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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2.02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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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읍 화곡2리(이장 김지동)는 조선시대 평신리 혹은 평신진리라 불리다 1895년 개화동과 반곡리로 나뉘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서 개화동과 반곡리 일부를 합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드는 과정에서 각 마을에서 화자와 곡자를 취하여 화곡리(花谷理)란 이름을 갖게 됐다.

과거 반곡리라 불리던 지역에는 팔봉면 구도에서 이전한 조선수군의 진지가 건설되어 일약 변방의 오지에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탈바꿈한 사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문헌으로만 전해 내려오고 있을 뿐 유적지나 유물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쉬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다만 둘레가 약 300m에 이르는 평신진성터가 남아 있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화곡2리는 민어, 갈치, 꽃게 등 풍부한 수산물로 유명했던 마을이었다. 잡히는 어종과 양도 많아 지금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개불과 갯장어 등은 쳐다보지도 않돈 시절이 있었다는게 마을 어르신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이렇게 풍부하던 수산물도 대산항이 건설되면서 추억 속에서만 접할 수 있는 옛날이야기가 되어버려 주민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풍부했던 수산물의 자리를 관내에서 맛 좋기로 유명한 과수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 20여 년 전 부터 사과, 배, 포도 등을 재배하기 시작한 마을 주민들은 서해안의 해풍을 맞고 자란 탓에 유달리 맛이 좋은 과일을 브랜드화 시키기 위한 계획도 갖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만성적인 일손 부족과 자재 값 폭등 등 재배 여건이 좋지 않아 쉽지 만은 않은 일이지만 끈끈한 주민간의 협력을 바탕으로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하고 있다.

과거 변방의 오지에서 군사적 요충지로 급격한 변화로 겪었고, 근래에 들어서는 평범한 시골마을에서 국내 굴지의 화학단지가 들어서는 변화를 겪은 마을 주민들. 이제 그들은 제3의 변화가 일어나 마을뿐만이 아닌 지역농촌 전체가 활성화 될 수 있는 변화의 바람의 불어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방관식 기자

▲눈덮힌 화곡2리 풍경. 주민들은 새로운 변화의 바람으로 좀 더 활기 넘치는 농촌마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화곡2리 사람들


평상시에도 경로당에 어르신,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50여명이 모여 있어 특별히 마을회의를 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민간의 화합이 돈독하다고 자랑하는 화곡2리 주민들. 원주민 112가구와 사원아파트 450세대가 살아가고 있기에 불편한 점도 많다. 그러나 단결된 모습으로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주민들은 모두가 한 식구였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김지동(53) 이장 = 마을을 지나는 국도 38호선이 협소한 2차선이라 교통체증과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상수도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대기업들이 입주하면서 지역주민들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인 지원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역과 기업이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임석(59) 새마을지도자 =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는 기업이 현지의 젊은이들에게 채용의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고향을 지키면서 직장에 다닐 수 있다면 회사도 좋고, 마을도 좋은 일석이조 아닐까요? 기업도 나름대로 힘든 점이 많겠지만 지역발전을 위해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이 기업의 책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홍예성(81)씨 = 지게 지고 이른 새벽에 서산 장에 나가면 어두워 져서야 돌아왔지. 옛날에야 차가 변변했나, 다 걸어서 볼일 보러 다녔지. 그때 비하면 지금이야 너무나도 많이 변했지. 좋게 변한 것도 있고, 그르게 변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살 사람들을 위해서는 공장에서 나오는 공해를 줄여야하지 않을까해. 그래야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지 않겠어.


▲변수복(81)씨 = 옛날에야 13살만 되면 논, 밭에서 일했지. 지금처럼 어디 맘 놓고 놀러 다니고 할 수 있었나. 지금이야 살기 좋아졌지. 오늘도 부녀회에서 마을 노인들 모시고 2박3일 관광 갔어, 어른들 공경 잘해주고, 주민 간에 다투는 일없이 화목하게 살고들 있으니 이만하면 좋은 동네 아닌가 생각하네.


 

▲유상현(77)씨 = 과거에는 농촌과 어촌이 혼합된 마을이었지. 나 어려서만 해도 바다에서 잡는 것만으로도 자급자족을 했어요. 꽃게도 한번 나가면 50마리도 훨씬 넘게 잡았고, 망둥이 도 셀 수도 없이 잡혔지. 그때 생각하면 요즘 비싼 꽃게 먹기가 좀 그래.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세월이 그만큼 변할 걸, 변한대로 맞춰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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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행 61] 대산읍 화곡2리||풍부했던 수산물 대신 과수가 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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