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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ㆍ아내ㆍ며느리ㆍ딸…그림으로 표현
    ▲준비도 없이 지부장을 맡아 서툰 부분도 많았다는 김은주 서산미협 지부장. 그녀는 화가로 여성의 가사노동과 사회활동 사이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사진=최상임 작가   사실 김은주(44) 한국미술협회 서산지부장을 오래 알아왔지만, 그의 머릿속 생각을 물어본 적은 없었다. 지난 27일 그녀에게 “오늘 이 자리는 공식 인터뷰”라고 했을 때도 표정이 밝아졌다. 오히려 내가 긴장 됐다. 김 지부장은 4년 전만해도 한국미술협회 서산지부(이하 서산미협) 사무국장이었다. 그런데 당시 한동철 지부장이 갑작스럽게 작고했다. 리더를 잃은 서산미협이 표류 위기에 몰렸다. 많은 회원들이 젊은 작가가 서산미협을 이끌어 보라며 그녀를 지부장으로 추대했다. 준비도 없이 지부장을 맡은 터라 처음에는 서툰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회원들이 서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3년의 임기를 무난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정기총회에서 회원들은 다시 그녀를 지부장으로 선출했다. 재신임을 받은 것이다. “서산미협은 미술관련 학위 소지자, 비전공자로 5년 이상 작품 활동을 한 경력이 있는 작가 60여명으로 구성됐다”는 그녀는 “지역 미술활동과 미술인 상호간의 자질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서산미협 존재의 이유”라고 했다. 서산미협 40주년을 맞는 올해 김 지부장은 11월 경 시민들이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강좌를 열고, 국내외 유명작가들과 함께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갑자기 화가가 된 그녀의 동기가 궁금했다. 여중 시절 미술 선생님이 칭찬이 계기가 됐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초등학교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집에서는 큰 딸이고 하니 공부하기를 원했었다. 그런데 중2때 미술시간에 학교주변 풍경 수채화를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이 그 그림을 보고 “아주 잘된 작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의 그녀를 만든 동기였다. 이후 그림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고 고등학교 진학도 홍익대 대학원을 나온 정태영 미술선생님이 있는 서일고(당시 지곡고)를 선택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미래의 꿈을 키웠다. 그 꿈은 2014년 충남미술대전 초대작가가로 선정되면서 이루어 졌다. 충남미술대전에서 4차례 특선 경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앞서 2007년 서울 인사동 라메르 갤러리에서 ‘삶의 이야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서울, 안산, 천안 부스 개인전 등 5차례 개인전과 미협 회원전, 아름다운 서산전, 인사동 사람들, 화촌전, 전국작가 초대전 등 1년에 2~3회씩 다수의 초대전과 단체전 등에 참여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특히 지난 6월11일부터 17일까지 대전 이공갤러리에서 석사학위 청구전을 위해 연‘개인전’은 작가들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음암면 문양리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난 그녀는 아버지(김대식ㆍ72)의 사업관계로 서산 시내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부춘초, 서산여중, 서일고(19회)를 거쳐 목원대 회화과(미술학사)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미술학원 강사로 있다가 2003년 대산에서 소나무미술학원을 개원했다. 그리고 2005년 지인의 소개로 한화토탈에 근무하는 남편(김재선ㆍ49)을 만나 결혼하여 2녀를 두고 있다. 현재는 석림동에서 ‘라온아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그림은 젊은 작가들이 재정에 구애 없이 마음껏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50호에서 100호 규모의 대작도 전시할 수 있는 전시장을 만들어 많은 작가들이 오고 싶고, 살고 싶어 하는 문화예술의 도시 서산이 그가 그릴 마지막 그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은 많은 역할을 수행한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나아가 직장인으로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워킹 맘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공감하면서 여성의 가사노동과 사회활동 사이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현상들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김 지부장은 오는 8월 목원대 미술대학원(서양화 주임교수 김영호) 하기졸업식에서 미술학 석사를 받는다. 미술공부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남편과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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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8
  • 수의사에서 축협 조합장이 되다
