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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불멸(永遠不滅)
    우리 인간에게는 바람이 있다. 영원불멸이다. 무한한 사랑을 원하고, 변치 않는 우정,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아니 영원히 없어지지 않고 살기를 말이다. ‘백수 하세요’라는 인사가 큰 실례이다. ‘만수무강 하세요’도 옛말이 된 것 같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젊어졌다’, ‘인생이 거꾸로 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일까? 나이에 비해 젊다는 말인지, 늙었다는 말인지 구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실제로 나에게 변화가 생기고 있다. 몸이 좋아져서 그런지 쓰던 안경을 벗어도 잘 보인다. 내가 이상 할 만큼 몸 컨디션이 좋다. 식욕도, 성욕도, 일할 의욕도 솟구친다. 특별히 운동도 하는 것이 없다. 운전을 하지 않으므로 걷는 것이 고작이다. 글을 쓰기위해 책을 보고 강연을 위해 신문을 읽는다. 하는 일이 즐겁다. 즐거우면 몸에서 엔도르핀이 나와서 일까? 세로토닌이 분비되어서 인 것 같다. 우리 몸은 참으로 신기하다. 매일 할 일을 기록하고 그 일의 성취를 위해 궁리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이 즐겁다. 부지런함에서 새로움이 탄생되는 기쁨일까? 기록은 기적을 낳는다. 기대는 희망을 만든다. 머리에 떠오르는 일들을 기록하는 것이 습관이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종이에 적는다. 상상력은 기록에 의해 창조된다. 메모하는 습관이 된지 오래다. 그래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나이 탓일까? 내자는 운동을 좋아 한다. 아침저녁 운동이다. 나의 건강은 머리를 많이 써서 에너지가 소비 되고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친다는 것이다. 요즈음 <서산타임즈>에 1주일에 1회씩 ‘조규선이 만난 사람’을 연재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람을 만난다. 독서하는 시간도 늘었다. 서산문화재단 대표이사 근무 후 서산문화발전을 위한 국내외 서적을 구해 읽는다. 시민을 만나고 많은 문화 예술인을 만난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영감을 얻는 기쁨을 갖는다. 모두가 기쁘고 좋다. 만나는 사람이 반갑다. 고맙다. 얼마 전 책이야기를 했더니 디트뉴스 최종암 본부장이 디트뉴스24 창간 2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연간기획 ‘디트 책방을 소개 합니다’책 기부 캠페인에 참여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즐겨 익는 ‘Dream Society 미래 경영의 지배자들’ 한권을 기부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덴마크의 롤프 옌센은 “마치 미래를 상상해내듯 경영의 미래 역시 상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강조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인류사회는 9만여년 전 수렵채취 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지식정보사회, 꿈의 사회(Dream Society)로 변천되어 왔다. 그 시대마다 가치를 창조하는 리더가 있었다. 꿈의 사회는 경험이 핵심가치이고, 이야기꾼이 가치 창조의 리더임을 알았다. 이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산다. 학자들은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미래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여기 중요한 것은 미래는 과거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재료는 꿈이다. 그래서 꿈을 가진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한다. 꿈(이상)이 성취되면 성공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꿈을 가진 사람이 늙지 않는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늙을 시간도 없다. 꿈을 갖는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꿈을 갖고 산다는 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이상을 위해 산다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 심지어 이상(꿈)은 창의, 영감과 함께 현대사회의 부의 가치가 된지 오래다. 꿈은 끝이 없다. 꿈이 현실이 되면 더 높은 꿈을 갖는다. 그래서 인생은 꿈을 위해서 산다고 할 수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새 문화를 위해서 산다. 문화를 창조 한다는 것은 이상을 추구 한다는 의미가 된다. 다시 말해 새 문화 창조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일이다. 문화란 인간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서산의 새문화로 시민의 행복을 위함이 즐겁다. 꿈이 영원하듯 사람도 영원하다. 꿈을 가지면 즐겁다. 인류는 영원히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5년 무렵 서산시장 재직 당시 기술허브로 전 유럽을 주도하는 혁신 클러스터로 자리 잡은 프랑스 소피아 앙티 폴리스를 방문 한 적이 있다. 그 나라 정부가 의무적으로 생명과학과 의료 등의 생명기술을 연구하도록 하고 있었다. 이렇듯 온 세계가 국민의 소중한 생명 연장과 행복한 삶의 방안 찾기에 집중 하고 있었다. 그런데 2020년부터 오늘까지 온 세계가 코로나19로 난리이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일이다. 4월 17일 현재 우리나라 확진자는 11만3,444명, 사망자가 1,794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은 어떠한가?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되려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필요하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를 비롯한 국내 5개 기업이 국산 백신 개발에서 임상 1~2단계를 수행중이나 감염병 전문가들은 빨라야 내년 초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뒤쳐졌다. 뿐만 아니라 백신 수입도 매우 늦어져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인간이 바라는 영원불멸의 시대, 참으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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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1
  • 입 뒀다 뭐해?
