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7-17(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특산물과 신용의 가치
    가기천 전 서산시부시장 여행의 즐거움가운데 하나는 그 지역의 특산물을 맛보고 사는 것이다. 경관 좋은 곳을 둘러보고 별미 음식을 맛보며 겸하여 싱싱한 농‧수산물을 시장에서 보다 조금이라도 싼 값으로 살 수 있다면 돌아오는 길이 훨씬 더 뿌듯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예산을 지날 때는 길가 농장 옆에 있는 직판장에 들르는데 과일을 사며 느끼는 재미가 쏠쏠하다. 맛보라며 깎아주기도 하고 껍질에 흠이 난 ‘보조개(기스) 사과’ 몇 개를 덤으로 얹어주는 인정도 빼놓을 수 없다. 천안을 지날 때는 포도를 사기도 한다. 얼마 전, 안면도로 여행을 다녀온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펜션에서 묵었는데 주인이 일행을 태안버스정류장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하여 차를 탔다고 한다. 도중 길가에 마늘을 파는 곳이 있어서 잠시 멈추고 마늘을 사는데, 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가자면 다른 짐도 있어 들고 가기에는 무거워 반접만 샀다는 것이었다. 집에 도착하여 세어보니 개수가 여러 개 부족했다며 실망이 컸다고 했다. 서ㆍ태안이 연고지임을 알고 전화한 것으로 보아 속이 많이 편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파는 사람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고 바쁘다보니 착오였을 것이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모자람의 많고 적음을 떠나 찝찝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세종시는 ‘조치원복숭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길가에 판매소도 수십 개에서 백여 곳에 이른다. 유명세에 힘입어 지나가는 사람들도 차를 세운다. 필자가 당시 연기군에서 근무하던 시절  이른바 ‘속박이’로 항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상자 위쪽에는 굵고 모양이나 때깔이 좋아서 사가지고 왔는데, 아래에 있는 것을 꺼내보니 작고 볼품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상한 것도 있다고 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복숭아는 물론이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다른 농산물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며 나아가 군의 이미지까지 나쁘게 한다. 생각해낸 것이 도로변 판매소에 ‘번호’를 매기는 것이었다. 일종의 이름표를 달아 자기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국도변이라 정식으로 도로 점용허가를 내 줄 수도 없고 계절장사인 관계로 번듯한 건물이나 버젓이 간판을 달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판매자를 군에 등록하게 하여 ‘관리 번호’를 매겨주고 그 번호를 외부에 표시하게 했다. 아울러 판매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그 후에는 오직 한 건의 항의가 있었다. 그 소비자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 한 박스를 보내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판매자들끼리 자율정화 움직임이 일었다. ‘번호’가 있었기에 판매상에게는 책임의식을 갖게 하고 소비자에게는 믿음을 주는 것이었다. 도로변 판매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요즘 마늘 수확이 마무리되었을 시기이다. 올해는 수확량이 많아 생산자는 물론이고 행정기관과 농협까지 판매에 나서고 있다고 들린다. 양파와 감자도 마찬가지라니 생산량이 10%만 늘어도 가격은 20~30%이상 떨어지는 농산물의 특성상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럴 때일수록 믿음을 주어야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데, 앞 마늘 사례의 경우 착오였던 실수였던 결과적으로 안타깝다. 비록 서산에서의 일은 아니었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아 판매상에 대하여 적절한 계도를 했으면 좋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과연 가격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적정한 것인지에 대하여 살펴보고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서산 마늘’과 ‘서산육쪽마늘’은 다르다는 것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 서산육쪽마늘의 명성에 흠을 줄까하는 염려에서이다. 외지의 소비자들은 서산마늘 하면 모두 다 육 쪽 마늘이라고 알고 있다. 쪼개보면 여섯 쪽이 넘었다며 의문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육 쪽마늘이지만 환경에 따라 7~8쪽도 나온다는 것과, 그 이상 쪽수의 것은 일반 마늘로서 가격과 효능에서 다르다는 사실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믿음과 명성의 가치를 깊이 새겼으면 한다.
