이 연상된다는 박은주 작가의 이야기를 떠올리자니 그는 여지없이 ‘자랑스러운 서산인’이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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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12
  • “예전의 남편을 찾고 싶어요”||[조규선이 만난 사람 12] 이영월 시인
    칠순에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한 이영월 시인. 그녀는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남편의 힘이고 공부의 힘이라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대산에 살고 있는 이영월(70) 시인이 지난 3일 자전적 에세이집 ‘노을에 비친 윤슬’을 들고 필자를 찾아왔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의 살아온 삶이 마치 나의 삶이요, 우리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지사지랄까? 감동과 연민이랄까? 1989년 필자가 수필집 ‘내 마음의 빈터’를 발간했을 때 책을 보내 달라는 편지 한 장을 받았다. 바로 이 시인이었다. 그 인연으로 30여년을 이어 오고 있다. 이영월 시인은 대산중학교 전신인 대산고등공민학교를 졸업하고 15세 소녀시절에 서울 마포소재 약국의 약사보조원으로 취직을 했다. 그가 20세가 될 무렵 약사는 미국으로 이민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함께 가자고 했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약사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한 청년을 소개해줬다. 그 청년의 임무는 공휴일마다 남산 등 서울구경을 시켜 주는 일이었다. 청년과 함께 서울 구경에 나선 그녀는 길을 잃을까봐 청년의 신발만 보고 따라 다녔다고 한다. 어느 날은 그 청년이 잠깐 나가있으라고 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남자 화장실이었다. 이렇게 순진했던 21세 처녀는 30세인 그 청년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다. 행복한 나날이 계속 되었다. 그녀에게 불행이 다가온 것은 2005년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인도 같은 해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 바닥에 앉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절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릴 적 가졌던 글 쓰는 소녀, 시인이 되고자 했던 꿈을 찾기로 했다. 그것이 희망으로 작용했던 것은 당연한 일. 이 시인은 남편을 간병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를 쓰기 위해 쉬운 책을 닥치는 데로 읽었어요. 이해가 되질 않을 때는 좋은 글을 베껴 쓰기를 수십 권. 성당에 다니면서 성서도 필사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노력의 결과는 2009년 월간 「문학세대」에 ‘장애인의 아픔’ 이란 시로 등단했다. 정말 시인이 된 것이다. 그녀는 시집에 “아플 때 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써 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시는 눈물을 닦아 주었고 아픔을 덜어 주었습니다. 문든 혼자 간직하고 있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썼다. 지난해는 300여 편의 시 중에서 107편을 골라 칠순과 결혼 50주년 금혼식을 기념해 시집 ‘메화꽃 필 때’를 발간했다. 이 시잡에도 그녀는 “남편이 곁에 있어 주어 행복하다”며 “잘 참아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싶다”라고 말해 부부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다. 그녀의 노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계간 「화백문학」에 ‘어머니 표 된장’이라는 수필로 등단해 수필가가 되었다. 60세에 중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3번 만에 합격하고 65세에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며 문학사가 되었다. 여기에 한자능력급수 3급, 아동 한자 지도사, 문해 교육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이처럼 질곡의 삶을 살아온 그녀가 나이 일흔에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판했다니 마치 내일 같이 기뻤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꾸 잊어 버려지는 것이 아쉬워 책으로 정리해서 나중에 자식들에게 엄마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그냥 삶의 흔적을 남겨야 될 것 같아 책을 출판하게 됐어요” 이제 그녀는 또 다른 희망을 찾아 여정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치매에 걸리기 전의 남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치매전문교육과정도 수료했어요. 제가 치매를 알아야 남편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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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4
  • “초밥은 3초의 미학입니다”||[조규선이 만난 사람 11] 강희재 명인일식ㆍ참치 대표
    강희재 명인이 “초밥을 만드는 3초 동안 정성은 물론 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며 ‘초밥을 3초의 미학’임을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사진작가   얼마 전이다. 외지에서 한 지인을 만났는데 일식 사대문파 강희재 달인이 운영하는 서산의 맛집 ‘명인’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가끔은 들렀던 곳이다. 지난 26일 문득 외지에서 만났던 지인이 생각나 동문동 명인일식ㆍ참치를 찾았다. 강희재(45ㆍ사진) 대표. 그는 SBS TV 프로그램인 ‘생활의 달인’을 통해 ‘명인’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돈 보다는 기술을 선택했기에 ‘명인’이 되었다는 그는 ‘명인’호칭도 자신이 만든 음식 맛을 본 고객들이 만들어준 호칭이라고 밝혔다. 인증서도 자격증도 없는 명인이라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명인’이란 호칭이 손색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객들이 붙여준 ‘명인’이란 호칭은 그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 만들어낸 걸작임을 재삼 느끼게 했다. 