    사소한 오해 하나로 십 년 지기를 잃을 수도 있다. 오해가 쌓이면 가정이 무너지고 조직이 망가진다. 오해는 가까운 사람과의 사이에서 생긴다. 모르는 사람이나 관계가 먼 사람하고는 오해가 생기기 쉽지 않다. 내가 잘 알고 있다는 그 착각이 오해를 불러오는 것이다. 내 기준과 잣대로 판단하면서부터 오해가 생긴다. 꽤 오래전 이야기다. 조합원 한 분이 이제는 고인이 되신 L조합장과 나를 술자리에 초청하여 간 적이 있었다. 술집도 제법 괜찮은데 안주는 고작 오이 한 접시와 소주가 전부였다. 술자리가 끝나고 그 조합원과 헤어진 후 조합장이 하셨던 그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람 참, 이젠 오이만 보면 신물이 나는구먼”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지만, 설명을 듣고 보니 서글픈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농협 초창기엔 경영이 어려워 조합원을 만나서 술 한 잔 살 때는 값이 제일 저렴한 오이와 소주를 샀다고 했다. 그랬더니 만나는 사람마다 조합장은 오이를 제일 좋아한다며 술안주는 오이만 내놓는다고 했다. 조합 규모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조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사람들은 오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오이가 싫다고 하세요’라고 했더니, 조합원 호주머니 생각해서 그냥 참는다고 하셨다. 이런 오해야 어쩌면 그냥 지나쳐도 큰 문제가 없지만, 오해는 자칫하면 심각한 가정불화의 원인도 될 수 있다. 엊그제 만난 지인도 바로 오해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결혼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고부간의 갈등으로 결국 어머니와 따로 살게 되었다면서 따지고 보면 아주 사소한 오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설거지하고 끼었던 고무장갑을 꼭 수도꼭지에 올려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 장갑을 싱크대 옆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커튼을 오른쪽으로 밀쳐놨는데 그의 부인은 그걸 보기만 하면 왼쪽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며칠 동안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치던 피아노를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고 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크게 화를 내고 심지어 아들의 뺨까지 때리며 그날로 집을 나가 따로 살게 되었다고 했다. 그 일로 한동안 어머니는 물론 동생들하고도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오해가 풀려 회복되었다고는 했지만, 참으로 곤욕을 치렀다고 했다. 모든 원인이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며느리는 수도꼭지에 올려놓은 고무장갑이 거추장스러워 옮겨 놓은 것이고, 어머니가 밀쳐놓은 커튼 사이로 이웃집이 빤히 보여서 그걸 가리느라 반대로 밀쳐놓았고, 거실에서 치는 피아노 소음 때문에 이웃의 항의를 받아서 작은 방으로 옮겨 놨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먼저, 속에 있는 말을 했더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들이었다. 며느리는 어머니가 어려워서 말하지 못하고 자기 소견대로 했고, 시어머닌 시어머니대로 속으로만 분을 삭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섬기는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실 오해가 생기는 근본 원인은 소통 부재로 인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자존심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때 입을 닫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거나, 부딪히고 싶지 않아 참는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혼자만의 상상과 불안으로 또 다른 오해와 분노가 생길 수 있다.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툭 털어놓으면 된다. 다만, 감정적이거나 직설적 표현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오해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는 수학처럼 방정식이 있다고 한다. 어떤 오해(5)라도 세 번(3)을 생각하면 이해(5-3=2)하게 되고 이해(2)와 이해(2)가 모이면 사랑(4)이 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오해는 내 편에서 바라보는 생각이고 이해는 상대편에 서서 바라보는 생각이다.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니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오해 없는 삶을 살아야겠다. ‘입 뒀다 뭐 해?’라는 말은 소통 부재 시대에 꼭 필요한 말일 듯싶다. 오늘부터라도 닫힌 마음 툭 털어놓고 오해를 풀어보자.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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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1
  • 지적장애인의 정서적 학대 행위 여부
