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7-17(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  기고

실시간뉴스

실시간 기고 기사

  •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을 다녀오다
    태양은 열기를 더해가고 짙푸른 신록이 7월을 데우던 지난주 필자는 서산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에 참가했다. 7월은 누가 뭐래도 생기가 있고 젊고 발랄하며 푸르러 사랑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이준호 문화원장은 인사말과 함께 서산의 인물론(人物論)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먼저 성리학의 전래자이시며 서산 정 씨 원조인 정신보 선생은, 남송 말기 간월도로 망명하여 살았으며 그의 아들 정인경은 1284년 충렬왕으로부터 서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처음 서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천문학자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제작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 유방택 학자, 서산 간월도 출신이자 7세 때 경남 땅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기여한 무학대사, 서산의 초대 태수를 7년 동안이나 지낸 최치원 선생등이 있으며 서산은 삼한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낙토서산(樂土瑞山)』이라 하여 어염시수(魚鹽柴水) 즉, 생선. 소금. 땔나무. 물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서산이 살기 좋은 고장에 살면서도 뛰어난 역사적인 인물이 많으나 이를 현창(顯彰)하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필자는 청주하면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학창시절에 원치 않는 일로 처음 청주 북문로에 왔던 일, 약혼시절에 친구 부기내외와 찿았던 3.1공원, 그리고 수필가와의 문학 교류 등을 생각하면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도시가 바로 청주다. 어느덧 일행 41명을 태운 버스는 충북대학교 박물관 앞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976년 박물관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아 30여년을 봉직 하시다가 2007년도에 박물관장을 끝으로 퇴임하신 이융조 박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서산출신이신 이융조 박사님의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석기, 짐승 뼈, 사람 뼈 등과 수양 개 주먹도끼 만드는 사람을 만져보며 구석기시대로의 여행을 떠나 보았다. 2층 전시실에는 중경 정착 후 임시정부가 한중 연대와 대중국 선전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중문으로 간행 된 독립신문 중경판(重慶版)인 독립신문 창간호를 매우 의미 있게 살펴보았다. 다음은 한국선사문화 연구원으로 이동하여 서산 동서간선도로(잠흥~석림)개설구간 내 유적인 서산 석림동 유다리들 유적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볍씨가 기원으로 청주 소로리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오래 된 5020년 된 볍씨를 2003년 10월 21일 날 새로운 기적인 고대볍씨를 오창 산업단지에서 출토했다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을 끝내고 소감을 말씀하셨는데, “자기작품이나 자기의 업적을 남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복이다.” 라고 말씀하시자 일행을 모두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소상공인 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해가 한정식』으로 자리를 옮겨 맛있는 점심과 휴식을 취했다. 다음은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에 위치한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따뜻한 친구, 함께하는 박물관”이라고 쓰인 표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도 이융조 박사님의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갈판과 갈돌 붉은간토기 등 중원지역의 구석기문화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와 말을 타지 않았다는 마한 사람들의 유물을 흥미롭게 관람을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소로리 볍씨 기념탑으로 향했다. 청주시 마크가 볍씨를 형상화 했다는 이융조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 강열한 햇빛을 받으며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청주를 뒤로 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 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일 것이다. 먼 후일 서로의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삶이 되도록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불편한 몸이 신데도 불구하시고 서산에서 왔다하여 시종 일관을 상세하게 설명하신 박사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최병부(서산문인협회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9
  • 정신보와 정인경의 재조명
