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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진정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할까?
      [특별기고] 조규선 전 서산시장, 한서대 대우교수 최근 가로림만 해양 공원 조성, 가로림만을 가로지르는(서산 대산(독곶리)-태안 이원(만대항)) 해상 교량 건설, 천수만 부남호 역간척으로 해양 생태계를 복원하겠다는 등 우리의 보배인 가로림만과 천수만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가로림만 조력 발전으로 주민의 갈등을 겪던 이곳이 세계적인 해양생태 관광지로 기대되어 기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기존의 산업단지가 혼재된 독특한 성격의 문화관광지로 새롭게 부상된다. 평소에 가로림만 프로젝트(중부 종합 공업기지)를 줄기차게 주장 했던 한사람으로 이 계획을 입안한 고 오원철(1928-2019 · 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 2경제 수석) 과 만난 일화를 소개한다. 그와 처음 만난 것은 필자가 서산시장 재직시였다. 가로림만의 프로젝트의 중요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 후 선거 출마 공약에 넣기 위해 몇 차례 방문했다. 끝 방문은 2016년 1월 춥던 날 서울 서초 한 카페에서 만났다. 가로림만 애인을 만나 기분이 좋다고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곳(가로림만)은 땅도 있고 계획도 다 있는데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어서 못하고 있다. 지방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 수석은 당시 국토개편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약 3억 평의 토지, 20만 톤급의 대형선박이 정박 할 수 있는 조건의 땅을 찾기 위해 해도를 구해 전국의 해안지대를 이 잡듯이 시작했다. 그런데 그도 모르게 환성이 터져 나왔다. 이상적인 장소를 발전 한 것이다. 황해에는 큰 항구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이렇게 이상적인 장소가 있다니, 이런 것을 천운(天運)이라고 했다. 20만 톤급의 배 여러 척이 정박하는 데 문제가 없고, 배후에는 넓은 야산지대가 있다. 오 수석은 당시 행정수도 계획안을 작성 중에 있었던 전(全) 엔지니어링의 정진행씨의 현지답사 후 확신을 갖고 박대통령에게 보고 했다. 박대통령은 중요성을 알아차리고 즉각적으로 “어데야?” 고 물었다. “가로림만(加露林灣)입니다. 가로림만은 <중략> 이렇게 설명하면서 중부종합공업기지 종합기본 구상도을 제시했다. “동양최대의 항구를 건설 할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약 2배가 되는 항만과 공업지구가 우리나라에 예속된다는 설명도 드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필자에게 이러한 이야기가 담긴 30P가 넘는 ‘가로림 PROJECT -물류 및 생산 자유경제 특구 건설계획’유인물을 주었다.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필자가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될 것 같다고 하자 오 수석은 “그건 아니고, 고 성완종 국회의원도 의원시절 몇 차례 찾아와 심도 있는 추진방향으로 논의 했다며 지형적으로 거기 (가로림만)밖에 할 데가 없고 거기에 해야, 국가적인 이익이 된다. 앞으로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천혜적인 조건이다. 다른 데는 갈 데가 없다. 그만한 좋은 장소가 없고 가로림만은 국가의 보배라고 강조 했다. 그러면서 지방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더라. 박대통령도 현지 시찰하고 좋다고 했는데 지방에서는 움직이지 않더라구, 스타디(Study)그룹을 만들어서 가로림만에 대해 공부를 한 다음 자기를 불러 달라”고 했다. 이에 따라 2017. 12. 17 국회의원 회관에서 필자는 ‘가로림만 프로젝트 5만불시대 선진 한국’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주장하고 국민의 당 안철수 대선 후보의 공약에 제 4차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중부종합산업기지 건설을 넣는 등 추진해왔다. 오 수석은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로 타고 가로림만 시찰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헬기에서 과연 “넓긴 넓구먼” 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린 일행은 바람을 피해 구석(돌)을 줍던 아주머니들과의 만났던 이야기도 소상히 들려주었다. 그 후 산업도로를 완공하고 중부공업기지에 공업용수 공급하게 될 삽교천 담수로 저수지도 완공을 했다. 그리고 바로 준공식 그날 1979. 10. 26 박대통령은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이 계획을 입안했던 오 수석은 1960-1970년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담당하며 한국경제 개발을 이끈 주역이다. 행정수도 이전계획 및 2000년대 국토계획 가로림만 프로젝트들을 입안하고 추진했다. 또 그는 1980년 신군부로부터 12년간 대외활동을 못하다가 1990년 대 들어 기아 경제연구소 상임고문 등을 지냈다. 이후 7권짜리 대작인 ‘한국형 경제 건설’과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 강국을 만들었나’ 책을 펴낸 그는 지난해 5월 30일 향년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가로림만과 천수만은 자연의 준 선물이다. 천혜의 수자원 보고(寶庫) 였을뿐 아니라 가로림만은 세계 5대 갯벌중 하나이다. 제2차 산업시대의 가로림만 프로젝트가 한국경제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인지 국가차원의 타당성 용역 조사가 필요하다. 정권이 바뀌어도 좋은 정책은 계승되어야 한다. 이제 21대 총선이 90여일 앞으로 다가 왔다. 누가 진정 국가와 지역 발전을 위해 일할까? 이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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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8
  • 가로림만, 해양정원 그리고 서산의 미래