    [요지] 사회복지사가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의 머리에 쇼핑백 끈 다발을 올려놓는 등의 행위를 한 것이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대법원 2021. 4. 8. 선고 2021도1083 판결) [사례]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피고인이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의 머리에 쇼핑백 끈 다발을 올려놓고 다른 장애인 근로자들이 피해자를 보고 웃게 하고 피해자의 사진을 찍고, 피해자에게 눈을 찌르고 우는 시늉을 하도록 지시하여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르도록 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수치심을 느끼게 한 것이 장애인복지법상 정서적 학대행위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된 사안 [대법원 판단] 이 사건 2심에서는 ① 피고인이 피해자의 머리 위에 끈 다발을 올리고 사진을 찍으면서 웃었고, 다른 근로 장애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피해자의 몸을 돌렸으며 다른 근로 장애인들도 피해자를 보고 웃은 점 ②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스스로 눈을 찌르고 우는 시늉을 하라고 지시한 점 ③ 피해자는 평소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퇴근을 못하게 하고 혼을 내는 피고인을 무서워하고 마주치는 것도 꺼렸는바,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피고인의 위 지시를 따른 점 ④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창피함을 느끼고 화장실에 가서 울기까지 하였으며 사회복무요원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야기하기도 하였는바, 위와 같은 행위로 인해 상당한 수치심을 느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에 대한 정서적 학대행위를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보아 이 사건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제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도 관련 법리와 적법하게 채택한 증거에 비추어 살펴보면, 위와 같은 2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장애인복지법 위반죄에서의 정서적 학대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심과 동일하게 피고인의 장애인복지법위반에 대해 유죄판결을 유지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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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21
  •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한 세상 살다 보면 별일도 많다. 기막힌 일도 많고, 억울한 일도 많다. 대부분 그러려니 하고 참고 산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오히려 모함까지 받게 된다면 억울하고 분해서 긴긴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치를 떨며 어쩔 줄 모른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자기 스스로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생명은 천하보다 귀하다. 이건 무책임하고, 비겁하며 신에 대한 모독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용서하는 일이다. 분노나 복수심, 보상받으려는 감정을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십여 년 전에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목숨처럼 사랑하던 아들이 싸늘한 시체로 돌아왔다. 주인공인 어머니는 살아갈 희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방황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김 집사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마음의 평정을 되찾은 주인공은 문득 범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교도소로 범인을 찾아간다. 범인을 만난 주인공은 오랫동안 고민하고 힘들게 결정했다며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범인은 오히려 뻔뻔한 얼굴로 ‘저는 주님의 은총으로 평안합니다. 여기 와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저의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평안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주인공은 교도소 밖으로 뛰쳐나간다. ‘나보다 누가 먼저 용서합니까?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할 수 있습니까? 그럴 권리는 주님에게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녀는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화는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용서도 완전한 용서라야 한다. 모양만 용서라면, 언제든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기 쉽다. 아니, 처음보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완전히 포기하고 용서해야 한다. 위선(僞善)과 선(善)을 생각해 본다. 둘 다 겉으로 나타나는 행위는 다를 바 없다. 다만, 마음이 다를 뿐이다. 위선은 아무리 겉으로 드러난 행실이 착한척해도 언젠가는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겉으로 용서했다고 해도 마음 깊숙이 용서하지 않으면 ‘밀양’의 주인공처럼 원점으로 돌아간다. 내가 아는 권사님 한 분이 계시다. 갑자기 눈에 실핏줄이 터져 서울 큰 병원으로 가시게 되었다며 기도를 부탁해 왔다. 약물로 치료가 안 되면 대수술까지 받아야 하며 잘못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합심하여 기도한 후 이튿날 전화를 드렸더니 다행히 출혈은 멎었다고 했다. 