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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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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 농업 위기의 해결책은 환경이다
    지금 우리는 시대의 가치가 전환되는 한복판에 서 있다. 우리 모두가 직접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전 세계는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가 만든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해 5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1ppm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온 현상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는 지난 6월 역대 최고기온인 38℃를 기록, 폭염으로 펄펄 끓어오르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소리 없는 재앙이라 불리는 지구온난화는 시간이 갈수록 가속화되고 있다. 지구의 온도는 빙하기를 거쳐 1만 년 동안 지구 온도 4도 올랐는데 산업화 후엔 100년 만에 1도 상승하여 25배 이상의 기온상승이 일어났다. 기온이 2도 이상 올라가게 되면 지구는 자연 회복력을 잃게 된다. 북극의 빙하는 이제 예전 상태로 복원은 거의 불가능하고, 2030년에는 북극의 얼음이 모두 사라질 전망이다.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해수면이 평균 6m 상승해 전 세계의 많은 해안도시가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 상태로 유지하면 2060년경에 2도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고 인류 문명의 붕괴가 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 하기도 한다. 특히 기후변화의 영향은 농업에 있어 현재 거의 전부분에 걸쳐져 있으며, 그 파급 영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농업생산기술의 취약성을 품목별로 분석한 결과 우리의 주식인 쌀의 경우 기후변화로 잠재수량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지난 10월 8일 ‘2020년 쌀 예상생산량 조사 결과’를 통해 올해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이 363만1000t으로 지난해보다 3%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통계청은 재배 면적이 줄어든 데다가, 기록적인 장마와 잦은 태풍 영향을 받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전국의 벼 재배면적은 72만6432ha로 지난해보다 0.5% 감소했고, 10a당 생산량은 500kg으로 지난해보다 2.5% 줄었다. 농업인들이 느끼는 피해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최소 15~20%, 피해가 심한 지역은 생산량이 지난해 대비 30% 넘게 줄어든 곳들도 많고, 그마저도 지역별 편차가 크다는 게 농업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산시는 전국 3위의 경지면적과 충남 2위의 쌀 생산량을 자랑한다. 특히 여의도 면적의 40배의 크기인 서산 간척지는 우리시 전체 경지 면적의 약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간척지에는 9월 18일 이후 지금까지 비가 내리지 않고 있으며,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 탓에 잎이 마르고 고사하여 벼 알이 여물지 않아 수확량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2019년 기준 서산시의 단위면적(10a)당 쌀 생산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다. 서산시는 우리나라 3대 석유화학단지인 대산공단 등 화학산업과 자동차산업을 통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동안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의 자연이 훼손되어 왔던 게 사실이며, 그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피해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왔다. 앞으로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서산시는 지난 10월 23일 충남 최초로 환경교육도시 선언을 했다. 환경교육을 통해 시민의 환경문제 해결 역량을 강화하여 지속가능한 서산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농업을 위해서라도 환경을 중시하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농업은 만사의 뿌리이며, 농업인이 없으면 아무도 살수 없다. 앞으로 우리가 환경을 중심으로 노력해 나갈 때 우리의 농업과 우리의 서산도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장갑순 서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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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 문안순찰(問安巡察)을 아시나요?