    • 오피니언
    • 칼럼
    2019-07-09
  •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을 다녀오다
    태양은 열기를 더해가고 짙푸른 신록이 7월을 데우던 지난주 필자는 서산문화원에서 실시하는 청주 문화유적 현장학습에 참가했다. 7월은 누가 뭐래도 생기가 있고 젊고 발랄하며 푸르러 사랑의 계절임에는 틀림없다.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이준호 문화원장은 인사말과 함께 서산의 인물론(人物論)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먼저 성리학의 전래자이시며 서산 정 씨 원조인 정신보 선생은, 남송 말기 간월도로 망명하여 살았으며 그의 아들 정인경은 1284년 충렬왕으로부터 서산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아처음 서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의 대표적 천문학자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을 제작하는 데 핵심 역할을 수행한 유방택 학자, 서산 간월도 출신이자 7세 때 경남 땅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 개국에 기여한 무학대사, 서산의 초대 태수를 7년 동안이나 지낸 최치원 선생등이 있으며 서산은 삼한시대의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으며 『낙토서산(樂土瑞山)』이라 하여 어염시수(魚鹽柴水) 즉, 생선. 소금. 땔나무. 물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서산이 살기 좋은 고장에 살면서도 뛰어난 역사적인 인물이 많으나 이를 현창(顯彰)하자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가슴이 아프다고 하시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필자는 청주하면 가슴 설레이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학창시절에 원치 않는 일로 처음 청주 북문로에 왔던 일, 약혼시절에 친구 부기내외와 찿았던 3.1공원, 그리고 수필가와의 문학 교류 등을 생각하면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도시가 바로 청주다. 어느덧 일행 41명을 태운 버스는 충북대학교 박물관 앞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1976년 박물관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아 30여년을 봉직 하시다가 2007년도에 박물관장을 끝으로 퇴임하신 이융조 박사님께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서산출신이신 이융조 박사님의 해설을 들으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석기, 짐승 뼈, 사람 뼈 등과 수양 개 주먹도끼 만드는 사람을 만져보며 구석기시대로의 여행을 떠나 보았다. 2층 전시실에는 중경 정착 후 임시정부가 한중 연대와 대중국 선전 활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중문으로 간행 된 독립신문 중경판(重慶版)인 독립신문 창간호를 매우 의미 있게 살펴보았다. 다음은 한국선사문화 연구원으로 이동하여 서산 동서간선도로(잠흥~석림)개설구간 내 유적인 서산 석림동 유다리들 유적에 대하여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볍씨가 기원으로 청주 소로리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오래 된 5020년 된 볍씨를 2003년 10월 21일 날 새로운 기적인 고대볍씨를 오창 산업단지에서 출토했다는데 더욱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박물관의 유물들을 하나하나 상세히 설명을 끝내고 소감을 말씀하셨는데, “자기작품이나 자기의 업적을 남으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복이다.” 라고 말씀하시자 일행을 모두 환호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소상공인 기능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해가 한정식』으로 자리를 옮겨 맛있는 점심과 휴식을 취했다. 다음은 청주시 상당구 명암로 143에 위치한 국립청주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따뜻한 친구, 함께하는 박물관”이라고 쓰인 표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도 이융조 박사님의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주먹도끼, 슴베찌르개. 갈판과 갈돌 붉은간토기 등 중원지역의 구석기문화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와 말을 타지 않았다는 마한 사람들의 유물을 흥미롭게 관람을 마치고 오늘의 마지막 코스인 소로리 볍씨 기념탑으로 향했다. 청주시 마크가 볍씨를 형상화 했다는 이융조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 강열한 햇빛을 받으며 단체 기념사진을 찍은 후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청주를 뒤로 했다. 우리가 떠난다는 것은 지나온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고백하고 앞으로 살아 갈 자신의 삶에 대한 독백일 것이다. 먼 후일 서로의 기억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삶이 되도록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자를 보냈다. 불편한 몸이 신데도 불구하시고 서산에서 왔다하여 시종 일관을 상세하게 설명하신 박사님!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최병부(서산문인협회 사무국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9
  • 버스 화물칸의 고장으로 물건이 분실된 경우?