      성리학을 고려에 최초로 전수한 정신보와 서산지명을 얻게 한 정인경 선생의 업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12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정신보(?∼1271)는 고려에 송나라의 학문인 성리학(性理學)의 새로운 유교문화를 전파하고 몽고의 전란을 피하여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아들 정인경(1241∼1305)과 함께 몽고군을 격파하면서 무신정권을 끝장냈다. 서산군 양렬공 정인경이 왕권을 보위하고 끌려간 동포를 환향시키고 패전으로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아 오는 등 모든 일은 오로지 탁월한 외교와 정치로 이루어낸 것으로 아버지 정신보의 가학의 힘이며, 귀화 다문화 1세대 정인경선생의 탁월한 노력과 재능이기에 이를 재조명 한다. 이러한 생전의 공적으로 서산군의 작위를 받았으며 서산이란 지명을 얻게 되었고 1305년 타계하신 후 1306년 양렬공의 시호를 받게 된다. 1237년 정신보가 남송에서 고려로 망명한 사건과 정신보ㆍ정인경 부자의 업적은 서산만이 갖고 있는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문화와 역사이며 또한 다양한 유산의 관광자원이기에 기획하고 가공하기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운을 융성시킬 수 있는 소재일 것이다. 이에 원외랑 정신보와 성리학의 전래에 대하여 고찰하여 본다. 몽고가 크게 일어나 중국대륙을 점령하던 시대는 1206년부터 1367년까지이며 걸안, 서하, 금나라, 송나라, 바그다드, 아라비아 까지 아시아 전체가 몽고로 인하여 전쟁에 휘말리던 시대이다. 원 세조(쿠빌라이, 재위 1260-1294)는 1260년 중국 최초로 이민족의 왕조인 대원을 세우고, 1271년에는 연경에 도읍하여 국호를 원이라 칭하고 1276년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한다. 1231년~1259년까지는 몽고군의 고려 침공시기로서 고려 고종 24년 서기 1237년 형부원외랑 정신보가 고려에 망명한 시기는 몽고의 침략으로 남송이 망하기 39년 전 형부원외랑 벼슬 직에 있다가 충신은 두 나라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로 고려국 간월도에 망명 귀화하게 된다. 이때는 고려의 풍속이 불교만 숭상하여, 정신보가 성리학으로 고려사람 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니 고려 선비들이 대단히 기뻐하며 송나라의 정주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송나라의 경우 주렴계(周廉溪, 1017-1073), 장횡거(張橫渠, 1020-1077), 정명도(程明道, 1032-1085), 정이천(程伊川, 1033-1107), 주희(朱熹, 1103-1200)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이들의 학문을 정주학 또는 그들의 성을 따라 주장정주의 학문이라고 한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11세기에서 12세기 말까지인 것을 감안하고, 고려와 송이 우호적인 관계에서 인적,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13세기 초 송나라에서 대학자로 명망가였던 정신보가 1237년부터 성리학의 강학과 소개를 하였다고 하겠다. 원 태조가 덕안을 함락한 후 유학자 조복을 얻고 금화에 살던 정신보의 학문과 인품의 뛰어남을 듣고 요추로 하여금 그를 초빙하려 하였다 한다. 元은 몽고군이 하북덕암을 함락하고 많은 학자들을 포로로 삼아 연경(북경)으로 데려가면서부터 유학이 심어지게 되었으며, 원나라에 유학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조복(趙復)과 요추(姚樞) 그리고 허형(許衡,1209-1281)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정신보와 동시대의 유학자들이다. 요추는 하남사람으로 元나라에서 벼슬하게 되고 포로로 된 조복을 달래서 연경에 이르게 하였으며, 조복에 의해 정주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요추는 특히 원 세조와 가까운 사이로 세조를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의 길로 인도한 장본인이며 연경에 태극서원을 세우고 조복을 청해 정주학을 가르치게 하였다. 조복은 포로의 신분이었지만 요추에 의해 연경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주장정주의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다. 요추와 조복이 신보를 회유하여 신보도 함께 몽고 태조를 도와 일할 것을 요구함에 신보가 말하기를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북정(몽고)에 신복(臣僕)할 수 없다하며 죽음으로 맹서하니 원나라 태조가 이를 의롭게 여겼다. 신보는 이와 같이 조복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남송에서 정신보가 조복에 버금가는 유학자의 위상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정신보는 다음해 정유(丁酉)년에 소항(蘇杭)으로 가서 바다를 건너 동방의 나라 마한 서주의 간월도에 망명하여 살게 된 이유이다. 1289년(충렬왕15) 정인경이 충렬왕이 원나라 연경에 가게 되어 호위시종 할 때 정인경이 충렬왕에게 청하여 안향을 고려 유학제거(성균관관장)에 제수하게하고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오도록 권하여 안향으로 하여금 주자학을 연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원나라 유학자들과 교류하게 하고 고려 유학을 크게 부흥시키니 1237년 정신보의 성리학 전래는 안향이 1290년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온 것보다 53년 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정신보는 남송에서 이름 높은 성리학자이며 고려의 충신이고 고려에 최초로 성리학의 강학과 소개를 한 분이다. 18세기 목만중(睦萬中)은 채모가 지은 정신보의 묘갈명을 인용하면서 정신보가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을 사숙(私淑)한 것이 틀림없고, 정신보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전수한 것이 틀림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신보는 그간 많은 벼슬을 사양하다가 고려 원종10년(1269) 인주(의주)태수로 있으면서 원나라를 추종하는 부원배(附元輩) 최탄(崔坦)등에게 여러 번 죽임을 당할 번 하였으나, 고려 왕실 보존에 큰 공을 세우고 무신정권을 종식(1270)시키는데도 기여를 하였다. 1271(원종12년)에 별세하시니 관작(官爵)이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예빈사(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平章事禮賓事)요 관직(官職)이 상서형부원외랑절강정공(尙書刑部員外郞浙江鄭公)이다. 묘는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산의 95 연화산에 있으며, 서산시 송곡서원, 합천 운계서원에 배향되었고, 2002년 중국 국가급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강남제일가(江南第一家)에도 배향되었다. 매년 춘․추로 음력 2월과 8월 정일에 민, 관, 유림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성/서산군 양렬공 정인경선생 기념사업회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3
  • 혈중 알코올 0.03%도 형사 처분