    문안순찰은 기존 차량 위주의 경찰 활동에서 벗어나 발로써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안전 여부를 확인하고 아울러 안부를 묻는 등 일상적인 대화를 통하여 경찰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여 치안 시책에 반영하는 일종의 감성 치안 활동이다. 즉,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장소에 늘 경찰이 상존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방식(方式)의 일환으로 부모, 자식, 친구처럼 대화를 통해 마음의 공유와 불편한 것이 있으면 관계기관과 긴밀히 연계하여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을 주된 내용이 골자이다. 안녕(安寧)을 묻는다는 것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가 주임무(主任務)인 경찰이 주민에게 경찰권 발동이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다. 이렇게 경찰관이 기존의 순찰차 중심에서 벗어나 도보 순찰하며 우범지역, 여성안심 귀갓길, 골목길, 편의점, 외딴 농가주택 등 노인정을 찾아다니며 문안순찰 활동을 실시해 사회적 약자인 어르신들의 안부를 확인하다 보면 지역에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파악이 되고 범죄예방은 물론 범인 검거에 결정적 증거까지 수집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주민을 직접 만나고 주민의 마음을 공유하며 주민들의 공감을 얻는 문안순찰은 체감치안 만족도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순찰방식의 일종이다. 우리 경찰이 국민의 경찰로 거듭나 국민에게 책임을 다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치안서비스가 이루어질 때 국민은 경찰을 신뢰하고 또한 경찰관들의 변화된 모습에 국민의 많은 호응과 함께 찬사를 보내 주리라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방준호(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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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 집행유예 기간 경과 후 다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나요?
    [문] 甲은 사기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의 선고를 받았으나 집행유예 기간 중 다시 절도죄를 저질러 기소되어 재판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재판도중에 집행유예 기간이 경과한 경우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다시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는지요? [답] 집행유예 및 그 결격사유를 정하는 형법 제62조 제1항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 제51조의 사항을 참작하여 그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기간 형의 집행을 유예할 수 있다. 다만,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판결이 확정된 때부터 그 집행을 종료하거나 면제된 후 3년까지의 기간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죄에 대하여 형을 선고할 때에, 집행유예의 결격사유를 정하는 형법 제62조 제1항 단서 소정의 요건에 해당하는 경우란, 이미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된 경우와 그 선고 시점에 미처 유예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하여 형 선고의 효력이 실효되지 아니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로 국한되고,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유예기간을 경과한 때에는, 형의 선고가 이미 그 효력을 잃게 되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집행의 가능성이 더이상 존재하지 아니하여 집행종료나 집행면제의 개념도 상정하기 어려우므로 위 단서 소정의 요건에 해당 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범죄라고 할지라도 집행유예가 실효 취소됨이 없이 그 유예기간이 경과한 경우에는 이에 대해 다시 집행유예의 선고가 가능하다.”라고 하였습니다(대법원 2007. 2. 8 선고 2006도6196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집행유예 기간 중에 범한 범죄라고 할지라도 집행유예가 실효 또는 취소됨이 없이 그 유예기간이 경과한 경우에 형법 제62조 제1항 단서가 정하고 있는 집행유예 결격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이에 대해 다시 집행유예의 선고가 가능하게 되므로, 甲이 집행유예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다시 집행유예가 선고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 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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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8