    [문] 저는 甲 운송회사의 버스를 타면서 시가 45만원 상당의 물품을 수송의뢰 하였으나, 버스운행 중 화물칸의 문이 열리는 바람에 위 물품이 분실되었습니다. 이 경우 甲 운송회사측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요? [답]  「상법」 제149조 제1항에서 여객운송인은 여객으로부터 인도받은 수하물에 관하여는 운임을 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물건운송인과 동일한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같은 법 제135조는 물건운송인의 책임에 관하여 “운송인은 자기 또는 운송주선인이나 사용인, 그밖에 운송을 위하여 사용한 자가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 및 운송에 관하여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물의 멸실, 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판례도 “철도편으로 탁송한 화물이 훼손된 경우에는 철도운송인에게 화물운송에 관하여 과실이 있다고 일응 추정되는 것이며, 운송인은 화물운송에 관하여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운송화물의 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면치 못한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75. 10. 7. 선고 75다71 판결).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 甲 운송회사는 운송회사직원이 귀하로부터 인도받은 수하물에 대하여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과 운송에 관하여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한, 위 운송물의 멸실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것입니다. 즉, 버스 등 운송수단의 이용시 운송물을 화물칸에 보관하는 것은 운송인이 여객으로부터 수하물을 인도받는 것이 되고 이로써 상법상의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위 사안에서 귀하께서 물품대금 상당액인 45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물품의 시가가 45만원임을 증명할 책임은 귀하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는 물품의 품목 및 시가 등은 입증하셔야만 甲 운송회사로부터 45만원의 물품상당의 금원을 배상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19-07-09
  • 2년 차 시장의 ‘자리’
      다른 이야기로 시작한다. 대전 야구장은 지은 지 오래되어 시민들의 욕구를 담아내지 못하니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지난 해 시장선거에서 후보들은 야구장 신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선된 시장은 공모방식으로 유치신청을 받은 다음 심사를 거쳐 후보지를 선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모두 다섯 곳이 신청했고 각 구에서는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며 치열한 유치운동을 벌였다. 구청장이 앞장서고 의회와 사회단체까지 뒤질세라 나섰다. 그만한 일에 삭발과 단식까지 하는 등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이때 필자는 ‘승부가 끝난 게임’이라고 했다. 아무리 유치 활동을 하더라도 현재 야구장을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을 거라는 이유였다. 다른 지역은 유치에 실패하면 얻지 못한 것일 뿐 잃을 것이 없는데, 만약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면 ‘뺏겼다’는 상실감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국 현 위치에 새로 짓는 것으로 결정됐다. 서산에서는 공용버스터미널 이전과 수석지구 도시개발 사업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었다. 맹 시장은 취임 초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1년 안에 정책방향을 결정 하겠다’라고 약속했고, 지난 6월 약속대로 이에 대한 시행방안을 발표했다. 시장의 발표로 첨예했던 주장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그동안 이해 당사자들과 간담회, 시민토론회 등 여러 형태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쳤다. 이로써 ‘정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에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의 갈등을 해소하고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차선의 방안’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의 흔적이 보였다. ‘집토끼는 놓치지 않고, 산토끼는 멀리 달아나지 않도록 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겸하여 얻은 것이 있다면 개방적인 의견수렴 절차에 따른 객관성확보의 가치와 더불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외로운 자리, 성패의 결과를 짊어져야 하는 ‘시장이라는 자리’의 무거움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을 거라는 점이다. 