하시는 말, 이제 다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어떻게 번 돈인데, 그것도 거액을. 거기다가 모함까지 받고 있다니 누구라도 화나고 분할 노릇이었다. 그걸 당하고 나서 분하고 억울해서 잠을 못 잤더니 결국 눈의 실핏줄이 터졌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다녀와서도 멎지 않았는데 용서하고 나니 출혈이 멎었다고 했다. 세상 올 때 빈손으로 왔는데 그 돈 없어도 산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그 영혼이 불쌍해서 기도했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너도나도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산다. 광속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면 가족 간 이웃 간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낸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하찮은 일에도 폭발하고 만다. 이럴 때일수록 참고 포기하고 용서하자. 용서는 결코 가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치료제다. 용서는 절망에서 건져주고 행복을 찾는 지름길이다. 포기하고 용서하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이 눈의 실핏줄 출혈이 멎는 기적을 불러왔다. 용서야말로 자신을 위한 진정한 평화요, 행복의 열쇠다.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책 맨 앞장에 있는 존 던의 시 마지막 문장이다. 용서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린다./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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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1-04-14
  •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
    인접 토지에 건축된 건물의 외벽에서 반사되는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참을 한도’를 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과 고려할 사항(대법원 2021. 3. 11. 선고 2013다59142 판결) [사례]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들이 이로 인한 생활방해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구한 사안 [대법원 판단] 인접 토지에 외벽이 유리로 된 건물 등이 건축되어 과도한 태양반사광이 발생하고 이러한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에 유입되어 거주자가 이로 인한 시야방해 등 생활에 고통을 받고 있음(이하 ‘생활방해’라 한다)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그 건축행위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일반적으로 참아내야 할 정도(이하 ‘참을 한도’라 한다)를 넘는 것이어야 한다. 건축된 건물 등에서 발생한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생활방해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는지는 태양반사광이 피해 건물에 유입되는 강도와 각도, 유입되는 시기와 시간, 피해 건물의 창과 거실 등의 위치 등에 따른 피해의 성질과 정도, 피해이익의 내용, 가해 건물 건축의 경위 및 공공성, 피해 건물과 가해 건물 사이의 이격거리, 건축법령상의 제한 규정 등 공법상 규제의 위반 여부, 건물이 위치한 지역의 용도와 이용현황,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지조치와 손해회피의 가능성, 토지 이용의 선후관계, 교섭 경과 등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이러한 기준에 의할 때, 대법원은 위 사안에서 가해 건물의 외벽에 사용한 유리의 반사율이 매우 높고, 가해 건물의 외관이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인 타원형으로 저녁 무렵 상당한 시간 동안 태양반사광이 인접 주거지로 유입되고 있어, 이로 인한 빛반사 시각장애의 정도가 사회통념상 참을 한도를 넘어선다는 등의 이유로, 거주자들이 태양반사광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아 불법행위의 성립을 인정한 원심판단을 수긍하였습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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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 한 가지 패턴으로 여러 문장 만들기
    이번호에서는 한 가지 패턴으로 여러 문장을 만들어보는 학습을 해볼게요. 각 문장을 어떻게 말할지 먼저 생각해본 다음 표현을 확인해 보세요. 나는 ~에 익숙해 I’m used to (아임 유스 투~) 나는 그것에 익숙해 I’m used to it. 나는 네게 익숙해 I’m used to you. 나는 소음에 익숙해 I’m used to the noise. 나는 이런것에 익숙해 I’m used to this stuff. 나는 추위에 익숙해. I’m used to the cold. (유감이지만)~인 것 같아 I’m afraid~ (아임 어프레이드~) (유감이지만) 나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아. I’m afraid I can’t make it. (유감이지만) 나 널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 I’m afraid I can’t help you. (유감이지만) 나 이해 못한것 같아. I’m afraid I don’t understand. (유감이지만) 나 늦을 것 같아. I’m afraid I’ll be late. (유감이지만) 나 시간이 없을 것 같아. I’m afraid I don’t have time. ~라고 확신해 I’m sure~ (아임 슈얼~) 네가 잘했을거라고 확신해. I’m sure you did a good job. 