  • 충남 혁신도시 지정, 220만 충남도민이 해냈다
    내포신도시가 혁신도시로 지정되었다. 220만 충남 도민의 염원이 한데 모아진 결과다. 지혜와 성심을 모아주신 도민 여러분께 진심어린 감사를 드린다. 혁신도시 지정에 대한 출발은 국가균형발전 전략에서 비롯됐다. 지역은 고르게 발전해야 하고 국민은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은 국가균형발전 전략을 필요로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4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제정됨으로써 그 첫발을 내 딛게 되었다. 그 조치로 혁신도시가 지정되었고 이는 현재까지 전국 11개 광역시·도 10곳에 이르고 있다. 혁신도시로의 공공기관 이전은 150여 개에 이르고 있으며 이는 지역의 경제적·재정적 부분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대전과 충남은 이 제도와 혜택에서 제외되어 왔다. 충남에는 세종시라고 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가 건설되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세종시는 충청남도 산하의 지방자치단체가 아닌 세종특별자치시로 충청남도와는 별개의 독립된 광역자치단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충남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대한민국의 미래발전전략의 큰 대의를 위해 희생을 짊어졌다. 세종시 출범 당시 9만 6000명의 인구, 437.6㎢의 면적, 그리고 약 1조 8000억 원의 GRDP 감소라는 불이익을 감수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소외였고 이로 인해 도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렇지만 우리 충남도민은 분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국회와 정부를 끊임없이 설득하였으며 100만 인이 넘는 범 도민의 서명을 모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충남혁신도시 지정을 이뤄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길고 힘겨운 과정이었다. 굽이굽이마다 고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국가균형발전 전략과 이를 실천하는 혁신도시 지정은 우리 정부의 국정목표이자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전 시·도의 고른 혁신도시 지정과 경쟁력 있는 국가균형발전을 통해 반드시 함께 이뤄가야 하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현명한 우리 도민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충남 혁신도시 지정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정의롭고 올바른 길이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여러 폐해가 심화되고 있는 지금, 충남을 환황해권 중심도시로 성장시키는 것은 경부축 중심인 우리나라의 국토발전구도를 동서축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국가균형발전의 중추인 행정수도 세종시의 완성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것이다. 한편 혁신도시 지정이 바로 공공기관 이전의 촉구를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은 국가 균형발전차원에서 종합적으로 결단할 문제이다. 혁신도시 지정으로 새로운 성장의 마중물을 담을 그릇 안에 무엇이 담길지는 오로지 국가균형발전전략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충남은 혁신도시 지정이 충남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균형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완성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오늘날 국가균형발전의 설계도를 그리신 노무현 대통령께서 지방화와 균형발전시대 선포를 하신지 16년이 지났다. 이제는 진정 중앙과 지방, 지방과 지방간 협력과 상생을 통해 진정한 지방화와 균형발전의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이다. 충남 혁신도시 지정이 우리가 진정 바라마지 않는 실질적 균형발전 완성을 위한 대담한 도약이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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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21
  • 선고유예에 대해 알고 싶어요?