앞으로 시정을 펼치는데 큰 경험과 자산이 될 것이다. 필자는 결정과정과 결과, 발표 형식과 내용을 보면서 ‘맹정호 호’의 시정 일 년을 짐작했다. 맹 시장의 트레이드마크는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이라고 한다. 소탈하고 민주적이며, 권위주의적이 아니라는 소문이다. 이러한 여론은 화끈하고 과감한 것을 능력과 성과라고 보는 사람들로부터는 박한 평가가 나올 수 있다. 자칫하면 조직의 기강이 풀리고 느슨해질 수 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는 조직원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하며 시민들의 이해를 얻어야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특히 공무원들이 방임이나 나태함으로 빠지지 않도록 유념하여야 한다. ‘사장으로 산다는 것’이라는 책에서 어느 대기업 임원의 경험담을 읽은 적이 있다. 직원 200여 명인 외국 지사장과, 수만 명을 거느리는 본사 부사장 자리를 거친 그에게 어느 자리가 더 힘들었느냐고 묻자 그는 “지사장자리가 더 힘들었다”고 했다. 지사장은 작은 조직, 적은 인원으로 일을 하지만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에 부담이 훨씬 컸다는 것이었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불확실하더라도 결정을 해야 하고, 최선이 아니더라도 선택하여야 하며 그 결과에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하는 고통스러운 자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직 내부를 이끌어 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지역의 장래까지 바라봐야 하는 위치이기에 그 중압감은 다른 자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제 시정 2년 차로 접어들었다. 어느 경우든 일 년쯤 지나면 여러 가지로 평가가 나뉜다. 더구나 선거를 거친 선출직에 대하여는 선거 때의 지지 여부를 떠나 현재의 잣대로 재게 된다. 현안 해결과 업무 성과, 공약이행, 비전제시에다 리더십에 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지난 1년은 조직의 특성과 공무원 개개인을 파악하는 시기였고, 공무원들도 시장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워밍업의 단계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뛰고 성과를 내어야 하는 때다. 스포츠계에는 이른바 ‘2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있다. 신인선수를 처음 일 년은 ‘보아 넘기더라도’ 2 년차부터는 냉정한 눈으로 보고 평가하므로 이에 선수는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각오를 하는데도 부담감이 크게 되며,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면 유달리 눈에 띄고 비난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2년 차에 들어선 지금 시정에 대한 탐색기를 끝내고 변화와 전진을 기다린다. ‘따뜻한 햇볕이 외투를 벗게 했다’는 동화가 있지만 시민들은 이처럼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한 사람 주인의 눈이 열 사람 하인의 눈보다 밝다’는 옛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직을 아우르고 시민통합을 이루는 가운데 역동적인 시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아무리 힘들어도 포부를 펼쳐 볼 수 있는 자리, 간절함으로 얻은 기회를 성공을 향해 힘껏 뛸 것을 기대한다./전 서산시 부시장
    • 오피니언
    • 칼럼
    2019-07-03
  • 정신보와 정인경의 재조명
      성리학을 고려에 최초로 전수한 정신보와 서산지명을 얻게 한 정인경 선생의 업적에 대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달 12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개최됐다. 정신보(?∼1271)는 고려에 송나라의 학문인 성리학(性理學)의 새로운 유교문화를 전파하고 몽고의 전란을 피하여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아들 정인경(1241∼1305)과 함께 몽고군을 격파하면서 무신정권을 끝장냈다. 서산군 양렬공 정인경이 왕권을 보위하고 끌려간 동포를 환향시키고 패전으로 잃어버린 국토를 되찾아 오는 등 모든 일은 오로지 탁월한 외교와 정치로 이루어낸 것으로 아버지 정신보의 가학의 힘이며, 귀화 다문화 1세대 정인경선생의 탁월한 노력과 재능이기에 이를 재조명 한다. 