    ▲수의사에서 축협 조합장으로 성공신화를 써 나가고 있는 최기중 서산축협 조합장. 그는 축산인들의 공익사업으로 대규모 축산단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최상임 작가   “서산한우가 남북정상 만찬상과 프란치스코 교황 식탁(2014년 서산 방문 시)에 오르면서 세계적인 명품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우리 조합원들의 믿음이 소비자들의 믿음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지난 20일 만난 최기중(57) 서산축협 조합장은 ‘신뢰경영, 행복축산’의 경영 방침으로 밤낮없이 달려온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기쁘다며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2015년 3월 서산축협 조합장에 당선된 그는 선거 무효소송으로 그해 11월 전격 조합장을 사퇴하고 12월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재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2019년 치러진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하며 서산축협 발전은 물론 서산태안지역 축산농가들의 선진화를 선도하고 있다. 평소 겸손하고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사람으로 평가 받아온 그는 서산축협 조합장으로 서산축협의 가장 큰 변화는 조합원들이 조합장과 조합을 신뢰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은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바탕은 조합원 970명, 준조합원 1만2,389명, 임직원 115명, 경제사업장 11개소, 신용점포 6개점으로 총자산 2천828억 원의 전국 굴지의 대형조합으로 성장했다. 2019년 결산은 6억4200만원의 흑자를 냈다. 그런데도 요즘 최 조합장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총생산액의 40%가 축산소득인데 축산업 여건이 점점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환경문제로 축산 억제정책이 직결되면서 내년부터 부숙도 검사가 의무화되고 현재 가축사육 제한조례마저 시행되고 있고 게다가 조합원의 고령화마저 가속화되면서 미래 축산에 대한 위기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고기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위기를 기회로 삼기 위한 그의 노력은 중단이 없다. 코로나19 이후 면역력 강화를 위해 육류 소비는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최 조합장의 설명이다. “우리나라는 수입고기에 의존하고 자급률은 35%에 불과합니다. 또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년에 51kg인데 비해 미국의 경우 89.7kg으로 단백질 섭취가 국민수명과 비례된다고 합니다” 최 조합장이 기회로 삼는 것은 이 대목이다. 소를 키우는 1차 산업에서 마트에서 판매하는 2차산업, 식당(프라자) 3차산업에 이어 이제는 국민들이 즐기는 6차산업의 축산업 효시를 서산축협에서 이루겠다는 포부다. 특히 서산한우는 특허청에 지리적 표시 단체 등록으로 독점적 권리를 확보해 다양한 연관 산업의 발전도 기대하고 있다. 최 조합장은 앞으로 동물병원을 설립하고 한우박물관 건립도 추진한다. 여기에 태안군 원북-이원 간척지 1520만㎡(약460만평)에 축산 단지화도 계획하고 있다. 이 사업은 농협중앙회에서 타당성 용역조사를 마쳤으며 간척지 내에 조사료 생산기지와 우량번식우 생산기지 등을 조성하여 축산업의 비약적인 발전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축산인들의 공익적 사업으로 추진하여 농촌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그의 현재 바람이다. 최 조합장은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에서 4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최정규. 1928-2018)는 소를 키워 자녀 모두를 대학까지 가르쳤다. 그는 방두초, 태안중, 공주고(54회)를 거쳐 충남대 수의과를 졸업한 수의사이다. 군 제대 후 1989년 태안에서 동물병원을 개업하여 30여년 간 축산인과 동고동락해왔다. 특히 그는 젊은 시절 늦은 밤 난산처치 전화가 오더라도 거절한 적이 없다. “동물병원을 개업한 이상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가자” 이것이 그의 다짐이자 수의사로서 신조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는 1993년 피아노를 전공하는 김진경(52)여사와 결혼하여 3녀를 뒀다. 둘째 딸이 이화여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 서울 오케스트라 악단 신인발굴 경연대회에서 연주자로 선발되는 등 명문 음악 가정이다. 2012년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공주대학교 동물자원학과 겸임교수를 거쳤으며 현재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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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1
  • 지역신문 발전 방안 도출 컨퍼런스 개최
       서산시를 비롯해 도내 15개 시군에서 발행하고 있는 지역신문의 경영구조와 시장구조 개혁을 위한 정책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충남지역신문 연합회 컨퍼런스’가 다음달 7~8일 태안군 청포대해수욕장 입구 ‘썬셋 리조트’에서 개최된다. 충남지역신문연합회(회장 전순환)가 주최하는 이번 컨퍼런스에는 서산타임즈를 비롯해 도내 15개 시군에서 발행되는 15개 지역신문사 대표자와 각 신문사 소속 기자 등 100여명이 참석해 지역신문의 위상을 정립하고 언론인들의 역량강화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지역신문의 미래를 밝혀나간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각 지역 지역신문사 소속 기자들이 현재 당면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해결책을 도출하고, 언론정책을 담당하는 충남도와 한국언론재단관계자가 참석해 지역신문 관계자들과 소통을 통해 지역언론의 발전방향을 공유한다. 이에 따라 컨퍼런스 첫날은 한국언론진흥재단과의 협업으로 정보공개 요청의 필요성과 실무, 드론을 활용한 교육 및 실습에 대한 강의가 진행된다. 이어 지역신문의 현안과 과제에 토론이 진행된다. 둘째 날은 데이터를 활용한 탐사보도를 주제로 강의가 펼쳐지고 강의 전반에 대한 평가회를 끝으로 컨퍼런스를 마무리한다. 전순환 회장은 “이번 컨퍼런스는 지성과 인성을 갖춘 지역신문사 기자들이 당면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해결하기 위해 앞장선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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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1
  • 개교 72년 첫 동문 총장 역사를 쓰다