    이슬이 모여서 숲이 된 바다, 가로림만(加露林灣). 이름이 참으로 예쁘다. 이름만 예쁜 게 아니라 자연과 사람, 바다와 생명이 잘 어우러진 공동체가 바로 가로림만이다. 가로림만은 세계5대 갯벌이고, 국내 유일의 해양생물보호구역이다. 많은 주민들에게는 생계의 터전이다. 2007년 서해안유류피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노무현 대통령께서 ‘가로림만을 사수하라’는 특명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로림만은 곳곳에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문제로 주민들 간에, 주민과 행정 간에 갈등의 상처가 깊게 패인 곳이다. 나도 그 상처의 한 편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2010년 도의원에 당선되고 얼마 되지 않아 조력발전소를 찬성하는 주민들로부터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아픈 기억이지만 그 분들의 주장이나 행동이 전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환경부의 조력발전소 환경영향평가서 반려 이후 안희정 도지사와 오랜 시간 가로림만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조력발전소를 찬성하는 분이나 반대하는 분이나 모두 가로림만의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 이 아닌가? 가로림만에 대한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얼마 후 충남도에서는 ‘지속가능한 가로림만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가로림만에 대한 관심을 갖고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조성’을 공약으로 채택했다. 뭔가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서산시장으로 당선된 이후에는 가로림만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더 켜졌다. 조력발전소를 반대했던 분들보다 찬성했던 분들을 먼저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가로림만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설명했다.   가로림만   충남도, 해양수산부, 기획재정부, 청와대 등 안 다닌 곳이 없다. 백미는 지난 10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서산방문이었다.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상공회의소 조경상 회장을 통해 대통령님에게 해양정원에 대해 건의했고, 대통령님께서도 충남의 여러 건의 중에서 가로림만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주셔서 희망이 더 커졌다. 가로림만해양정원이 정부의 예타대상 사업으로 선정되었다. 차질 없이 추진될 것으로 믿는다. 해양정원은 서산에게 새로운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정부의 예타대상 사업 선정 이후 각 정당과 단체에서 환영의 입장을 밝힌 것에서 알 수 있듯, 충남도민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가 없는 사업이다. 서산은 자동차와 석유화학, 농업이 산업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해양정원을 통해 생태관광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추가 된다. 세 바퀴 보다는 네 바퀴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게 아닌가? 많은 관광객들이 생태관광을 위해 순천만을 찾고 있는데, 수도권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가로림만에 해양정원이 조성된다면 순천만을 능가하는 생태관광지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오면 돈이 오고, 돈이 오면 경제는 활성화 될 것이고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다. 자명한 일이다. 특히 서산은 화학사고로 인해 뭔가 환경적으로 불안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해양정원이 조성될 경우 친환경적인 도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서산시가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야산 산림휴양복지숲, 천수만의 철새와 함께 잘 살린다면 서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생태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서산의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것이다. 점박이물범, 흰발농게, 바지락과 굴... 그리고 주민! 가로림만을 잘 지킨 결과이다. 서산의 새로운 심장이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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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5
  • 농업이 미래인 세상을 희망하며
    농업이란 무엇일까? 동양에서 농업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한 마디로 대변된다. 즉, 농업이 세상의 가장 큰 근본이라는 것이다. 서양에서 농업은 역사가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할 무렵부터 수렵과 함께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다. 그래서 영어로 ‘농업(Agriculture)’은 ‘문화(Culture)’와 어원이 유사하다. 농업이 인류문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신석기 시대를 맞이한다. 뗀석기보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간석기가 등장하고 생산물을 저장 보관하기 위한 토기도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이때의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농업에 유리한 장소에 정착해서 농경과목축을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적극적으로 이용 개발하는 단계로 흔히‘신석기혁명’ 또는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이로써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비로소 경제관념이 싹트면서 원시자본주의가 태동한다. 그리고 이 같은 맥락은 큰 틀에서 볼 때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2002년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시작으로 글로벌 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그러면서 농업은 경쟁력 저하 및 생산성 약화 등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지난 10월 우리정부는 향후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농업분야에서 특별ㆍ민감 품목에 대해 관세 및 이행 기간 등에서 전체적으로 17.3%의 혜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제 선진국 지위가 되면 4%로 혜택범위가 줄어들고 그 외는 관세를 대폭 인하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예민한 품목은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쌀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간 40만 톤에 달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고 있다. 