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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를 교체하며

가기천의 일각일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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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06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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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천.jpg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자동차 타이어를 교체했다. 아직은 트레드 홈이 좀 넉넉하여 얼마쯤 더 타도된다는데 겨울이 코앞이라 미리 갈기로 했다. 막상 갈려고 하니 짠했다. 그동안 수만리 길을 묵묵히 달려준 타이어다. 육중한 차체의 무게를 견디고 햇볕을 받아 데일 듯 뜨거운 아스팔트길, 눈 길, 물 고인 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가끔은 못에 찔려 상처를 입기도 했다. 차가 달릴 때나 멈춰있을 때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견뎠다.

신발은 벗어 놓으면 몇 시간은 쉴 수 있고, 주인이 다른 신발을 신고 나가면 얼마동안은 임무교대 상태인데 타이어는 그럴 처지가 아니다. 한 번 달면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다른 타이어로 바꿔달 때까지 잠시도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쓰던 타이어는 교체할 때까지 타고 다니는 동안 ‘아무 일’ 없었음이 고마울 뿐이다. 바꿔달기로 한 날, 세차장에 들러 말끔히 닦았다. 나중에 쓰임새는 알 수 없지만 말쑥하게 씻어서 보내고 싶어서 그랬다. 그동안 제 몸을 길바닥에 비벼대며 내 발이 되어 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심정이었다. 씻기를 마치고 예약시간에 맞춰 타이어센터에 갔다. 기사는 무심한 듯 능숙한 솜씨로 타이어를 빼내더니 묘기를 부려 한 편에 쌓아놓았다. 새 타이어로 바꿔단 다음 센터를 나오면서 조금 전까지 내 차를 지탱하고 있던 타이어가 쌓여있는 곳을 또 한 번 바라다보았다. 마음속으로 ‘그동안 수고했다. 고마웠다. 잘 가라’라고 했다. 스스로의 위안이었다.

며칠 전, 서산타임즈 「데스크 칼럼」을 읽고 의아했다. 시에서 열정을 가지고 일하던 중견공무원이 사표를 내고 홀연히 서산을 떠났는데, 이 공무원의 ‘탈 서산’은 한 마디로 ‘희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그가 떠남에 대하여 한 공무원은, “전문가로서 공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떠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굳이 “서산시가 인재를 잃었다”는 얘기를 곁들이지 않더라도 그 공무원은 평생직장이라고 할 공직을 내려놓고 서산을 떠났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공직을 떠나야겠다는 의사를 내비쳤을 때 누가 이유를 묻고 위로하며 만류라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 분위기에서 어디 상사를 믿고 의지하며 동료애를 느끼면서 신명을 바쳐 일할 마음이 생길까? 아마 외면하고 모른 채 하는 풍토가 야박하다하며 더 서운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오해는 없었으면 다행이겠다.

현대는 ‘이동의 시대’다. 먼 나라도 이웃이다. 농경사회의 정착민이 아니라 유목민처럼 살고 있다. 서산도 조상대대로 터전을 잡고 사는 세거민(世居民)보다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세거민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고향을 인심이 어떻고 풍토가 무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대개 애향심을 얹어 ‘살기 좋은 고장’이라고 말한다. 외지에서 와서 살고 있거나, 잠시 머물다간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이야기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거나 오랫동안 살은 사람만이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에 갔을 때 몇 사람을 상대해보고 몇 군데 둘러본 것으로 그 나라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같다. 외지 사람들의 눈과 귀, 겪은 일이 그 고장에 관하여 각인하게 된다. 짧은 경험으로도 평가한다. 하니, 외래인 들에게 서산을 좋게 인식하고 좋게 평가하며 좋게 말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따뜻하고 정겹게 대해주어 좋은 인상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떠난 뒤에도 든든한 후원자요 홍보요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혹시 메마른 분위기에서 외롭게 견디다가 떠난 후 서운했던 감정을 드러내어 서산의 이미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도록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청에도 외지출신 공무원들이 일하고 있다. 물론 출신지역이 어디냐가 일하는 자세와 행태를 좌우할 수는 없다. 고향이 아니라고 하여 어영부영 지낸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자칫하면 당사자와 바라보는 사람사이에 인식의 간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퇴임 후에 서산에 정착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언젠가는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경로를 거쳐 서산에서 근무하게 되었는지 여부를 떠나 이들이 서산을 고향보다도 더 고향처럼 애착을 가지고 ‘권한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언제가 떠난 후에 ‘그래, 서산이 좋았어. 그 때가 좋았어. 그 시절이 보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직장은 단순히 일하고 보수를 받는 곳이 아니다. 더구나 공직은 다르다.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쌓을 수 있는 일터다. 서로 북돋고 부추기며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서산을 떠난 그 공무원, 앞으로 떠날 사람들이 좋은 기억만 가질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아무런 감정을 갖지 못하는 타이어를 갈면서 문득 스치는 상념이 엉뚱한데 까지 비약했다. 가을이 멀어지고 있다. /전 서산시 부시장

서산타임즈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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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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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성

외지인들에게도 따뜻하고 정겹게 대해주어 떠난뒤에도 서산의 홍보요원이 될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글이네요.
필자의 표현대로 '이동의 시대'에 시의적절한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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