    ▲교수로 시작해 천안캠퍼스 교무처장, 예술대학장, 부총장을 거쳐 제18대 단국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수복 총장은 개교 72년 최초 간선제로 선출된 첫 동문 총장이라는 역사를 썼다. 서산에 대한 애정도 많아 몽유도원도에 담긴 이상향(理想鄕)을 테마로 힐링공원을 조성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김수복(67) 단국대학교 총장은 “서산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땅으로 인정이 넘치고 자연의 조화로움이 복된 도시”라고 했다. 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서산 출신 제자들도 많아 서산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노경수 동화작가, 김가연 시인, 고윤미 작가 등이 그의 제자다. 김 총장은 또 서산출신 위대한 예술가인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에 담긴 이상향(理想鄕)을 테마로 한 어린이 꿈 동산, 힐링공원을 조성하면 좋겠다고 했다. 서산에 대한 그의 애정은 민망할 만큼 넘쳐난다. 필자가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때 그는 교무처장이었다. 2004년 관학협약을 체결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문인이라는 동질성에다 단국대총동창회 선임부회장(2018.6-2020.6)이었던 필자와는 이후로도 가끔 만나왔다. 지난 9일 총장실에서 만난 김 총장은 “시가 나에게 다가오는 기쁨 속에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최근 발표했다며 ‘하루 또 하루’란 시를 낭송해준다. 사실 그는 유명한 시인이다. 한국문예창작학회 초대회장, 한국시인협회 부회장, 한국카톨릭 문인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성경에서 영감을 얻어 일상에서 쓰는 시를 통해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고 했다.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낮은 자세로 노력하는 것’이라며  “궁즉통(窮則通) 즉 막다른 길이라도 두려워 말자. 어떤 난관이라도 비상구는 있다”는 것이 그의 신조다. 시집으로는‘지리산 타령’, ‘낮에 나온 반달’, ‘새를 기다리며’ 등 15권과 ‘별의 노래-윤동주의 삶과 시’, ‘우리시의 상징과 표정’, ‘상징의 숲’, ‘한국문학공간과 문화 콘텐츠’등 문화이론서와 인문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2015년 등단 40돌을 맞아 펴낸 시집 ‘하늘 우체국’은 지난 1월 스페인어로 번역 출간 스페인어권 독자들에게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한국의 신비롭고 이국적인 이미지를 절제된 서정적 언어로 전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문학신인상, 편운 문학상, 서정시학 작품상, 풀꽃 문학상 등을 수상한 것이 시인으로서 그의 위상을 증명하고 있다. 경남 함양이 고향인 그는 산청 금서초, 대구 대륜중, 대륜고(22회), 단국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 단국대 교수로 부임, 천안캠퍼스 교무처장, 예술대학장, 부총장을 거쳐 지난해 8월 26일 제1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개교 72년 최초 간선제로 선출된 첫 동문 총장이라는 역사를 쓴 것이다. 김 총장은 당시 취임사에서 “설립자의 혁신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72년 간 쌓아온 도전과 개척의 역사를 발판삼아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캠퍼스 구축, 스마트 교육지원센터 설치, 국제 평화 유라시아로드를 개척해 단국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단국대는 교시인 진리ㆍ봉사와 민족애를 바탕으로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인재양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학부 재학생은 약 2만 7천명에 이른다. 김 총장은 “포스트 코로나 이후 체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새로운 교육방법개발과 국경 없는 대학교육 실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4차산업혁명시대 청년들이 자신이 타고난 개성을 창의적으로 개척해 나갈 때 미래의 바다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82년 수학(대수학)을 전공한 신경희(65) 교수와 결혼하여 두 딸을 두고 있다. 큰 딸은 정치경제를 전공하고 있고, 작은 딸은 의류패션 유통업을 하고 있다. 김 총장은 “풍요로운 자연과 인정이 넘치는 향토적 아름다움이 항상 함께하는 서산이 되기를 기원하고, 이러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고향이 삶의 기쁨 속에서 항상 함께 하기를 축복드린다”고 했다. 조규선/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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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15
  • 7번의 스타 영업소장…힘이 솟았다
    이창씨는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 제대 후 신성대, 한서대를 거쳐 동국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교수 추천으로 해태제과에 취업한 그는 회사와 사회 그리고 가정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창(46)씨는 늘 깔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영업을 하려면 깔끔해야 합니다. 거울 앞에서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고, 턱을 당기면서 말하는 연습을 하는 등 숱한 노력을 해왔지요. 그래서 요즘에는 이전에는 못 듣던 ‘인상 좋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영업의 성패에서 첫인상은 중요하니까요” 해태제과 서울2지점 분당영업소장인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다. JC가 인연이 되어 알고 있는 그는 필자가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청년리더이다. 