네가 그것을 할 수 있을거라고 확신해. I’m sure you can do it. 네가 다음번에 더 잘할 거라고 확신해. I’m sure you’ll do better next time. 네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꺼라고 확신해. I’m sure you’ll have fun.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고 확신해. I’m sure things will work out. ~인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아임 낫 슈얼~) 우리가 여기에 주차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we can park here.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I can do it. 내가 이해 한건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I understand. 그것이 가능한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It’s possible. 네가 나를 기억하는지 잘 모르겠어. I’m not sure you remembe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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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로봇 같은 공공기관 전화 응대
    글을 쓰다가 궁금한 사항을 알아보고자 어느 공단에 전화했다. 신호가 가고 ‘고객센터입니다’라는 멘트에 이어 ARS음성 안내가 나왔다. 안내에 따라 상담원 연결을 원하는 번호를 누르니 개인정보를 확인 한 후 연결해주겠다며 전화기 버튼으로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입력하라고 했다. 입력하자 ‘상담하려는 사람이 많으니 기다리라’는 음성이 들렸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기다리니 ‘계속 상담원 연결을 원한다면 1번을 누르라’고 했다. 꼭 문의해야할 일이기에 1번을 누르고 기다렸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얼마 뒤 또 ‘1번을 누르라’는 멘트가 나왔다. 이렇게 하기를 6번. 그러더니 ‘지사로 연결해 줄 테니 주민등록번호 13자리를 누르라’고 했다. 다시 주민번호를 누르고 나니 얼마 후 지사와 연결되었다. 고객센터 상담원과는 통화 한마디 하지 못하고 15분 쯤 지나서 겨우 연결된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〇〇〇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스크를 쓴 때문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시지요?”라고 인사하며 “전화하기 참 힘드네요. 고객센터에 전화했는데 1번을 누른 후 기다리라고 몇 번을 거듭하다가 결국 지사로 연결해주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직원은 아무 말 없이 “말씀하세요.”라고 했다. 듣는 순간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오래 기다리셨네요.’라든가 ‘그렇겠네요.’라는 말 한마디 쯤 하고 나서 “무슨 일이세요?”라고 물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전화 연결하기가 힘들었다는 말을 하는데, ‘말씀하세요.’라는 말만 하는 자세는 바른 서비스가 아니라는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여전히 ‘말씀하세요.’라고만 했다. 로봇과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문득 공직선거 후보자 토론회에서 상대후보의 질문에 답변은 하지 않고 계속 “말씀하세요.”라고만 하던 어느 후보의 느물거리던 모습,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의 질문은 외면하듯 “말씀하세요.”라고 하던 공직후보자의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다.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또 주민등록번호를 말하라고 했다. ‘개인적인 상담이 아니라 제도에 관하여 묻고자 하는 것이라’며 알아보려는 내용을 말하니까 ‘그런 내용은 본부에 문의하라’고 했다. 본부 고객센터에서 지사로 연결해주었는데 다시 본부로 알아보라고 하느냐? 이미 고객센터상담원과 연결하지 못하여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본부 담당 부서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여 알아냈다. 본부에 전화하여 궁금한 사항을 문의하였다. 답을 듣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왕 본부 직원과 통화가 이루어 진 기회에 평소 가졌던 생각을 이야기 하였다. 먼저 그 공단에 문의하는 사람 대부분은 좋은 이야기보다는 불만을 토로하거나 항의하는 사람이 많아 힘들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어 상담하려는데 주민등록번호13자리를 세 번이나 밝혀야 하는 경우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과 함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의견이 반영될 것이라는 기대는 접었다. 상담을 하다보면 ARS의 불편함과 더불어 일부 공공기관 종사자의 메마른 태도에 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상담원은 많은 고객을 응대하다 보면 힘들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감정노동자를 ‘보호해달라거나 대화 내용을 녹음한다.’는 멘트를 해야 할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따뜻한 상담을 바라는 고객의 바람이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렇겠네요.’ 그 한마디가 그렇게 힘든가? 