이러한 생전의 공적으로 서산군의 작위를 받았으며 서산이란 지명을 얻게 되었고 1305년 타계하신 후 1306년 양렬공의 시호를 받게 된다. 1237년 정신보가 남송에서 고려로 망명한 사건과 정신보ㆍ정인경 부자의 업적은 서산만이 갖고 있는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문화와 역사이며 또한 다양한 유산의 관광자원이기에 기획하고 가공하기에 따라 대한민국의 국운을 융성시킬 수 있는 소재일 것이다. 이에 원외랑 정신보와 성리학의 전래에 대하여 고찰하여 본다. 몽고가 크게 일어나 중국대륙을 점령하던 시대는 1206년부터 1367년까지이며 걸안, 서하, 금나라, 송나라, 바그다드, 아라비아 까지 아시아 전체가 몽고로 인하여 전쟁에 휘말리던 시대이다. 원 세조(쿠빌라이, 재위 1260-1294)는 1260년 중국 최초로 이민족의 왕조인 대원을 세우고, 1271년에는 연경에 도읍하여 국호를 원이라 칭하고 1276년 남송을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한다. 1231년~1259년까지는 몽고군의 고려 침공시기로서 고려 고종 24년 서기 1237년 형부원외랑 정신보가 고려에 망명한 시기는 몽고의 침략으로 남송이 망하기 39년 전 형부원외랑 벼슬 직에 있다가 충신은 두 나라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로 고려국 간월도에 망명 귀화하게 된다. 이때는 고려의 풍속이 불교만 숭상하여, 정신보가 성리학으로 고려사람 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니 고려 선비들이 대단히 기뻐하며 송나라의 정주학을 받아들이게 된다. 송나라의 경우 주렴계(周廉溪, 1017-1073), 장횡거(張橫渠, 1020-1077), 정명도(程明道, 1032-1085), 정이천(程伊川, 1033-1107), 주희(朱熹, 1103-1200)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이들의 학문을 정주학 또는 그들의 성을 따라 주장정주의 학문이라고 한다. 이들이 활동하던 시기가 11세기에서 12세기 말까지인 것을 감안하고, 고려와 송이 우호적인 관계에서 인적, 학문적 교류가 활발하였을 것을 생각하면 13세기 초 송나라에서 대학자로 명망가였던 정신보가 1237년부터 성리학의 강학과 소개를 하였다고 하겠다. 원 태조가 덕안을 함락한 후 유학자 조복을 얻고 금화에 살던 정신보의 학문과 인품의 뛰어남을 듣고 요추로 하여금 그를 초빙하려 하였다 한다. 元은 몽고군이 하북덕암을 함락하고 많은 학자들을 포로로 삼아 연경(북경)으로 데려가면서부터 유학이 심어지게 되었으며, 원나라에 유학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조복(趙復)과 요추(姚樞) 그리고 허형(許衡,1209-1281)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정신보와 동시대의 유학자들이다. 요추는 하남사람으로 元나라에서 벼슬하게 되고 포로로 된 조복을 달래서 연경에 이르게 하였으며, 조복에 의해 정주학에 심취하게 되었다. 요추는 특히 원 세조와 가까운 사이로 세조를 유교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의 길로 인도한 장본인이며 연경에 태극서원을 세우고 조복을 청해 정주학을 가르치게 하였다. 조복은 포로의 신분이었지만 요추에 의해 연경에 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주장정주의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다. 요추와 조복이 신보를 회유하여 신보도 함께 몽고 태조를 도와 일할 것을 요구함에 신보가 말하기를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북정(몽고)에 신복(臣僕)할 수 없다하며 죽음으로 맹서하니 원나라 태조가 이를 의롭게 여겼다. 신보는 이와 같이 조복의 길을 따르지 않았다. 남송에서 정신보가 조복에 버금가는 유학자의 위상임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리고 신변에 위협을 느낀 정신보는 다음해 정유(丁酉)년에 소항(蘇杭)으로 가서 바다를 건너 동방의 나라 마한 서주의 간월도에 망명하여 살게 된 이유이다. 1289년(충렬왕15) 정인경이 충렬왕이 원나라 연경에 가게 되어 호위시종 할 때 정인경이 충렬왕에게 청하여 안향을 고려 유학제거(성균관관장)에 제수하게하고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하여 오도록 권하여 안향으로 하여금 주자학을 연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원나라 유학자들과 교류하게 하고 고려 유학을 크게 부흥시키니 1237년 정신보의 성리학 전래는 안향이 1290년 주자전서(朱子全書)를 가져온 것보다 53년 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정신보는 남송에서 이름 높은 성리학자이며 고려의 충신이고 고려에 최초로 성리학의 강학과 소개를 한 분이다. 18세기 목만중(睦萬中)은 채모가 지은 정신보의 묘갈명을 인용하면서 정신보가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을 사숙(私淑)한 것이 틀림없고, 정신보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처음 전수한 것이 틀림없다는 기록을 남겼다. 정신보는 그간 많은 벼슬을 사양하다가 고려 원종10년(1269) 인주(의주)태수로 있으면서 원나라를 추종하는 부원배(附元輩) 최탄(崔坦)등에게 여러 번 죽임을 당할 번 하였으나, 고려 왕실 보존에 큰 공을 세우고 무신정권을 종식(1270)시키는데도 기여를 하였다. 1271(원종12년)에 별세하시니 관작(官爵)이 금자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예빈사(金紫光祿大夫 門下侍郞平章事禮賓事)요 관직(官職)이 상서형부원외랑절강정공(尙書刑部員外郞浙江鄭公)이다. 