직원 10명으로 년 매출 80억 이상이 목표라는 그는 13년 동안 서산과 공주 등에서 해태제과 영업소장으로 근무하면서 매월 회사에서 주어진 목표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려 무려 7차례나 ‘STAR영업소’로 선정됐다. 회사는 프랑스 등 11개국의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하며 사기를 북돋았다. 당연히 본사 임직원들도 그의 사회생활을 높이 평가했다. 기업 이미지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사 측의 사기진작은 그에게 더욱 새로운 힘을 솟아나게 했다. 그는 이렇게 새롭게 돋는 힘을 서산사회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13년 서산청년회의소 회장 당시 시작한 사랑의 의료봉사를 8년째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 봉사는 JC회원인 예닮치과 정현두(38)원장의 소개로 의대교수와 학생들로 구성된 의료연합동아리(MS)와 인연이 되어 매년 겨울과 여름 2회씩 서산 관내 의료 취약지역에서 서산JC, 신성대 총동문회 등이 주최하고 있다. 그는 또 2014년 충남세종지구 JC회장(45대), 2015년 한국JC 여성청소년 정책실장으로 출산장려 캠페인, 전국 청소년 나라사랑 글짓기 대회를 직접 주관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무부 법사랑위원, 한국 법무보호복지공단 충남지부 홍보위원장, 서림초등학교 운영위원장, 서푸른 실천연대 사무국장, 서산경찰서 동부파출소 생활안전협의회 사무국장, 서산시사회복지협회 이사,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서산시후원회위원, 직장새마을운동서산시협의회 감사 등 공익적 가치를 위한 삶에도 소홀함이 없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음암초, 음암중, 서산공고 졸업 후 서울에서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다 군 제대 후 1999년 신성대 관광 중국어과를 졸업했다. 뒤늦게 시작한 학구열은 한서대 경영학사(2005), 동국대 경영학 석사(2008)를 취득하기에 이른다. 특히 그는 신성대학 재학 당시 4500여 학생들의 직접 선거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그때 자취하는 학생들에게 방값인상을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학교인근 집주인을 찾아 일일이 호소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이 그의 진정성을 믿고 표를 주었다. 이를 본 정양숙 교수(전 국회의원)가 그를 해태제과에 추천했다. 2015년 신성대 총동문회장으로 선출된 그는 신성대 개교 20주년에 즈음하여 학교발전기금 1천만 원을 기탁하는 등 모교사랑도 특별하다. “이타적인 삶을 살아라, 이것이 자신을 위한 삶이다” 평소 국가유공자로 자부심이 강했다는 아버지(이재동 1928-2020) 말씀이 생활신조가 되었다는 그는 고교1학년 때 꿈은 의사와 판사였다. 돈이 없는 사람도 의료나 법에서 평등하게 도움을 받게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 꿈을 사회생활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그는 2019년 11월 8일 법무복지의 날을 맞아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그는 모범적이다. 어머니(채묘순. 80)에게 마트를 차려드렸더니 어머니는 그가 충남세종지구 JC회장에 당선되자 선뜻 활동비를 지원 했다. 어머니는 평소 정직하게 벌어 보람 있게 돈을 써야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서산위원회 사무국장인 누나(이만, 47)도 그에게 든든한 후원자다. 가족으로는 부인 노정인(42)여사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공휴일도 없이 고객 점주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주 방문하여 물건을 진열해주는 특유의 근면함과 진정성, 여가시간을 내어 이웃을 찾아 봉사하는 삶을 사는 그는 앞으로 계속 주민의 복지와 지역발전을 위해 젊음을 바치겠다고 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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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07
  • ‘신한류 발전소 충남도 가능’
    대한민국이 세계문화의 중심이 되고, 충남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본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김현식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 그는 자신에 대해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시대 기획자’라고 했다.   김현식(64) 충남문화재단 대표이사는 한때 필자와 정치적 동지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지난 29일 내포의 충남문화재단을 방문했다. 충남문화재단은 충남의 문화예술정책과 사업 개발, 지역고유문화육성,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및 복지지원, 문화기획자 및 마케터 양성, 소외계층 문화복지, 도민대상 문화예술교육지원, 생활문화활성화지원, 국제문화예술교류 등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이를 위해 총 400건이 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ICT기반 문화콘텐츠(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와 유물유적 발굴 보존 및 학술연구(충남역사문화연구원)를 제외한 문화예술관련 모든 업무는 재단에서 맡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유신정권 때 대학시절을 보낸 김 대표는 내로라하는 여러 굵직한 정치인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벌였다. 그러던 중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구속된 뒤 강제징집으로 군에 입대했고, 제대 뒤에는 출판사와 홍보기획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면서 뒤늦게 방송계에 입문했다. 한국문화와 경제를 세계에 알리는 다언어 국제위성방송인 아리랑TV에서 10년을 근무했다. 그는 재직 중 국내 케이블 TV, 아시아 위성방송, 글로벌 국제방송까지 실무 책임자로 사업을 입안 실행하여 NHK와 CCTV를 따돌리고 한류의 초석을 다진 일은 평생 가장 자랑스런 일이었다고 했다. 