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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8.09.2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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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고수관의 생가자리에 기념비가 서 있다.

고북면 초록1리(이장 이대근)는 1914년 행정 개편 당시 초록리, 연하리, 가구전리의 일부를 합병하여 만든 마을이다. 구전에 의하면 마을이 연암산(해발 440m) 기슭에 자리 잡은 까닭에 새초풀이 파랗고 무성하게 자라 ‘새프르기’라 불렀다 하는데 후에 이것이 한자표기에 따라 초록리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초록리는 조선시대에도 55가구 175명이 사는 큰 마을이었다. 비탈진 산기슭의 지형적인 불리함에도 이 마을이 번창할 수 있었던 까닭은 예로부터 이곳이 옹기제조와 쇠를 끓여 만들어내는 야철업이 크게 발달해 지금의 산업단지 같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생산된 제품을 과거에는 조랑말로 운반하였다하여 조랑말리란 지명까지 생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번창함을 짐작할 수 있다. 마을 노인들의 기억을 빌리자면 그 당시는 공장의 인부들과 옹기와 솥을 파는 중간상인들, 그리고 장사꾼들로 항시 붐벼 면 소재지보다 활기가 넘쳤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공장터와 집터들이 모두 다 밭으로 바뀌어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산업단지의 영광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조선후기 명창으로 이름을 떨친 고수관이 새로이 조명되면서 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1764년(조선영조40)에 태어나 19세기 중반에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는 고수관은 초록리 48번지에서 태어나 명창이 되기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고수관은 춘향가중 사랑가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임금을 웃겨 후한 상을 하사받기도 했다고 전해내려 오고 있다. 충남인물 100인선에 오르기도 한 고수관을 기리는 기념비가 마을에 세워져 있다.

고수관 기념관 건립이 당초 약속보다 늦어져 주민들은 실망하고 있지만, 차후에라도 기념관이 건립되면 마을이 옛날처럼 번창하게 될 것이라고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방관식 기자


초록1리 사람들

▲이대근(62) 이장 = 마을 전체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 마을 내에서는 소규모 채소 농사만 짓고 있습니다. 알타리무나 논밭 농사는 인근 부락에 가서들 경작하고 있죠. 시장님 공약사항으로 명창 고수관 기념사업이 선정되어 마을주민들이 기대가 컸는데 요즘 후순위로 밀려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차후에라도 기념관이 설립되고,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특색 있는 농촌마을로 변모하기 위해 부지런히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신월례(84)씨 = 장요리에서 시집 왔는데 그때는 말도 못했어요. 강원도나 여기나 똑같았지 뭐. 그래도 옛날에는 마을이 컸는데 지금은 다 노인들만 살고 있으니 동네에 뭐 특별한 게 있나. 다들 회관에 나와서 화투도 치고 이야기하며 노는 재미지. 앞으로도 세상은 살기 좋아진다는데 농촌도 같이 잘 살게 해줬으면 좋겠네요.


▲홍기남(91)옹 = 여기서 나서 자라고, 시집가고 늙어서 죽게 생겼어요. 평생을 이 마을에서만 살았는데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것은 다 똑같지 크게 변한거야 있나요. 그래도 옛날에는 집이 빽빽했었는데 다들 이 밑에 초록2리나 딴 마을로 옮겨들 갔지. 앞으로야 누가 이런 시골로 이사 오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정답게 살아가야지.


▲김대흑(83)씨 = 어렸을 때는 이 동네가 살만했지. 그 당시 다른 품값은 형편없었는데 무쇠솥 지고 광천이나 홍성장까지 날라다 주면 쌀 한말은 줬어. 다른 일 하느니 이일 하는 게 수입이 훨씬 좋았지. 그런데 솥 공장을 운영하던 3대가 손자, 아버지 순으로 세상을 뜨는 거야, 그러면서 점점 쇠락해져 갔지. 더군다나 이곳 공장은 작업을 다 수작업으로 했는데 그 당시에도 신기술이 들어오면서 경쟁에서 떨어진 거지.

▲장수흥(73)씨 = 박대통령 살아 초가집, 흙집 다 개량하고, 마을 도로도 다 등짐으로 퍼 날라 포장했어요. 옛날에는 소달구지는 고사하고 지게 하나 지고 다니던 길이 마을에 있었지. 산속에 있다 보니 공기 좋고, 물도 좋고 다 좋습니다. 특히 이 마을 지하수는 산꼭대기에 팠기 때문에 수질 좋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이렇게 좋은 마을 환경 때문인지 효자마을이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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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의 발견-마을기행 44] 고북면 초록1리||명창 ‘고수관 선생’출생지로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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