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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은 종교와 철학의 메카”
    한국예술종합학교 성기숙(54)교수가 서산을 방문했다.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가 지난 23일 음암면 탑곡리 서산 박첨지놀이 전수관에서 열린 제7회 대한민국전통무용제전을 주관했기 때문이다. 성 교수는 한국춤문화유산기념사업회장이다. 이날 행사를 마친 성 교수를 만났다. 성 교수는 필자를 만나자 대뜸 “중고제 국악명인 서산출신 심정순-심화영의 예술적 업적, 서산 박첨지놀이의 무형유산적 가치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행사도 중고제 전통가무악의 재조명과 기록화를 위해서다. 박첨지놀이가 연행되는 탑곡리 마을 속으로 들어가 내포지역 전통가무악의 실존과 그 의미를 로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는 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성 교수는 인지에서 성재경(1927-1997)씨 2남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때 미군부대에서 근무, 상당히 진취적이고 앞선 의식의 소유자였다. 성 교수가 서울을 드나들며 무용 등 예능교육을 받게 해 준 것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한 원동력이다. 조부 성낙인(1891-1952) 선생은 구한 말 한학자이자 궁중제례를 맡아보던 전사(典祀)였다. 그녀는 인정초 3학년 때 안윤숙 교사로부터 기본춤, 검무(劍舞)등을 배웠고, 사물놀이 명인 김덕수 선생의 친 여동생(김순례)이 지도교사로 있는 서산여고에 진학하여 무용반에서 활동했다. 이후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을 역임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조흥동(80) 선생 문하를 거쳐 대학시절에는 한국창작춤의 대가 임학선 성균관대 명예교수에게 춤을 사사했다. 또 궁중정재의 명인 김천흥(1909-2007) 선생으로부터 정재무를 배우는 등 당대 최고의 춤꾼들로부터 우리 춤을 배웠다. 그녀가 일찌감치 무용학자 및 무용평론가로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다. 80년 대 후반에는 중앙대 교수이자 문화재위원을 지낸 정병호(1927-2011) 선생과 인연이 닿아 본격적으로 무용이론가 길을 걷게 된다. 1992년 국립문화재 연구소 연구원 시절 전국을 대상으로 전통무용가 실태조사를 하면서 내포의 국악명인 한성준(1874-1941)과 심정순(1873-1937) 가(家)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이어 1996년 문사철(文史哲) 등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 춤의 이론과 역사를 정립해 보겠다는 포부를 갖고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사직하고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동안 쌓아온 무용평론가로써 신뢰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 ‘춤’지 발행인 조동화(1922-2014) 선생이 평생 수집한 근현대 무용관련 자료 수만 점을 기증받아 춤자료관 연낙재를 개관하게 된 것이 큰 보람이라고 했다. 심화영(1913-2009) 선생과 만난 일화도 소개했다. 서산 읍내동 양유정 근처 작은방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소리, 장고, 단가, 가야금, 춤 등을 가르쳤던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1993년도 필자가 대전일보 기자 당시 이보형 문화재전문위원 고증을 받아 심정순기념비(서산문화회관 옆) 비문을 지은 일, 심재덕(1889-1967), 심수봉 등 심씨 가계도 등 소상히 알고 있었다. 성 교수는 서산은 중고제 판소리를 넘어 다양한 민속 예능이 잔존하는 유서 깊은 고장이라며 굿, 농악, 시조, 박첨지놀이 등 대상을 확장하여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서산은 삼국시대부터 내륙(중국)으로 향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민속 예능 뿐만 아니라 불교문화, 유교문화와의 연관 속에 폭넓은 관점에서 문화유산적 가치를 재조명해야 할 종교와 철학의 메카라고 말했다. 성기숙 교수는 국립무용단 자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는 충남도 무형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등 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전통춤 연구」, 「전통의 변용과 춤 창조」, 「한국 춤의 역사와 문화재」, 「정재의 예약론과 공연미학」 등 30여권(공저 포함)이 있다. 서산 출신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무용학자 성 교수의 삶 속에서 무형문화유산 연구를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를 응원한다. 조규선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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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 “서산 발전 위한 역할 결국 나를 위한 행복”