    [문] 저의 동생이 시골에서 경운기를 운전하던 중 지나가던 행인을 치어 전치 2주 상당의 상해를 입히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회부되어 ‘선고유예판결’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형벌인가요? [답] 선고유예(宣告猶豫)란 범죄의 정황이 가벼운 범죄에 대하여 일정한 기간 동안 형의 선고를 유예하고, 그 유예기간을 특정한 사고 없이 경과하면 면소(免訴)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선고유예 판결의 경우 형벌의 내용이 판결 주문에는 기재되지 않고 다만 판결 이유에만 기재됩니다. 형법 제59조 내지 제61조에 의한 선고유예의 내용을 보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의 형을 선고할 경우에는 ①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② 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④ 범행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 개전의 정상이 현저한 때에는 자격정지 이상의 형을 받은 전과가 있는 자를 제외하고는 그 선고를 유예할 수 있고,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날로부터 2년을 경과한 때에는 면소(免訴)된 것으로 간주하며, 형의 선고유예를 받은 자가 유예기간 중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한 판결이 확정되거나 자격정지 이상의 형에 처한 전과가 발견된 때에는 유예한 형을 선고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경우에 재범방지를 위하여 지도 및 원호(援護)가 필요할 때에는 1년간 보호관찰을 받을 것을 명할 수 있으며, 보호관찰을 명한 선고유예를 받은 자가 보호관찰기간 중에 준수사항을 위반하고 그 정도가 무거운 때에는 유예한 형을 선고할 수 있습니다(형법 제59조의2, 제61조 제2항). 이와 같은 선고유예판결은 유죄판결이기는 하나 피고인에게 실질적인 형벌을 부과하지 않는 가장 가벼운 처벌 유형으로서(법관이 양형 판단시 벌금형이나 집행유예형보다 죄질이 가벼운 경우 선고유예 판결을 함), 장차 피고인의 사회복귀를 용이하게 하는 특별예방의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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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0-10-21
  • 충청도 사투리는 느린 화법 아닌 접는 화법
    충청도의 말은 느린 것이 아니라 접어서 쓰유. 그 옛날부터 충청도는 물산이 풍부혀 사람 맴에 여유가 있슈. 급할 것이 하나도 읍슈, 특히나 내포방인 스산은 바다가 가차워 해산물이 풍족하고 들이 넓어 농산물이 풍부혀 충청도 특유의 여유가 더욱 두드려 졌슈. 하여 좋은게 좋다고 사람들 말이 간결해지니, 워쨌거나 대화는 두자면 다 해결 되유. 누가 뭐라고 하면 ‘그려’하면 되고, 맴에 안 들면‘뭐~여’하거나‘돼슈’하면 돼유. 혹여 누군가가‘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디’이것이 맞느냐고 자초지종을 물으면 ‘그 말이 맞습니다’라고 할 필요 없이 ‘겨’하고 확 접어 한 마디로 답하면 되유. 접어 사용한 말 중 하나 더 말하믄 ‘저콩깍지가 깐콩깍지인가 안깐콩깍지인가’열 여덟자인데 충청도 말로 하면 ‘깐겨 안깐겨’다섯자로 확 접어 말해도 뜻이 다 통해유. 충청도의 말은 느린것이 아니라 말을 접어 사용하기 때문에 말 뒷 끝에 여운을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를 보고 가끔 아랫녘 사람들은 자기네 잣대로 충청도 사람들은 느리고 성질도 읎다고 해유. 충청도 사람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유, 불멸의 이순신 장군, 도시락 폭탄 윤봉길 의사, 만해 한용운, 유관순 언니, 김좌진 장군 등 역사에 깡세기로 유명한 사람은 죄다 충청도 사람입니다. 충청도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녹지않는 얼음을 가슴 밑바닥에 가지고 있습니다. 충청도 사람은 절대로 말이 느리거나 행동이 느린 것이 아니라, 물산의 풍족함에서 오는 여유로움을 가졌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충청도 사투리에 얽힌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산 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발견 당시 뒷 이야기입니다. 스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은 백제시대 마애불 중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마애여래삼존상으로, 빛이 비추는 방향에 따라 미소가 달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유. 아침녁에는 평화로운 백제의 미소로 평화롭게 웃고, 정오에는 근엄한 모습으로 중생을 보살피고, 저녁이 되면 하루 일을 끝마친 개운함인지, 활짝 크게 웃는 모습유. 이러한 마애불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59년 부여 박물관장님이던 홍사준 교수님께서 보원사지에 발굴 조사를 오면서 였슈. 이곳 스산시 운산면 마을 사람들은 타지 사람이 와서 땅을 파다가 돌맹이가 나오면 돌에 대고 살살 붓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궁금증이 일어 묻기 시작 했슈. 그야말로 이쪽 말씨(사투리)로 “아~ 뭐한대유?”하고 물으면 홍사준 교수께서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발굴을 하는데 여기가 타지인지라 지리를 모르니, 혹 시산에서 무너진탑이나 깨어진 불상을 못 보았습니까 하고 되물었다고 해요. 그러면 이곳 사람 대답은‘물~유 뭇봤슈~’하고 심드렁 해유, 그러면 홍사준 교수께서 그런가보다 하며 다시 발굴을 하고 있으면 이번에는 체격이 건장한 청년이 와 또 묻유. 체격이 좋으니 나오는 말도 좀 세유 “돌팍은 간지럽혀서 뭐 헌데유”그러면 홍사준 교수께서 또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발굴을 한다며 또 다시 묻유 혹 스산에서 깨어진 불상이나 무너진 탑은 못보셨나요? 하고 물으면 “아~ 물류, 무봐슈~”참으로 외지인이 들으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게 느껴 지유. 하지만 절대로 불친절한 것이 아니고 이곳 사람들의 성향이 그류. 앞서 말했듯이 바다가 가차워 해산물 풍부하고, 들이 넓어 농산물 풍부하니 좋은게 좋다고 두 자면 다 만사가 해결 되는 것유. 