대표이사 취임 4개월째를 맞는 김 대표는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일을 기획하고 있다. 한국문화의 르네상스 시대 기폭제가 될 문화의 달 50주년 행사를 내년에 충남에 유치했다는 그는 문화대국 코리아 선언 등 충남을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충남은 ‘한국정신문화의 본향’임을 주장할 상징, 인물, 콘텐츠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계룡산은 동양사상의 정수인 주역공부의 도량으로 논산 연산에서 주역을 완성한 ‘정역’의 김일부 선생이 있고, 실학의 효시인 보령출신 토정 이지함 선생의 토정비결이 있으며, 성리학에서 노론의 송시열과 소론의 명재 윤증 선생 등이 있다. 또한 송나라 출신학자 정신보가 고려고종24년(1237) 서산간월도에 정착하여 고려 한인들에게 성리학을 전수한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독립투쟁의 영웅들이 가장 많은 독립운동 성지가 바로 충남이라는 것이다. 김 대표와 대화 속에 문화, 역사, 인문학 등 해박한 지식과 논리를 뛰어 넘어 4차 산업혁명시대 지역의 새로운 문화 창조에 대한 비전은 깊이를 더해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충남문화재단을 문화충남 건설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그이 포부이다. 이를 위해 금년에 문화비전 2030을 수립할 계획이다. 아울러 지금 대중문화의 한류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데 이제는 고급한류 즉, 정신문화의 신한류가 필요할 때라며 충남을 신한류 발전소로 만드는 ‘시대 기획자’로 새로운 문화운동의 주역이 되는 것이 그의 희망이다. 그는 서산은 리아스식 해안을 가진 문명의 발상지로 서산만의 독특한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역사 인물을 바탕으로 차별화 된 문화 예술 발전 전략을 펼쳐나가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앞으로 문화예술이 밥 먹여 주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김 대표는 문화는 산업의 쌀이며 복지의 완결요소라는 인식이 필요하다며 충남을 국토의 중심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만드는 일에 성원을 부탁했다. 연기 출생으로 서울 용문중ㆍ고교를 거쳐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김근태, 이해찬, 조성우 등 선배들과 민청련 창립, 김근태 의장 고문사건에 저항 농성을 주도하다 안기부 남산 지하실에 갇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경동교회(강원용 목사시무)에서 청년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아내 양지혜(59)여사를 만나 결혼하여 1남을 두고 있다. 신혼 초에 운영하고 있던 유치원을 전교조 교사들의 집회장소로 제공했다가 생업을 망가뜨려 아내에게 평생 죄인으로 살고 있다는 그의 생활신조는  “불가능은 없다. 안되면 되게 하라,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다. ‘문화가 빛나는 충남, 예술이 숨 쉬는 마을’을 만드는 일은 주민이 주체가 되어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라는 그는 도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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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30
  • “농민들 만나면 아버지 생각나죠”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부친의 영향으로 평생 농협인이 되었다는 김 조합장. 그는 농민들을 만날 때 아버지가 생각난다며 못다 한 효도를 조합원에게 한다는 심정으로 조합원과 농민을 섬기는 조합장이 되겠다고 했다.   김기곤(60) 대산농협 조합장은 농촌과 농민 그리고 농업을 아는 전문가임은 틀림이 없는 듯했다. 얼마 전 행사장에 만난 김 조합장은 전 국민이 붉은 악마로 변신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쳤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서산시와 대산농협의 육성한 ‘뜸부기와 함께 자란 쌀(뜸부기쌀)’이 전국 최고의 쌀이 되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며칠 후 한번 만나자고 했는데 지난 20일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농업인이 부자 되고 존경받는 사회를 위해 조합원과 함께 꿈이 있는 농촌을 만들겠다”며 말문을 연 그는 2002년 당시 대산농협 미곡종합처리장장으로 근무하면서 ‘뜸부기 쌀’사업에 참여한 장본인으로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이런 그를 보면서 농촌과 농민, 농업을 위한 열정과 진정성이 조합원들의 믿음으로 이어져 조합장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필자는 서산시장이었다. 김 조합장은 대산 출신이다. 그가 농업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데는 농업을 천직으로 여겼던 부친(김영환, 1925-1987)의 영향이 컸다. 부친께서는 평소 부지런하셨다. 근검절약하면서 4천여 평 농사를 지어 4남 3녀를 고등교육까지 마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자식사랑과 교육열은 그 어느 부모보다도 높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돕던 농사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편하고 수지맞는 농사” 방법은 없을까 늘 궁리한 것이 평생을 농협인으로 살게 된 이유다. 그는 1987년 근흥농협(당시 조합장 함정경, 서산군 근흥면)에 근무를 시작으로 농협인이 되었다. 그 후 대산농협에서 상무와 전무를 거쳐 2019년 3월 실시한 전국동시조합장 선거에서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조합장으로 취임하기까지 30여년을 농협에서 잔뼈가 굵었다. 대산농협에 근무하면서 그는 농촌을 잘 살게 하는 방법 중 하나가 좋은 쌀을 만들어 높은 값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서산 천수만 세계 철새기행전을 통해 지역경제 발전과 서산이미지 가치 상승을 가져왔다는 것을 알았다. 쌀 브랜드 ‘뜸부기와 함께 자란 쌀’도 이즈음 탄생됐다. 쌀 작목반(반장 이한우)을 조직, 전량 계약재배를 했다. 