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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13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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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춘.JPG


민태원 생가를 찾아간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 때문에 동행인 한명 없이 홀로, 음암면 신장리 메화동 골짜기 우보 민태원 생가 터를 찾아간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청춘예찬’의 작가 숨소리를 찾아간다. 구절초 꽃향기가 매화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매화고개를 넘어가는 매화마루에 올라, 이내 속에 가물거리는 민태원 생가 터를 내려다본다. 매화현 아래, 매화재 기슭, 매화동 골짜기 나지막한 산자락에 그의 생가는 잡초만 무성히 키우고 있다. 오솔길마다엔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그의 잔뼈가 굵어가던 뜀박질소리가 들리는 듯, 꽃잎이 그의 눈빛처럼 반짝인다.

매화마루에서 매화골짜기로 내려와 우보 민태원 생가 터에 이르러 옷깃을 여민다. 우보가 공부하다 심었을 것 같은 거목의 매화나무만 나를 반길 뿐 그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선가 ‘청춘예찬’을 낭송하는 풍류가 들리는 듯 솔바람 소리가 잔잔하다. 지역주민의 말에 의하면 인근지방에는 김좌진 장군 생가, 한용운 선사 생가가 복원되어 위업을 기리고 있는데, 민태원 문학인 생가 터는 왜 복원을 안 하는지 아쉽다는 말을 한다. 생가 터를 복원해서 그의 위업을 기리고, 관광사업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면 좋지 않느냐 하는 말까지 덧붙인다.

41세로 요절한 민태원 소설가는 청춘예찬 작품을 통해서 민족정신에 젊은 피를 넣어 나라를 위한 헌신을 간접적으로 표현 호소한 글이어서, 그의 문학정신 의미가 더욱 깊다 하겠다. 음암면 상홍리에 ‘청춘예찬 문비’가 1990년에 세어졌다. 그 후 아직까지 그의 생가가 복원되지 못하고 있음은 매우 아쉽다. 생각해보면 서산시는 향토문학의 뿌리를 보여줄, 내세울만한 유적관리보존이 미흡하다. 타 지역에 비해 문학관도 없고, 문인들의 생가복원이나, 유허지 복원 등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전무한 상태이다. 문학의 뿌리 찾기 차원에서 하나하나 발굴 복원하여 문학유적의 관광 및 학생들의 현장교육 자료로 유용하게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보 선생이‘청춘예찬’ 집필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 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청년으로서 그는 힘이 없어 일본에 당했으며, 이상이 부족해서 장래를 일궈내지 못한다는 쓰라린 심경을 참다못해, 그렇게 화려한 수식어와 힘찬 어조로 각성의 소리를 토해냈던 것이리라고 새삼 생각해본다. 바라건대 그의 이러한 민족정신, 애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속히 생가를 복원 그의 위업을 기리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우보 민태원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보 생가복원, 우보 문학백일장, 서산향토문학 뿌리 찾기를 목적사업으로 내걸고 출발하였다고 한다. 매우 고무적인 발상이다. 서산의 향토문학 그 맥을 이어 나가려는 태동소리가 매우 야무지다. 가뜩이나 문학 활동무대가 희박하고, 향토문학의 뿌리 유적관리가 미흡한 현시점에서 매우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태동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박수를 보낸다. 서산향토문학의 뿌리가 이제 움트고 싹터, 잎 피고, 꽃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서산향토문학의 숨소리가 고동친다. 청춘의 젊은 피가 뜨겁게 흐른다. 서산향토문학의 따스한 바람이 분다. 젊은 우보 심장의 힘찬 박동소리가 우렁차게 메아리쳐 매화골짜기를 가득 메운다. 매화골짜기가 안방처럼 후끈후끈 훈훈하다. 우보 민태원 소설가, 그의 유년시절의 휘파람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듯 댓잎이 서걱서걱 사락거린다. 박영춘(시인ㆍ한국문인협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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