선진국 지위가 되면 최대 513%에 달하던 수입쌀에 대한 관세가 154%로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시장에서 수입쌀의 가격이 대폭 낮아지면서 그야말로 ‘쌀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익형직불제 전환을 전제로 내년도 직불금 예산을 올해보다 8000억 원 늘어난 2조2000억 원으로 증액했다. 농업인들의 반발과 농업계의 파장을 줄이기 위해 협상에서 쌀과 채소 등 민감품목을 최대한 보호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 내년도 농업예산이 증액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 전체 예산 대비 3%에 턱걸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WTO 개도국 지위는 그동안 농산물 시장 개방으로 위축됐던 농업분야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방패 막이었기에 농업인들의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책결정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인 농업인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수십 년 간 논의조차 없다가 미국과의 교역 문제 때문에 하루아침에 결정됐다는 점에서 정부의 해명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농업 선진국이 되려면 국가가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농업인의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는데 과연 우리 농업 현실이 그러하냐는 것이다. 이번 WTO 개도국 지위 포기가 농업 현실을 도외시한 성급한 결정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어쨌든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WTO 개도국 지위 포기로 인해 앞으로 국산과 수입산이 무한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너무나 자명하다. 성토만 쏟아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급자족 형태를 벗어나 생산성 향상 및 효율성 제고 등 농업의 체질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송골매는 하늘의 제왕이다. 한쪽 날개의 길이가 30센티 부리의 길이가 2.7센티 정도인데 부리와 발톱은 갈고리 모양이고 수명도 사람과 비슷한 70년 정도 산다. 그런데 송골매는 처음 40년 동안은 왕성한 삶을 살 수 있지만 40살이 넘어서게 되면 자신의 몸에 털이 너무 많이 자라 털 무게 때문에 제대로 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냥에서 가장 중요한 부리와 발톱이 뭉툭해져서 더 이상 사냥이 불가능해 진다. 이 위기에서 송골매는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털을 부리로 뽑고 바위에 부리를 일부러 부딪쳐서 부러뜨리고 발톱마저 다 뽑아버리는 극한 고통을 감내해 다시 돋아나게 함으로써 하늘의 제왕으로 재등극한다. WTO 개도국 지위포기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이라면 이번 일을 농업·농업인·농촌 발전의 계기로 삼아 말 그대로 우리농업이 개도국을 벗어나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뼈와 살을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송골매의 환골탈태(換骨奪胎)가 주는 교훈을 우리는 무겁고도 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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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7
  • 대우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 - 그의 명복을 빌면서-
      김우중 대우 전 회장이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 했다. 경제 발전을 이끈 세계 경영의 길을 걸어온 고 김우중 회장의 아주대 병원 장례식장 빈소에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1980년대 새마을운동 활발히 하던 때였다. 그 당시 서산-당진 간 도로 공사를 대우가 맡아 시공했다. 현장 K소장이 나를 찾아왔다. 김우중 회장님 모친상을 당했는데 장지가 태안 인평(인평리 2구)이라면서 현지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하니 대우 계열사 임원들이 나와 있었다. 큰 도로에서 장지까지 가는 통행이 문제였다. 농로가 비좁아 차량이 왕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주민들의 반대 기미도 보였다. 주차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마을이장을 비롯한 주민들과 협의를 시작했다. 제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할 터이니 저를 믿고 따라 달라고 했다. 먼저 도로 작업을 부탁했다. 모든 것이 조건 없는 봉사였다. 대신 이장님께서 경운기 동원 대수, 유류대, 참석한 주민의 이름과 시간, 일자등 상세한 기록을 주문했다. 그때  주민들은 이 의견에 따라주었다. 굉장히 고마웠다. 그리고 대우 소장에게 말했다. 도로작업을 우리 주민들이 할 터이니 석분을 준비 해달라고 했다. 이어 대우에서 나온 책임자에게 다음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농로에 승용차는 물론 영구차도 진입을 안 된다. 상여로 모시자! 교통이 혼잡하니 계열회사 대표만이 참석 하는 것으로 하고 버스를 이용하도록 하자. 둘째, 주차장을 만들지 말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데 농민들이 공 드려 재배한 농작물을 훼손할 수 없다. 큰 도로에서 하차하고 버스가 일정 장소에 가 있다가 출발할 때 오면 된다. 셋째, 호텔의 도시락 준비 등은 안 된다. 위화감도 있고 하니 음식은 마을에서 준비하자. 이장 댁에서 마련한다. 이러한 요구에 동의했다. 장례식 날 주민들이 모두 참석 슬픔을 함께 했다. 장례를 모신 김우중 회장은 매우 고마운 표정이었다. 이장 댁의 쌀밥과 찬은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라고 했다. 비서에게 마을 주민들에게 섭섭하지 않게 비용을 전달했던 기억이 난다. 가묘를 써놓고 묘를 지키는 노인 산지기가 있었다. 