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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상소문

김풍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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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8.31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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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에 충무공 이순신의 생명을 구한 약포 정탁의 상소문(伸救箚)이 보물로 지정될 것이라 합니다. 이 상소문을 선우정 조선일보 논설위원은 최고의 상소문이라 했습니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킨 지 5년 만에 다시 쳐들어온 때 충무공은 출정 명령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한양으로 압송되었습니다. 선조는 노하여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인다라고 했습니다. 신하들도 입을 모아 이순신을 벌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우의정이었던 약포 정탁이 목숨을 걸고 신구차라는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이순신은 큰 죄를 지었지만, 성상께서는 극형을 내리지 않고 인을 베푸시려는 일념으로이순신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시려고생명에 대한 임금의 어진 뜻이 죽을죄를 지은 자에게까지 미치니 감격을 이길 길이 없습니다.”

임금의 속 좁은 뜻과 반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순신의 작은 공로를 세워 주며 무릇 인재는 나라의 보배이므로 주판질하는 사람까지 재주가 있으면 아껴야 하는데 장수의 재질을 가진 자를 오로지 법률에만 맡길 수 있느냐고 호소했습니다. 이순신을 죽이면 졸장부라니 선조도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상소로 인하여 충무공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며 나라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만 대단해서가 아니라 염라대왕의 마음도 바꿀 수 있는 완벽한 설득의 기술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관계에서만 적용되는 기술이 아닙니다. 지금도 여전히 설득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자에게 바른말을 하는 건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처럼 위험합니다. 왕정 시대엔 임금에게 바른말을 했다가는 죽음을 맞이하거나 파직되어 유배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권력자 앞에서 하는 직언은 대부분 권력자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충신은 목숨을 걸고 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의 현인 탈레스는 자신을 아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며, 남을 충고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의 허물은 감춰두고 단지 타인의 잘못만 지적해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가장 어려운 것이, 충고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무의식적으로 고집이 있고, 자존심도 있고 스스로 우월감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감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자기의 주장을 꺾지 않으려 합니다.

물론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야 권위나 힘으로 누를 수 있겠지만, 동료나 윗분에게 하는 충고는 다릅니다. 오히려 반감을 갖게 하거나 상처를 받게 할 수도 있고 사이가 더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더구나 윗사람에게 드리는 충고는 불이익을 당할 염려와 때로는 위험부담도 따릅니다. 대부분 아랫사람은 상급자의 지시에 토를 달거나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출세하는 길이요, 처세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맹종이야말로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따르는 자세야말로 자신은 물론 모두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 해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도 있고 그릇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랫사람은 자신에게 미치는 유불리를 불문하고 시시비비를 가려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진언해야 합니다. 감동하여 생각을 바꾸게 하려면, 윗분보다 몇 배는 더 생각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선출직 지도자일수록 선거를 의식하여 무리한 사업을 강요하기가 쉽습니다. 필자도 그런 분을 모신 적이 있습니다. 고정투자는 신중하여야 함에도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했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해야 했습니다. 결국 대여섯 가지 문제점을 찾아내어 무사히 넘겼습니다. “참 좋은 안이라 생각합니다.” 제일 처음에 한 말입니다. 그러면서 문제들을 하나씩 꺼내며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 어떻게 할까요?”라며 의견을 구했습니다. 이렇게 대여섯 가지를 꺼내며 포기하도록 설득하였더니 결국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다행히 별 마찰 없이 소임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약포 정탁의 상소문을 읽어보며 지난 일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간언을 하는 사람은 몇 배 더 생각하고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금 약포의 지혜를 깊이 생각합니다./시인·소설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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