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21(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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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 위로하고 에너지 전하고 싶어”
    오영미(55) 서산시인협회장을 만난 것은 필자와 문협 회원으로 함께 활동했기 때문이었다. 평생 한 권의 저서를 내기도 힘든데 그녀는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올리브 휘파람이 확’,‘벼랑 끝으로 부메랑’, ‘상처에 사과를 했다’, ‘떠밀린 상상이 그물이 되는 아침’, ‘청춘예찬’, ‘모르는 사람처럼’등의 시집과 에세이집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1, 2권) 등 모두 9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래서 오 회장의 문학관과 인생관에 대해 알고 싶었다. 오 회장은 공주 출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상(詩想)에 대해 녹록지 않은 가정에서 1남 3녀의 장녀로 동생들을 챙기며 성장했던 기억, 유년시절 연탄가스로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일 등 어렵던 과거의 삶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학과의 인연은 공주정보고등학교 졸업과 동시 학교장의 추천으로 울산 현대중공업 특채로 의전실에서 근무하면서 사내 방송과 사보편집을 하면서다. “당시 사보는 사원들에게 지식정보의 유일한 매체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임원들의 칭찬이 오늘의 시인이 된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오 회장은 1988년 안경사인 박기남(62)씨와 결혼하면서 서산에 정착했다. 벌써 33년이 되었다. 이제는 서산을 떠나서는 살수 없을 정도로 깊게 정이 들었다. 문학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그녀는 결혼 후에 자녀교육을 하며 향학열을 재 점화 시켰다. 2006년 열린사이버대학에서 문예창작학사를 취득한데 이어 내친김에 한남대학교 대학원을 진학해 문예창작학과(2016년)를 수료하는 등 서산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에 들어갔다. 2002년 서산문학회(회장 유상동) 활동을 시작으로 그해 문예사조 ‘가야산 자락’ 으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5년 문예지 ‘시와 정신’ 계간지에 ‘이슬꽃’외 5편으로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이어 2019년 서산시인협회를 창립하며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아라메시집 4호를 발간하고 전국 규모 공모전을 통해 지역의 청년시인을 발굴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청년문학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올 하반기에는 ‘스산갯마을 전국시낭송 대회’도 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윤석중 동시낭송대회’와 석동 윤석중 얼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문학 축전 등도 준비하고 있다. 오 회장은 현재 호수공원로에서 북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서산지역 문단을 수준 높게 성장시켜 서산의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는데 앞장서 시민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북 카페를 운영하는 것도 서산문학인들의 소통과 작품 토론의 장소로 제공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북카페에서는 시창작을 공부하고 싶은 시민이 방문하면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도 주고 있다. 오 회장은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 서산예술총연합회 부지부장 등 문화예술분야 뿐만 아니라 서산인재육성재단 이사, 충남 도정신문 명예기자, 민주평화통일정책자문위원, 서산문화도시사업추진위원 등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재)서산문화재단 이사, 충남문인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무부장관표창(2006), 제14회 한남문인상 젊은 작가상(2019), 충남문인의 최고 영예인 충남문학상 대상(2020) 등 수상실적도 화려하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을 넘기면서 보고 느끼는 것을 후회 없이 살려 노력하고 있다는 오 회장은 반백의 머리가 매력적이다. “이게 원래 제 머리 색”이라며 “자연 그대로가 좋아 염색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에게 현재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외아들 장호(31)씨가 육사를 거쳐 현재 육군대위로 국토방위에 충실한 것과 손자손녀를 바라보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또 다른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코로나로 지친 서산시민들을 위해 시로 위로하고 에너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추구하는 문학정신이 꽃 피워 열매 맺기를 응원하면서 인터뷰를 마쳤다./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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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0
