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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3
  • 39살에 대학 도전, 원동력은 ‘딸’
    ▲29세에 위암으로 5년 시한부 삶을 살았던 노경수 작가. 절망에 빠졌던 그녀를 일으켜 만학에 도전하게 한 건 당시 17개월 된 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동화작가 노경수가 학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서른아홉 살 때였다. 스물아홉 살에 위암으로 5년 시한부 삶을 살게 됐던 그녀, 절망에 빠졌던 그녀를 일으켜 만학에 도전하게 한 건 당시 17개월 된 딸이 있었기 때문이다. “5년 동안 아이를 어떻게 키우다 죽어야 하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데 아는 게 없었어요. 아이와 함께 동화를 읽기 시작했지요. 읽다가 보니까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학교 다닐 때 독서광도 아니었고 글을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는데, 읽다가 보니 쓸 수 있겠더라고요.” 독서를 통해 시작한 창작에의 도전은 1997년 MBC창작동화공모에서 「동생과 색종이」로 대상을 수상하며 시작됐다. 같은 해 서산으로 이사한 그녀는 39살에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도전하고 문학특기생으로 한서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 소설가 윤흥길 교수 문하에서 본격적인 문학 공부를 시작한다. 이후 단국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 아동문학을 전공하여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졸업식 노래’와 ‘고향 땅’작사로 유명한 윤석중 아동문학가에 대한 연구다. 윤석중 아동문학가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원적은 서산시 음암면 율목리다. “이런 삶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꿈을 주기도 해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아이를 향한 꿈이, 생명력을 증대시켰고 오늘의 저를 있게 했어요.” 단국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간 2004년부터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기 시작한 그녀는 2018년까지 서울여자대학교, 한경대학교, 단국대학교, 한서대학교, 우석대학교 등 한 학기 평균 3개 대학을 다니면서 아동문학론, 아동문학창작실습, 글쓰기 같은 과목을 맡아 강의했다. “강사법이 통과되면서 강의 자리를 잃기까지 쉬지 않고 겸임교수로 강사로 많은 강의를 하고 다녔어요. 길에서 보낸 시간도 참 많았지요. 덕분에 창작에 몰두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창작에 전념할 때이구나, 생각했지요. 올핸 강연도 조금 다니고 한국아동문학인협회에서 창작 강의도 조금 하면서 집필하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었고 감동이었다는 그녀는 투병생활 4년 차에 둘째 아이를 출산한다. 2007년 출간한 테마 수필집 『엄마를 키우는 아이들』은 그녀가 두 아이와 함께 공부한 여정을 쓴 이야기이다. 이 책으로 BOOK TV <저자와의 대화>에 출연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이후 『오리부부의 숨바꼭질』, 『집으로 가는 길』, 『씨앗바구니』, 『쉿, 갯벌의 비밀을 들려줄게』,  『‘하얀’ 검은 새를 기다리며』 등의 동화집을 출간했다. 2019년에는 해미천과 천수만을 배경으로 쓴  『‘하얀’ 검은 새를 기다리며』가 서산시의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에서 아동도서부분에 선정되어 성연중학교, 언암초등학교 등에 기쁘게 강연을 다니기도 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질 때는 몰랐는데요, ‘엄마’는 죽을 때까지 불리는 이름이더라고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어도 엄마는 엄마니까요. ‘좋은 엄마’를 향한 저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는 거지요.” 그녀에게 꿈을 주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당시 17개월이었던 딸은 경인교대를 거쳐 서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또 투병생활 중에 얻은 아들은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이버수사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부하는 그녀를 가까이서 지켜본 주부들 중에는 그녀 모습에서 용기를 얻어 늦게 학문에 도전, 새로운 삶을 사는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단국대학교 출신 문인들의 모임인 단국문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녀는 “저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은혜였다”면서 “꿈은 삶의 이정표이며 그 여정에서 얻는 기쁨과 감동은 생명력을 증대시키는 비타민”이라고 했다. 한편 노 작가는 1960년 공주출생으로 서산에서 19년 동안이나 살았다. 현재는 경기도 광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공주와 마음의 고향인 서산을 오가고 있다. “서산은 정서적인 면이나 물질적인 면에서 아주 평화롭고 아름다우며 문학적 상상력을 주는 공간이에요” 그녀가 서산을 자주 찾는 이유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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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12