묘는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산의 95 연화산에 있으며, 서산시 송곡서원, 합천 운계서원에 배향되었고, 2002년 중국 국가급 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 강남제일가(江南第一家)에도 배향되었다. 매년 춘․추로 음력 2월과 8월 정일에 민, 관, 유림 후손들이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성/서산군 양렬공 정인경선생 기념사업회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3
  • 공중접객업자의 보관물 분실에 대한 책임
      [문] 저는 미용실을 경영하고 있는데, 손님 甲이 가방을 맡겨 이를 보관하고 있던 중 분실하였습니다. 그러자 甲은 “가방 안에 현금 400만원과 70만원 상당의 시계, 옷 등이 들어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그 전액을 배상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甲이 가방을 맡길 때 현금 등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설령 현금 등이 들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액수 등을 확인할 길이 없는 지금 甲이 요구하는 전액을 배상해야 하는지요? [답]  「상법」 제151조는 극장, 여관, 음식점, 그 밖의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에 의한 거래를 영업으로 하는 자를 공중접객업자라 규정하고, 동법 제152조는 공중접객업자는 고객으로부터 임치(任置)를 받은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에 대하여 불가항력으로 인함을 증명하지 아니하면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면하지 못하며, 공중접객업자는 고객으로부터 임치를 받지 아니한 경우에도 그 시설 내에 휴대한 물건이 자기 또는 그 사용인의 과실로 인하여 멸실 또는 훼손된 때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객의 휴대물에 대하여 책임이 없음을 개시한 때에도 공중접객업자는 위의 책임을 면하지 못합니다. 다만, 동법 제153조는 화폐, 유가증권, 그 밖의 고가물(귀금속, 골동품, 고서화 등)에 대하여는 고객이 그 종류와 가액을 명시하여 임치(任置)하지 아니하면 공중접객업자는 그 물건의 멸실 또는 훼손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하는 고가물책임에 관한 특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의 경우에도 甲이 화폐나 고가물이 있음을 알리고 맡긴 것이 아니므로, 귀하에게 화폐나 고가물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은 없다고 할 것입니다. 다만, 귀하가 고가물임을 알고 있었던 경우에는 물건의 멸실ㆍ훼손에 관한 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위의 책임은 공중접객업자나 그 사용인이 악의인 경우가 아닌 한 공중접객업자가 임치물을 반환하거나 고객이 휴대물을 가져간 후 6개월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며, 물건이 전부 멸실된 경우에는 고객이 그 시설에서 퇴거한 날로부터 위 6개월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공중접객업자인 귀하는 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19-07-03
  • 혈중 알코올 0.03%도 형사 처분
      지난달 25일부터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혈중 알코올농도 0.03~0.05%도 형사 처분 대상이 된다. 이전까지 음주단속 기준은 0.05% 이상이었지만, 도로교통법 개정 이후로는 혈중 알코올농도 0.03~0.08%의 운전자는 징역 1년 이하 또는 벌금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른바 윤창호법이 널리 알려진 후 올 1월부터 4월까지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또한 3,212건으로 지난해 4,986건보다 35.3% 줄었다.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사람도 93명에서 58명으로 37.6%, 부상자는 8,678명에서 5,437명으로 37.3% 각각 감소했다. 음주사고는 줄었지만 다른 사고에 비해 피해의 정도가 훨씬 심각함을 운전자 모두가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에서는 음주운전이 근절될 때까지 단속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음주운전은 단 나 하나의 실수에 그치지 않고 심각한 범죄 행위라는 확신 아래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시켜야 한다. 김영빈/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경위