  • [화보]서산타임즈 3개 단체 임원 이ㆍ취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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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6
  • “장애인 생산제품 안심하고 사용하세요”
    “장애인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고 함께 희망을 나누는 것이 큰 보람입니다” 서산시장애인보호작업장 오금택(62) 원장은 장애인이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 인생의 보람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오후 부인 손은옥(53)여사와 함께 필자 사무실을 방문한 오 원장은 중증장애인의 이미용서비스를 맞추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2004년부터 17년째 집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25명의 중증장애인 가정을 방문하여 머리를 깎아 주고 집안청소 등 재가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부인이 한 달에 두 번 쉬기 때문에 그 날을 활용하고 있다. 서산시장애인보호작업장은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하던 2006년 설립했다. 그래서 더 애착을 갖고 있던 터라 오 원장의 방문은 매우 반가웠다. 특히 오 원장은 필자와 같은 동네에서 자랐기에 그의 봉사관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오 원장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한 때 가출소년이었다. 한창일 때는 잘나가는 운수업 사장이기도 했다. 지인의 꼬임에 빠져 다른 사업에 손을 댔다가 그동안 모아둔 전 재산을 탕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한보철강 하청건설사 근로자 수송하는 일, 회사 자재정리를 돕다 2층에서 떨어져 2년 동안 재활치료를 받았던 일, 현대건설 경비로 일했고,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하게 된 일화 등을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은 마치 남의 얘기인 듯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니 어려웠던 시절 기구한 삶을 성공한 삶으로 바꾼 것은 그의 성실성과 열정(적극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그는 어려운 때 일수록 긍정적인 사고로 만나는 사람마다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러다 지난 2000년.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지체장애인협회 서산시지회 최영숙 회장이 장애인의 이동편의를 위해 차량지원을 요청해옴에 따라 행사 때마다 차량운행 봉사를 실시했다. 그때부터 장애인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 후 2001년 서산시장애인복지관이 개관되었다. 다음해 4월 장애인 이동을 위해 대형면허를 소지한 유경험자를 뽑는다는 소식에 응시해 합격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3살이었다. 봉급도 68만 원에 불과했다. 산업재해 사고 전에 300만원 이상 수입을 올렸던 그로서는 4명의 가족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고민을 아내가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부인이 “생활비는 내가 해결할 테니 걱정 말고 애들(자녀)을 위해 직장에만 충실해 줘요”라고 했던 것.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선척적인 장애인보다도 후천적 장애인이 더 많다는 것도 알았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장애인을 이해하고 가족같이 잘 대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근무했다. 이러한 성실성을 인정받으면 그는 운전원에서 직업재활담당사무원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사회복지사도 아닌 사무원이 사회복지업무를 본다는 것은 곧 장애인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는 검정고시를 거쳐 헤전대에 입학하여 2007년 졸업했다. 사회복지사 자격도 취득했다. 재가복지담당으로 12년간 근무하면서 중증장애인 200여명을 성심성의껏 대했다. 퇴임을 앞두고 주위의 권유로 장애인보호작업장 원장 공모에서 합격해 2019년 1월 취임했다. 서산시장애인보호작업장은 장애인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제공과 생산활동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고 더 나아가서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여 직업을 통한 장애인의 자활 자립을 도모하기 위한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이다. 이곳에서는 종이컵, EM(유용한 미생물들)가루비누, 액상비누, EM발효액, 홍보용 판촉물 사업을 하고 있다. “우리 작업장에서 만든 제품은 ISO 9001(국제표준인증)을 받아 견고하고 친환경적이며, 위생적으로 만들어 안심하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오 원장은 제품이 많이 팔릴수록 장애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많다며, 서산지역 각 기관과 단체의 적극적인 관심을 당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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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드론 활용 최첨단 생활공간 구축하고파”