그러던 어느 날, 나무꾼 할아버지가 지게에 나무를 한 짐 해지고와 그늘에 받쳐 놓고 묻기 시작하였다. “아~ 뭐한대유, 뭐허유”연세가 있으니 말 뒤끝의 여운이 더 길다. 홍사준 교수가 답하길 선은 이렇고 후는 이래서 발굴을 하는데 혹 산에서 나무하시면서 깨어진 불상이나 무너진 탑은 못 보셨나요. 하고 또 되물었다. 그러자 나무꾼 할아버지가 답하길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봤시유, 그런디 저인 바위 근처에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새겨져 있는 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한지 있시유, 근디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앉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을 볼따구데고 살살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본마누라를 놀려유, 그러니까 본마누라가 열받아 짱돌을 쥐고 던질까 말까하고 있시유.” 하여 홍사준 교수가 그 바위에 가보니 백제의 대표적인 부조형식의 불상이 나타났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그 신비한 미소 때문에 백제의 미소라 불리게 되는 이 불상은, 우리나라 마애불 중 고고학자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국보 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인것이다. 여러분도 꼭 시간을 내어 답사를 가서 백제의 미소를마음 가득히 담아 가시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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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3
  • 민태원 생가를 다녀와서
    민태원 생가를 찾아간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때문에 동행인 한명 없이 홀로, 음암면 신장리 메화동 골짜기 우보 민태원 생가 터를 찾아간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청춘예찬’의 작가 숨소리를 찾아간다. 구절초 꽃향기가 매화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매화고개를 넘어가는 매화마루에 올라, 이내 속에 가물거리는 민태원 생가 터를 내려다본다. 매화현 아래, 매화재 기슭, 매화동 골짜기 나지막한 산자락에 그의 생가는 잡초만 무성히 키우고 있다. 오솔길마다엔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의 잔뼈가 굵어가던 뜀박질소리가 들리는 듯, 꽃잎이 그의 눈빛처럼 반짝인다. 매화마루에서 매화골짜기로 내려와 우보 민태원 생가 터에 이르러 옷깃을 여민다. 우보가 공부하다 심었을 것 같은 거목의 매화나무만 나를 반길 뿐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청춘예찬’을 낭송하는 풍류가 들리는 듯 솔바람 소리가 잔잔하다. 지역주민의 말에 의하면 인근지방에는 김좌진 장군 생가, 한용운 선사 생가가 복원되어 위업을 기리고 있는데, 민태원 문학인 생가 터는 왜 복원을 안 하는지 아쉽다는 말을 한다. 생가 터를 복원해서 그의 위업을 기리고, 관광사업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면 좋지 않느냐 하는 말까지 덧붙인다. 41세로 요절한 민태원 소설가는 청춘예찬 작품을 통해서 민족정신에 젊은 피를 넣어 나라를 위한 헌신을 간접적으로 표현 호소한 글이어서, 그의 문학정신 의미가 더욱 깊다 하겠다. 음암면 상홍리에 ‘청춘예찬 문비’가 1990년에 세어졌다. 그 후 아직까지 그의 생가가 복원되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아쉽다. 생각해보면 서산시는 향토문학의 뿌리를 보여줄, 내세울만한 유적관리보존이 미흡하다. 타 지역에 비해 문학관도 없고, 문인들의 생가복원이나, 유허지 복원 등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전무한 상태이다. 문학의 뿌리 찾기 차원에서 하나하나 발굴 복원하여 문학유적의 관광 및 학생들의 현장교육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보 선생이‘청춘예찬’ 집필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청년으로서 그는 힘이 없어 일본에 당했으며, 이상이 부족해서 장래를 일궈내지 못한다는 쓰라린 심경을 참다못해, 그렇게 화려한 수식어와 힘찬 어조로 각성의 소리를 토해냈던 것이리라고 새삼 생각해본다. 바라건대 그의 이러한 민족정신, 애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속히 생가를 복원 그의 위업을 기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우보 민태원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보 생가복원, 우보 문학백일장, 서산향토문학 뿌리 찾기를 목적사업으로 내걸고 출발하였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발상이다. 서산의 향토문학 그 맥을 이어 나가려는 태동소리가 매우 야무지다. 가뜩이나 문학 활동무대가 희박하고, 향토문학의 뿌리 유적관리가 미흡한 현시점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태동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박수를 보낸다. 서산향토문학의 뿌리가 이제 움트고 싹터, 잎 피고, 꽃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산향토문학의 숨소리가 고동친다. 청춘의 젊은 피가 뜨겁게 흐른다. 서산향토문학의 따스한 바람이 분다. 젊은 우보 심장의 힘찬 박동소리가 우렁차게 메아리쳐 매화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매화골짜기가 안방처럼 후끈후끈 훈훈하다. 우보 민태원 소설가, 그의 유년시절의 휘파람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듯 댓잎이 서걱서걱 사락거린다. 박영춘(시인ㆍ한국문인협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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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3