김우중 회장의 집안한분이 산지기를 이장으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때 김우중 회장은 단호히 거절했다. 왜 산지기를 바꿉니까? 산지기에 산지기를 두면 됩니다. 그러면서 노인을 부르더니 고생이 많았다며 무엇을 도와주면 되느냐고 물었다. 평생 내 땅 갖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자 근처에 있는 토지를 사주라고 했다. 그리고 마을 이장에게 오늘의 고마움은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장은 아들이 군대갔다와 집에 있는데 회사 취직 시켜 달라고 했다. 김 회장은 즉석에서 D개발 근무를 명함, 대리로 임한다고 했다. 이장이 언제부터 근무 합니까 하니 오늘부터 근무입니다. 이 버스로 함께 가도록 합시다 라고 했다. 이장은 아들을 불러 이불을 차에 싣고 간 기억이 생생했다. 묘지는 산 가운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어 인평 저수지가 보이는 명당이라며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장지에 군수, 경찰서장이 조문했다. 삼우제에 온 가족들은 군수를 방문했다.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다 군수가 현황 설명을 위해 일어서자 모두 따라 일어기도 했다. 대우에서는 필자를 통해 서산군에 무언가를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군수는 받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그 후 다른 군수가 부임해서 부탁을 전달했는데 소식이 없었다. 김우중 회장을 만나 사람을 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도움을 받는 기증 등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것, 지도자의 성격과 판단에 따라 지역의 발전이 좌우 된다는 것을 김우중 회장의 별세로 인해 그 당시를 회고 해본다. 재계의 큰 인물, 기업인의 도전정신을 일깨우고 떠나는, 대우 신화를 써낸 김우중 회장의 영결식이 13일 갖는다. 장지는 모친이 안장되어 있는 충남 태안군 태안읍 인평리 선영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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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11
  • 중고제판소리는 서산의 소리
    지방자치의 실현으로 지역사회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역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교육 개념은 2005년 문화예술지원법이 통과되면서 도입됐지만 지역 문화예술 인프라는 여전히 취약하고 일련의 행사는 일회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중고제판소리보존회가 사단법인 등록을 마치고 중고제(中古制) 판소리의 복원과 전승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나섰습니다. 중고제판소리가 새로운 인프라로 자리매김하여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서산에서는 15년 전부터 중고제판소리를 서산의 소리로 전승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추진했기에 사단법인 등록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판소리 관련 자료를 살펴보면 판소리는 충청도, 경기도를 시작으로 전북, 전남, 경북으로 200년에 걸쳐 이동한 것으로 인식합니다. 판놀음 기원설을 근거로 당시 경기도, 충청도 지역이 이러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이 형성된 곳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판소리 유파적으로 볼 때도 고제(古制)에서 중고제로, 중고제에서 동편제(東便制)로, 동편제에서 서편제(西便制)로 이동하면서 현대 판소리로 형성되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충청도의 소리인 중고제 판소리는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는 동편제나 서편제보다 더 고풍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중고제는 충청도 말투처럼 소리가 끊어지는 듯 하다가 이어지고, 이어지는 듯 하다가 스르르 끝나고, 어느새 노래 창이 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위적인 감이 적고 자연미를 풍겨 매력적이라는 것입니다. 충청도 사투리와 많은 부분 닮아 있어 충청도의 기질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고 합니다. 중고제에는 각 명창의 개성이 살아있고 개인의 특성이 존중되며 자연미가 강하여 획일성이 강조되는 시대에 다양성의 가치를 찾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지역 문화예술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역 문화예술의 중요성이 인식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역의 문화예술적 인프라는 일천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역의 문화예술이 활성화 되어야 국가의 문화예술이 발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충청도 중심의 중고제 판소리 복원과 전승은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동편제와 서편제 판소리의 지나친 기교와 정형화되어 가는 것에 대한 청자들의 식상함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기존 판소리의 기교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중고제는 판소리의 진정한 예술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중고제와 동편제 및 서편제 판소리의 세력 다툼으로 우리 판소리계의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획일성보다는 다원성이, 보편성보다는 특수성이 문화예술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중고제 판소리의 복원과 전승으로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관심과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악뿐만 아니라 판소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말도 모르는 외국인이 판소리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서산은 중고제를 대표하는 명창 중 고수관, 방만춘이 출생한 지역이고 명창가문인 청송심씨 일가인 심팔록, 심정순, 심화영 선생에 의해 전승 돼온 지역으로 중고제 판소리의 큰 가치가 있는 곳임이 틀림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서산시 