좋은 품종 선택하고 우수 농산물 인증제도(GAP)에 맞춰 재배하여 적기 수확을 하도록 했다. 수확한 쌀은 전량 농협에서 수매했다. 수매가격도 일반벼에 비해 40kg 포대 당 4000원 비쌌다. 이렇게 수매한 벼는 저온사이로(15˚C) 보관하면서 완전미로 도정해 충청권과 수도권 대형 마트에 납품을 하기 시작했다. 60여 계약농가가 280㏊에서 생산한 쌀은 2000톤에 이르렀다. 쌀을 구매한 소비자들로부터 미질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TV 방송을 비롯한 각 언론이 이런 사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김 조합장은 당시 서산시 담당팀장이었던 임종근(57. 현 농식품유통과장)씨와 함께 수도권 대형 유통매장을 찾아 시식회를 갖는 등 ‘뜸부기 쌀’판촉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김 조합장은 장장 당시 2005년 고품질 쌀 생산 유공으로 농림부장관표창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표창을 받은 데는 당시 김용호 조합장의 공이 컸다고 했다. 이제 김 조합장은 「마늘, 양파, 감자, 고구마」재배 농가와 계약 재배하고 수매하여 판매해 주고 있다. 앞으로 농심과 CJ 등 대기업은 물론 대산에 있는 기업에 전량 판매하여 조합원들이 마음 놓고 농사짓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크다. 이를 위해 그는 요즈음 대산농협 자산 지난해 말 2700억 원을 가진 현재 1700명의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 국내는 물론 덴마크 등 선진국 농협과 농업을 벤치마킹 등 열심히 뛰고 있다. 농업인들의 작고 큰 모임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 농협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조합장은 명지초와 대산중, 서산중앙고(서산농고 32회, 농업토목과)를 거쳐 단국대 농과대학을 졸업했다. 해병대 학사장교로 임관 3년 3개월 복무 후 중위로 전역했다. 가족으로는 1991년 근흥농협 근무 할 때 지인의 소개로 첫눈에 반해 결혼한 문옥기(58)여사와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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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4
  • “삶 속의 희로애락 시에 담겨 있지요”
    ▲여중 시절 국어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문학소녀의 길을 걸었다는 김가연 시인. 시인은 독서와 여행, 사람과의 만남, 모든 자연을 통해서 시의 소재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얻은 상상력을 기록함으로써 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디카시집 ‘해미읍성, 600년 역사를 걸어나오다’를 펴낸 김가연(57) 시인이 지난 12일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녀가 펴낸 ‘디카시집’이 궁금했던 터라 반가웠다. 아울러 시인이 되기까지 그녀의  삶이 어떤 것일까를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2009년 ‘열린시학’에서 ‘달콤한 초록’으로 등단했다. 이후 ‘시간의 배후’(2013), ‘푸른 별에서의 하루’(2108)를 펴냈다. 이번에 펴낸 디카시집은 그녀의 세 번 째 시집으로 서산에서 10여년이 넘게 시를 써왔다. “시가 이젠 제 삶이되었어요. 삶 속의 희로애락이 시 속에 담겨 있죠. 시인은 삶의 이야기를 시적 언어로 표현해내는 영혼의 대언자입니다” 그랬다. 그녀의 말대로 이번에 펴낸 디카시집은 해미읍성에서 살아온 영혼들의 대언자로서의 역할에 대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디카시집은 그녀가 지난 5년여 동안 사시사철, 조석으로 직접 사진을 찍어가며 떠오른 시상을 함축된 시어로 표현한 것으로 국내 문학계에서도 흔치 않은 시집이다. 특히 이 디카시집은 시를 읽는 독자를 섬세히 배려했다. 독자들이 이 시집을 들고 해미읍성을 거닐며 감상할 수 있도록 동선에 따라 편집하는 등 문학적 열정이 응집되어있다. 필자는 1995년 흙빛문학회에서 시인을 만났다. 당시 시인의 시 낭송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지성미 넘치는 매력이 뿜어져 나왔다. 문우로써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인지면에서 출생한 그녀가 시인이 된 데는 여중 시절 국어교사의 영향이 컸다. 40여 년 전이다. 당시 담임교사인 국어선생님이 예능에 재능이 있다며 교내 백일장에 추천하면서다. 첫 출전한 백일장에서 상을 받았다. 선생님의 칭찬과 관심으로 어느 새 문학소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시인의 꿈을 갖게 된 계기다. 고향을 떠나 수원에서 유학을 하며 보낸 여고시절에도 그녀는 매일 또박또박 시를 쓰듯 일기를 썼다. 여고를 졸업하고 수원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조그마한 가게를 운영하던 중 시를 쓰는 사람들과 인연이 되었다. 당시 인연이 된 사람이 유현민(50)씨다. 1995년 유씨와 함께 서산태안문학단체인 흙빛문학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경수(60, 동화작가)교수를 만났다. 노 교수의 권유로 한서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늦게 시작한 공부가 수월하진 않았지만 노력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한 결과 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대학 시절 만학도인 그녀에게 윤흥길 교수(소설가)의 강의는 문학적 소양을 키워 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 영향으로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였다. 2005년 한국문인협회 서산시지부 창립 회원으로 참여해 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시인은 흙빛문학회 10대 회장(2007~2011)을 역임했다. 뿐만 아니라 지곡 부성초 방과후 교실, 인지 작은도서관 지도강사, 해미도서관, 서산문화원 지역문화학교, 서산시 평생학습 프로그램 등에서 시 창작 강의 등 문학과 관련된 일이라면 꾸준히 참여해 왔다. 현재는 서산문화원 이사, 서산소식지 편집위원(서산시 발간, 2002~현), 한국문인협회 회원, 충남문인협회 회원으로 문학적 기량을 뿜어내고 있다. 요즘 그녀는 장석주 시인의 ‘은유의 힘’시론을 읽고 있다고 했다. 