    제15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시상식에서는 각 부문별 수상자들이 그동안의 활동만큼이나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전했다. ◇…정치부문 수상자 성일종 국회의원은 “서산타임즈는 서산뿐만 아니라 출향인 들까지 네트워크가 잘 구성되어 있다. 고향을 잊지 않게 서산과 출향인을 연결하는 일에 앞으로도 앞장서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국회의원으로 지역의 대표 언론에서 자랑스런 서산인으로 선정하여 상을 받는 것은 제겐 큰 영광”이라며 “이 상이 지역을 위해 나아가 국가를 위해 더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경제부문 주인공 최길학 서림건설 회장은 “서산을 대표하는 향토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힘써준 임직원들과 서산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안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 준 회원사여러분들에게 수상의 영광을 돌린다”며 “이 상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지역 경제와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해 더욱 노력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고 향토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회부문에서 수상한 박재헌씨는 “봉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가족”이라며 “어렵고 힘들 때 마다 격려와 위로를 전해 준 가족, 특히 집사람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앞으로도 서산의 명산을 가꾸는 일뿐 아니라 나눔과 사랑을 실천해 반딧불 같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행정부문 수상자 김지범 서산시 보건위생과장은 “먼저 코로나19 소규모 감염이 지역 확산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방역에 동참해 준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며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도 최일선에서 코로나19와 분투해준 송기력 서산시보건소장님을 비롯한 직원들과 영광을 나누겠다”고 답했다. ◇…애향부문 주인공 김태신 스산티에스건설 대표는 “고향이 좋아서 또 고향사람들이 그리워 향우회활동을 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오늘 상까지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며 “꿈에서 잊을 수 없는 고향 서산을 위해 늘 살아가겠다”고 밝혔다. ◇…애향부문 수상자 장만훈 재인천서산시민회 명예회장은 “서산타임즈는 제 고향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명품신문’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인천지역 출향인들이 우리 고향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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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이모저모] 자랑스런 서산인상 시상식
    사회ㆍ오카리나 연주 호평 ◇…이날 시상식은 수상자가 행진하는 동안 공적사항이 낭독되면서 시상하는 가요제 시상식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 아울러 행운의 열쇄와 금장 상패가 한 세트로 특별히 제작된 상패가 전달돼 상의 품격을 높였다. 여기에 배영금씨의 차분한 사회와 구서현씨의 오카리나 연주가 곁들여지면서 화려하면서도 매끄러운 행사 진행에 기여. 전ㆍ현직 정치인 화합 장 ◇…이날 행사에는 수상자인 성일종 국회의원과 서산시의회 이연희 의장을 비롯해 가충순, 김맹호, 안원기, 유부곤, 조동식 의원 등 서산시의원과 장승재, 김옥수 도의원 등 기초ㆍ광역 의원들이 대거 참석. 여기에 조규선ㆍ이완섭 전 서산시장, 우종재 전 서산시의회 의장이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환담을 나누고 수상자들을 축하.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 ◇…수상자들의 가족은 물론 함께 해온 동료들이 대거 참석해 기쁨이 배가. 특히 수상자들은 전원 부인과 함께 시상대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는 등 수상의 기쁨을 만끽. 최길학 경제부문 수상자 부인은 “오늘처럼 남편이 자랑스러운 적이 없었다”고, 애향부문 김태신 수상자 부인은 “자랑스러운 남편을 둬 서울에서 일찌감치 출발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다”며 웃음. 역대 수상자들도 축하 ◇…역대 수상자들도 대거 참석해 격려. 이수영(서산지역 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처장) 1회 수상자는 “15년을 이어오는 동안 상의 품격이 높아지면서 공직자는 물론 시민들 사이에서도 선망 대상인 권위 있는 상이 됐다”며 “서산의 가치를 높이는 훌륭한 시민들을 발굴하는 계기가 계속되길 바란다”고 소망. 이날 김금배, 김대환, 우종재, 이용운, 최봉선씨 등 역대 수상자들은 직접 참석했으며, 가기천, 김응준, 성우종, 최종만 역대 수상자는 화환을 보내 수상자들을 축하. 허현 기자/지역부 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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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창간 15주년 기념식…감사패ㆍ우수공무원 시상
    자랑스런 서산인상 시상식에 앞서 진행된 창간15주년 기념식에서는 지난 15년간 신문사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같이해온 유청(평생교육과장), 이병섭(사회복지과 복지행정팀장), 오세중(부춘동 주민지원팀장)씨 등 3명에게 특별감사패를, 서산지역 사회 및 직능단체로부터 우수공무원으로 추천 받은 도혜영(복지6급), 이용율(간호6급), 이은아(행정7급), 정종태(농업7급), 이근우(전산8급)씨 등 5명에게는 우수공무원상을 수여했다. 허현 기자/지역부=노교람ㆍ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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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제15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부문별 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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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자타가 공인하는 서산의 영웅들