문화도시사업단에서 시민들에게 중고제를 알리기 위해 매달 1회씩 중고제와 함께 지역의 문화예술의 활성화를 위해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는 모임인 ‘풍류살롱’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고제 판소리의 복원과 전승에 관련된 일련의 작업은 지역 문화예술을 활성화시킬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문화 선진국으로 이끌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중고제 판소리 복원과 전승으로 민족의 전통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우리 소리의 가치와 소중함 및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사단법인 중고제판소리보존회에 서산시민과 출향인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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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0
  • 청렴한 공직세상을 꿈꾸다
    청렴은 ‘공직자의 기본’ 덕목이다. 공직자 모두 청렴해지는 세상이 가능할 것인가? 공직자 스스로 청렴하고자 하는 굳은 마음이 없다면 힘든 일일까? 필자는 공직자들이 청백리(淸白吏) 정신을 가지는 것으로 청렴한 공직자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백리(淸白吏)란 ‘청빈한 생활 태도를 유지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서 봉공(奉公)하는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며, 백성들을 마치 부모처럼 어루만지는 선비의 전형’을 뜻한다. 조선 시대에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모두 218명인데, 조선왕조 500여 년 동안에 청백리로 뽑힌 사람이 겨우 이 정도니 그만큼 청렴한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조 때 청백리 곽안방 선생의 일화를 살펴본다면 청백리의 삶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곽안방 선생이 익산 군수 임기를 마치고 귀향할 때 말 한 필을 타고 왔는데 아무도 그가 태수(太守)였는지 몰랐다고 한다. 또한, 짐 속에 관아의 자물쇠가 섞여 들어왔는데 대로(大怒)하여 그 자리에서 다시 먼 길을 돌아 관아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청렴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곽안방 선생이 군수였는데 고작 말 한 필을 타고 귀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관아의 자물쇠 정도는 그냥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부터 청렴과 멀어지는 것 아닐까?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씩 실천해 나간다면 그것이 청렴의 시작인 것이다. 청렴이 부정청탁이나 뇌물수수와 같은 무거운 일들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청렴은 기본적이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 특히 공직자들은 자신의 맡은 바 업무를 법과 규정에 의거 신속 · 친절 ·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이 청렴의 기본일 것이다. 또한, 성실하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과 지역주민을 위하여 봉사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공직자의 청렴은 기본적인 규정과 복무를 지키는 것, 작은 친절과 배려, 국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가짐은 청렴이 일상이 되도록 이끌 것이다. 필자는 모든 공직자가 청렴을 공직생활의 가장 으뜸으로 추구하여 공직에 머물며 어떠한 일을 하여도 청렴에 어긋나지 않는 세상과 청렴을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가 청렴한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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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0
  • 청산리 대첩과 중동전쟁
    50여 년 전 편기범(너른내장학회 이사장) 선배로부터 중동전쟁에 대한 얘기와 일화에 대해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필자가 역사공부를 하다가 뜻밖에 청산리대첩 부분에서 50여 년 전에 들은 중동전쟁이 클로즈업 돼 내심 놀랐다. 곰곰이 뜯어볼수록 청산리대첩과 중동전쟁이 판박이 닮은꼴이기에 청산리대첩 99주년을 맞아 그 전말을 약술해 보고자 한다. 청산리대첩(1920년)과 중동전쟁(1967년)은 병력과 무기가 10여 배나 우세한 상대가 이길 것 같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결국 승리는 지휘관, 호국정신, 사즉생의 각오 유무로 결판났던 것이다. 묘하게도 청산리대첩과 중동전쟁은 6일만에 끝났다. 그래서 중동전쟁을 6일 전쟁 또는 1주일 전쟁이라 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역사를 통해 지휘관이 누구냐(역량)에 따라 승패가 갈렸음을 익히 알고 있다. 백야 장군이나 다얀 장군의 성화는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백야 장군은 부하를 직접 인솔해 전투에 참가한 야전사령관 격이고 다얀 장군은 의자에 앉아서 10만 대군을 지휘한 작전사령관 격인데 두 장군 모두 명품 지휘관이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애국심이 강한 쪽이 이겼다는 것은 여러 말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부연설명이 필요 없거니와 이와 관련해 청산리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고 중동전쟁 역시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다.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 유학을 온 이스라엘 학생과 아랍 학생이 공교롭게도 같은 집에 하숙하면서 같은 대학을 다녔는데 중동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스라엘 학생은 이 한 몸 조국에 바치겠노라고 즉시 귀국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그런데 아랍학생은 전쟁이 났으니 빨리 돌아오라는 전화가 하숙집으로 왔는데 저녁때 들어온 아랍 학생한테 하숙집 주인이 그 내용을 전하자 또 전화가 오면 여행가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르라고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뺑소니를 쳤다는 것이다. 