  • “양반의 고장, 서산 명성 찾을 터”
    평생을 농촌 계몽과 농업인의 발전을 위해 살아온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당선인. 그는 이제 문화 활동 실천으로 시민들이 고귀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최상임 작가     영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가 저술한 ‘역사의 연구’에서 그는 “부지런하고, 정직하며, 서로 협력하는 민족만이 위대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창조 한다. 게으르고 거짓말을 하며, 작은 이익을 얻기 위해 서로 다투는 민족은 다른 민족의 식민지배나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우리 인류에게 주는 준엄한 교훈이다” 라고 말했다. 편세환(81) 서산문화원장 당선자를 지난 3일 필자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삶의 가치관에 대해 “농사와 같이 진실하게 서로 협력하면서 부지런히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나이 81세. 서산문화원장 출마여부를 놓고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지혜를 서산 문화 발전을 위해 써 달라는 권유로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당선 직후 “서산문화원장 임기 4년 동안을 인생의 마지막 봉사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 했다. 앞으로 서산문화원의 발전 방향에 대해 그는 “문화라는 것은 우리 삶속에서 서서히 발전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방향과 목표를 조용한 전진, 알찬 문화 창달에 역점을 두어 인문을 통한 시민의 인성 계발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또 “최소한 삼강오륜의 윤리관을 바탕으로 양반의 고장, 서산의 옛 명성을 되찾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000년 서산향토문화연구회원으로 서산문화원과 인연을 맺은 편세환 당선자는 2015년 서산문화원 이사, 2016년 서산문화원 부원장으로 재직하다 지난10월 15일 임시총회에서 제9대 서산문화원장으로 당선됐다. 서산문화원 설립 후 처음 실시된 경선이라며 웃었다. 그는 이어 문화원 회원(문화 가족)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시민과 함께 호흡을 나눌 수 있도록 내부의 성숙을 다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기존의 각종 분야별 문화학교를 자율적으로 내실 있게 운영하여 신바람 나는 활동으로 문화수준을 높여 가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방문화원은 법률로 정해진 공공성을 띤 사단법인 이지만 아직까지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없이는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이 한계이다. 또 문화의 속성상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투자한 만큼의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꾸준히 보듬어야 할 준공공기관이라는 점을 시민들이 이해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편세환 당선자는 서산문화원이 서산시민의 행복 추구와 후세를 위하여 시민 모두가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함께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하고 이를 통해 자기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는 도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당선자는 운산초, 해미중, 서산중앙고(전 서산농고) 임업과 11회 졸업하고 공군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농촌지도직 공무원으로 34년 근무하다 서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관으로 퇴임했다. 1998년 문예한국 시 분야에서 ‘봄’외 5편로 등단한 이후 첫 시집 ‘밤에 뜨는 태양’발간을 시작으로 제6시집과 합동시집 5권에 참여했다.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거쳐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논고 활동으로는 천수만 AB지구 간척과 그 성과(2007년), 석동 윤석중과 서산(2009년), 서산이 낳은 법장스님의 위대한 정신(2009년) 등이 있으며 2002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 사료 조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편 당선자는 장수 집안으로 문화 예술ㆍ가정으로 유명하다. 