      지난달 25일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혈중 알코올농도 0.03~0.05%도 형사 처분 대상이 된다. 이전까지 음주단속 기준은 0.05% 이상이었지만, 도로교통법 개정 이후로는 혈중 알코올농도 0.03~0.08%의 운전자는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른바 윤창호법이 널리 알려진 후 올 1월부터 4월까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또한 3,212건으로 지난해 4,986건보다 35.3% 줄었다.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사람도 93명에서 58명으로 37.6%, 부상자는 8,678명에서 5,437명으로 37.3% 각각 감소했다. 음주사고는 줄었지만 다른 사고에 비해 피해의 정도가 훨씬 심각함을 운전자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에서는 음주운전이 근절될 때까지 단속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음주운전은 단 나 하나의 실수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확신 아래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시켜야 한다. 김영빈/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경위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3
  •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부화뇌동(附和雷同)
      논어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동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소인은 동일성을 추구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고 친화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장에 가면 각기 다른 40여개의 악기 소리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나 이 악기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조화를 이루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리가 되는 이치와 같다. 즉 악기의 종류나 음계가 서로 다르더라도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어우러지는 심포니처럼 사람들의 생각도 다를 수 있으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여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되는 것이 화이부동이다. 동(同)은 맹목적으로 부화하고 주견도 없이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부화뇌동하는 소인배를 자주 볼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는가 하면 말과 행동도 다르다. 중용(中庸)에도 ‘화이불류(和而不流)란 말이 나온다. 이 말뜻은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소인은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패거리를 지어 자기네의 이익을 둘러싼 쟁탈을 벌인다. 이 때문에 소인들은 한데 휩쓸리기만 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생선이나 고기를 삶을 때, 조리사는 물을 맞추고 은근한 불로 열을 가한 후에 식초, 젓갈, 소금, 파, 등등의 양념을 고루 섞어 부족한 것이 있으면 더하고, 지나치면 줄여서 걸쭉한 육수를 만든다. 이는 화와 같은 이치이다. 반면에 지도자나 대표자가 옳다고 하면 자기도 옳다고 하고 지도자나 대표자가 그르다고 하면 자기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마치 물에 물을 보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건 물일뿐이다. 이는 음의 조화 없이 일률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이런 사람은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요, 세련된 신사이며 수양되고 내공이 쌓인 인간이다. 반면에 소인은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화(和)는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특성을 다른 이와 하나로 융합하는 일이거나 남과 화목 하는 일이다. 동(同)은 갖고 있는 특성 그대로 표출하면서 다른 이와 같은 척 꾸미는 것을 말한다. 각자가 타고난 개성과 다양성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요, 화목이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되 조화를 이루면 화음이 되듯이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면 혁신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이 행동하거나 말할 수가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민주 사회이다. 저 마다 제 목소리를 내고 제목소리로 제 노래를 부르고 제 말을 하고 제 표현을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사고방식이요, 공자가 말했던 화이부동의 세계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소리를 낸다면 그 사회는 동(同)의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획일적인 사회요, 전체주의 세계이다. 그래서 화이부동의 사고방식과 생활철학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 생활 철학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같은 말이다. 즉 조화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한결같고 똑 같아 공멸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것이 화이부동이라면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도 같다. 아마 요즘 들어 귀가 시리도록 듣는 말이 내로남불일 것이다. 화이부동과 동이불화는 한 사회나 한 나라 뿐만이 아니라 기업에도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화이부동은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회나 나라 또는 기업을 만든다. 하지만 동이불화는 대통령이나 여와 야당 대표 한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되어 아무도 발전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사회, 이런 나라 , 이런 정당, 이런 기업은 혁신의 가능성이 나오지 못하여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우리는 화(和)와 동(同)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배척할 줄 알아야 좋은 사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김성윤/(사)충남포럼 이사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6-26