    한서대학교 무인기항공학부 드론응용학과 박주성(62) 교수는 예비역 준장으로 성연 출신이다. 명봉초, 성연중, 인하대 부속고를 거쳐 육군사관학교(40기)를 졸업하고 1984년 소위로 임관했다. 전방 비무장지대 GP소대장을 시작으로 주요 지휘관 및 참모를 역임하고 2012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보병 75사단장을 끝으로 37년 8개월간의 군 생활을 마감하고 올해 한서대 초빙교수로 고향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6일 필자 사무실을 방문한 박 교수로부터 삶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았다. 박 교수는 유년 시절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공학도가 되는 꿈,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가전제품이나 기계 같은 것을 보면 분해하고 조립해보는 것이 취미였고 재미였다. 부모님으로부터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러던 그가 장래 희망이 군인으로 바뀐 것은 고교 시절 선배인 사관생도가 학교를 방문하면서 부터다. 육사소개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하기 위해 모교를 방문한 선배의 모습에 매료되었던 것. 당시 선배는 육사 소개를 잘할 뿐만 아니라 외모도 준수해 귀신에 홀리듯 육사 진학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박 교수는 군 생활에서 보람되고 영광스러운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 국가안보를 지켜왔다는 자부심이라고 했다. 예편 후에는 육군정책연구위원으로 2021년 2월까지 3년 동안 근무하면서 드론봇(드론과 로봇)전투체계 업무를 지원하고 자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시대 도래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드론이 아닐까 생각 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가 드론에 푹 빠져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학습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7년 육군이 미래 핵심 전투체계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하면서 부터다. 그는 드론지도조종자 자격증을 만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획득했으며 현장에서 장병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소통을 하는 가운데 드론의 군사적 활용과 산업발전 도모를 위한 나름대로의 연구와 다양한 전문가 및 세미나 등 행사 등을 통해 드론에 대한 미래 첨단 수단이라는 강한 인식과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드론에 대한 관심과 경력, 활동의 영향으로 한국연구재단에서 추진하는 전문인력 초빙활용인사로 선정되어 한서대 무인기학공학부 드론응용학과 교수로 초빙됐다. 그는 “미래를 담당할 젊은 학생들에게 드론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와 경험을 전달하고, 미래를 건설할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는 생각으로 더욱 보람차고,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함께 밀려온다”면서 “아울러 서산시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 첨단도시의 스마트시티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지역사회에서도 역할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계속해서는 그는 “앞으로 우리가 생활하는 아파트에서 필요한 물품을 온라인으로 결재하고, 드론이 주방까지 주문한 물품을 배송하는 시대가 온다”면서 “아파트 주변의 안전위험요소를 드론이 직접영상으로 촬영해 해당가정에 전달하고 대응조치까지 실시하는 그야말로 최첨단 생활공간을 구축하는 시대를 고향에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을 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고도로 성공적이고 보람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4차 산업혁명시대 그의 꿈이 실현되기를 응원한다. 연세대에서 행정학석사, 배제대에서 행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저서로는 항공종사자(유인ㆍ무인 조종사)를 위한 항공기상(2019.9)이 있다. 수상실적으로는 국가방위에 이바지한 공로로 훈장천수장(2017.12)을 받았다. 가족으로는 1987년 육군 중위시절 지인의 소개로 만난 서산출신 김미희 여사(59)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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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 “서산시립 농악단 창단 하고파”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에게 힘이 되는 음악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이권희(48) 뜬쇠예술단장은 고교 1학년 때 선배들의 농악모습을 보고 농악부에 가입한 이후 30여 년 동안 외길을 걸어왔다. 부석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이 단장은 서산중앙고(서산농림고 농업토목과 44회)를 졸업하고 한국민속촌 농악단원으로 활동했다. 