시의 소재를 찾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시의 소재는 이렇게 독서뿐만 아니라 여행, 사람과의 만남, 모든 자연을 통해서 얻는다는 그녀는 이를 통해 얻은 상상력을 기록함으로써 시의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흙빛문학회(회장 이자영), 한국문인협회 서산시지부(지부장 전승진), 서산시인회(회장 박만진) 등 동인들과 어울리며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김 시인은 문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남편 김태동(60)씨가 제일 고맙다고 했다. 그녀와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시를 통한 그 가치와 의미가 독자들에게 널리 소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냈다. 이 바람에 수줍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15세 문학소녀의 꿈과 아름다움이 오버랩으로 다가온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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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6
  •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
    어린 시절 할머니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노래와 가까워 졌다는 가수 금채안. 지난 6월 3일 KBS 아침마당에 출연한 그녀는 ‘트로트 미스코리아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이란 피켓을 들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서산하면 떠오르는 유명가수가 되고 싶어요. 서산시민과 대중가요를 사랑하는 국민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는 멋진 가수가 되겠습니다” 금채안 가수. 본명 김도형, 1970년 서산(수석동)출생, 일명 트로트 미스코리아 가수 금채안씨를 지난 8일 서울에서 만났다. 그녀는 6월 3일 방영된 KBS TV 아침마당 ‘도전 꿈의 무대’에 출연,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이를 시청하면서 20여 년 전이 떠올랐다. 생활전선에서 뛰던 부지런한 그녀였다. 이날 TV화면에는 ‘트로트 미스코리아 서산의 자랑, 넘버원 금채안’이란 피켓이 보였다. 고향에 대한 그녀의 애정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금채안 가수는 어렸을 때 할머니(송옥희 1915-2011)가 동네잔치가 있을 때마다 장구를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성장했다. 또 부친(김영식 1938-1979)은 콩쿨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그녀를 데리고 다녔다. 그녀 나이 5~6세였다. 구구단도 함께 외우고, 함께 노래도 불렀다. 아버지 친구들이 복주머니를 주면서 앞으로 유명한 가수가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예상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그녀 나이 8살 때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가정형편은 급격히 어려워졌고 어머니(안연희 1949-)는 매일 남의 집일을 다니느라 5남매는 할머니 손에 자랐다. 1남4녀 중 둘째 딸로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면서 배울 기회도, 꿈꿀 시간도 없어 할머니 따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그녀는 노래 등 예술에 끼와 소질, 노력, 열정도 대단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에는 천안 청운여고를 다녔다. 오산초등학교와 서산여중을 다닐 때는 미술과 음악 등 예능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혜전대학도 교수 추천으로 장학금으로 다녔다. 사회에 진출해서는 미장원에서 허드렛일 하다 미용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림도 배워 전시회 출품도 하고, 새벽에 우유, 신문 배달로 돈을 모았다. 그러던 중 6년 동안 키운 조경수 판 돈 등 2천만 원을 서울 가양동 CJ스튜디오 트로트x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방송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현혹에 몽땅 사기를 당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눈앞이 캄캄해 죽으려 했지만 고생하면서 나를 키워준 어머니 생각에 가수의 꿈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2008년부터 중요 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이춘희, 서산출신 유창(서울무형문화재 41호), 유지숙(무형문화제 제21호) 보유자로부터 전수 받았다. 그 후 2013년 청양에서 개최된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청춘열차’를 불러 인기상을 받았다. 그리고 충남방송이 주최란 전국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활발한 가수 활동을 벌였다. 2015년 데뷔곡 ‘어이할꼬’로 서산시청 앞에서 쇼케이스(showcase)를 가졌다. 2017년 ‘오빠가 좋아’2집 앨범 발표를 서산시 문화회관에서 전영록 가수, 최병서 개그맨과 함께 개인 콘서트인 ‘금채안의 음악여행’을 민옥선 국장 등 펜클럽의 후원으로 가져 시민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녀는 “도형(금채안)이가 방송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돌아가신 할머니와 어머니의 바램이 KBS 방송에 나왔으니 소원을 들어 드린 셈이 되었다며 미소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요즈음 코로나19로 공연이 없어 몹시 어렵다고 했다. 현재 남예종 예술원 트롯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금채안 가수는 2016 국제 베스트 모델선발대회에서 ‘선’, 2019년 할리우드 트리프트 모델대회 포토제닉상 등 아름다운 미모와 매력에다 트로트로 이제 한국을 넘어 베트남 글러브랜드 하노이 공장 준공기념공연에 초청되는 등 세계를 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요양원, 보육원 등에 노래로 재능기부, 군부대 위문, 소년소녀 가장돕기 사랑의 콘서트 개최 등 밝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로 언론단체로부터 자랑스런 대한민국 시민 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가 우리 서산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수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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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10