서산중앙고를 졸업한 그는 재학 당시 농악부 생활을 하면서 군악대에서 군 생활을 하는 꿈을 가졌다. 그러나 그러한 꿈은 단기사병으로 판정이 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이 되었다. 지역대대에서 복무를 마치고 농악부 선배의 권유로 강원도 홍천 일식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새로운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23세에 일식집 조리실장(선배)의 보조원으로 취직해 월급 70만원을 받으며 생활비 30만원을 제외하고 40만원을 봉투에 다시 넣어 선배에게 건넸다고 한다. 당연히 그 선배는 거절했다. “저는 돈을 벌려고 온 게 아니라 기술을 배우려고 왔습니다. 이제 선배님이 아니라 저의 스승님이십니다” 이러한 진심이 통했는지 선배는 매월 꼬박꼬박 수업료를 받았다. 그러면서 기술을 넘어 여러 가지 비법까지 전수하면서 남들보다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선배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며 서울의 유명 일식집에 조리실장으로 추천해 주었다. 하지만 15일 만에 쫓겨났다. 요리 실력은 있지만 손님들과 대화하는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다시 선배를 찾았다. 그 선배는 다시 올 줄 알았다며 직접 경험해 봐야 일식과 횟집이 다른걸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 체험을 해야 한다면서 음식을 미리 만들지 말라고 했다. 초밥 등을 만들면서 손님들과 대화를 주문했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이 끝난 후 신문은 물론 평소 가까이 하지 않던 독서까지 하면서 상식을 키웠다. 물론 음식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필요했다. 요리방법과 요리의 역사, 영양성분 등에 대해서도 시험공부 하듯이 지식을 익혀나갔다. 여기에 유머와 재치까지 겸비하느라 잠이 모자랄 정도였다. 음식만 잘하면 되겠지 하며 뛰어든 조리실장이 자리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다시 서울로 왔다. 일식집, 참치 초밥집 등 전문점에서 차근차근 노하우를 채워나갔다. 그렇게 10년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내려와 횟집과 포장마차 등을 개업했는데 모두 실패했습니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기술만 믿었는데 소용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는 7번을 실패했다고 한다. 곰곰이 실패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규모가 크던 작던 손님과 종업원 관리를 잘못해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조리사(주방장)의 고집도 실패 요인 중 하나였다. 특히 조리사들은 자기만이 추구하는 음식 스타일을 고집했다. 손님 개개인의 입맛에 맞추어야 하는데 자기 입맛에 맞추는 것이었다. 고객의 입맛을 알아야 하는 것도 실패를 하면서 터득한 지혜였다. 남을 배려하고 생가하는 문화가 요리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7전 8기라고 할까? 지금은 성공한 조리사로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했다. 이따금 유명 호텔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온다. 지난해에는 모교(서산중앙고 45회 졸업) 동창회에 장학금 100만원을 기탁하기도 했다. 그는 이제 고향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역 농특산물을 이용한 요리경연대회다. 맛좋고 싱싱한 우리지역 특산물을 홍보하는 데는 요리경연대회가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대전과학기술대학교 등에서 외래강사로 조리방법에 대해 강의를 하며 후학양성에도 매진하고 있다. 여기에 식품조각지도사 1급으로 식품조각, 과일카빙의 권위자로 아시아대표 한식국가대표 선발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 제12회 서울국제 푸드앤테이블 웨어 박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화려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천브랜드 음식개발을 위한 I-쉐프 경연대회에서 금상 수상, 대한민국 총 주방장 인증,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놀라운 기인부터 특별한 건강비법의 소유자들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인 TV 조선 ‘코리아 헌터’에서 대하 장인으로 출연하는 등 초밥의 명인을 넘어 ‘명인 강희재’가 그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초밥을 내보이며  “초밥은 3초의 미학”을 강조했다. 3초안에 초밥 1개 만드는 동안 사람의 정성은 물론 혼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난다고 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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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9
  • 단양‘잔도길’걷고, 고수동굴도 관람||서산타임즈산악회 정기산행
        서산타임즈산악회는 지난 25일 충북 단양군 단양과 단양강 줄기를 에워싸고 이어지는 단양느림보강물길 구간 일원인 ‘단양강 잔도’에서 5월 정기산행을 실시했다. 단양강 잔도는 단양읍 상진리(상진대교)에서 강변을 따라 적성면 애곡리(만천하 스카이워크)를 잇는 길이 1200m, 폭 2m로 조성됐다. 벼랑에 선반처럼 매단 길이라는 ‘잔도(棧道)’의 의미처럼 단양강 절경을 따라 벼랑 위를 걷는 길은 한쪽은 절벽, 다른 한쪽은 유유히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아슬아슬한 벼랑길이 펼쳐져 안전한 유산소 운동을 하기엔 안성마춤이다. 특히 단양강 잔도는 인근에 만천하 스카이워크, 수양개 빛 터널, 선사유물 전시관 등 관광시설이 골고루 분포해 체험과 휴식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게 또한 장점이다. 이번 산행에서는 또 고수동굴을 방문하기도 했다. 고수동굴은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2017년 국내 개방동굴 자체평가 동굴보존 부문’에서 전국 1위 평가를 받은 곳이다.한편 6월 정기산행은 6월 22일 경기도 포천군 백운산에서 실시한다. 지역부=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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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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