군을 다녀와서는 서산중앙고 농악부 강사로 모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1998년 당시 서산농고 농악부가 충남도 대표로 선정되어 전국청소년민속예술제에 참가 입상하면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이때부터 서산민속놀이에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그는 2000년 고교 선배의 추천으로 뜬쇠예술단(단장 권칠성)에 단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1년 후인 2001년 단장에 오르면서 전주세계소리축제 초청공연(2020년 11월), 창단 20년 정기공연(2005년 12월), 서울 광화문 이충무공탄신 기념 공연(2006년 4월) 등 전국적인 무대에서 서산 농악을 알려왔다. 또 쿠알라룸프르 뮤직페스티벌(2006년), 중국 상해 세계뮤직페스티벌(2007년), 중국 베이징 빙설 한중연문화축제 초청공연, 일본 아오모리현 ‘마늘과 소 축제’등에서 공연을 하는 등 국내외를 넘나들며 서산의 문화는 물론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빛내는데 앞장섰다. 필자는 2003년 일본 텐리시민의 날 행사 공연에서 이 단장이 상모놀이를 관심 있게 관람할 수 있었다. 당시 수 천 명의 일본 관객들이 기립 박수를 치며 이 단장의 공연에 열광하던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선하다. 이 단장은 서산 볏가릿대놀이와 서산농악을 재연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김상대 선생님을 만나면서 서산소리를 배우고 이를 공연에 올려 재연한 것이다. 2014년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제55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가하여 대통령상과 지도자상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충남도에서는 19년 만의 경사였다. 서산시도 서산군시절 황도 붕기풍어제 이후 처음 받는 큰 상이었다. 현재 이 단장은 후학을 양성하면서 서산의 정통농악을 가르치고 있다. 12명으로 구성된 뜬쇠예술단 대표로 전통과 창작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전국 각지에 초청공연과 기획 연출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단장은 “뜬쇠는 전통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단”이라며 “현시대에 맞게 전통 타악으로 창작 작품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그는 “시민들과 함께 문화교육 및 문화 인프라를 늘리는데 많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들어할 때 뜬쇠가 시민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보이기도 했다. 이 단장이 기획ㆍ연출한 공연 성과도 뛰어나다. 2002년 제7회 한밭국악전국대회 종합우수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2002년 제6회 창원국악경연대회 대상(농림부장관상), 2003년 제12회 전국농악경연대회 장원, 2012년 제7회 황산벌 전국풍물경연대회 대상, 2013~2014 제16회~17회 황토현전국농악경연대회 금상과 대상(국무총리상)을 받았다. 그리고 2014년 제55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는 호상놀이로 대통령상을 받는 영예도 가졌다. 계속해서 2015년 제41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농악부분 장원(국무총리상), 2017년 제24회 청소년 민속예술축제 기획ㆍ연출 문화체육부장관상, 2020년 제4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장원(국무총리상)을 차지했다. “서산시립 농악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바람을 보이고 있는 이 단장은 2009년부터 한국국악협회 서산시지부장을 역임하고 있다. 세한대학교 전통연희학사와 석사를 마친 만학도로 2005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안민정(49)여사와 결혼 3남을 두고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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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31
  • “열정적인 지부장이라며 기대 큰 것 알아”
    “학창시절 우연히 째즈공연을 본 후 색소폰에 매료되었지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밴드부에 가입했고, 군에 입대해서도 군악대에서 생활했습니다” 이성구(50)농협 서산시 지부장은 학창시절과 군대 생활을 밴드부에서 보낼 정도로 음악광이었지만 전역을 3개월 앞두고 부친이 작고하는 바람에 부모에 대한 죄책감에 음악을 그만 두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 농협중앙회 공채시험에 합격해 농협 서산시지부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년이 흘러 지난 1월 그는 첫 직장생활을 하던 곳에 지부장으로 발령 받았다. 1999년 대전으로 발령이 난 이후 지부장으로 발령 나기 전까지 서산에 대한 향수를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홍성이 고향인 그에게 서산은 어떤 곳이기에 잊은 적이 없다고 했는지 궁금했다. “지난 1월 부임 이후 2개월간 관내 12개 농ㆍ축협을 3회 이상 방문하여 조합장님들과 농민을 만나 농업인 소득 증대 방안과 농업관련 현안을 청취했습니다. 서산의 농업인 소득증대를 위해 농산물 유통활성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결론을 얻었지요” 이 지부장은 농업에 대한 비전, 농촌 농민에 대한 사랑, 그리고 열정과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기반을 서산에서 만들어졌기에 고향만큼이나 서산을 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초임 당시 이은갑 지부장의 “농협은 사람으로 이루어진 인적단체다. 