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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8.10.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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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수확의 계절을 맞았지만 온통 우울하다. 한동안은 100달러를 넘나드는 유가에 신음했고, 이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다. 환율은 폭등하고 주가는 폭락한다.

그 암담한 일상에 더해 최진실씨 자살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뉴스였다. 죽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인터넷 악플과 관련하여 국회에서는 규제를 위한 법제정을 둘러싸고 설전이 한창이다.

한국은 너무나 짧은 기간 동안에 인터넷 강국으로 부상했다. 인터넷은 익명성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이다. 과거에는 뉴스를 듣거나 신문을 보다가 혼자서 울분을 토해내야 했지만 이제는 그러한 울분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잠깐 사이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하게 된 인터넷이라는 세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배운 것은 사용기술이나 방법에 관한 것뿐이다. 흔히 네티켓이라고 불리우는 인터넷 예절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신경 써서 가르치지 않았다.

그 결과, 세계 1위의 인터넷 보급망을 자랑하고 정보화 선진국임을 자임하면서도, 사이버 폭력으로 고통 받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들을 막아내지 못했다.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익명성의 가면 뒤에 숨어서, 차마 담아낼 수 없는 악플들을 쏟아내는 것을 그냥 지켜보기만 했다.

네티켓이라는 신조어를 거창하게 떠올릴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일상에서의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가르치지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거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따라야 할 규범과 상호간의 예절에 대해 배우고 잘못을 지적받는다. 그러면서 행동을 수정하고 의식을 개선해간다. 교육비가 천문학적으로 지출되고 교육 수준이 훨씬 높아진 오늘날, 오히려 인간됨의 교육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그러한 가치는 이제 너무 진부하게 들린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고 출세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가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내 기분, 내 형편만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한, 아무리 악플러를 잡아 처단한다고 해도 또 다른 유형의 신종 살인은 일어날 수 있다. 한 번 쯤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불교설화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토끼가 낮잠을 자다가 큰 소리를 듣고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그를 만나는 많은 동물들은 하늘이 무너진다는 토끼의 말에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명상을 하고 계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다. 토끼의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함께 그 자리에 가 보자고 하셨고, 큰 야자수 열매가 떨어지면서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악플러를 찾아내서 죄를 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해도 누군가는 좀 더 먼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외부적 규제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행동이 부끄러운 일이고 타인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라는 내면적 자각이 또한 가능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끼를 따라 아무런 의념 없이 함께 도망쳤던 동물들처럼, 남들이 다 그러한다고 해서 그저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사람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전체 사회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학원으로 개인교습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교육열이, 실상은 ‘함께 더불어 사는 법’이라는 삶의 기본조차 가르치지 않고 있다면 배움이란 것이 너무 공허해진다. 천문학적인 교육비가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도록, 우리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걸음을 멈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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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특별기고] 정수도/문학박사ㆍ수도회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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