    • 오피니언
    • 기고
    2019-07-03
  • 악기봉(樂記峰), 악귀봉(惡鬼峰)
    수년 전 서울 용두동과 하왕십리동 사이 청계천 무학교(無學橋)에 대해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유인즉 무학(無學), ‘배운 것이 없다’는 뜻이니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 곧 왜곡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터넷 어학사전에는 무학을 “1.배운 것이 없음, 2.불도의 수행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삼도의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하고, 무학교 역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한 무학대사의 고사가 상세히 기술돼 있기 때문이다. 남의 이야기는 이쯤하고 우리 동네를 살펴볼까 한다. 홍성을 대표하는 산을 꼽으라면 백월산, 오서산, 용봉산 등이다. 뜻있는 사람들이 오서산의 까마귀 ‘오(烏)자’는 고구려벽화에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를 뜻하고, 금북정맥의 최고봉이며 국가차원의 재천의식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산악신앙의 중심이었음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전히 ‘까마귀 오’자와 ‘산다’는 뜻을 가진 ‘깃들 서(棲)’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앞의 무학교처럼) “까마귀가 많이 사는 산”으로 불리고 있다. 용봉산 역시 여러 의미로 불린다. 과거 용봉산이 임금의 방위를 뜻하는 북산(北山), 팔방미인처럼 산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을 지녔다해 팔봉산(八峯山)으로 불렸던 만큼, “용의 기운과 봉황의 아름다움을 지닌 산”이라고 정의 할 것을 제안해본다. 여기에 용은 우리말로 ‘미르(미리)’이니 인생의 앞날을 (미리)밝히고, 죽어서 미리내(은하수)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영원불멸의 기운을 뜻하며, 봉황이 나타나면 태평성대를 이룬다는 주서(周書), 설문해자(說文解字) 등에 근거해 “모든 사람들의 앞날을 밝혀주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를 덧붙였으면 한다. 용봉산의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를 대부분 ‘악귀봉’이라고 부르고 간혹 ‘악기봉’이라고 한다. 산세를 둘러보고 문헌을 근거로 유추해 봐도 배고픈 귀신, 나쁜 귀신을 뜻하는 ‘악귀봉’이라 부를만한 이유가 없으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름에는 좋은 의미를 담는 일반적 정서에도 맞지 않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악기봉(樂記峰)’을 잘못 발음해 ‘악귀봉’으로 굳어진 게 아닐까 유추해 본다. 용봉산(팔봉산)에는 홍주이씨의 2대조이며 영의정을 지낸 당옹 이서를 비롯해 지봉 이수광 등 많은 문인들이 찾았고, 절경을 노래했다. 현재 용봉산을 작은 금강산이라 부르는 것도 이수광의 ‘지봉선생집’에 “팔봉산에 기암괴석이 많아 세간에서는 소위 작은 금강산이라고 부른다”에서 비롯됐다. 당시에도 많은 문인들이 악기봉을 찾았을 테고, 그 아름다움을 ‘예기’의 ‘악기편’에 비유했다고 본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으나 외물의 감동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 이때 외물에 대해 욕심이 생긴다. 외물에 현혹되거나 절제하지 못하면 이성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성을 잃고 욕심이 생길 만큼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예절은 백성의 마음에 절도를 주어서 행동을 바르게 하고, 음악은 감정을 순화시켜 사회를 조화롭게 하므로” 선비는 절제를 통해 본래의 마음을 지키고 사회를 음악처럼 조화롭게 만들어 “세상은 안정된 음악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태평성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악기편’의 가르침을 담아 ‘악기봉’이라 불렀을 것이라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본다. 책의 제목이 내용 전부를 나타내듯 이름은 의미를 전달하는 가장 함축적인 단어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의 앞날을 밝혀주고,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는 영험한 기운이 있는 용의 기운과 봉황의 아름다움을 지닌 산 ‘용봉산’!, 그중에서 가장 빼어난 봉우리 악기봉에 ‘이성을 빼앗아 갈만한 아름다움에도, 결코 현혹되지 않는 절제와 결기로 태평성대를 이끌어가는 군자의 표상’이라는 의미를 담을 때 비로소 용봉산의 기운과 아름다움이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범상/석불사 주지 스님
    • 오피니언
    • 칼럼
    2019-06-26
  • 불륜행위를 한 교사의 해임처분은 정당한가요?