항상 농업인과 함께하고, 농업인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오늘날까지 좌우명이 되어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입사 후 전 직원 체육행사에서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본 지부장은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최고 고참이 맡고 있던 지도사업 담당을 그에게 맡겼다.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농협중앙회 최초로 농협 주부대학을 개강하고, 해외전문가 초청 농업교육, 수도권에서 서산농산물 홍보 및 판매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전국 지도사업 우수 사무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신규직원 때 지도사업 업무는 농업ㆍ농촌ㆍ농민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농협생활에 있어 어떠한 일을 해야 할지 깨닫게 해 주었다고 했다. 그는 이후 대전 오정동지점, 대전지역본부, 홍성 여신관리단 총무과장, 농협중앙회 조합구조개선부 검사역, 농협중앙회 인사부 차장, 충남지역본부 회원지원단장, 농협홍성군지부 농정지원단장, 농협중앙회 인사총무부팀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는 동안에도 농협혁신 사례를 만들었다. 지난 1월 서산시지부장으로 부임한 후에도 그는 설 명절을 맞아 관내 농협에서 추천 받은 10종의 농산물로 농산물 꾸러미 200여개를 만들어 안내 팸플릿과 함께 전국 주요 고객에게 전달 큰 호응을 얻었다. 이를 통해 서산농산물의 브랜드화한 소포장 판매가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산 농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목표가 설정된 듯 했다. “앞으로 안정적인 공급과 판매량 증대를 위해 농산물산지유통센터(APC)건립이 시급하다고 생각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지부장은 “유통이 생산을 지배하는 시대가 됐다. 농업인이 피땀흘려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주기 위해서는 유통구조를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면서 "농업인과는 소비자가 함께 웃는 유통 대변화를 위한 소비자 중심의 유통 체계 확립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지역 농업계에서는 젊은 지부장이라며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난 25년 동안 농협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를 서산농업 발전을 위해 쏟아 붇겠다”고 덧붙였다. 홍성군 광천 출신으로 2001년 대전 오정동지점에서 근무할 당시 만난 곽란선(43)씨와 결혼하여 2녀를 두고 있다. 글ㆍ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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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3
  • 흙과 불로 아름다움 만든다
    운산 IC에서 5분 거리인 운산면 모정길 155. 큰 바위에 서암동천 글자의 유래가 있는 숲속에 있는 여미도예 공방의 작품은 아름다움의 극치다. 특히 노천에서 구운 작품들은 투박하고 거칠며 오묘한 불 맛을 머금고 있었다. 지난 13일 여미도예를 방문해 김해연 원장을 만났다. 흙이 좋아 도예에 빠진지 20여년이 됐다는 김 원장은 오는 5월 서울 여성공예센터에서 5월의 작가로 선정되어 ‘노천소성’을 주제로 전시를 갖게 됐다며 기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원장은 평범한 주부였다. 남편 직장을 따라 서산으로 오게 되었으며 아는 이 하나 없는 서산에서 무료함을 달래려 취미를 찾다 도자기공예에 빠지게 됐다. 흙의 매력에 빠져 살아온 지 벌써 20년이 되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즐거웠어요. 흙을 만지는 촉감도 좋았고요” 뒤늦게 뛰어들었지만 흙으로 작품을 만드는 일이 마냥 즐거웠다는 그녀는 좀 더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배움을 위해 단국대 교육원 도예과에 입학했다. 한국도예의 권위자인 박중훈 교수와 임헌자 교수의 지도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24시간 개방되는 학교에 남아 열심히 배웠다. 방학 때는 사발, 주전자 등을 배우러 스승님들을 찾아 다니고 학교에서 하는 특강도 빠지지 않았다. 너무 하고 싶었던 공부였기에 힘든 줄 몰랐다. 그렇게 노력한 결실은 2011년부터 연 3회 한국 사발학회에서 주관한 사발 공모전에서 입선하며 도예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수상한 작품들은 코엑스에서 공예대전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었다. 이후에도 단국대 동문들로 구성된 단웅회 회원전, 중국 경덕진 도예전 등 지난해까지 30여회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리고 2015년 첫 개인전을 갖는 기쁨을 누렸다. 서산문화회관에서 ‘담고 나누고’를 주제로 열린 전시회는 서산시민들에게 호평을 받고 인기를 끌었다. 계속해서 미협 서산지부의 ‘아름다운 동행전’에 옻칠 주전자, 2016년 고성 국제 라쿠페스티벌 초대전과 2019년 내포 아트 페스티벌 생활 공예전에 노천 소성한 항아리를 출품해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더 기쁜 일은 2013년 여미리에서 신문화 공간사업으로 만든 문화센터에 입주 작가로 선정 된 것.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열심히 작업했던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 공예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을 시도해 보고 싶었다. 