  • 무겁고, 아프고, 고단하다
    서산지역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지 1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 40여 년간의 공직생활이 그동안 범죄피해자의 다양한 지원정책을 시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사회복지에 대한 기사를 보면 우리 센터에 적용할 방안이 있는 가를 생각해보는 시간도 많아졌다. 그 중 최근 관심을 끈 기사가 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와 관련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중장년층의 이중부양 부담과 정책 과제’를 다뤘으나 언론의 관심은 과도하게 부모 부양의식의 변화에 맞춰졌다. 이 보고서에는 부양 책임자로 ‘가족’을 꼽은 비율은 2002년 70.7%에서 2018년 26.7%로 대폭 줄었으며 같은 기간 ‘사회 및 기타’는 19.7%에서 54.0%로, ‘스스로’는 9.6%에서 19.4%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사 자체보다 1,300개 넘게 달린 댓글에 더 관심이 갔다. 분노한 사람이 댓글을 다는 법이지만 읽다 보니 글을 쓴 사람의 정황과 마음의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연령대가 높은 것도 흥미로웠다. 이들의 글에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와 가족에게 돌봄을 거부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가까운 미래에 대한 불안이 뭉텅뭉텅 묻어났다. 보고서의 주요 주제와는 별개로, ‘약화된 부모 부양관’에 대해서는 해석이 필요하다. ‘부모 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답부터 해보자. ① 가족 ② 사회 및 기타 ③ 스스로. 필자는 ‘사회 및 기타’를 선택했다. 부모 부양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가족은 할 만큼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②에 답한 사람은 사회 변화, 가족규모와 기능의 변화에 따라 가족에서 사회로 주 부양주체를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이다. ③에 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너희 신세 안 지겠다’던 우리 부모님처럼 인간을 독립적 존재로 인식한 사람이거나 돌봄의 메커니즘을 모르거나 가족을 구성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왜 나는 ③을 고르지 않았나? 부모를 돌보면서 나는 인간이 폐를 끼치고 신세를 지는 상호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기가 극히 짧다는 것도 알았다. 도무지 ‘스스로 돌본다’고 할 수가 없다. 필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명지대 사회복지교육원을 다니면서 돌봄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돌봄이란 경제적, 정서적, 신체적 차원뿐 아니라 관계적 속성을 지닌다. 이런 다양한 요소가 조화롭게 기능할 때 좋은 돌봄이 가능하다. 부양 경험이 없는 사람은 ‘승리 없는 싸움’이라는 노인 돌봄의 처절한 일면을 모를 수 있다. ‘부양의식의 약화’로 서술될 그런 관념적인 문제가 아니다. 돈과 시간을 둘러싼 긴장 상태에서 갈등을 겪지 않는 가족은 없다. 이 맥락에서 지인의 말은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는 8남매를 키우셨지만 8남매가 그 한 사람을 감당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결국은 가족관계를 다 끊어놓고 가셨어요.” 왜 이렇게 부모 모시기가 힘들고, 노인의 삶이 비참할까? 우리는 여전히 부모 부양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예상되는 노후 때문에 우울하다. 가족을 주 부양자원으로 간주하는 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1인 가구가 가장 흔한 가구 유형이 됐고, 합계출산율이 0.98명이다. 현재의 돌봄 위기는 부양의식의 약화가 아니라, 사회의 돌봄시스템이 사회와 가족변화를 따라잡지 못해서이다. 우리 센터에서는 하루에도 수명씩 범죄피해자에 대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지원을 위해 서산시를 비롯해 인근 지자체의 복지관련 담당자들 만나보면 최근 젊은 층에는 현재와 미래에는 가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을 종종 듣곤 한다. 시민의 노후를 사회가 책임진다는 전제에서 복지정책을 다시 기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불안에 잠식된 사회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족의 부담이 줄어야 돌봄 연대로서 가족은 회복된다. 지금 우리의 가족은 너무 무겁고, 아프고, 고단하다.
    • 오피니언
    • 기고
    2019-06-19
  • 서산시 정책방향에 대한 발표문||서산공용버스터미널 이전 및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 관련
      존경하는 17만 8천여 시민 여러분!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이전 및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은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우리시의 대표적인 현안입니다. 찬성하시는 분도 있고 반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여 취임 1년 안에 정책방향을 결정 하겠다’라고 약속을 드렸고, 이제 약속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시에서는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정책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이해 당사자와의 수차례 간담회, 갈등영향 분석, 전문가 의견 수렴, 시민토론회 등을 개최했습니다.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의견입니다.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은 도시 확장에 대비하고,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도심지와 멀리 떨어져 있고, 인구증가 추세 등을 볼 때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덧붙여 투기의혹 등 논란이 있어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다음은 터미널 이전에 대한 의견입니다. 