그의 어머니 윤대봉(103세) 여사는 슬하에 5형제를 뒀다. 편 당선자가 장남이며, 둘째(범권ㆍ농업)는 음암면 도당4리 이장을, 셋째(인환)는 서산시농업기술센터소장을 역임했다. 넷째(선환)는 사진작가로 현재 서산예총 사무국장이며, 다섯째(현범)는 온양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다. 편 당선자 부인 허권순(80)여사는 효심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어버이날에 서산시장과 대한노인회 음암분회장으로부터 각각 효부상을 받았다. 편세환 서산문화원장 취임식은 11일 오후 5시 서산문화원 3층 대강당에서 열린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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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6
  • 가로림만의 해양생태계 1년 추적…KBS 특별기획 방영
    KBS 대전방송총국은 오는 5일 저녁 7시 40분 가로림만의 해양생태계를 1년간 추적한 기록을 특별기획으로 방영한다고 밝혔다. 특별기획은 가로림만의 생태와 어민들의 생활상을 1년간 담아냈다. 특히 6개월간의 긴 추적과 기다림 끝내 국내 최초로 점박이물범이 모래톱 위에서 무리 지어 휴식하는 장면도 포착해냈다. 가로림만은 지난 2016년 국내 최초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인근에 자리한 대규모 석유화학단지에선 해마다 크고 작은 환경오염사고가 잇따르고, 79개에 달하는 방조제로 인해 갯벌 생태계는 점점 망가지고 어족자원은 고갈 위기를 맞고 있다. 가로림만 사람들과 자연이 공존하고, 생태가치를 보전하는 데 필요한 일을 찾기 위해 KBS대전 취재진은 일본과 독일을 찾았다. 인구 2만 8000명의 작은 시골, 일본 사가현 가시마시에선 1년에 단 하루 아리아케해 갯벌에서 특별한 올림픽이 열린다. 지정된 구역에서 이뤄지는 갯벌올림픽, 이른바 가타림픽이다. 가타림픽이 열리는 날이면 하루에만 3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뿐만 아니라 가타림픽 등을 통해 매년 350만 명이 이곳을 찾고 경제유발효과는 600억 원에 이른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독일 바덴해 갯벌은 보존이 잘 이뤄진 세계최대 갯벌이다. 바덴해 갯벌 전 지역을 자연보호법에 따라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독일은 갯벌의 90%는 절대 제한구역, 10%는 허가에 의해 출입할 수 있는 구역으로 나눴다. 이중 단 1%만 휴양구역으로 지정해 엄격한 관리가 이뤄진다.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음에도 매년 1억 명이 찾는 바덴해의 인기에는 갯벌환경의 교육적 기능과 보전의 철학이 숨어있다. 지난 3월,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 최종용역보고회가 열렸다. 갯벌 복원을 시작해 다양한 시설과 갯벌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20년 예비타당성 조사 선정 및 통과를 기대하고 있다. 갯벌을 활용해 다양한 시설을 유치하고, 생태관광을 끌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갯벌을 지키고 보전하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KBS대전 관계자는 “가로림만의 생태와 어민들의 모습을 1년간 기록하고, 6개월간의 추적 끝에 점박이물범의 휴식장면을 카메라에 포착했다”며 “2014년 이후 행방이 묘연한 붉은발말똥게를 비롯해 서식지 위협으로 흰발농게, 거머리말의 모습이 사라지는 가로림만의 위기 또한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병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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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03
  • “가정의 화목이 부자를 만들어 주었어요”
    맨손으로 펜션을 짓기 시작한 최금순 대표. 그녀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오직‘신용’이 바탕이었다. 사진=최상임 작가     필자는 지난 9월 변호사인 아들과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를 돌아보고 권력과 부의 상징인 금개구리 서식처인 두웅습지를 방문 했었다. 마침 박열(45) 학암포 번영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겨울연가 펜션에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런 방문이었는데 온 가족이 있었다. 배에서 금방 잡아온 큰 도미, 우럭회로 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이날 박열 회장의 어머니 최금순 여사의 고난과 역경 속에 성공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돈 한 푼 없이 230평 3층 규모의 펜션을 건축한 용기, 은행을 정년퇴직한 지인이 45억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흥미까지 있었다. 지나던 스님이 학암포는 학이 날개를 펼치고 힘차게 나는 형상인데 바로 이 땅이 학의 가슴에 알을 품고 있는 땅으로 너무 좋은 터라는 말에 수십 년 동안 땅만 믿고 지켜왔다고 했다. 