혹시 ‘수긍’했다는 것으로 듣고 나중에 추궁당하거나 책임이 뒤따를 것을 염려해서인가? ‘고객은 왕’이라는 기울어진 상태에서 대접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역으로 기울어 졌다고 느끼는 시민도 있다. 상황은 상대적이다.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는 말을 곰씹어 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의 존재이유를 잊지 말고 바람직한 응대 자세를 생각한다. 민원인도 답답하고 힘들다. 웬만한 민원은 성의를 담은 친절한 응대만으로도 녹아버린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은 유효기간이 없다./수필가ㆍ전 서산시 부시장(ka12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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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7
  • 화장실에서 촬영 착수 판단 기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의 착수에 관한 판단기준을 제시한 판례(대법원 2021. 3. 25. 선고 2021도749 판례) [사례] 피고인이 카메라 기능이 켜진 휴대전화를 화장실 칸 너머로 향하게 하여 용변을 보던 피해자를 촬영하려 한 사안에서 실행의 착수를 인정하여 미수로 처벌할 수 있는지요? [대법원 판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라고 한다)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고, 여기서 ‘촬영’이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이나 저장장치에 피사체에 대한 영상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를 의미한다(대법원 2011. 6. 9. 선고 2010도10677 판결 참조). 따라서 범인이 피해자를 촬영하기 위하여 육안 또는 캠코더의 줌 기능을 이용하여 피해자가 있는지 여부를 탐색하다가 피해자를 발견하지 못하고 촬영을 포기한 경우에는 촬영을 위한 준비행위에 불과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대법원 2011. 11. 10. 선고 2011도12415 판결 참조). 이에 반하여 범인이 카메라 기능이 설치된 휴대전화를 피해자의 치마 밑으로 들이밀거나,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는 화장실 칸 밑 공간 사이로 집어넣는 등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행에 밀접한 행위를 개시한 경우에는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12. 6. 14. 선고 2012도4449 판결, 대법원 2014. 11. 13. 선고 2014도8385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위 사안에서 대법원은 휴대전화를 든 피고인의 손이 피해자가 용변을 보고 있던 화장실 칸 너머로 넘어온 점, 카메라 기능이 켜진 위 휴대전화의 화면에 피해자의 모습이 보인 점 등에 비추어 그 실행의 착수가 인정된다고 보아 피고인에 대하여 성폭력처벌법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미수에 대하여 유죄판단을 한 2심을 수긍한 사안입니다. [자료제공] 대한법률구조공단 서산출장소 (041-667-4054, 서산시 공림4로 22, 현지빌딩 4층, 전화법률상담 국번없이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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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1-04-07
  • 나눔의 행복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이 있어 희망을 잃지 않는다. 석 달 열흘 가뭄에 아침 이슬 같은 소식들이 전해진다.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든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 형제들 의장의 통 큰 기부 소식을 들었다. 두 기업가는 어려운 형편을 딛고 벤처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많은 재벌이 후손에게 가진 편법과 수단을 다하여 부를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자기 재산의 절반인 5조 원과 5천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한 편의점에서 선행을 베푼 여학생의 이야기도 있다. 남편과 사별하고 빚더미에서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주부의 어린 둘째 아들이 편의점에서 몇 가지 먹을 것을 샀는데 잔액이 부족해서 쩔쩔매고 있었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느 여학생이 그 물건 외에 다른 것도 사줬다는 이야기다. 여학생이 대신 계산해 준 돈이 5만 원 상당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감사하다는 말과 월급이 나오면 갚겠으니 연락해달라는 SNS에 올라온 글을 보고 많은 사람이 감동했다는 이야기였다. 정말 따뜻하고 훈훈한 소식이다. 꽁꽁 언 땅을 뚫고 노랗게 솟아오른 복수초꽃처럼 아름답고 예쁜 소식이다. 또 다른 나눔도 있었다. 치킨집 사장님의 ‘한 접시의 치킨’ 이야기다. 치킨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소년 가장은 5천 원을 들고 거리에 나섰지만 치킨 5천 원을 파는 가게는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한 점주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 했고 이들에게 2만 원어치의 치킨을 주고 돈도 받지 않고, 이후 가끔 찾아오는 일곱 살 동생에게 배불리 치킨을 먹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잘라 주었다고 했다. 