    서산타임즈가 제정한 제15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시상식이 지난 26일 저녁 잠홍동 르셀웨딩컨벤션 4층 컨벤션홀에서 한준섭 서산시 부시장, 이연희 시의회 의장, 성일종 국회의원, 조규선ㆍ이완섭 전 서산시장, 우종재 서산시 노인회장, 이윤자 서산시여성단체협의회장, 이규현 서산시 체육회장, 윤만형 민주평통 서산시협의회장, 전순환 한국지역신문협회 충남협의회장, 수상자와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자랑스런 서산인상은 올해 △정치부문 성일종 국회의원 △경제부문 최길학 서림건설(주) 회장 △사회부문 박재헌 △행정부문 김지범 서산시 보건위생과장 △애향부문 김태신 스산티에스건설 대표ㆍ장만훈 재인천 서산시민회 명예회장이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병렬 서산타임즈 대표는 “수상하신 분들 같은 시민과 공직자가 더욱 많아질수록 서산시민들은 더 따뜻하고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준섭 서산시 부시장은 “15년간 우리 서산의 가치를 높이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온 공직자와 시민을 발굴해 수상하는 자랑스런 서산인상은 서산사회는 물론 공직사회의 사기 진작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연희 서산시의회 의장은 “자랑스런 서산인상을 통해 서산시민과 서산지역 모든 공직자들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마음, 더 나아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회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며 “자랑스런 서산인상은 우리 사회를 행복하고 살기 좋은 지역으로 한발 더 다가가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한구 제15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심사위원장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시대정신과 업무에 대한 열정, 수년간의 해당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성을 참작하여 엄정하게 평가하여 수상자를 선정했다”며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밝은 사회를 이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자랑스런 서산인상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서산타임즈는 시상식에 앞서 창간15주년 기념식을 갖고 지난 15년간 신문사 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같이해온 공직자에게 특별감사패를, 서산지역 각 사회 및 직능단체로부터 우수공무원으로 추천 받은 공직자들에게는 우수공무원상을 수여했다. 이병렬 대표는 기념사를 통해 “서산타임즈는 지난 15년 동안 서산의 가치를 높이고 서산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 왔다”며 “앞으로도 ‘서산 뉴스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서산 발전을 위한 올바른 길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면 허현 기자/지역부=김명순ㆍ황선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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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7
  • “민태원 선생 청년정신 기리며, 서산을 ‘청춘예찬도시’메카로”
    서산 출신의 문인이자 언론인인 우보의 문학작품과 문화적 업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고군분투에 나선 이가 있다. 우보 민태원 기념사업회 김가연 초대회장이다. 김 회장은 지난 7일 창립총회에서 회원 만장일치로 회장에 선출되면서 취임소감을 통해 “서산 출신으로 대한민국의 대표 문인이며 언론인인 우보 민태원 선생의 발자취를 찾아 보석 같은 문학작품과 빛나는 문화적 업적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는데 앞장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우보 민태원 문학상 제정 및 백일장 개최, 민태원 생가 복원 및 청년 공원 조성 등이 기념사업회가 추진할 사업이다. 한 마디로 서산을 민태원 선생의 청년정신을 기리는 메카로 만들고 나아가 서산을 ‘청춘예찬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포부다. 김 회장에게 기념 사업회 발전 방안과 선양사업에 대한 계획을 들어보았다. - 초대회장에 선출된 것을 축하드린다. 소감은? “서산에서 문인으로 활동하면서 서산 출신 문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우보 민태원 선생이 서산 출신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지금까지 서산지역 문화예술에 동참해 왔다. 이제 우보 민태원 선생을 선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 한다. 막중한 자리에 앉게 되어 어깨가 무겁지만 열심히 하겠다” - 어떤 일에 중점을 둘 계획인가? “우선 기념사업회가 창립됐다는데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서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기념사업회를 홍보하는데 중점을 둘 계획이다. 아울러 민태원 선생을 선양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민태원 선생을 알리는 일을 깊이 있게 진행해 나갈 것이다” - 우보 민태원 선생에 대한 생각은? “서산시민들도 아직 민태원 선생이 서산 출신이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수록됐던 ‘청춘예찬’의 저자가 민태원 선생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청춘예찬’은 1930년대 젊은이들의 피 끓는 열정, 원대한 이상, 건강한 육체를 들어 청춘을 찬미하고 격려한 명문으로 평가 받고 있다. 