바로 라쿠소성과 노천소성이다. 라쿠소성(RAKU)은 짧은 시간에 약 1000도 정도로 가마를 때고 바로 꺼내 왕겨로 덮어 연을 메기는 저온 소성 기법이다. 뜨거운 가마 속 기물을 꺼내 온도 편차로 크랙이 가게 되는데 이 크랙 사이로 연이 먹어 자연스럽고 멋진 작품이 만들어진다. 화려한 유약으로 멋진 작업이 가능해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작품의 영역을 넓혀갔다. 노천소성은 선사시대에 토기 굽는 방식으로 노천에서 얕은 구덩이를 파거나, 그대로 작품들을 놓고 장작을 둘러 서서히 작품들을 달궈 굽는 방식인데 소금과 저온에서 녹는 붕사등으로 변화를 주어 거칠고 투박하지만 더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2018년부터 운산면 주민자치센터 여미리 노랑마을학교 도예강사와 수공예 작가들과 친환경농산물을 생산하는 대표들이 만든 에코 드나니 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원장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서산시가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서산시 관광투어 스탬프 장소인 여미도예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도자기 수업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김 원장은 “문명물질이 발달할수록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며 “흙과 불과 싸워 아름다움을 만드는 여인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또 “제대로 된 노천장을 만들어 많은 분들에게 노천의 불 맛을 알리고 싶다”는 소망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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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7
  • “이웃 섬기는 봉사하는 삶 살 것”
    서산에는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동흠(58) 서산시자율방범연합대장도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자율방범대는 경찰의 손길이 미처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민간 방범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음달 10일 취임을 앞둔 배 연합대장을 지난 6일 만났다. 배 대장은 1988년 명지자율방범대(대장 김기택)에 가입한 이후 조장, 사무국장, 부대장을 거쳐 2012년 7대 명지자율방범대장으로 취임하기까지 대산 안뜰마을(기은, 대죽, 대로, 독곶, 화곡리)의 주민 안전과 야간 농산물 도난 방지 등 범죄예방에 헌신해 왔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 연합대 재무국장을 거쳐, 감사, 수석부대장에 이어 2021년 연합대장으로 선출됐다. 서산시자율방범연합대는 4개 지구대(중부, 대산, 해미, 부석)와 27개 지대 700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대원들은 낮에는 일터에서 일하고 밤에는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범죄예방, 청소년 선도 활동, 야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2차 사고방지를 위해 교통통제를 하는 등 주민 안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현재 대산읍 대로2리 이장을 맡고 있는 배동흠 대장은 대산감리교회 장로 배영원(87)씨의 차남으로 대산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부친의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레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명지초, 대산중, 부천공업고를 졸업하고 공군 병장 제대 후 현대건설에서 3년 일하다 현재는 명지에서 한신철물을 경영하고 있다. 모교인 명지초 운영위원장, 대산읍발전협의회(회장 김지석) 부회장, 대산읍이장단협의회(회장 김기의) 감사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명지감리교회(담임목사 문성수) 장로로 착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아동학대, 노인학대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2019년부터 서산시와 자율방범대의 협약사업으로 300여명의 대원들과 독거노인 1대1 멘티ㆍ멘토사업인 생명사랑운동을 진행해 오고 있는데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늘어가고 자율방범대원들은 감소하고 있어 걱정이 되지만 이 사업은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한 각 지대에서는 관광지 환경정화사업, 축제 행사에서 주최 측 요청시 교통정리 등의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배 연합대장은 대로2리 이장으로 마을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찾고, 아름다운 자연경관 자원을 가꾸고, 주민들의 소득증대 방법을 찾고 있으며, 수시로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도시민들이 찾아와 쉬고 싶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했다. 휴경지 임대와 유수지에 연꽃을 심고 대로2리 노인회(회장 김근성)와 수작업으로 하는 소득 창출 등 어르신들이 존경받고 아이들이 사랑받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명지초등학교 총동창회(회장 백성현)의 지원으로 지난해 24명 졸업생에게 24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하여 꿈을 심어 주시기도 했다는 그는 농어촌학교 학생 수가 감소되고 있어 걱정된다며 오고 싶은 학교로 만들고자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해 유관기관을 방문하는 등 뜻있는 지역인사들과 지혜를 모으고 있다고 했다. 배 연합대장은 “안 맡았으면 몰라도 맡았으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모토”라고 말하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앞으로도 마을과 모교, 방범대, 교회 등에서 충실히 맡은바 소임을 다하고 우리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글 사진=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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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10