나중에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이날은 헤어졌다. 그리고 지난 29일 최 여사가 부군 박기화(77)씨와 함께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지난 9월의 약속을 지키려 찾아왔다고 했다. 최 여사는 “진실을 이길 장사는 없다, 우정도 진실에서는 변할 수 없다. 지금도 8살 때 근흥면 용신리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 15명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데 수시로 연락하면서 친자매처럼 살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돈보다 인간관계가 우선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대목이다. 44년 전 지금의 터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행상을 하고 돌아오니 천막이 바람에 날아가 버려 젖먹이 막내와 어린 5남매가 남의 집 추녀 밑에서 떨고 있었다. 그 후 남의 집 창고에서 몇 년 동안을 숙식해야만 했다. 그래도 부부는 열심히 살았다. 약속을 지키고 신의를 생명처럼 여겼다. 이들 부부를 지켜본 한 지인이 방 12개가 있는 민박집을 운영해 보라고 권유했다. 집값도 한 푼 받지 않았다. 벌어서 갚으라고만 했다. 부부는 지인의 배려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손님이 오면 가족처럼 대했다. 바다에 나가 잡은 고기를 손님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 당시 그렇게 인연을 맺은 고객이 지금까지 찾아오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물론 이들이 찾아오면 돈도 받지 않고 푹 쉬라고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됐으니까 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예산 삽교에서 출생했다. 8살 무렵 아버지를 따라 태안군 근흥면 용신리로 와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병원 등에서 사무원으로 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1남3녀 중 장녀인 최 여사는 생계를 위해 학암포로 황금조기를 구입하러 갔다가 마포중고를 졸업하고 항해운수 전무로 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결혼을 했지만 살림은 펴지지 않았다. 남편이 간경화로 20년을 고생했다. 여기에 큰 아들이 뇌막염으로 병환에 있으니 그녀의 머리에 생선이 담긴 고무다라는 떠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소형선박을 구입해 멸치잡이를 했고, 굴을 구입해 서산동부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서해수산 정제탁 사장은 그녀를 대단히 신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옷 장사, 보험외판원 등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다시 돈이 모이자 땅 100여 평을 구입했다. 인근 토지의 4사람의 지분은 외상이었다. 보잘 것 없는 땅이었지만 경운기와 소달구지로 땅을 메웠다. 그리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7년 전이었어요. 벽돌, 철근, 못 하나 모두 외상이었죠. 담보도 없이 신용으로 농협, 수협, 대한생명, 새마을금고 등 대출로 펜션을 지었습니다” 2012년 8월 1일 드디어 펜션을 준공했다. 인생의 억지가 통하는 것은 신뢰라는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그 해 9월 한국서부발전소 공사가 시작되었다. 고생 끝에 낙이라 할까 펜션수입이 상상을 초월 했다. 3년 만에 큰 채무는 모두 갚았다. 최 여사는 지금도 자식들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했다. 생계에 얽매여 열심히 살다 보니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지 못한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마음속으로는 ‘사랑한다’를 수십 번이나 외친다고 했다. 2남 3녀에 며느리, 손자, 손녀, 외손자까지 매일 카톡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 가족의 생일, 가족들의 소식을 전해 주는 가정의 화목을 위한 사령탑 역할을 하는 최 대표의 가족은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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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30
  • [알림] 제14회 자랑스런 서산인상