힘과 박력이 넘치는 남성적 문장으로 물 흐르듯 도도하게 격문을 지었다. 기념사업회가 민태원 선생을 선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있나? “우리민족은 문화적 이상과 열망이 높고 문학적 욕구가 강한 민족이다. 현재 전국의 각 지자체에서는 인문도시를 선포하고 문화도시로의 도약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다. 기념 사업회에서는 우선적으로 유족, 문인, 전문가와 시민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대승적 차원의 자리를 마련해 선양의 단초를 마련하고 전국 규모의 문학상 제정, 백일장 개최, 생가 복원, 민태원 청년공원 조성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민태원 선생이 강조한 청춘의 열정, 사랑, 이상을 널리 알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프고 기댈 곳 없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의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문학에 대한 흐름을 제대로 해석해낼 수 있는 거시적 안목과 서산시의 문화에 대한 상황을 세심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미시적 안목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우보 민태원 선생 기념사업회장으로 역량을 발휘하겠다. 어깨가 무겁지만 따뜻한 응원과 관심으로 지켜봐 달라” 정리=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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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1
  • “불안ㆍ혼란은 언제든 극복할 수 있어”
    그녀는 황해도 굿을 하는 무녀다. 서산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황해도 굿을 하게 된 계기는 이북에서 피난 오신 분들이 주로 서해안 지역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실제 황해도에서 피난을 오셨던 그녀의 부모들도 군산을 거쳐 서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8살 때 내림굿을 받고 무녀가 되었다. 정순덕(53)무녀를 지난 18일 만났다. 어린나이에 무녀가 된 사연이 궁금했다. 그녀는 5살 때 신병을 앓았다고 했다. 병원에서 조차 진단을 내리지 못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눈을 뜬 채 하얀 수염의 신령님을 보는 경우도 많았다. 죽었다며 멍석으로 덮었더니 갑자기 살아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그녀를 어머니(유초기, 1924-2012)가 옥녀봉 아래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녀가 가리킨 곳을 팠더니 황해도 무당들이 신당과 굿을 할 때 모시는 몇 점의 탱화가 묻혀 있었다. 지금 그녀의 신당에 모셔진 옥황상제님을 비롯한 신령님이다. 결국 어머니께서는 무당으로써 자식의 운명을 받아드리고 8살 되던 해 단옷날에 내림굿을 통해 그녀를 무녀로 태어나게 했다. 이렇게 내림굿을 한 ‘애기무당’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서산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점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녀가 된 이후 서산 동부시장에 큰 화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은 동부시장에 큰불이 났다. 또 염전에서 일하다가 갯도깨비에 미친 남자를 위해 굿을 벌였더니 그날 밤 완치됐다. 이런 소문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0년 상경하여 황해도 지방문화재 만구대탁굿 보유자인 우옥주(1920-1993)선생에게 사사를 받았다. 또 김금화 신어머니와 인연이 되어 황해도 무속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가장 큰 무당의 제자가 되었다. 무당으로서는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밟은 셈이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렇게 성숙한 무당이 되기 위해 수십 년간 교육을 받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고통 받는 사람과 공감 능력을 키웠다. 서울에 거주하면서도 고향인 서산 옥녀봉 산신당(그녀의 내림굿을 해 준 고 유순덕 선생 세움)을 봄가을로 방문하여 지성을 드려왔다. 이제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녀다. 1996년에는 세계 샤머니즘 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2018년 한국문화의 집, 무녀전, 스페인 말라카 대학 초청 굿, 환웅둥지 굿(속리산 에밀레 박물관), 1986아시안게임 개막기원 굿(잠실 주경기장), 88서울 올림픽 성공기원 굿을 비롯해 이한열 열사(1987, 연세대), 박종철 열사(1988, 서울대), 고양시 금정굴 양민 학살(1996), 제주 4.3희생자(1998, 종로 연강홀)진혼 굿 등을 벌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신령님의 뜻에 따라 진혼굿을 마쳤을 때 희생자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하는 모습에서 무녀로써 제 삶이 소중함을 알았다는 정 무녀는 앞으로 신령님이 하늘에서 허락하신다면 ‘환인ㆍ환웅ㆍ단군’을 모실 수 있는 단군 성전을 짓는 게 소명이라고 했다. 