  • 서산 코로나19 확진 1년…방역대응 빛났다
    9일은 서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코로나19는 1년간 서산에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끼쳤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화가 됐고,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행정적 조치의 용어가 처음 사용됐으며, 교육현장에는 비대면 강의 시스템이 도입됐다. 서산시는 코로나 확진 발생 지난 1년 방역대응 추진현황을 9일 공개했다. 시는 지난해 1월 20일 국내 코로나19 확진환자 발생에 따라 감염증 방역대책반 운영, 선별진료소 및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 비상근무 돌입 등 방역에 총력을 기울였다. 주요행사들은 연기 및 취소하고, 방역수칙을 시민들에게 적극 홍보했으며, 방역 취약지 및 다중이용시설 등 집중 방역과 코로나 확산방지에 모든 행정력을 동원했다. 지난해 3월 9일 코로나19 첫 확진자 발생 후 현재까지 총 174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해외유입자는 19명이다. 충남도 내 4번째로 많은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인구수 감안하면 방역 성과가 눈에 띈다. 도내 10만 명 이상의 시 7개를 대상으로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수를 비교해 보면 서산시는 97.1명으로 논산시 46.3명 다음이다. 타시의 경우 100.3명에서 부터 147.2명까지 발생했다. 도내 평균인 113.1명과 전국 평균 171.3명 보다 낮은 수치다. 이는 시민단체 중심으로 면마스크 제작ㆍ배포, 시민 방역단을 통한 터미널, 다중집합장소 등 방역취약지 소독 등 시민들의 방역 참여와 ‘거리두기 등 방역 수칙 준수’ 등이 주효했다. 9일 현재 서산지역 코로나19 검사현황은 52,501건이다. 중복 검사횟수(자가격리자 13일째 검사, 고위험군 주기검사 등)를 제외하면 38,474건으로 인구수 대비 21.4%에 이른다. 지난해 기간별로 살펴보면, 1~3월 국내 코로나19 발생으로 재난안전대책본부 설치, 선별진료소 운영, 방역물품 구매, 긴급재난회의 등을 개최하며 코로나19 방역체계 구축에 집중했다. 3월 첫 환자 발생 이후 총 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시는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2개소 설치 운영하며 코로나 확산 방지에 총력을 다했다. 4월, 소상공인 및 실직자 등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급하고 고위험 집단시설(요양시설, 요양병원 등 종사자)에 대한 전수검사를 진행했다. 교내 코로나19 발생 대응 모의 훈련과 황금연휴기간 관광객 밀집지역 특별방역을 했으며, 개학대비 학원 및 초등학교 통학버스 방역소독을 실시했다. 5월 중순 9번째 확진자 발생으로 확진자가 다니는 사무실을 폐쇄해 안전에 만전을 기했다. 6~10월에는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해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섰다. 총 1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고 해외입국자는 10명이었다. 자가 격리에 만전을 기해 추가 확산을 막았다. 9월에는 동선공개 등과 관련해 소통콘서트를 열고 맹정호 서산시장과 보건소 방역담당 등이 직접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11월에는 부대, 주점, 체육시설, 종교시설 등 5건의 집단감염 사례가 발생하며 26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특히, 주점 발 집단감염은 관내 범위를 벗어난 사례로 지침에 따른 방역범위 설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는 방역범위를 확진자 방문과 동시간대, 동일공간 내 노출된 전원으로 검사대상을 확대하면서 추가 감염을 막아냈다. 12월에는 총 92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종교시설 발, 단일 집단감염으로 51명이라는 기록적인 확진자가 발생했다. 모임 자제 등을 호소하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시민들은 위기 속 성숙함을 보여줬고 3~4차 감염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올해 1월 1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그간 확진자 중 2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2월 들어 집단감염의 모든 상황이 마무리됐고, 2월 26일에는 백신예방접종이 시작됐다. 하반기까지 희망하는 시민들 접종을 완료할 계획이다. 시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맞아 쉴 틈 없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달려왔다. 부족했던 부분은 신속히 채우고 시민들과 소통하며 방역시스템을 보완해 나갔다. 맹정호 시장은“우리 시에 코로나19가 발생한지 만 1년이 됐다”며 “어려운 시기 속 시 당국을 잘 따라주신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백신접종이 차질없이 추진되고 있다”면서 “안심하지 않고 앞으로도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시민의 안전을 위해 밤낮 없이 뛰고 또 뛰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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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9