시설의 노후화, 교통 혼잡, 도시의 확장 차원에서 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반면 터미널 이전은 원도심의 공동화와 교통약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터미널 이용자들의 감소 등을 들어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또한, 터미널 이전은 찬성하지만 도시 확장의 흐름을 볼 때 수석동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제3의 대안도 제시되었습니다. 다음은 행정의 연속성과 관련한 의견입니다. 시에서는 2011년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이전 타당성 용역’을 통해 터미널 이전을 광역적 도시계획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최소 25만 이상의 인구가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바 있습니다. 2016년도에는 수석지구를 도시개발사업 대상지로 선정하였습니다. 터미널 이전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2011년 용역의 결과를 따르라 주장하고,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을 찬성하는 시민들은 2016년의 약속을 지키라고 합니다. 모두 행정의 연속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내용은 서로 정반대입니다.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서산공용버스터미널 이전 및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에 대한 최종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은 복합터미널 부지를 포함하여 추진하겠습니다. 다만, 인구증가 추이와 시 재정형편을 감안하여 당초 86만 평방미터 규모에서 40만 평방미터 규모로 조정하여 추진하겠습니다. 원안대로 추진할 경우, 체비지 매각이 지연된다면 시에 최대 738억원의 추가 재정부담이 수반되며, 연간 약 17억원의 이자 또한 추가로 부담해야 합니다. 또한, 이미 민간에서 추진하고 있는 도시개발사업에 미칠 영향, 아파트 장기 미분양 사태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안대로 개발하려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만, 적정규모의 면적을 우선 추진한 후 사업의 효과, 인구증가 추이, 도시확장 추세 등을 판단하여 추가 개발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지역에 대해 민간에서 도시개발을 추진한다면 아낌없는 행정지원을 통해 수석지구도시개발을 촉진해 나가겠습니다. 한편, 2017년 지방재정사업 중앙투자심사 결과 복합터미널이 포함되지 않으면 수석지구도시개발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면적을 조정하여 추진하더라도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터미널 이전 기반을 확보하는 한편 서산의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복합터미널 부지를 포함하여 추진하겠습니다. 터미널은 민자유치를 통한 복합터미널 방식으로 이전하되 장기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2015년 ‘서산시 복합공용터미널 조성규모 및 개발방식 연구’에서 민자 유치를 통한 복합개발방식으로의 추진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터미널을 운영할 민간사업자의 확보는 현재는 물론 향후에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민간 사업자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부지조성과 복합터미널을 건립하여 이전하기까지는 15년 정도 소요되며, 2015년 연구에서도 터미널 이전 목표연도를 2035년으로 설정한 바 있는 장기사업입니다. 시에서 복합형태의 공영터미널을 조성하는 방식은 약 7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부담과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석지구에 터미널 부지를 확보한 후 민간사업자의 참여 여부, 2011년 용역에서 제시한 인구 규모, 원도심의 경쟁력 확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여건이 갖추어 지는 시기에 터미널 이전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터미널 이전과는 별개로 시민들께서 많은 불편을 느끼고 있는 기존 터미널에 대한 전면적인 시설환경을 개선하고, 지속적으로 시의 발전기반을 다져 나가겠습니다. 터미널 리모델링, 교통체계 개선, 주차장 추가 확보 등을 통해 시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겠습니다. 원도심과 동부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 뉴딜사업, 상권 활성화사업, 동부전통시장 내 주차장 확보, 지역화폐 발행 등을 통해 활력 있는 도심을 만들겠습니다. 인구가 늘고 경기가 활성화 된다면 우리의 고민은 한층 줄어들 것입니다. 가로림만국가해양정원 조성, 첨단정밀화학특화단지 조성, 바이오웰빙연구특구 활성화, 지곡일반산단 조성, 운산 산림휴양복지숲 조성, 서해안내포철도 건설 및 공공기관 유치 등을 차질없이 추진해 인구증가와 경기활성화를 유도하여 시민 여러분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 드리겠습니다.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서산의 미래를 위한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과 공론의 과정을 통해 시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합니다. 터미널 이전과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에 찬성하는 시민도, 반대하는 시민도 모두 서산시민입니다. 모든 주장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으며, 또한 그 근거가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존경하는 시민여러분! 터미널 이전과 수석지구도시개발사업은 시민 여러분이 주신 많은 의견을 바탕으로 심사숙고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시의 결정을 존중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19. 6. 12 서산시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6-12
  •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데스크칼럼