새로운 단군성전에서 나라를 위해, 인류를 위해 천제를 모시고 공부하고 수행하고 싶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태안반도 황도 풍어제에 함께 했던 어릴 적 기억을 지금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 그곳에서 정성을 드리고 싶다는 바람도 보였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면 행복, 가정, 건강이 아니겠느냐”는 그녀는 “무당으로서 늘 신령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 신령님들이 늘 안정되고 편안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그래서 제가 지금껏 빌어 주었던 많은 분들이 모두 편안해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특히 그녀는 요즘의 코로나19와 관련 “모든 화는 하늘의 이치에 역행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며 “불안과 혼란은 언제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영험한 무녀로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우리 민족의 특성이 ‘한’과 ‘멋’, ‘신명’이라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꿈의 사회로 오기까지 옛 문명사회에서 가치창조의 리더는 무당이었다. 그녀의 영검(사람이 바라는 바를 들어주는 신령한 힘)함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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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0
  • “라이온들은 보석 같은 존재”
    “봉사를 위해 언제든 발 벗고 나서는 우리 회원들이 있기에 총재로서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우리 라이온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 한규남(67) 국제라이온스협회 356-F지구 총재는 사업과 정치를 두루 경험했다. 남은 인생은 남을 위해 봉사를 하겠다며 정치를 그만 뒀다. 지난 7월 세종특별자치시와 충청남도를 관할하는 국제라이온스협회 356-F지구 제9대 총재로 취임한 그는 99개 클럽 3900여 회원들과 함께 열혈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지난 10일 점퍼 차림으로 필자 사무실을 방문한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봉사활동을 활기차게 못하는 것이 아쉽지만 방역수칙을 지키며 실시하다보니 마음만 바쁘다고 했다. 그래도 총재 취임을 하면서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했다. 한 총재는 태안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4남 4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송암초, 태안중, 태안고(6회)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상경했다가 6개월 만에 아버지(故 한석희)와 두 형님이 작고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왔다. 어린 나이에 가장으로 3살 조카를 비롯해 온 식구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결국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74년 지방공무원 5급(현9급)시험에 합격, 서산군청 내무과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군 제대 후 수협중앙회 충남무역출장소로 직장을 옮겼다. 공무원 월급이 17,500원인데 비해 수협은 55,000원에 상여금이 1700%였기 때문이다. 수협충남무역출장소는 서산, 태안, 당진, 보령, 홍성, 서천 등을 업무구역으로 어촌 소득증대에 기여했다. 갯지렁이로 연간 40억원, 꽃게 100억원 이상의 수익이 창출되어 부자어촌을 만드는 기반을 마련했다. 라이온스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 무렵이다. 1986년 10월 서령라이온스클럽에 가입하면서 봉사의 가치를 알게 되었고,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그리고 2000년 서령라이온스클럽 회장, 2003년 서산태안지역 부총재를 역임하면서 서산시민 4600여 명 초청 경로행사, 소년소녀가장 장학금 지급, 독거어르신 김장 전달 등은 물론 서산시 지체장애인협회 후원회장, 서령고 카누부 후원회장 등 지역봉사활동을 했다. 그러한 공로로 2004년 필자가 서산시장 당시 서산시민대상(사회봉사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주위의 권유로 서산시의원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3선으로 서산시의회 부의장까지 지냈다. 의정활동을 하는 동안 최우수 의정대상, 지식경제인대상을 받았다. 민족통일충남도협의회 부회장으로 국민포장(대통령2018)을 받았고 민주평통서산시협의회 부회장으로는 대통령표창을 받기도 했다. 2011년에는 한서대학교를 졸업하면서 만학의 꿈도 이뤘다. 그는 2018년 라이온스 지구 부총재(당시 총재 황종헌)로 에티오피아 봉사활동에 대한 기억도 소개했다. 17시간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하자 자기들(6.25 참전용사)은 한국을 돕기 위해 22일 간(528시간) 배를 타고 부산항에 도착했다며 그 당시는 우리(에티오피아)가 잘 살아서 한국을 도와주었지만 지금은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를 잘못해 온 국민이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울면서 말하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참전용사들이 병원에 다닐 봉고차 구입비 1천만원, 참전 사단에 TV 1대와 컴퓨터 1대를 지원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6.25참전용사는 3520명으로 현재 154명이 생존해 있어 올해도 한국참전용사기념일에 꼭 참석해 고마움을 전하겠다고 했다. 서산에 살면서 지금도 한분 한분 만나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꼭 약속을 지킨다는 한 총재는 평소 절대로 남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자는 신념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1978년 친구의 소개로 만난 송희자(64)여사와 결혼 1남1녀를 두고 있다. 365일 저녁을 안 먹고 자는 것이 그의 건강 비결이다. 그동안 받은 것을 사회봉사로 보답하기 위해 라이온 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한 총재의 의지가 우리사회를 밝고 풍요롭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다가왔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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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4