이 사연이 하숙집 주인의 입을 통해 미국 언론에 대서 특필 됐는데 이때 미국 사람들은 10구 동성으로 ‘어! 이 전쟁 끝났네. 며칠 못가 어디가 이기고 질지 답이 나왔어’라며 결과를 추측했다는 것이다. 왜 그런 단정을 했을까?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조국을 위해 달려간 나라, 오라고 했는데도 뺑소니 친 나라 그걸로 이미 게임은 끝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육사 신입생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는 설문에 가장 많은 답이 미국이라는 조사가 공개된 바 있었다. 다른 대학도 아니고 평생 나라를 지키겠다고 들어간 육사생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는걸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심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세간에 ‘요새 군대도 그게 군대냐, 그놈들 전쟁 나면 다 도망갈 놈들’이라는 혹평이 전혀 근거없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만주에서 활약한 우리 독립군들이 ‘월급 줄테니 오너라’해서 간 분들이 아니다. 국권침탈 후 대한제국 의병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조직된 엉성한 군대에 3.1운동직후 뜻이 맞는 청소년 두세 명씩 산 넘고 물 건너 만주로 들어가 사즉생의 각오로 덤볐기에 청산리 대첩이라는 쾌거가 이루어졌음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청산리 대첩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진 않으나 당시 백야 장군 휘하에서 기관총부대장으로 활략한 최인걸 장군은 교전 마지막 날(10월 26일) 온 몸에 총상을 입고 방아쇠를 당길 오른손이 말을 듣지 않자 가죽 허리띠를 풀러 오른손을 총신에 대충 묶고 ‘원수놈들 하나라도 더 죽이고 나도 죽겠다’면서 사투를 벌이다 장렬히 산화했다. 교전이 끝나고 고개를 떨군 채 산화한 최인걸 장군을 백야 장군이 부등켜 안고 ‘나 때문에 귀중한 목숨이 사라졌으니 이 죄를 어찌하느냐고 대성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이 최인걸 장군의 화신이 2002년 연평해전에서 한상국 상사로 다시 태어났다.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참수리 357호정(정장 윤영하 소령)이 반파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나는 배를 살릴테니 너희들은 부상병을 살려라’ 외치면서 왼손을 운항키에 묶고 사투를 벌이다 배와 함께 침몰 장렬히 산화한 한상국 상사! 그 한상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모교인 광천제일고등학교 교정에 흉상을 건립하고 해마다 추모식을 거행하고는 있지만 최인걸 장군이나 한상사의 충혼을 위무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중고교 역사교과서에 이런 내용, 유관순 열사 등은 빠져있고 뜬금없이 김원봉(강점기 독립운동, 해방 후 월북, 북한정권수립 참여, 6.25 주범)이 두 번씩 등장하는 그런 김원봉에게 국가 최고훈장을 수여해야한다는 이런 나라, 그러니까 전쟁 나면 도망갈 놈들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6.25는 쌍방과실 남북이산가족상봉 무산도 쌍방과실이라고 하는데 그럼 목숨을 걸고 맨주먹 붉은 피로 대든 6.25 참전용사들은 만고의 역적이 아닌가! “깅건 깅거구 아닝건 아닝거다”라는 충청도 속담이 있다. 수많은 정치, 외교안보, 사회 경제적 논란에서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진영논리로 판단하는 작금의 세태가 안타깝고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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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 기후변화가 불러온 산불 재앙
    지난 4월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발생했다. 전신주에서 발화한 이 산불은 1,757㏊에 달하는 산림과 주택, 시설물 등 916곳을 집어삼켰다. 삶의 터전을 잃었고 지금도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대형 산불이었다. 특히 이 지역의 소나무 숲은 인화성이 강해 초기진화가 어려웠으며, 건조한 환경과 양간지풍(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강한 바람)으로 알려진 매우 강한 바람, 더운 날씨라는 삼박자가 맞아 불은 크게 퍼졌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4번째로 산림 비율(63.2%)이 높은 산림 강국이었다. 그러나 2015년부터 2019년 8월까지 약 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2,795건(산림청 통계자료)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산불 증가에 대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인위적인 산불도 문제다.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취임한 지 반년 만에 아마존의 열대우림은 무려 34만4,000㏊(3,440㎢)가 사라졌다. 농경지와 가축을 키우는 목초지를 만들기 위한 대규모 벌채와 인위적인 산불 때문이다. 나무를 하나하나 베는 것보다 불을 놓는 것이 경제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아마존의 건기에는 인위적인 산불이 성행한다. INPE(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는 올 1월부터 9월까지 아마존 열대우림의 산불 발생 건수가 6만6,700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 열대우림이 계속 줄어 지구의 기후는 위협당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지역은 올 7월 이후 건조한 가운데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를 나타냈다. 이때 마른 뇌우(Dry thunderstorms)에서 발생한 불씨로 한반도의 3분의 1인 300만㏊의 산림이 소실됐다. 