    서산타임즈가 ‘자랑스런 서산인상’열 네 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서산타임즈는 지난 2006년 지역언론 최초로 ‘자랑스런 서산인상’을 제정, 서산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여 서산을 자랑스럽게 한 숨은 일꾼을 발굴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서산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자랑스러운 서산을 만드는데 귀감이 되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추천될 수 있도록 각급 기관과 단체 그리고 시민여러분의 관심 바랍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9일 열립니다. ■ 시상부문 = 정치, 행정, 봉사, 애향 부문 ■ 추천대상 = 자랑스러운 서산에 기여한 시민 또는 출향인 ■ 추천권자 = 서산지역 각 기관ㆍ및 단체의 장, 15인 이상의 회원 추천 ■ 구비서류 = 추천서, 공적조서, 기타 공적증빙서류(관련 사진 및 언론보도 기사 등) ■ 접수기간 = 11월 1일~12월 2일 ■ 접수방법 = 공문 접수(방문ㆍ우편 가능) ■ 접 수 처 = 31977 서산시 고운로 239 고운빌딩 4층 (서산타임즈) ■ 문    의 = 서산타임즈 총무과(041-666-0320)ㆍ편집국(041-666-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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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3
  • “백혈병 걸린 친구 딸이 회복했데요”
    산양산삼과 사진작가로 무엇 하나 손색이 없는 최상임 건우산양산삼 대표. 최 대표가 산양산삼과 사진작가 두 토끼를 쫒는 이유는 자연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산양산삼은 산에서 재배하는 삼(蔘)이다. 장뇌삼처럼 뇌두를 키우지 않고 산에서 최종 재배한 산양산삼은 웰빙 열풍을 타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아지며 수요가 폭등하고 있다. 건우산양산삼 최상임(64) 대표는 여성의 몸으로 15년째 산양산삼에 올인하고 있다. 최 대표가 산양산삼에 빠진 것은 자연이 주는 매력 때문이었다. 충북 괴산에서 산양산삼을 재배하던 오빠 최상영(71)씨가 “먹어보라”며 준 산양산삼을 주머니에 넣어와 산 이곳저곳에 심었다. 그리고 산양산삼이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연의 신기함과 오묘함을 발견 했다. 그리고 건강도 주고 돈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산양산삼은 기후, 태양(빛과 열), 양분 등 자연에 아주 민감하다. 빨간 열매등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비로움을 사진으로 남겼다. 최 대표는 “산양산삼은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그는 산양산삼 이야기가 나오자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산삼의 효능은 동의보감 등에 의하면 주로 오장(五臟)을 보하는데, 특히 기허(氣虛)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강장보혈(强壯補血)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눈을 밝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지혜를 더하는 등 오래도록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장수한다고 해요” 필자 또한 평소 산양산삼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2004년 서산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유럽의 실리콘 밸리라는 프랑스 남부 소피아 앙티폴리스(Sophia Antipolis) 산업첨단단지를 방문했었다. 그곳은 컴퓨터 사이언스, 전자로봇, 전자통신, 의료과학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20~30%를 바이오산업으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인간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생명산업의 비전과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산으로 돌아와서는 서산인삼농협에 인삼가공공장 설립을 협력했다. 또 각 읍면 1개 마을 국유지 등 유휴임야를 활용해 산양산삼 재배단지를 조성토록 했다. 최 대표에게 산양산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 이유이기도 했다. “오빠가 준 산양산삼이 어느 정도 커졌지요. 그리고 캐서 지인들과 나누어 먹었어요. 그 중 당뇨가 있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산양산삼을 먹은 후 기운이 나고 입맛이 난다고 기뻐하던 기역이 눈에 선해요” 최 대표는 또 집에 찾아온 지인으로부터 자신의 딸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200뿌리를 캐서 주었다. 그랬더니 일어나지도 못하고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던 딸이 원기를 회복했다는 말도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렇게 직접 산양산삼의 효력을 검증하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재배를 시작했다. 그 때가 2004년. 고향인 대산으로 내려와 1000여m² 본인 소유의 산에 산양산삼을 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산양산삼 재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농약이나 비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연 상태에서 자생하도록 관리하고 최상의 산양산삼만 엄선해 채취하고 있다. “자연산삼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인삼에 비해 사포닌과 유기물질 함량이 월등해 항암과 항염, 원기회복, 면역력 증강 등에 탁월하다고 해요” 최 대표의 산양산삼 찬양은 계속 이어졌다. 