        김현경 서산시 부시장이 느슨해진 공직기강 확립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는 등 강도 높은 공직 쇄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공직자로서 품위 및 청렴의무를 손상하는 행위, 직장 내 분위기를 저하하는 행위 등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벌하는 신상필벌의 원칙을 적용해 느슨해진 공직기강 해이를 다잡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앞서 맹정호 시장도 3일 열린 월례회에서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분에게 능숙한 업무능력과 높은 도덕성, 시민을 향한 겸손한 태도를 주문해 왔다”며 “그러나 어느 조직이든 미운 오리, 개울물을 흐리는 미꾸라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맹 시장은 “앞으로 공직기강을 더 바로 세울 것이다. 의욕적으로 정책을 펼치다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은 감싸 안고 제가 사과하겠다”며 “그러나 나태하고, 부도덕하고,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공직자에 대해서는 내릴 수 있는 최고의 징계를 내리겠다. 더 이상 온정주의나 제 식구 감싸기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시장과 부시장이 각각 공직기강을 이렇게 강조한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이처럼 예년에 볼 수 없던 강력한 공직쇄신 개혁 드라이브에 공직사회가 바짝 긴장하는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유감스럽게도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공직쇄신은 그동안의 단골 메뉴 구호로 번번이 구두선에 그친 탓인지 모르겠다. 소나기만 피해 가면 된다는 공직사회 특유의 안일한 습성에서 잠시 땅에 납작 엎드려 눈만 굴린다는 ‘복지안동’, 낙지처럼 펄 속에 숨는다는 ‘낙지부동’이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과연 내가 맡을 수 있는 자리인가’,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행정서비스를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식견이 있는가’, ‘투철한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있는가’ 등의 공무원들 스스로가 자신을 되돌아보는 깊은 반성과 함께 뼈를 깎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 한 작금의 볼썽사나운 공직풍토는 결코 바로잡을 수 없기에 하는 우려다. 이번만큼은 절대 구두선에 그쳐선 안 된다. 그래서 한마디 한다. 관료사회의 대표적 불신의 아이콘인 ‘철밥통’을 깨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공직에 들어오면 너나없이 철밥통 의식에 젖어드는 악습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업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고 공직자로서의 기본자세가 불량한 구성원을 퇴출하는 공무원 신분보장제 철폐 등 강도 높은 개혁안이 도입ㆍ시행되지 않고서는 뾰족한 해법이 없다. 일하지 않는 공무원은 불이익도 받지 않는 무사안일의 공직문화를 일신하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풍토 조성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은 직무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태만히 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징계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서 통솔력이 형편없는 역량 미달이나 근무 태도가 극히 나쁜 사람은 직위해제도 가능하도록 명문화돼 있다. 공무원이 무능하고 업무에 태만할 경우 강력한 제재가 가능토록 제도상으로도 이미 마련돼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그동안 공무원이 어떠한 경우에도 신분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규정을 적극적으로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 일찍이 무능공무원 퇴출제를 도입해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 24명을 내보냈고, 성남시는 업무능력이 떨어져 무능하거나 근무 태도가 불량ㆍ태만한 공무원을 ‘시민봉사단’에 배치해 급식봉사 및 공원청소 등 일정기간 현장근무 이후 재평가에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면 직위해제 등을 통해 공직을 떠나게 했다. 그동안 당연시돼 온 ‘공무원=철밥통’이란 인식을 깨뜨린 획기적인 사례로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민간 기업이라면 이런 철밥통들은 진작 쫓겨났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아야 하고, 소극ㆍ부정적으로 일하면서 꾀만 부리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과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바로 이러한 인사시스템이 시민 정서이고 공정사회를 이루는 길이다. 시민의 세금은 무서운 돈이다. 일도 하지 않고 시민을 섬기지도 않는 무늬만 공무원들에게 매월 꼬박꼬박 녹봉을 주는 것은 국록을 마냥 축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직은 개인의 영달과 출세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자리다. 서산시가 하반기 인사를 앞두고 있다. 일하지 않는 공무원은 시민의 공복(公僕)이 아니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병렬 편집국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6-12
  • 400년 ‘호산록’을 되살리는 제언||가기천의 일각일각
        400년 전 서산의 이모저모를 살펴본다. <호산록 湖山錄>을 통해서다. 올해는 1619년 이조정랑을 지낸 한여현 공이 당시 서산의 인문지리를 망라하여 서술한 호산록을 펴낸 지 꼭 400년 되는 뜻 깊은 해다. 호산록은 개인이 쓴 읍지(邑誌)가운데서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문헌 중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귀중한 사료로 알려지고 있다. 호산록은 1992년 서산문화원에서 처음 번역하여 발간하고, 1999년에 재판을 냄으로써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귀중한 문헌이 빛을 보기까지 정성을 다하여 소장해온 후손과, 번역·발간을 추진한 당시 서산문화원 김현구 원장을 비롯한 회원,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드린다.  고려 때 일연선사가 쓴 <삼국유사>는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뿐 아니라 고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와 설화를 기록하여, 조정 관료인 김부식 등이 집필한 관찬사서(官撰史書) <삼국사기>와 더불어 더없는 귀중한 사료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사찬(私撰)인 호산록 또한 서산은 물론이고 조선 시대 지방의 역사, 문화, 문물, 풍토와 백성들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써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매우 크다. 