문제는 지금처럼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시베리아와 알래스카 일대의 영구동토층이 녹아 내려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 북극의 영구동토층에 저장된 탄소의 양은 무려 1조8,000억톤으로 전 세계 산림에 저장된 양의 3배 이상인데 세기말까지 1,600억톤의 이산화탄소가 이로부터 배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NAS(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는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산불이 대형화되고 발생 건수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는 과다 배출되고 이를 흡수하는 산림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워진 지구는 다시 대형 산불의 위험성을 높이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나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산사태, 산불 등의 재해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산림청과 손잡고 ‘산불위험예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산불위험예보시스템은 날씨와 바람의 세기, 경로 등을 통해 현재산불위험지수, 상세산불위험정보, 대형 산불예보 등의 정보를 예측, 제공하고 있다. 다시 대기가 건조해져 산불 등 화재에 주의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지자체에서는 이미 산불감시원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을 통해 산불 예방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산불이 났을 때 대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산불이 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산불의 대부분은 사소한 부주의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가을은 단풍 구경을 위해 많은 사람이 산을 찾는 계절이다. 산불이 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 및 관심과 함께 산불로 인한 지구온난화의 영향과 기후변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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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 최저임금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인간은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가 있다.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소득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데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끼지만 어느 정도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소득인지에 대한 고민과 시각 차이가 존재하고 정치권에서도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내고 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법 제1조는 “최저임금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 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2019년에 전년 대비 10.9% 인상시켜 시급 8,350원으로 결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올해 대비 240원 인상한 8,590원으로 올해 대비 2.87% 인상된 금액으로 결정하였다. 올해 적용할 최저임금액 결정이 발표되면서 사회에 많은 파장을 불러왔는데, 과연 최저임금 인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구체적으로 대답하기 위해 소득 수준에 따라서 근로자를 분류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간단하게 분류하여 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시급제 근로자인 경우 정해진 최저시급을 받고 복리후생비와 같은 다른 수당이 전혀 없다. 이런 근로자들이 사회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다. 다음으로 기본급과 각종 수당으로 구성된 월급명세서가 나오는 월급근로자들을 중간 근로자라고 보고, 연봉이 4,000만원이 넘어가는 등 그 위의 근로자를 상위 근로자라고 본다면 연봉이 높은 상위 근로자의 경우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과는 무관한 계층이다. 최저임금의 변동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저소득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이 되어 더 행복할까? 이들은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건비 부담을 느낀 사업주로부터 해고를 당하거나, 원래 2명 채용될 수 있었는데 1명만 채용되는 등 고용이 줄어들 수 있는 위험도 동시에 안고 가는 취약 계층이다. 그러면 중간 근로자는 어떠한가? 최저임금법이 만들어진 1986년 당시에는 임금항목이 단순했기 때문에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되는 임금에는 기본급이 포함되고 상여금, 복리후생비는 제외되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기본급을 최저임금액과 비교해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되면 최저임금법 위반일 소지가 높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한국의 임금명세서를 한번쯤 받아본 월급근로자라면 알겠지만, 직책에 따른 직책수당, 자격수당, 가족수당, 휴가비 등 임금항목이 복잡해지고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도 지급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상여금 비율이 예를 들어 600%에 육박하고 복리후생비를 별도로 받아도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게 되면 최저임금법에 위반된다고 판정되는 희한한 상황이 실제로 많이 존재했다. 최저임금의 원래 개념은 정부가 강제하는 최소한의 임금인데, 최저임금 인상이 똑같이 적용되어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정규직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의 최저임금의 개념에 부합시키려는 노력으로 최저임금법령이 개정되어 올해 처음으로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등에 관한 산입비율이 생겼다. 올해 기준으로는 상여금,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은 해당 연도 시간급 최저임금액을 기준으로 산정된 월 환산액의 25% 초과 부분, 식비, 숙박비 교통비 등 현금성 복리후생비는 7% 초과 부분을 최저임금 계산에 포함한다. 쉽게 생각하면 상여금은 매월 43만 6,287원을 초과하는 부분부터, 복리후생비는 12만 2,160원을 초과하는 부분부터 최저임금에 산입된다고 보면 된다. 