  • “소중한 역사적 사실 묻혀서는 안 돼”
    제102주년 3.1절을 앞두고 서산지역 3.1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인물을 인터뷰하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해 서산시청 시정연구 동아리인 ‘만세서산’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수소문하여 만세서산 이재휘(49ㆍ세무 6급) 회장을 지난달 28일 오후 만났다. “코로나 시국에 시민들이 3.1운동 정신을 이어 받아 이를 극복했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연 이 회장은 반만년동안 민족의 역사를 변화시킨 사건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3.1운동은 민족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무언가 지역발전에 기여하기로 동료직원 7명이 뜻을 함께했다. 바로 이 모임이 ‘만세서산’이다. 만세서산은 서산 시정 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사업을 분야별로 연구하는 9개 동아리 중 하나다. 이 회장은 서산토박이다. 농부인 이보식(1940~2006)의 장남으로 오산초, 서산중, 대전명석고를 거쳐 충남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고향 서산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그는 서산에 대한 역사의식을 갖게 했고 사학과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1997년 지방공무원 세무직 9급 공채에 합격, 운산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그는 읍면동을 거쳐 2018년 세무과 등에 근무하면서 마을 출장, 세금징수, 농림업무 등 종합행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늘 뇌리 속에 잊히지 않는 것이 있었다. 공직자로서 시민에게 무언가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감, 그리고 대학시절 서산출신 충남대 국사학과 김상기 교수가 쓴 ‘서산지역 3.1운동사’논문에 나오는 수많은 의병투쟁과 애국 계몽운동을 한 우리 서산 선조들의 잊혀 가는 흔적을 찾는 일이 매우 시급함을 느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이를 발굴 선양하는 일을 시작했다. 맹정호 시장의 적극적인 후원은 물론 동료직원, 국가보훈처 관계 공무원 등이 큰 힘이 되었다. 독립운동 당시 형사 기록부와 제적등본을 발급 받고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위해 출생년도, 거주지 등 현지를 방문해 확인했다. 100여 년 전 일이라 기억하는 분이 거의 없어 실사에 무척 어려움이 많았다고 호소했다. 좀 일찍 했었다면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많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독립유공자 13명을 대통령표창 국가유공자로 선정되도록 했다. 또 해미장터에 3.1운동 만세터 표시판을 설치토록 했으며, 서산지역 3.1운동책자 1,000부를 제작해 학교와 언론사 등에 배부했다. 뿐만 아니라 서산독립운동사 초청강연회, 독립운동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만세서산의 이러한 활동내역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한완상)가 국민 참여 기념사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환경이나 정보통신에 관심이 있을 뿐 이보다 더 중요한 서산지역에도 이런 훌륭한 분이 계신데 소중한 역사적 사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 했고 이러한 뿌듯한 역사를 시민들에게 알려서 서산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됩니다” 이 회장은 “3.1운동 정신의 진정한 실천은 사익보다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앞으로 그는 흩어진 우리 지역의 3.1운동 관련 자료를 수집ㆍ연구하여 시민들에게 홍보하고 청소년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보였다. 이 회장은 2016년‘열심히 일한 공무원상’을 받는 등 모범적인 공무원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0년 지인의 소개로 만난 박주연(44) 여사와 결혼하여 8살 딸을 둔 행복한 가장이다. 그는 “요즘처럼 예측 불가한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뿌리가 없는 화려한 꽃보다 서산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탕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선조들의 숨결을 찾다보면 그 속에서 우리 할 일이나 방향이 자연스럽게 정립될 뿐 아니라 시민 스스로 애향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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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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