이를 알게 된 학생은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사장님 덕분에 그날 치킨집을 나오고 많이 울었다며 그 치킨집의 프랜차이즈 본사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편지 끝에 이렇게 적었다고 했다. “저도 성인이 되어 돈 꼭 많이 벌면 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살 수 있는 철인 7호 홍대점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이 오고 있지만 언제 풀릴지 모르는 경제 한파는 아직도 한겨울이다. 이러한 때의 나눔은 더 밝고 빛이 난다. 귀 기울여 보면 이런 따뜻한 나눔의 소식들은 뜻밖에 많다. 다만, 조그만 불빛이 멀리 가지 못할 뿐이다. 30억 원을 기부한 전종복‧ 김순분 부부라든가 대하장학재단 명위진 이사장, 구두 수선공 김병량 씨 등등 올해 국민추천포상 수상자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가운데서 나눔을 실천하신 분들이다. 사람들이 악착같이 돈을 벌고, 기를 쓰고 출세하려 하며, 더 많은 걸 소유하려 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이유와 목적이 있을 터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행복 때문일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어 돈 벌고, 출세하고, 권력 잡고, 명예를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돈이나 권세나 명예는 일시적 행복은 가져다줄지언정 다함이 없다. 끝없는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자꾸만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 그렇다면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을까? 바로 나눔이라고 말하고 싶다. ‘받는 행복보다 주는 행복이 더 크다’란 말이 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 것인가를 추구하고 찾아내는 사람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김범수 의장이나 김봉진 의장처럼, 전종복 부부처럼, 명위진 이사장처럼 그렇게 거액을 나눌 수는 없다. 그렇게 통 큰 기부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 위대함을 찬탄할지언정 그렇게 마음에 닿지 않는다. 오히려 5만 원 상당의 물건을 사줬다든지 2만 원의 치킨을 사줬다는, 어쩌면 사소하고 작은 나눔에 대하여 더 진하게 감동하게 된다. 스스로 돌아본다.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를 들으며 그냥 지나쳤다. 기다란 고무장화를 신은 장애인의 구슬픈 경음악을 못 들은 척, 못 본 척 외면했다, 살아오며 인색했던 갖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채우는 행복보다 비움의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인ㆍ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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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 내 고향 마검포 항
    망망한 대해엔,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더없이 아름답고, 수평선 위에는 한 폭의 그림처럼 고깃배들은 봄빛처럼 곱다. 끼륵끼륵 갈매기 나는 인적이 드문 남면 마검포항에는 지금 한창 실치회로 유명하다. 실치는 서해에서 3월 중순부터 잡히기 시작해 5월 중순까지 2개월 정도 회로 먹을 수 있는 계절 음식으로 그물에 걸리면 한 시간 안에 죽기 때문에 마검포항이 아니면 싱싱한 회로 맛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실치를 직접 잡아 올리는 남면 마검포항이 실치회의 명소다. 실치는 동의보감에도 성질이 급하나 독은 없어서 음식을 맛나게 하고, 소화를 돕는 음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또한 칼슘의 함량이 높아 골다공증 예방에 좋고, 고등어와 같이 등 푸른 생선의 일종으로 오메가3 지방산이 많다고 한다. 여기에 실치는 인까지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어 빈혈 예방에도 좋은 계절 음식이다. 그물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실치에 미나리, 오이, 양배추, 쑥갓, 깻잎 등을 잘게 썰어 참기름을 둘러치고 양념 고추장과 함께 버무려 먹으면 실치의 담백함과 쌉쌀한 맛이 입맛을 돋우어 주는 별미음식이다. 실치와 다양한 야채를 곁들여 먹는 실치회는 한 번에 섞어 먹기보다는 조금씩 덜어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는 것이 수분이 안 생겨 더 맛있다. 실치에는 칼슘이 많기 때문에 시금치를 넣어 끓인 실치국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밀가루 반죽에 부추와 당근 등 갖은 야채와 실치를 넣어 부쳐 먹는 실치 전이 있고, 새우젓 대용으로 실치를 넣은 계란찜 등이 있다. 그리고 실치가 크게 자라면 뱅어포로 만들어 고추장에 양념을 발라 구우면 바삭바삭 하면서도 매콤짭짤해서 먹기에도 좋아 밥반찬으로는 제격이다. 마검포는 갈마(磨) 칼검(劍)으로 돌에 칼을 가는 포구(浦口)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마검포에는 돌이 많다. 그리고 마검포는 내 어릴 적 추억이 아로새겨져 있는 곳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푸른 물결 위에 외롭게 솟아있는 마검포는 섬 아닌 섬 같은 곳으로 어머니를 따라 마검포항으로 배에서 갓 잡은 해산물을 사러 다녔던 잊지 못할 추억의 마검포항이다. 언제나 가고픈 한적하고 소담스런 작은 포구, 마검포 바닷가! 돌아오는 주말에는 어머님을 모시고 마검포항으로 감칠 맛 나는 실치회나 먹으러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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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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