이 산입비율은 해마다 조금씩 달라져서 2024년에는 매월 지급 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의 전액이 최저임금 계산 임금에 포함된다. 최저임금의 본래 목적을 실질적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임금 수준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정말 낮은 임금을 받던 근로자를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저임금법의 본래 취지에 부합한다. 실질임금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올려서 해고 위험에 놓이거나 고용이 줄어드는 경제적 효과는 차치하고서라도 고용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저소득 근로자라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 근로자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끌어 올려놓은 제도로 보는 것이 올바른 이해다. 최저임금 인상은 중간근로자의 임금인상 수단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우리가 더 크게 고민할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좋은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져야 하며 그것이 최저임금법만 준수하는 일자리는 아닌 것이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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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3
  • 재향군인의 날에 갖는 다짐
      2019년 10월 8일은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창설 67주년이 되는 날이다. 재향군인회는 지난날 신명을 바쳐 조국의 안보를 위해 헌신했던 역전의 용사들이 모여 국가발전과 공익에 기여하고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서기 위해 1952년에 창립돼 지금까지 변함없는 국가안보의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 우리 향군은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국가운명이 백척간두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구국ㆍ호국의 깃발아래 분연히 뭉쳐 일어섰다. 전쟁 중에는 목숨 바쳐 공산주의자들의 적화야욕을 응징하고 전쟁 후에는 싸우면서 건설하는 재건의 역군으로서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하는데 앞장 서 왔으며, 국가 안보 최후의 보루로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북한의 수많은 무력도발을 격퇴시켰고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와 세계 제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같은 성공의 역사를 창출한 중심에는 우리 향군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곳곳에 잠복해 있는 암초들을 슬기롭게 헤쳐나아가야 한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은 분단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고, 9.19 군사합의 이후에도 1년 사이 벌써 11번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이제 향군은 역사와 전통에 어울리는 명실상부한 국가안보의 최후의 역군으로 거듭나야 한다. 진정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는 역군이 되기 위해 우리 모두 주인정신을 가지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는 1994년 호국용사들의 명예를 고양하기 위해 호국용사 묘지 조성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기 시작했다. 1997년 9월부터 현재까지 영천 호국용사 묘지, 임실 호국용사 묘지, 이천 호국용사 묘지, 산청 호국용사 묘지를 완공시키고 오는 11일에는 괴산 호국용사 묘지 개원을 앞두고 있다. 이들 호국용사묘지는 2001년 12월 28일 개정된 ‘참전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해 2002년 말에 국립묘지로 각각 승격되었다. 우리 향군은 또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범국민적인 안보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 ‘범국민 안보의식 계도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올바른 안보관을 견지할 수 있도록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안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대학생들이 분단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재무장할 수 있도록 2008년부터 현재까지  ‘대학생 휴전선 및 6.25전적지 답사 대장정’도 개최하고 있다. 우리 서산시재향군인회도 1961년 12월 31일 연합 분회 재건 총회를 시초로 1973년 4월 16일 서산군 재향보안회가 발족되었고, 1977년 10월 29일 서산향군 자연보호회를 발족하였다. 이후 1983년 11월 4일 향군회관을 준공하고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서산시 재향군인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서산 향군은 향군 율곡 강좌, 6.25 전쟁 기념행사, 보훈 가족 가사 돕기 봉사, 재향군인의 날 행사 개최 등 서산 지역에서 다양한 행사 및 봉사 활동을 통해 지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8일 열린 재향군인의 날 행사에서 우리의 조국인 대한민국과 우리가 누리는 최고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도록 향군의 안보 활동에 함께 동참해 주기를 호소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날 국가안보의 최 일선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라를 지켜낸 그 충정으로 나라의 튼튼한 안보에 믿음직한 울타리가 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창설 67주년을 맞아 향군회원과 시민들의 굳건한 안보의식을 확립하고 국민모두가 하나가 되는 총력안보체제를 구축하는데 서산 향군이 안보지킴이라는 자긍심을 가지고 더욱 노력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 오피니언
    • 기고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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