    [문] 저는 국가공무원인 교사로서 법률상 처와의 사이에 1남을 두고 있으며 동료교사인 기혼녀 A와 계속적으로 불륜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학교 내에서도 물의가 빚어질 정도로 A교사와 가깝게 지내는 학생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가정적으로도 저는 오히려 부인에게 부정행위를 하였다며 폭행까지 일삼아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우 저는 교사직에서 해임 처분한다면 정당한 처분이라고 볼 수 있는지요? [답 ] 「국가공무원법」 제63조는 “공무원은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그 품위가 손상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교육기본법」 제14조 제2항은 “교원은 교육자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과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위 사안에서 귀하의 행위가 위와 같은 공무원의 품위유지의무에 위반되고, 그에 대한 징계로서 해임처분도 가능한지 문제됩니다. 이에 관하여 판례는 “공무원의 징계가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난 위법한 처분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징계의 사유가 된 비위사실의 내용 및 성질과 징계에 의하여 달성하려는 행정목적 등에 비추어 그 징계내용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부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경우이어야 한다고 하면서, 남자교사가 학교에서 물의가 빚어질 정도로 기혼자인 동료 여자교사와 가깝게 지냈고 둘 사이에 불륜관계가 있는 것으로 의심할 만한 행위를 하였으며, 급기야는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여자교사의 가정이 파탄에 이르게 되었고, 남자교사의 가정도 파탄된 경우 해임처분이 정당하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1996. 4. 26. 선고 95누18727 판결). 따라서 위 사안의 경우 귀하의 행위는 해임사유가 된다고 할 것이며, 그 처분의 정당성이 결여된다고 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3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1층 법률구조실,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 오피니언
    • 칼럼
    2019-06-26
  •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부화뇌동(附和雷同)
      논어 자로(子路)편에 나오는 말로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동일을 추구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소인은 동일성을 추구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고 친화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장에 가면 각기 다른 40여개의 악기 소리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나 이 악기 소리가 하나의 소리로 조화를 이루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리가 되는 이치와 같다. 즉 악기의 종류나 음계가 서로 다르더라도 지휘자의 지휘에 맞추어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으로 어우러지는 심포니처럼 사람들의 생각도 다를 수 있으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여 하나의 의견으로 수렴되는 것이 화이부동이다. 동(同)은 맹목적으로 부화하고 주견도 없이 남의 의견에 부화뇌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는 부화뇌동하는 소인배를 자주 볼 수 있다.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는가 하면 말과 행동도 다르다. 중용(中庸)에도 ‘화이불류(和而不流)란 말이 나온다. 이 말뜻은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반대로 소인은 이익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패거리를 지어 자기네의 이익을 둘러싼 쟁탈을 벌인다. 이 때문에 소인들은 한데 휩쓸리기만 할 뿐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생선이나 고기를 삶을 때, 조리사는 물을 맞추고 은근한 불로 열을 가한 후에 식초, 젓갈, 소금, 파, 등등의 양념을 고루 섞어 부족한 것이 있으면 더하고, 지나치면 줄여서 걸쭉한 육수를 만든다. 이는 화와 같은 이치이다. 반면에 지도자나 대표자가 옳다고 하면 자기도 옳다고 하고 지도자나 대표자가 그르다고 하면 자기도 그르다고 하는 것은 마치 물에 물을 보태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건 물일뿐이다. 이는 음의 조화 없이 일률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같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이런 사람은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요, 세련된 신사이며 수양되고 내공이 쌓인 인간이다. 반면에 소인은 미숙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화(和)는 각자가 지닌 자기만의 특성을 다른 이와 하나로 융합하는 일이거나 남과 화목 하는 일이다. 동(同)은 갖고 있는 특성 그대로 표출하면서 다른 이와 같은 척 꾸미는 것을 말한다. 각자가 타고난 개성과 다양성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요, 화목이다. 사회주의나 전체주의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다.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서로 다른 소리를 내되 조화를 이루면 화음이 되듯이 서로 다른 의견을 하나로 수렴하면 혁신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사회를 민주사회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이 행동하거나 말할 수가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 민주 사회이다. 저 마다 제 목소리를 내고 제목소리로 제 노래를 부르고 제 말을 하고 제 표현을 하면 된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면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사고방식이요, 공자가 말했던 화이부동의 세계이다. 만일 모든 사람이 같은 옷을 입거나 같은 소리를 낸다면 그 사회는 동(同)의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획일적인 사회요, 전체주의 세계이다. 그래서 화이부동의 사고방식과 생활철학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 생활 철학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같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구동존이(求同存異)와 같은 말이다. 즉 조화를 추구하지만 모두가 한결같고 똑 같아 공멸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것이 화이부동이라면 동이불화(同而不和)는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도 같다. 아마 요즘 들어 귀가 시리도록 듣는 말이 내로남불일 것이다. 화이부동과 동이불화는 한 사회나 한 나라 뿐만이 아니라 기업에도 확연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화이부동은 혁신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회나 나라 또는 기업을 만든다. 하지만 동이불화는 대통령이나 여와 야당 대표 한 사람의 말이 진리가 되어 아무도 발전적인 의견을 내놓지 않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사회, 이런 나라 , 이런 정당, 이런 기업은 혁신의 가능성이 나오지 못하여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우리는 화(和)와 동(同)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배척할 줄 알아야 좋은 사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김성윤/(사)충남포럼 이사장
    • 오피니언
    • 기고
    2019-06-2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