직접 효능을 경험했던지라 산삼이 몸에 좋다는 것은 세상 사람이 다 알지만 보통 사람들은 높은 가격 때문에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산양산삼의 대량 재배로 이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산삼의 효능과 비슷한 산양산삼을 접할 수 있도록 대중화시켜 보람과 자긍심을 느낀다고 했다. 열정, 끈기, 노력으로 산양산삼 재배에 성공한 그녀지만 전문 임업인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아직 진행형이다. 산양산삼 CEO과정 등을 수료하고 한국임업진흥원(원장 구길본)으로부터 2019 우수재배 임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송호대학교(총장 정창덕)와 산학협력 협약을 체결하는 등 새로운 산양산삼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행보는 멈출 줄을 모른다. “항상 자연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요. 이제 인간이 의지 하고 살 수 있는 곳은 산”이라는 그녀는 아직 오염되지 않고 깨끗한 삶의 터전은 산으로, 산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이렇게 산양산삼을 재배하면서 산양산삼이 커가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삼의 신비로움을 남기기 위한 사진촬영이 어느 새 사진작가가 되어 있었다. 2017년 서산관광사진 공모전에서 은상을 수상하는 등 수 많은 수상경력이 사진작가로의 삶을 빛나게 하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27일까지는 서산문화원 2층 갤러리에서 해여울(회장 김수범) 창립전을 갖는다. 그녀의 작품이 기대된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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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2
  • [모집] 서산타임즈 자문위원ㆍ지역기자
    지역 미디어 혁신을 이끌고 있는 서산타임즈가 융ㆍ복합 미디어시대를 함께 할 운영위원과 지역기자를 모집합니다. 지역주민이 당당한 지역의 주체가 된다는 지방화 시대. 그래서 서산타임즈는 더욱 빛이 납니다. 지역을 바로 보고, 행동하는 지식으로 지방의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여러분이 곧 서산타임즈의 주역입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도전하고 서산의 미래를 함께 할 시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운영위원 : 특별한 자격격 제한은 없습니다. 지역언론에 관심만 있으면 됩니다. ■ 지역기자 : 지역소식이나 현장, 생활 속 재미있는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제출할 수 있으면 됩니다.   ■ 제출서류 : 이력서(사진부착) 1부. ■ 활동시작 : 선정된 운영위원과 지역기자는 본사에서 1시간 동안 안내 및 소양 교육을 거친 후 본격 활동을 시작합니다. ■ 접수방법 : 방문 또는 온라인 접수(1times@naver.com) ■ 문의전화 : 041-666-0310 또는 010-9447-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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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1
  • “성공비결은 아내의 내조”
    ‘헤라형 내조’가 성공의 큰 힘이 되었다는 김기섭 대표. 그는 전기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삼성연구원이 얼마 전 국내 최고경영자(CEO) 448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다. 그 결과 남편이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아내가 집안일을 완벽하게 책임지는 ‘헤라형 내조’가 가장 큰 힘이 된다고 답했다. 헤라는 그리스 신화 속 제우스의 아내로 결혼과 출산을 관장하는 가정의 여신이다. 서산에서 전기사업으로 성공신화를 써 나가고 있는 주식회사 신양 김기섭(61) 대표도 예외는 아니다. 서령전기(전기ㆍ소방전문회사), 신양전업(전기ㆍ통신전문회사)과 함께 년 매출 100억 원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에는 헤라와 같은 아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집안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된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도와 열심히 살아온 아내 덕분에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의 아내 한선자(58)여사는 남편의 뒷바라지와 자녀를 키우면서 시어머니(윤현기ㆍ84)가 운영하는 칼국수 집을 돌보는 등 1인3역의 고된 일상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족 간 우애를 최우선으로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데 누구보다 적극이었다. 김 대표는 집안 어른들까지도 아내에게 잘해야 한다며 자신보다 아내를 더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필자는 김 대표와 이웃에서 함께 성장 했다. 