호산록은 건(乾)ㆍ곤(坤) 두 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이라 할 수 있는 ‘건’편에는 서산의 경계, 건치연혁, 군 명칭 변경과 지위의 승강(乘降), 주요 성씨(姓氏), 향교, 성곽, 이명(里名), 산천, 토산품, 민속, 향풍, 고적 등 유무형의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하였다. 하권에 해당하는 ‘곤’편에는 충신, 효자, 절부(節婦) 등 고금(古今)의 인물을 사연과 함께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우선 ‘호산(湖山)’에 관한 설명이 있다. 서산의 명칭에 관하여 보면, 백제 시대에 기군(基郡), 통일 신라 때 부성(富城), 고려 이후 서주(瑞州), 서산(瑞山), 서령(瑞寧)이 있었다. 즉 ‘호산’이라는 명칭은 없었는데, 호산록에서 서산의 별도의 이름임을 밝히고 있다. 조선조 종친들이 ‘호산감’이라는 직함을 하사받고 서산에 거주한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 장, 한 장 넘겨 읽으면서 옛 서산의 모습을 그려보고 선조들의 생활상을 떠올려 보며, 많은 느낌을 얻었다. 특히 당시 백성들의 생활상 부문에서는 아리고 아팠다. ‘해호(海戶)’편에 ‘가난한 어민, 홑옷을 입은 자들이 얼음을 깨고 석화(石花, 굴)를 잡으며, 겨울 철 눈 속에 낙제(絡蹄, 낙지)를 잡는데 맨발로 언 개펄에 들어가서 천번 만번 죽을 고생을 하여 관청에 헌납하면 … 추위에 시달림을 불게하고 혹독하게 볶아대니 어민의 고생은…’구절이 눈에 띄었고, 관리들의 행태에는 가슴이 무거웠다. 선정을 베푼 태수(太守)의 사례는 지금도 깊이 새겨야 할 내용이 많았다. 태수에 대한 감정으로 감사(監司)에게 탄원서를 낸 교생(校生)이 옥에 갇히자 몸소 찾아가 위로하고 사과한 후 동헌 위 자리에 앉힌 다음 지적한 사항 하나하나를 새기며, ‘관리와 백성들이 아첨하고 칭찬하는 말뿐인데, 경계해주는 바른 말을 해주니 나의 스승‘이라고 하였다. 효자, 열부들의 뭉클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安堅)선생을 지곡(地谷)출신이라고 명정한 것도 호산록에 기록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일이었으니 역할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자랑할 만한 역사와 인물, 미풍양속이 있다고 하더라도 기록이 없다면 뜬 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지역마다 시‧도지(市‧道誌)와 시‧군지(市‧郡誌)를 비롯하여 향토지를 만드는데 힘쓰는 것은 이런 취지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호산록은 되새겨 볼수록 가치가 크다. 아울러 이처럼 귀중한 사료를 오늘에 되살리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래야만 역사적 문헌을 남긴 취지에도 부합된다. 역사는 당시의 사실과 상황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는데 의의가 있고, 이를 재발견하여 오늘에 되살릴 때 가치가 있다. 이에 몇 가지 제안한다. 첫째, 재간행이 필요하다. 이를 전문판(全文版), 발췌본 등으로 나누어 발간하고 널리 보급하여 향토연구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시민과 학생들에게 ‘서산 역사알기’ 교재로 활용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하되 알기 쉬운 용어와 해설을 덧붙이고, 가로쓰기로 편찬하면 젊은 세대가 읽기 쉽고 이해를 도울 수 있다. 굳이 한자로 된 원문은 수록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둘째, 당시 목민관의 업무수행 자세에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그 정신과 자세를 거울삼아 기관장을 비롯하여 공무원들이 마음에 두고 일했으면 한다. 셋째,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사찬의 향토사 자료로써, 그 가치를 선양하고 길이 보존하려면 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서산이 이만한 역사자료를 남겼다는 자랑과 잘 간수하여 온 노력, 그리고 번역본을 발간한 지혜를 높이 사면서 또 다른 형태로 재탄생하여 널리 활용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 서산시 부시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6-12
  • 국공립대학교 교수 재임용 거부에 대한 항고소송의 제기 가부||[법률가이드]
      [문] 甲은 임용기간 4년의 乙국립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어 재직하던 중 임용기간이 만료되자, 乙대학교는 “인사위원회 심의결과 甲의 연구실적이 재임용 기준에 미달되었다”는 이유로 재임용을 하지 않고 “임용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취지의 통지를 보냈습니다. 이 경우 甲은 乙국립대학교의 위 통지에 대하여 ‘교수재임용거부처분취소’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요?   [답] 이 사안과 관련하여 종전 판례는 “교원의 임용기간 만료의 경우 재임용의 기대권을 가진다고 할 수 없고, 임용권자가 인사위원회의 심의결정에 따라 교원을 재임용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을 하고 이를 통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판시하였으나(대법원 1997. 6. 27. 선고 96누4305 판결), 그 후 견해를 변경하여 “기간제로 임용되어 임용기간이 만료된 국공립대학의 조교수는 교원으로서의 능력과 자질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받아 위 기준에 부합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임용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재임용 여부에 관하여 합리적인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를 요구할 법규상 또는 조리상 신청권을 가진다고 할 것이니, 임용권자가 임용기간이 만료된 조교수에 대하여 재임용을 거부하는 취지로 한 임용기간만료의 통지는 위와 같은 대학교원의 법률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한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4. 4. 22. 선고 2000두7735 전원합의체 판결). 따라서 甲은 비록 임용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취지의 통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위 변경된 판례에 의할 때 이는 재임용거부처분에 해당하여 재임용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재임용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항고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3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1층 법률구조실,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기고