  • 뉴노멀(New Nomal)시대 지방의회가 가야할 방향
    아기가 태어나고 100일이 지나면 고비를 넘기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의미로 백일잔치를 열고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해준다. 필자는 서산시의회 의장에 취임한지 100일을 맞아 의회와 서산시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뉴노멀시대에 어떤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야 할지 고민해 보고자한다. 지구촌이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초비상이다. 지난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팬데믹은 WHO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세계적으로 감염병이 대유행하는 상태를 일컫는다. 팬데믹의 시초는 14세기 중세의 흑사병이라고 할 수 있다. 흑사병은 실크로드를 시신으로 덮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희생시키며 대륙 전역을 초토화시켰다. 그런데 이 재앙은 역설적이게도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가톨릭 사제들도 병마 앞에서 힘없이 죽어나가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은 신앙에 대한 회의를 느꼈고, 합리적 이성에 눈뜨게 된 것이다. 이렇듯 위기(危機)에는 항상 위험(危險)과 기회(機會)가 함께 있다. 바야흐로 언택트(Untact), 온택트(Ontact), 디지털이 새로운 표준이 되는 뉴노멀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디지털 강국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미 재택근무, 오프라인 점포의 온라인 전환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고, 교육계에서는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되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도 소위 언택트 관련주들이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지방의회는 무엇을 대비해야 할까. 우선 임시회와 정례회, 상임위원회 등 회의 방식을 비대면으로 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여 시급한 민생법안이 미뤄짐 없이 처리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겠다. 의정활동 정보를 온라인상에서 누구나 지금보다 더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사람은 사회적 동물로서, 개인으로 존재하고 있어도 홀로 살 수 없고, 사회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여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살아간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제 뉴노멀 시대이니 서로 만나지 말고, 집에서 혼자 근무하고, 화면을 보고 교육받으라 하니 괴리감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언택트 및 온택트가 방역을 위해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고찰 없이는 위험해 보인다. 비대면의 일상화는 자칫 면대면 기피, 나아가 타종교ㆍ타인종ㆍ타지역 혐오로 이어지는 등 인간성 상실의 폐해를 낳고 있다. 또한 재난마저도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기 마련이다. 비대면 교육은 아동학대의 사각지대가 되고 있고, 도우미 없이는 움직이기 어려운 장애인에게는 코로나보다 10cm의 턱이 더 무섭다. 적어도 시민들과 접점에 있는 지방의회는 뉴노멀 시대를 맞이하며 비대면 정책에 소외되는 사람은 없는지,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하지는 않는지 등 사람을 먼저 생각하면서 정책을 펴야 하겠다. 비대면에 대한 기술적인 측면은 민간에 맡겨두고, 비대면 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신경 써야 하겠다. 그리고 대면 기피로 인한 타인 혐오 또한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간성까지 상실하게 하는 좀비바이러스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뉴노멀 시대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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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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