  • 어리굴젓 세계 명인을 꿈꾼다
    “서산의 명물 간월도 어리굴젓을 소비자에게 진상(進上)하는 정성으로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서산 간월도 굴이 최고지요. 갯벌이 좋고 여름철 고수온, 겨울철 저수온의 강한 자연에서 자라 육질이 단단하고 굴 향이 강합니다. 당연 영양분도 많고 맛도 좋지요” 간월도 굴을 자랑하는 그는 유명근(55) 어업회사법인 간월도어리굴젓(주) 대표다. 경영학 박사이자 대한민국 수산전통식품명인 제6호인 그가 지난 20일 「AHP를 활용한 굴 산업발전정책 우선순위 결정연구」라는 경영학 박사 논문을 갖고 필자를 방문했다. 유 대표의 ‘굴’에 대한 찬사는 계속됐다. 전 세계에서 굴을 먹지 않는 나라는 없다. 생굴을 먹거나 레몬즙을 뿌려서 먹고 훈제로 먹는 나라도 있지만 굴을 소금에 절이고 발효시켜 고춧가루 뿌려 알싸한(매콤한) 굴젓을 만들어 낸 곳은 서산 간월도가 유일하게 세계 최초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굴이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어패류 중 영양소가 가장 많아 바다의 우유라고 불린다며 “굴을 먹어라, 그러면 더 오래 사랑하리라(Eat Oysters Love longer)”라는 서양 속담까지 소개했다. 이에 질세라 필자도 1991년 1월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 비문을 지은 이야기를 꺼냈다. 황석봉 작가에게 서산명물 간월도 어리굴젓 글씨를 의뢰하고 동양화가 이환영 화백에게 간월도 전경을 그려달라고 부탁해서 어리굴젓을 담는 도자기를 만들었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오늘의 유 대표가 있기까지 간접적인 조력자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니 나름 뿌듯했다. 유 대표에게 간월도는 삶의 터전이고 어리굴젓은 생계수단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조규점,1919-2013)와 어머니(이경자, 76)는 바다에서 굴을 따서 절이고 발효시킨 어리굴젓을 배를 타고 광천장에 내다 팔았다. 또 어리굴젓을 머리에 이고 걸어 서산 장까지 나가 팔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보내며 그는 25세에 간월도리 이장을, 28세에 간월도 어촌계장을 맡아 마을 일을 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어리굴젓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93년.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셋이 섬마을 간월도 어리굴젓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95년 섬마을표 상표를 출원했다. 2002년 1억 원 수출을 달성하고 2004년도에는 어리굴젓을 팔기위해 당시 심대평 충남도지사와 동행하여 미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2005년 간월도어리굴젓이 해양수산물 전통식품으로 인증을 받았고 이듬해엔 유 대표가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렇게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여세를 몰아 2012년 어업회사 법인을 설립하여 1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2020년 현재는 3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며 수출액만 20억 원에 이르고 있다. 수출국도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일본 등으로 확대되면서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서산 김을 수출해 달라는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유 대표는 이러한 바이어들의 요구에 따라 간월도에 ‘서산섬마을 김’수산물 가공공장을 건축하고 있다. 순전히 자기부담 70억 원을 투자해 대지 2500평에 건평1300평 규모의 김 가공공장을 건축하고 있다. 올해 말 수출 목표 100억. 2023년부터는 연500억 원 수출이 목표다.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간월암에 수도하며 태조(이성계)에게 진상했던 간월도 어리굴젓. 세종대왕께서는 어리굴젓이 없으면 수라를 들지 않았다(세종실록 45권)는 간월도어리굴젓은 자연이 준 선물이다. 여기에 조상들의 손맛과 지혜 그리고 유대표의 얼이 담겨 있다. 이제 그는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간월도어리굴젓으로 부자 간월도, 부자 서산, 부자 충남을 넘어 부자 대한민국을 만드는 어리굴젓 세계 명인의 꿈을 키우고 있다. 황도초(간월도 분교), 부석중, 경기도 부천고를 거쳐 호서대 경영학사, 청운대 방송학 석사, 목원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어리굴젓에 빠져 늦은 나이인 5년 전 지인의 소개로 경남에서 중학교 수학교사였던 이현미 여사와 결혼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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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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