어려서부터 봐왔던 터라 누구보다 그를 잘 안다. 김 대표 친구들은 물론 마을 사람들도 김 대표를 칭찬하는데 인색함이 없을 정도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조용히 베푸는 등 누구보다 고귀한 삶을 살아온 그를 한번 쯤 만나고 싶었다. 며칠 전 서산타임즈에 원고를 제출하러 갔다가 입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그의 성공담을 듣고 싶어 만나자고 했다. 그리고 지난 14일 그가 필자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 대표는 군 제대 후 막내삼촌이 운영하는 문화전기주식회사에 입사하며 전기와 인연을 맺었다. 그곳에서만 20여년을 근무했다. 7년 경력이면 자격이 주어져 13년 만에 전기공사기사 2급 국가시험도 합격했다. 그의 직책은 상무이사가 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쟁회사였던 신양전기 이은상 사장이 자신의 회사를 인수할 적격자로 김 대표를 지목했다. 경쟁회사 직원인데도 그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은상 사장은 “아무리 살펴봐도 내 회사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은 김 상무뿐”이라며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없애지 말아 달라며 회사 인수를 권유했던 것. 김 대표는 당시 회사를 인수할 만큼 여력이 없어 망설였다. 이런 사정을 전해들은 막내 숙부(김익환)가 자립할 때가 됐다며 인수대금을 마련해 주었다. 여기에 4촌형(김길웅, 현 문화전업사대표)까지 힘을 보태줘 회사를 무난히 인수했다. 현재 이 회사에는 직원 25명이 근무를 하고 있다. 직원들의 평균 근속 기간도 20년이다. 직원 대부분이 김 대표가 회사를 인수한 이후 이직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회사만의 특별함이 있을 법했다. 그 특별함에 대해 김 대표는 “직원들이 편안하고 가족이 행복하게 복지를 우선한다”고 했다. 또 직원들에게 상여금 외에도 연말 결산 이익금의 일부를 지급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회사경영은 물론 운영상황을 모든 직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직원들이 내 회사란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또 하나의 특별함이다. 여기에 김 대표는 회사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직원에게 퇴사를 권유하는 법이 없다. 흑자가 나면 잉여금을 유보금으로 저축하여 만일을 대비하고 있다. 김 대표 또한 아무리 흑자가 나더라고 급여이외에는 욕심을 내는 법이 없다.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하고 고마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직원들이 회사를 신뢰하는 만큼 김 대표도 직원에 대한 배려가 깊다. 그 첫째가 직원들이 다치지 말아야 된다는 신념이다. 둘째는 무리수를 두면 안 된다는 것. 서둘거나 빨리하라고 재촉하지 않고 근로시간 준수를 철저히 당부하고 있다. 셋째는 서산 지역 외 공사는 공사현장 지역인력을 활용하는 것. 지역 실정을 잘 알기에 현지 인력을 활용하고 본사에서는 기본 인력만 파견 한다. 김 대표는 승승장구만 한 것이 아니다. 어려움도 겪었다. 사우디에서 공사를 하다 중간업자의 농간으로 회사가 존폐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 있는 기관에서 사우디 문화를 무시하고 한국적 시각으로 보아서 해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당시 친분을 쌓은 사우디 왕족이 운영하는 대기업 회장과 아직도 교류를 하고 있다. 김 대표의 성실함은 외국에서도 인정받았기에 가능한 일이란 생각을 해본다. 김 대표는 전기기술을 배우려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여기에 전기산업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하리라는 믿음도 강하다. 현재는 기피업종이지만 앞으로 유망직종이 될 것이라는 믿음. 김 대표가 경영을 계속하는 이유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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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6
  • “꿈과 땀과 나눔으로 살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얻어진 것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정병식 ㈜이화글로텍 회장. 그는 “모든 사물의 높은 가치는 찾는 사람에게 발견된다”고 했다. 사진=최상임 작가   필자가 정병식 ㈜이화글로텍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6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정신보ㆍ정인경 선생 국제학술대회에서다. 정인경 선생 기념사업회 이성 회장이 그를 소개해주었다. 잠시 대화를 나눴을 뿐인데 첫 인상이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그런 분이었다. 