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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7.10.13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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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다. 걸핏하면 서로 번갈아 상대방 뺨을 때리게 하는 벌을 주던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수업시간에 떠들기라도 하면 둘씩 짝지어 마주 세워 놓고 서로 뺨을 때리게 했다. 처음에 학생들은 주뼛거리며 상대의 뺨을 살짝 건드려 시늉만 냈다. 그러나 더 세게 때리라는 선생님 호통에, 두 번째는 조금 힘을 주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도 슬며시 화가 나 그보다 좀 더 세게 때리게 되고, 그때부턴 회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힘을 가해 급기야 난타전이 되고 만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인권유린이지만, 그땐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빚어졌다.

청와대가 이명박 대선후보 등 한나라당 핵심인사들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른바 ‘이 후보 뒷조사’에 ‘청와대 결탁 조짐’등의 발언으로 청와대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즉각 뉴라이트 부정선거추방운동본부가 맞받아쳤다.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 등을 형사고발한 것이다. 청와대가 고소한 건 공직선거법 9조의 공무원 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한나라당도 ‘국정원 국세청 등의 이 후보 불법조사와 관련, 집권세력 개입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이처럼 번갈아 강수를 쓰다간 끝내 어떤 진흙탕 싸움이 될지 괜히 조마조마하다. 마치 어린시절 ‘서로 상대방 뺨 때리기’를 관전하던 기분이다. 그간 어떤 선거에서도 경험 못했던 유례없는 희한한 볼거리다.

사상 초유의 볼거리는 또 있다. 예전과 달리 이번 대선엔 용꿈을 품고 뛰어든 후보들이 자그마치 1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 중 몇몇을 빼곤 거의가 평범한 생활인들이다. 농부 회사원 목사 승려 청원경찰 사회복지사 교수 택시기사 등등 직업도 가지가지다. 이처럼 평범한 생활인들이 대통령 자리를 원한다는 건 그만큼 민주화가 폭넓게 발전됐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으리라. 반면 하루에 한 사람씩 검증해도 두 달밖에 안 남은 투표일까지 도저히 못다할 걸 생각하면, 괜히 그들에게 미안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주요 정당들의 행태 또한 상상 밖의 볼거리들을 많이 제공했다. 경선후보들 간 서로 잡아먹기식 난투를 벌이다 나중엔 청와대까지 끌어들인 꼴이 된 한나라당. 가까스로 승패를 가리긴 했어도 승자든 패자든 이미 만신창이가 돼버린 뒤다. 이 또한 예전에 못 보던 진기한 모습들이었다.

범여권은 한 술 더 떴다. 애초 노 대통령의 실정을 탓하며 우루루 열린우리당을 빠져나오더니, 얼마 뒤 다시 뭉쳐 대통합민주신당을 급조했다. 겉으론 대통합을 외쳤지만, 뚜껑을 여니 옛 모습 그대로다. 다만 맛보기로 몇 명 보태졌을 뿐이다. 괜히 국민만 헷갈리게 했다. 지금 한창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갔지만, 당 결성과정부터 참 가관이었다.

더욱 가관인 건 이 모든 과정에 수렴첨정식 훈수를 두는 전직 대통령과, 마음에 안드는 인물들을 싸잡아 비난하며 좌충우돌하는 현직 대통령의 모습이다. 세상에 이처럼 기이한 광경들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까 싶다.

이제 각 정당은 이미 대선후보 경선을 마쳤거나 마무리 단계다. 지금까지를 대선정국 제1막이었다고 한다면, 곧 제2막에 들어서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제1막에선 희한한 장면들을 원없이 구경했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다. 이제 국민들도 넌더리가 난다. 제2막은 분명 다른 장면들이어야 한다.

우선 다른 일도 아닌 대선판에서 최고의 어른들이 좌충우돌하는 건 결코 좋은 모습으로 비치지 않는다. 후보들이나 여타 정치인들도 더는 꼼수정치로 득볼 생각을 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와 같이 증오만 부추기는 싸움, 무책임한 공약과 정책, 눈앞 이익만 탐하는 떼거리 행태 등은 염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자칫 이번 대선이 희망찬 국민잔치가 아닌, 오직 증오와 속임수로 그득한 저들만의 잔치가 되지 않을까, 국민들은 내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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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 뺨 때리기’ 관전하는 기분||정영권의 세상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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