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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하는 나무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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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2.0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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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춘산을 즐겨 찾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부춘산은 우리 서산시민이 사랑하는 모두의 산이다. 그러기에 부춘산에 가보면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부춘산은 자애로운 어머니다. 어머니처럼 삶에 지친 시민을 포근히 안아 주고 품어 준다. 코로나19로 오갈 데 없는 우리를 불러내어 고단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피곤한 몸을 풀어주고 걱정, 근심, 시름을 달래준다.

등산을 하다 보면 참 많은 것을 산에서 배운다. 산은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받아 준다. 가난하다 하여 타박하거나 어린이라고 또는 노인이라고 얕보지 않는다. 산은 눈을 씻어주고 귀를 씻어주고 마음도 씻어준다. 사람, 짐승, 새, 나무, 풀 그 어느 것 한 가지도 차별 없이 공평하게 자리를 내준다. 심지어는 바람과 눈비 우박까지도 머물게 한다.

산은 선생님이다.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가파른 언덕을 기어오르며 겸손을 배운다. 함께 어우러진 나무를 보며 우애를 생각한다. 나무 밑에 자라고 있는 아주 작은 나무와 풀을 보며 포용을 배운다. 어느 곳에서든지 씨앗이 떨어진 대로 나고 자라는 나무를 보며 순종을 배운다. 항상 같은 모습, 같은 표정을 보며 시류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인간들의 추악함을 깨닫게 한다. 나무를 타고 날아다니는 청설모나,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소리를 들으며 평화를 배운다.

산은 어떤 푸념도, 어떤 하소연도 다 들어 준다. 산은 막혔던 생각까지도 뚫어준다. 나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어김없이 부춘산으로 달려간다. 나는 산이 좋아 기왕에 살던 집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부춘산 아랫동네로 이사했다.

등산로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뚫려 있다. 막힌 데 없이 가슴을 열어 모두를 환영한다. 얼마 전 나는 부춘산을 오르다가 보은하는 나무를 발견했다. 시청에서 옥천사로 가는 방향으로 가다가 우측 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등산로가 있다. 거기에서 1Km 정도 올라가다 보면 바위를 받치고 서 있는 나무를 볼 수 있다. 그동안 수도 없이 그곳을 지나다녔지만 어째서 그걸 발견하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글을 쓰다 막혀 부춘 산을 오르는 중이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막 끝나가는 지점에 커다란 바위가 앉아있다. 그 바위에 붙어있는 한 그루의 소나무를 보게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마치 소나무는 아래로 굴러 떨어지려는 바위를 온몸으로 받쳐주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 바위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몇 백 년의 세월을 견디며 그 자리에 앉아있었을 거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는 크기로 보아 백 년 안쪽에 태어나지 않았나 싶다. 어느 날 소나무 씨앗이 바로 바위에 떨어졌을 거다. 씨앗은 바람의 도움으로 바위 품에 안겨 바위 밑에 싹을 틔워 자랐을 거다. 폭풍우 몰아칠 때마다 바위는 어린 소나무를 붙들어주었고 북풍한설도 몸으로 막아주었을 거다. 목마를 때마다 빗물로 갈증을 풀어주고, 때로는 그늘로 땡볕을 가려 주었겠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느새 소나무는 자라서 바위보다 더 크고 튼튼한 나무가 되어 이제는 바위를 지켜주는 보호수가 되었다. 어느 한날 천재지변으로 모든 바위가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소나무가 온몸 다해 받쳐주는 이 바위만큼은 끄떡없이 자리를 지키며 제 몸을 보전할 것 같다.

얼마 전 신문에서 파출소에 노모를 버리고 간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치매에 걸려있는 어머니를 파출소에 맡겨놓고 도망가 버린 비정한 딸의 이야기였다. 잠시만 어머니를 맡아달라고 하고는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 부득이 요양시설에 보냈다고 했다. 자기를 낳아 길러 준 부모님을 학대하거나 내팽개치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일들이 소위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릴 들었던 이 땅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산은 자기를 만들어 준 창조주에게 보은하고 있다. 물기를 머금어 식물들을 키워내고 식물들은 산을 보호하여 서로 은혜를 갚고 있다. 쓸쓸하고 삭막한 한겨울에도 하얀 눈을 보듬어 나무마다 꽃 피워 인간과 창조주를 기쁘게 한다.

이 땅, 아름다운 이 땅이 안타깝게도 마구 훼손되고 있는 모습을 본다. 태양광이나 난개발로 인하여 많은 산이 훼손되고 있다. 산이 인간에게 그리고 창조주에게 보은하듯, 소나무가 바위에 보은하듯 우리도 자연과 산을 아껴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을까?


김풍배 칼럼 연재를 시작하며…


지난 1월 하순 어느 날, 새해 들어 두 번째 소설집 ‘원산도’를 출간한 김풍배 소설가가 <서산타임즈>를 방문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단조로운 삶을 얘기하다가 어느 새 힘들어하는 소상공인들을 걱정하기도 한다. 그의 손에 들린 ‘원산도’는 12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소설마다에 그의 원숙한 문학세계가 그려진다. 그러면서 노련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의 이야기꾼 재능을 서산타임즈 독자들과 공유하는 바람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흔쾌한 수락으로 <김풍배 칼럼> 연재가 이루어졌다. 독자 제위들께서도 <칼럼>을 통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그 마음이 바라보는 사람과 사물과 세상의 이면을 함께 읽어주시길 당부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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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풍배 프로필

서산 출생으로 월간『문학공간』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한국 공무원 문학상과 창조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시집 『물 동그라미』등, 시조집 『노을에 기대어 서서』, 소설집 『눈물 먹고 핀 꽃』과『원산도』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동문동에 거주하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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