정 회장은 2년 전 서산의 한 거래처 사장으로부터 정신보ㆍ정인경선생의 중국의 유적 방문 등 기념사업에 대해 듣고는 서산정씨 22대손으로써 ‘나 자신’을 찾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회사경영에 몰두하다 보니 겨를이 없었다며 기념사업과 대종회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며 서산에 오면 필자를 꼭 찾겠다고 했다. 그 이후 몇 번인가 그가 필자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지난 7일 아주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새 문화를 창조 하는 것이죠.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 이중에 따뜻하고 질감 좋은 의류소재(원단)를 만드는 열처리 공정설비 섬유기계를 제작,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화글로텍은 한국섬유기계산업이 불모지였던 1957년 일신기공사로 출발, 1976년 미국, 방글라데시 등에 수출을 시작해 2019년 현재 31개국에 매년 3~4천만불을 수출하는 우수중견기업이다. 정 회장은 지금도 수출국에 가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기계 속에 들어가 AS점검을 직접 한다고 했다. 이런 그를 외국기업에서는 지극정성으로 대한다. 큰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정 회장이 수출한 기계 때문이기에 그렇다. 그래서 정 회장을 그들은 부자로 만들어 준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해방이 되면서 경남 거창으로 왔다. 아버지의 사업실패, 6.25사변으로 가족이 헤어졌다. 큰형님은 남은 재산을 거둔다며 일본으로 가 전분공장으로 돈을 벌어 밀항하다 추방을 당하기도 했다. 형님은 또 서울에서 한 섬유회사를 다녔다. 당시 텐타를 구입하기 위해 사장과 함께 독일을 방문했는데 가격이 비싸 구입은 하지 못하고 사진만 찍어 왔다. 형님은 1년여 연구 끝에 대한민국 1호기 텐타(TENTA)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1957년 회사를 설립하고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회사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형님은 그런 회사를 아우인 정 회장에게 대표 자리를 물려줬다. 평소 아우의 대인관계, 경영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때 정 회장 나이는26세에 불과했다. 정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 받으면서 회사 규모는 더욱 성장했다. 1980년도에는 반월공단에 17만m² 규모의 공장을 건설하고 1995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해외진출을 본격화했다. 이러한 과정에 부도위기와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주춤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경영의 혁신으로 재기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이화글로텍이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또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 인증, 무역진흥을 통하여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하여 정부로부터 많은 훈포장을 받았다. 20세기 한국의 100대 기술업체로도 선정됐다. 현재 이화글로텍 본사는 경기도 안산에, 주 공장은 당진시 부곡 공단에 있다. 대표 자리도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런데도 그는 출근 8시, 퇴근 5시를 어김없이 지키고 있다고 했다. 외국 출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2세 경영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찾아서 조언해준다. “모든 사물의 높은 가치는 찾는 사람에게 발견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람이 많지 않다. 그것은 높은 가치를 찾는 것이 어렵고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2세 경영인들에게 하는 출고다. 다시 말해 연구하거나 궁리해서 높은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그 가치의 만남을 기뻐하고 거듭해 갈 때 그 가치는 발견 된다는 것이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었다. 이화글로텍의 경영 이념은 ‘열린 경영, 윤리경영, 창조경영’이다. 그는 대화 말미에 앞으로 오늘까지 살아온 경험에서 얻어진 것을 기록으로 남겨 후대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문화는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유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새 문화를 창조하는 정 회장의 사명이 우리 사회를 밝고 풍요롭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조규선 전 서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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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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