    2019-06-12
  • 지방분권 시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이선영 충남도의원 특별기고
      대한민국 건국 이래 주권에 대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지방자치단체는 시민들의 주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자치분권’ 실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역시 약속한 것을 하나하나 법안으로 제시하면서 지방분권과 지역 균형발전이 구체적인 실천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지방분권의 핵심은 사무 이양을 포함한 행정분권과 이를 물질적으로 뒷받침하는 재정분권이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은 약 8:2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는 한 지방분권의 실천은 요원하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자치분권은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 국가’로 상징된다. 그만큼 기대감이 커진 새로운 지방자치 시대에 대한 정부의 노력과 성과를 살펴봤다. 그 중 하나가 2017년 9월 11일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가 발표한 ‘자치분권 종합계획’이다. 종합계획에는 ▲중앙권한의 지방 이양 ▲현실적인 주민주권 구현 ▲재정분권 ▲중앙·지방 및 자치단체 간 협력 강화 ▲자치단체의 자율성과 책임성 확대 ▲지방행정 체제 개편 및 지방선거 제도 개선 방안 모색 등 6대 추진전략과 33개 과제로 이뤄져 있다. 자치분권위에 따르면 중앙권한의 획기적인 지방이양을 위해 지난 2004년부터 추진해 왔지만 매번 무산됐던 ‘지방이양일괄법제정(안)’이 지난 10월 26일 국회에 제출돼 심의 중에 있다. 이 법안이 통과 된다면 500여개의 국가사무가 한꺼번에 지방으로 넘어가게 된다. 국가와 종속적인 관계이던 지방이 대등한 협력관계로 상향된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치분권은 중앙집중형 정부구조에서 지방분산형 구조로 체질을 변경하는 것으로 시민들에게 밀접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이 확대된다. 특히 주민자치가 강해져 주민의 의사에 반하는 정책 대신 마을 단위의 자생적 자치가 가능해지며, 주민의 직접 참여 확대로 주권 행사력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지방의회의 경우 단체장 견제 기능이 강화돼 자치단체의 투명성·공정성이 높아지는 동시에 신뢰도가 향상된다. 다양한 장점들 때문에 각 지자체도 자치분권 조기정착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선거당시부터 지방분권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에 대한 실천의 일환으로 지방분권 개헌을 추진하며 현재 약 8: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장기적으로 6:4까지 개선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특히 지방분권의 핵심인 재정분권과 관련해 지난해 2017년 10월 30일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행 8:2에서 2022년까지 7:3까지 끌어 올리고, 지역 간 세원 불균형 보정장치 마련을 핵심으로 하는 ‘재정분권 추진방안’이 확정 발표됐다. 하지만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에 경제력이 70% 가량 집중된 상황에서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할수록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지방세를 빨아들이며 오히려 지역 간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 역시 존재한다. 2015년 기준 전국과 비교했을 때 소득세 67%, 법인세 69% 그리고 지방소비세의 과표가 되는 전체 도소매판매액 66%가 각각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단순한 지방자치 논리를 바탕으로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하면 가뜩이나 비대한 수도권에 지방정부 몫인 국세를 약 70% 더 집중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내실을 갖춘 밀도 있는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방분권 시대를 맞이하여 각 지자체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치분권개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개헌으로 지방자치단체를 권리주체로 보장하고 헌법 조문에 지방분권을 명시해야 한다”면서 “2019년에도 자치분권개헌을 위해 더욱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 충남 역시 지방분권에 알맞은 자치분권조례 제정, 제도마련ㆍ역량강화를 위한 조례 제정, 자치분권협의회 등으로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고 노동인권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깨어있는 시민들 역시 자체 역량을 강화해 충남도와 충남도의회를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활동체와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선제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함으로써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어 지방분권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날을 맞아야 한다. 충남도정을 이끌어갈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활동할 수 있는 조직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정당 역시 시민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상생과 소통 그리고 긴밀한 관계를 맺고 지방분권시대에 걸맞는 역할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 오피니언
    • 기고
    2019-06-04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