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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3.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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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개각이 있을 때마다 중알 일간지에 자주 실리는 사설이 있다. “대통령에게 쓴 소리 할 수 있어야…”란 제목이다.

몇 년 전 모 중앙지 사설에는 새롭게 인선된 참모들이 꼭 곱씹어야 할 문제점으로 전임 참모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머리에 생생히 남을 정도로 많은 공감을 나눴다.

대통령에게는 쓴 소리를 하는 참모가 없었다는 지적이었다.

대통령이 펼친 국정운영이 일방적이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은 참모들이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제동을 거는 직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사설은 신임 참모들에게 부디 대통령의 수족으로만 머물지 말기를 당부했다.

당시 사설은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하면서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참모, 행정부처의 입장과 현장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대통령의 뜻’이란 이름으로 인사와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참모, 부처 현안을 너무 잘 알아 부처를 휘두르는 참모, 종합조정 능력이 부실한 참모 등은 결국 대통령에게 누가 되었다며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반드시 삼아주길 재차 지적했다.

그런데 오늘 생뚱맞게 지난날의 사설 한토막이 문득 떠오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최근 서산시 청사 안팎에서 떠도는 이런저런 얘기가 머릿속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기자란 직업상 갖가지 속사정을 담은 주변 얘기를 늘 상 듣게 되는데 요즘 들어 유독 자주 들려오는 얘기가 있다.

맹정호 시장에게 제때에 제대로 직언을 해주는 진정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있다는 얘기다. 학연간 자리경쟁, 직원간 계파싸움, 직원과 계약직간의 알력다툼 등 청사 내에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 발단에서부터 어떤 시책 결정과 발표 과정 등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상황을 지켜보면 시장에게 사심 없이 문제 발생 원인을 알려주고 정확한 사태의 진위여부를 따져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참된 참모가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것.

요즘은 정무비서실장의 행동에 대해서도 말이 많이 나온다. 시장을 대신해 축사를 하는 경우에 대해서다. 심지어는 시장과 함께 참여하는 행사에 같은 의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게 많은 공무원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이를 대놓고 지적하는 참모들이 없는 모양이다. 앞서 지적한 청와대 전임 참모들의 어설픈 처신들이 지금 서산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생각케하는 대목이다.

 

제널드 포드 정권때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은 참모란 한마디로 직언하는 자리라고 잘라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대통령에게 욕을 퍼 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 자리를 수락하거나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현재 시장 주변을 맴도는 자칭 참모란 인사들의 처신을 보면 딱 잘라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많은 씁쓸함과 아쉬움을 갖게 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달콤한 말로 아부하기는 쉽지만 아무리 참모라고 해도 최고 책임자에게 직언하기란 무척 어렵다.

직언은 옳고 그름에 대해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그대로 말함을 뜻하고 또 윗사람에게 옳지 못한 일에 대해 조언하는 의미를 두고 있기에 최고 책임자를 향해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 직언을 한다는 그 자체는 어찌 보면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참모라면 직언을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직언은 보약처럼 써 일시적으로나마 치명적 불이익으로 되돌아 올수 있지만 나중에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진정한 참모라면 직언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직언과 쓴 소리를 기탄없이 털어 놓는 소통의 참모, 실세 참모가 아닌 실용 참모가 시장 주변에 보다 많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던진 한마디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아울러 직언의 진가는 넓은 아량으로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기에 맹 시장 역시  싫든 좋든 지역과 조직 발전을 위해 올바른 직언 듣기에 적극 나서고 그들의 직언 용기 또한 높이 사주었으면 하는 바림이다./ 이병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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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언하는 참모가 있는가?||데스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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