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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08.1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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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방 약속을 어긴 평양 정상회담 제의에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면 어땠을까?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까? 아니면 망신당한 북한의 몽니로 여의도 주식시장이 출렁거렸을까?

설마 그랬을지언정, 평양행 열차에 몸을 실은 노무현 대통령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찬사가 쏟아졌을 것이 분명하다. 대선을 4개월여 남겨둔 상황에서 뚜렷한 의제도 없이 추진된 남북정상회담. 국민의 절대적인 지원도 없는 평양 정상회담으로는 한반도에 감동을 줄 수 없다.

▲안 되는 회담을 끌려가며 하자는 것 ▲민족을 앞세워 정략적인 결과를 도출해내려는 의도 ▲이번엔 얼마나 갖다 바칠까? ▲다음 정권에 짐을 지울 것이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 가며 회담을 하려는 것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

굳이 하려면 이번엔 서울이어야 하는 게 백번 마땅하다. 우리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실현한 후 북한을 실질적으로 우리와 대등한 국가로 취급해 왔다. 그렇다면 더구나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최소한의 격식이 요청된다. 특히 의전에서는 엄격한 상호주의가 적용된다.

평양 정상회담이 발표되던 날 필자는 지인들과 함께 있었다. 이 자리에서 단연 화두는 평양회담 소식이었다.

이들은 이번 회담에 대해 “참으로 어색한 만남”, “너무 때늦은 만남” 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6자회담 협의를 걱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서울답방이 그토록 중요한 사안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김정일 위원장의 해외 방문은 공식적으로 중국과 러시아가 전부다. 그만큼 김위원장이 움직인다는 것은 이례적이면서도 확실한 ‘표현’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자. 그가 광화문 네거리를 환호 받으며 지나가려면 우선 북한 군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남한 보수층의 마음이 열려야 하는 전제가 선행되어야 한다. 남북한을 가로막는 양대 강경기류를 설득하는 가장 큰 사건이자 초대형 ‘평화메시지’임에 틀림없다.

또 워싱턴의 백악관과 펜타곤에 던지는 우리의 외교력과 민족 자부심은 어떻겠는가? 외신들은 뭐라 하겠는가?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의 입이 딱 벌어지게 하는 것, 그런 자주외교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게 ‘김정일 서울답방’이다. 2차 평양 회담은 이런 획기적인 카드를 날려 버렸다.

7년 전 평양회담 이후 대북뒷거래로 5억달러가 송금된 사실을 노무현 정부에서 특검을 통해 밝혀냈다. 이른바 ‘대북송금 특검’아직도 생생히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 아름답지 못했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단상도 있다.

단언컨대 남북 정상들이 악수를 하며 부둥켜안아도 감격의 눈물을 흘릴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00년 6월의 1차 남북 평양 정상회담 결과가 북의 핵실험이었다는 걸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도 퍼주었건만 북은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만 상대하겠다는 기존 자세를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당시의 현란한 말잔치에도 불구하고 퍼주기와 이산가족 상봉 등이 일부 실행됐을 뿐 북한의 개혁 개방 같은 근본적 변화를 끌어내진 못했다.

필자는 2차 정상회담이 노리는 정치수가 있다면 그것은 야당이 아닌 여당의 집결을 위한 것이라 판단한다. 분명히 정략적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특히 평화체제 문제는 지리멸렬 상태의 범여권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단, 남북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떠한 형태의 교환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작정 거는 기대는 금물이다. 개성공단부터 전반적인 남북경협이 현재 어디에 와 있는가를 생각할 때, 또한 자칫 남북 관계 변화에 따라 보장받을 수도 없는 투자를 생각했을 땐 섣부른 판단이기 때문이다.

평화는 지켜야 하지만 구걸해서는 안 된다. 평화는 구걸할수록 멀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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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권의 세상 엿보기||남ㆍ북 정상회담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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