  • 서산시 예술인센터 건립 위해 최선
    ▲서산예총  기반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용상 서산예총 회장. 그는 회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서산시예술인센터’건립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예술은 사랑이고 아름다움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행복해집니다. 이 예술이란 에너지를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용상(68)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예총) 서산시지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달 28일 서산 JC특우회서다. 그는 “서산에서 예술활동을 하시는 분이 많은데 (한국예총 서산시지회)회원이 350여 명에 불과한 것은 회원단체의 입회자격이 엄격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인의 친목과 권익을 옹호하며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도록 만든 단체가 예총이다. 예술인이 함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한 회장은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중앙이사와 충남도지회장을 맡고 있다. 인정초와 부석중, 서산중앙고(서산농고 제23회 축산과)를 졸업하고 1972년 당시 서산군청 잠업지도원으로 공직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마을 방문을 할 때 농촌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순간이 지나면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여러 사람에게 보여 주려고 사진 찍기를 시작했다. 벌써 40여 년이 흘렀다고 한다. 70년대는 당시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자연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다. 자연은 우리에게 소중한 재산인데 어떤 힘으로 막을 수 없었다.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 것은 부처님 오신 날 호수에 비친 연등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어 ‘지혜’라는 제목으로 제3회 전국공무원 서화전에 출품했는데 특선을 차지한 것이다. 입법ㆍ사법ㆍ행정부 등 공무원들의 창의성을 키워주기 위해 총무처가 주관한 행사였다. 서산은 물론 충남의 경사라며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이후에도 제6회(1996년) ‘성도’로 은상, 제15회(2005) ‘그날의 함성’으로 은상, 제19회(2009) ‘6쪽마늘 축제’로 특선 등의 수상경력과 함께 2010년 충청도 사진전에서는 ‘삶의 현장’이란 제목의 작품이 우수상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룹전 60여회 개최 등 전문적인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서산 사진동우회장, 전국사진작가협회 서산지부 5~6대(2006~2011)지부장을 역임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다변화 문화의 시대, 예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은 공직자의 창조성을 키우는 일로 알고 시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2006년 필자가 서산시장 당시 공무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지방행정사무관으로 승진하여 안견의 출생지인 지곡면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 후 공보관을 거쳐 회계과장으로 공직을 마쳤다. 여러 가지 애환도 있었지만 동료 공직자와 시민들의 사랑에 항상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서산시복지재단 사무처장을 마치고 한국예총 서산시지회(회장 최차열) 사무국장으로 무보수로 4년 간 봉사했다. 그는 사무국장으로 업무 활성화에 주역하면서 서산예총 기반을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2018년도 서산예총 정기총회에서 7개 회원단체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제9대 서산예총 회장에 취임했다. 시민들이 고맙고 예총회원들이 고맙다는 한 회장은 오늘이 있기까지는 내조의 힘이 제일 컸다고 했다. 고교시절 탁구동호인 인연으로 26세 때 오수희(현68세) 여사와 결혼하여 2녀를 두었다. 인지면 산동2리 이장이셨던 아버지 한창수(1928~1983)씨는 한 회장이 31세 때 작고하셨다. 6남매의 맏이였던 그는 앞이 깜깜했다. 그때 부인이 공무원 봉급과 농사지으면서 어머니 (유연화, 현 90세)를 모시고, 어린동생들을 대학을 가르쳐 출가시켜 잘 살도록 자리를 잡아준 것이 평생 잊지 못할 고마움으로 남았다. 한 회장의 소망은 ‘서산시 예술인센터’를 만드는 일이다. 서산시의 협조로 지금의 예총사무실을 확대하여 예술을 좋아하는 시민들이 예술인들과 함께 글도 쓰고,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고, 연극, 국악, 사진, 연예도 공부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성실함과 열정으로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원해보았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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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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